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68화 (68/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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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녀는 심각한 얼굴로 성소에서 나왔다.

‘보름의 일이 틀어진 건가.’

엘레나의 별이 흐릿해졌다.

캐서린을 통해 알아보려 해도 엘레나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됐어.’

엘레나의 별도 흐릿한 데다, 검은 구름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지금 가장 반짝이는 별은 안토니안의 별이었다.

‘안토니안이 돌아오는 건가.’

대신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 * *

그 시각, 가이아 제국의 황궁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었다.

대신녀의 예측대로 안토니안이 개선장군처럼 황궁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안토니안!”

하를 공작은 놀라서 안토니안을 맞이했다.

그동안 안토니안의 행방불명으로 마치 죄지은 이처럼 살았는데 집에서보다 황궁에서 먼저 안토니안을 보니 놀랐다.

게다가 안토니안 옆에는 몇몇의 장정들도 보였다.

“안토니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아버지, 먼저, 폐하를 뵙겠습니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안토니안은 환하게 웃었다.

붉은 머리카락은 하를 공작이 염색해 줬던 것보다 더 밝게 빛났다.

안토니안의 행방이 묘연하게 되자 머리 색에 대한 염려도 같이 했었다.

‘혹시 들키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안토니안은 그런 염려를 비웃기라도 하든 붉게 타오르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궁궐로 들어왔다.

하를 공작과 함께 걸으며 안토니안은 당당히 말했다.

“아버지, 저는 가이아 제국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준비를 말이냐? 그리고 이 옆의 사람들은 또 뭐고.”

안토니안을 호위하듯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안토니안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체격도 우락부락했다.

“히르타인들입니다.”

“이들을 왜 데려온 거냐?”

“두고 보시면 알 것입니다. 케이타족을 상대할 이들이니까요.”

“안토니안.”

하를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는 알겠으나 그렇다고 히르타인들을 끌어들이다니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히르타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가이아 제국을 괴롭혀왔다.

특히 해상 무역 쪽에서 해적으로 나타나서 가이아 제국의 배를 약탈하기 일쑤였다.

선대 황제가 히르타인들이 거주할 섬을 마련하여 정착을 도와준 후로 잠잠해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히르타인들을 제국의 문제에 끌어들이다니.

이들은 다루기도 까다롭고, 문제를 일으킬 확률도 높았다.

“안토니안, 이리 와. 먼저 이야기 좀 하자.”

“아버지, 걱정 마세요. 그리고 폐하를 먼저 뵈어야죠.”

안토니안은 하를 공작을 지나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은 안토니안의 귀환 소식에 떠들썩했다.

베리우스 황제도 안토니안을 보고 기뻐하며 환대했다.

“폐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안토니안이 예를 갖춰 인사를 하자, 베리우스 황제가 직접 몸을 내려 안토니안의 손을 잡았다.

“안토니안! 그동안 어디 있었지?”

“폐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일단, 돌아왔으니 그걸로 되었다.”

베리우스 황제가 기쁨에 겨워 말했다.

케이타 제국으로 엘레나를 보낸 이후, 안토니안의 존재는 더욱 간절해졌다.

“그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길래 연락이 없었나?”

“더 일찍 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안토니안은 깍듯하게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도저히 폐하께 면목이 없어 차마 나타나질 못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안토니안, 자네의 잘못이 아니야.”

베리우스 황제는 씁쓸하게 말했다.

물론 처음에는 엘리자베스의 말을 듣고 안토니안을 원망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 엘레나가 케이타 제국의 정부에서 풀려난다면, 그녀를 맞이할 사람은 안토니안뿐이었다.

더군다나 베리우스 황제는 최근에 급격하게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황실 주치의인 안다르 의원의 말도 심상치 않았다.

아직 엘리자베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으나, 베리우스는 불안했다.

그래서 하루빨리 엘레나를 데려와 후계를 안정시키고 싶었다.

“폐하, 그동안 제국의 도처를 돌아다니며, 엘레나를 구할 방도를 찾았습니다.”

“그래?”

베리우스 황제가 반색을 했다.

“엘레나를 이대로 케이타 제국에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베리우스는 말끝을 흐렸다.

케이타 제국이 저리도 막강한데 무슨 수가 있겠는가.

“저대로 놔두면 엘레나를 언제 돌려보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방도를 찾았나?”

“제가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 이야기해 봐.”

베리우스 황제가 반색하자, 안토니안은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엘레나는 여전히 황궁에 갇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일을 알기에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엘레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칼립소를 기다렸다.

비비안을 통해 몇 번의 만남을 제의했으나, 칼립소에게는 답이 없었다.

결국, 칼립소가 온 것은 다음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한 엘레나는 그 밤 역시 뜬 눈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저벅. 저벅.

약간 흐트러진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짐작이 갔다.

커다란 소리를 내며, 칼립소가 방문을 열었다.

“폐하…….”

엘레나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났다.

“…….”

칼립소의 몸에선, 술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한참 만에 본 칼립소의 얼굴은 선이 드러나 날카로워 보였다.

그 반면, 붉은 눈은 형형하게 살아있었다.

그날 밤 이후, 칼립소는 아무리 해도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엘레나를 찾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밤마다 사냥을 떠났다.

숲에 있는 짐승들은 모조리 잡아들일 기세로 칼립소는 밤 사냥을 했다.

괴로운 마음에 죽을 듯이 달려들었지만, 정작 상처가 나도 금방 아무는 통에 몸은 멀쩡했다.

황궁의 창고에는 어느 때보다 높다랗게 차곡차곡 짐승 가죽이 쌓였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혹사시켜도 밤에 잠이 들기는 쉽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누울 때면, 엘레나가 생각났다.

술에 취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취해도, 잠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결국, 보름이 뜬 밤. 참지 못하고 엘레나를 찾아온 것이다.

“여기 앉아요.”

엘레나가 침실 옆에 있는 탁자에 앉기를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칼립소가 찾아오길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설명을 해야 하는 건 분명했다.

앉으라는 말에도 칼립소는 그저 엘레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보름이야.”

칼립소가 자조하듯 웃었다.

“앉아서 이야기해요.”

칼립소의 얼굴에는 기묘한 웃음이 걸려있었고, 몸에선 진한 술 냄새가 풍겼다.

“취……했어요?”

“취했냐고?”

붉은 눈 주위의 하얀 자위에도 실핏줄이 서 있어, 칼립소의 인상은 한층 험악해 보였다.

“차라리 취하길 바랄 때도 있지.”

엘레나가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술을 열려고 할 때였다.

“잠이 안 와.”

칼립소가 중얼댔다.

“……왜요?”

“글쎄, 왜일까?”

칼립소가 엘레나에게 점차 다가왔다.

그러더니 엘레나를 잡고 침대에 눕혔다.

엘레나는 깜짝 놀라 버둥거렸지만, 칼립소의 몸에 사방이 막혀 달아날 수가 없었다.

“안 돼?”

칼립소가 묘하게 웃었다.

“보름이잖아. 다시 시작해야지.”

그 순간 엘레나의 동작이 멎었다.

달아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자, 칼립소의 입술이 엘레나를 덮었다.

벌려진 입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온 혀가 멋대로 움직였다.

흡사 생명수를 마시듯 마구 빨아들이는 칼립소는 한 달 내내 굶은 맹수와도 같았다.

엘레나가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그는 맹렬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려 입술을 물리자, 이번엔 칼립소가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붉은 자국들이 목덜미며, 귓불이며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했다.

“먼저, 이야기를 좀…….”

“무슨 이야기? 당신과 나 사이에 할 이야기가 뭐가 더 있다고.”

칼립소는 샤오르의 매듭에 손을 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꺼낼지 엘레나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그의 손은 재빠르게 매듭을 풀어냈다.

한 번의 매듭이 풀리자, 샤오르는 힘없이 벗겨졌다.

허리 아래 있는 매듭도 순식간에 풀리며 하얀 살결이 드러났다.

“자…… 잠시만요.”

엘레나가 팔로 그의 등을 쳤지만, 칼립소는 속도를 늦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미 칼립소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칼립소의 손이 급하게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런 식은…….’

엘레나가 황급히 손을 밀어내려 했으나, 칼립소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엘레나와 마주하자 이제야 비로소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칼립소는 손은 멈추지 않은 채, 코를 목덜미에 묻은 채로 엘레나의 향을 가슴 깊이 빨아올렸다.

비로소 해야 할 것을 하는 느낌이었다.

끊임없이 차오르던 갈증에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심장이 거세게 뛰어 자제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내가 무슨…….”

칼립소는 황급히 몸을 떼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비참함이 얼굴에 드리워졌다. 믿어지지 않는 듯이 자신의 손을 보더니 팔을 늘어뜨린 채, 허공을 올려다봤다.

‘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까.’

자신보다 훨씬 더 괴로워하는 칼립소를 보면서 엘레나는 저절로 입술이 열렸다.

“이리 와요.”

엘레나의 말에 칼립소는 자신을 맡겼다.

“조금만 천천히.”

경주마의 말처럼 다급하게 다시 달려드는 칼립소를 엘레나가 달랬다.

그녀가 칼립소의 어깨를 안자 그가 속도를 조절하며, 그녀와 리듬을 맞췄다.

서로의 몸이 얽혀지며, 서로가 갈급하게 다가갔다.

원하고 또 원한다.

칼립소는 엘레나에게 할 수 있는 한 깊게 다가갔다. 이 순간만은 엘레나도 함께 반응했다.

쾌락에 흐트러진 얼굴을 보며, 칼립소는 진한 만족감을 느꼈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아무리 몸을 혹사시켜도 느낄 수 없었던 만족감이었다.

오직 이런 감각은 엘레나만이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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