소설리스트

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71화 (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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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를 로하스관으로 내보내고 칼립소는 정무에 더 집중했다.

매일 밤 잠들지 못했던 상황은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지 몸 상태는 개운하지 않았다.

여전히 몸이 근질근질하고 피가 날뛰는 거 같았다.

‘이럴 때는 차라리 전쟁에 참가하여 피를 보면 나아질까.’

치유력까지 생겼으니, 정복 전쟁을 벌인다면 뛰어난 성과를 보일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전쟁은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엘레나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제 것 아닌 능력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내 능력을 가져갔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능력을 돌려주고 싶었다.

제 것도 무엇이든 내어주고 싶은 판에 그녀의 것은 말해 무어겠는가.

하지만 만약 능력까지 내어준다면? 그 다음은?

엘레나는 그나마도 자신과 접점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속인 것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엘레나에게 자신은 의미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떻게 해야 엘레나를 얻을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칼립소의 답답증은 커져만 갔다.

이럴 때는 정신없이 바쁜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나라가 커진 만큼 해야 할 일이 늘었고, 케이타 제국은 빠르게 성장했다.

대제국을 거느린 케이타 제국은 정복지에 도시를 건설하며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케이타 제국의 수도 타이안을 무역과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시켜 빠르게 성장을 이끌어 나갔다.

정무 회의가 끝날 무렵, 카토 공작이 입을 열었다.

“폐하, 최근 가이아 제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금액이 무척 늘었습니다. 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다행이나, 가이아의 상품들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는 것이 염려됩니다.”

“무슨 염려가 된다는 거지?”

“특히 여인들의 사치가 심해졌습니다. 기존에는 소박하게 저희 전통의상인 샤오르만 입던 여인들이 이제는 다양한 드레스를 요구하고 있고, 액세서리나 온갖 사치품의 요구도 잦아졌습니다. 또한 가이아인의 건축 양식은 소박한 저희 케이타 제국의 건축과는 달리 건축 방법이 복잡하고 화려합니다. 이 점을 살펴서 앞으로 규제와 관세를 물릴 것을 요청드립니다.”

“카토 공작.”

“네, 폐하.”

“고작 얼마나 되었다고 그딴 말을 입에 담지?”

카토 공작은 서늘한 말에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문화 개방 정책은 짐의 뜻이고, 그로 인해 나라가 발전하고 있어. 그걸 못 견디고, 규제를 하자는 발상은 짐의 뜻에 반하는 것을 모르나?”

“송구합니다, 폐하.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서슬 퍼런 칼립소의 반응에 카토 공작이 납작 엎드렸다.

“거기다 그 이유가 고작 여인네들의 사치라니. 어이가 없어서.”

칼립소가 위엄있는 어조로 말했다.

“방탕한 것으로 따지면, 카토 공작 자네가 더 만만치 않을 텐데.”

카토 공작은 자신을 지적하는 말에 머리를 박았다.

“폐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않겠습니다.”

“그럴 시간에 자네 능력이나 갈고닦아. 그리고, 방금 죽을죄를 지었다고 했나? 전쟁을 하지 않았더니 마침 몸이 근질거리는 판이야.”

탁.

탁자를 치고 칼립소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대신들이 황급히 엎드렸다.

전쟁에서의 칼립소를 겪었던 신하들은 그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칼립소는 엎드려있는 이들을 훑어보곤 회의장을 나섰다. 그런 그를 데릭이 빠르게 뒤따랐다.

“폐하.”

“무슨 일이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칼립소의 허락이 떨어지자, 데릭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폐하, 카토 공작이 그렇게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여론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여론?”

데릭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엘레나 님을 향한 소문입니다.”

“자세히 말해 봐.”

“엘레나 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거리부터 들려오고 있습니다.”

데릭은 은밀히 퍼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은빛 여우 한 마리,

예쁘다 예쁘다 하여

꼬리를 자르지 못해

천방지축 날뛰어도

예쁘다 귀여워하니

주인의 심장을 파먹네.

겨우 여우 한 마리인데

겨우 여우 한 마리인데

주인이 물려 죽었다네.

노래를 들은 칼립소는 오히려 크게 웃었다.

“은빛 여우가 예쁘긴 하지. 기꺼이 물려 죽고 싶을 만큼.”

“폐하!”

“그래서, 엘레나가 은빛 여우라는 거야?”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가이아 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불만을 지닌 세력이 늘고 있으니까요.”

“한심한 놈들.”

칼립소가 중얼거렸다.

“무슨 불만이 생긴 건데? 기존에 누리던 것들을 누리지 못해서?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저보다 잘살게 되어서?”

칼립소는 실소했다.

“가이아인들의 자치 구역이 생기고, 가이아 제국의 상품들이 인기가 많아지면서 기존의 상권들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되어야지.”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거리부터 흘러나온 노래라서요. 민심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이게 백성들이 만든 노래라고?”

“네, 거리의 아이들에게서 나온 노래입니다.”

“쯧쯧, 한심하긴. 당연히 배후가 있겠지.”

칼립소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정책에 불만을 품은 자들 위주로 조사해. 우선 요하스 자작부터 철저히 털어봐. 그 주변의 움직임도 감시하고.”

“알겠습니다. 증거가 나오면 바로 처리할까요?”

칼립소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좀 더 지켜봐. 누가 어떻게 모이는 건지. 이 기회에 누가 짐에게 반기를 드는지 제대로 솎아내야지.”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기간에 가장 반란 세력이 모이기 쉬워질 것이다.

특히 케이타 제국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제국이었다.

이번 기회를 칼립소는 자신에게 충성할 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판단할 기회로 삼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데릭이 고개를 숙였다.

매번 감탄하는 것이지만, 칼립소의 위기 대처 능력은 뛰어났다. 이번 사건을 황권 강화의 기회로 삼는다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철저하게 조사한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데릭을 내보내고, 칼립소는 정원을 거닐었다.

날이 흐릿하고 캄캄한 밤이다.

그 말은 ‘삭’의 날이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 * *

가이아의 황궁에서는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다시 돌아온 안토니안은 기세가 달라졌다.

옆에 있던 히르타인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 몰라도 안토니안은 이전보다 좀 더 과감해지고, 좀 더 거칠어졌다.

“폐하, 저에게 황실을 수호하게 해 주십시오. 신에게 맡겨주시면 제가 케이타 제국에서 엘레나를 구해 오겠습니다.”

“흐음…….”

“지금까지 친위대가 엘레나를 구하기 위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황실을 수호해야 마땅한 자리 아닙니까?”

“안토니안, 말이 심하지 않나?”

아들라스 공이 그 말에 대놓고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안토니안은 말을 이었다.

“그럼, 말씀해보시죠. 엘레나를 데려오기 위해 지금까지 친위대에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협상을 맺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란 말인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 거 아닙니까?”

“그러는 자네야말로 무엇을 했나? 위급할 때 도망가서 지금까지 잠적하고 이제야 나타난 것 아닌가?”

“잠적한 게 아닙니다. 그동안 준비한 거지요.”

“무슨 준비를 말이지? 혹시 히르타인을 데리고 온 것을 말하는 건가? 그 족속과 엮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는 있나?”

“지금 저는 아들라스 공작님이 아닌 폐하께 말씀드리는 중이었습니다. 공작님이야말로 폐하께 말씀하는 자리에 끼어드시다니 무례하시군요.”

“뭐? 무례?”

그러자 베리우스 황제가 손을 들어 아들라스의 말을 멈췄다.

“안토니안의 말이 맞아. 지금 짐과 대화 중이었지 않소?”

“하오나 폐하, 지금 안토니안이 친위대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안토니안이 고개를 숙였다.

“폐하, 아룁옵기 황공하오나 조용히 둘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알현을 청합니다.”

“허락한다.”

“폐하!”

“아들라스 공, 잠시 물러가 있게.”

베리우스는 아들라스를 비롯한 좌중을 물렸다.

아들라스가 멈칫했으나, 베리우스 황제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모두가 물러나자, 베리우스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때 말한 방도를 말하는 건가? 하지만 히르타인을 끌어들이는 건, 그다지 내키지가 않아.”

“폐하, 그들은 제가 충분히 다룰 수 있습니다. 금전으로 움직이는 자들이니 도구일 뿐입니다. 도구는 잘 쓰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베리우스 황제는 석연치 않았다.

그러자 안토니안은 서류를 꺼냈다.

“히르타인 뿐만이 아닙니다. 저와 힘을 합치려고 약조한 사람들입니다. 귀족뿐 아니라 평민들 중에도 저와 힘을 합치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단을 보던 베리우스 황제가 눈을 들었다.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폐하, 하루빨리 엘레나를 데려와 위대한 제국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제국……. 그렇지.”

베리우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심상치 않은 자신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명이 다하기 전에 신탁의 계시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

자신 다음으로 가이아 제국을 이끌어 나갈 사람은 엘레나와 안토니안이었다.

베리우스 황제는 진중한 시선으로 안토니안을 봤다.

“안토니안, 정말 자신이 있나?”

“맡겨만 주십시오. 폐하.”

베리우스 황제는 안토니안의 호언장담에 넘어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위대의 대장 자리를 맡겼다.

* * *

아리엘은 친위대 대장이 된 안토니안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사실 가이아 제국에서는 이제 케이타 제국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요즘 들어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가이아 물품의 수출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협력을 하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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