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66화 (6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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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소의 손이 샤오르의 매듭에 닿았다. 잡아 뜯어내듯 거친 손길에 샤오르의 천이 여러 갈래로 찢겼다.

갑자기 달라진 태도에 엘레나는 당황했다.

칼립소는 엘레나의 팔을 잡더니 양손을 함께 쥐고 찢긴 천으로 묶기 시작했다.

“왜……?”

엘레나가 일어서려고 하자, 칼립소가 다시 침대 위로 넘어뜨렸다.

“이런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함께 밤을 보낼 수 있다면.

취향이라니 존중해 주는 수밖에.

잠깐 움직여 보니, 어찌나 단단하게 묶었는지 옴짝달싹하지 못할 정도였다.

칼립소가 입매를 올리더니 엘레나의 다리 사이로 자리 잡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엘레나는 다가올 고통이 어떤 건지 짐작도 못 했다.

“그리도 나와 밤을 보내고 싶다면야.”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왠지 섬뜩해 엘레나가 몸을 떨었다.

칼립소의 몸이 내려올 때까지 엘레나는 아무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칼립소는 절대 엘레나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았다.

다만, 지독히 자극할 뿐이었다.

“제발…….”

무엇을 원하는지, 그녀도 알고 그도 알았다.

다만 한 쪽이 주기를 거부하고 있을 뿐이었다.

최대한 몸을 맞붙이려고 해도 묶어놓은 끈 때문에 쉽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칼립소는 오직 손으로만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도 절정을 맞기 직전까지만,

“이제, 들어와요.”

참을 수 없는 쾌락의 감각이 버거워 엘레나는 결국 말해버렸다.

하지만 칼립소는 답이 없었다.

엘레나는 이제 쾌감보다는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칼립소의 손은 그녀가 원하는 곳에 절대 닿지 않았다.

그 주변만 빙빙 돌 뿐이었다.

애매한 쾌감에 갈증만 더 심해졌다.

“칼…….”

칼립소의 움직임이 딱 멎었다.

붉은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엘레나는 눈빛으로 애원했다.

하루아침에 그가 목석이라도 된 것 같았다.

지금도 흥분에 떠는 엘레나를 칼립소는 차가운 눈길로 관조할 뿐이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던 칼립소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건, 재미없어요. 이제 그냥…….”

울먹이지 않으려 해도 목소리가 저절로 흐느껴졌다.

아무리 애원해도 결코 원하는 것을 내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또다시 전희만 계속 할 뿐이다.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제발…….”

엘레나의 허리가 애타게 떨렸지만, 칼립소는 그녀를 괴롭히는 것만이 목적 같았다.

뺨이 달아오르고 온몸이 열기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고문보다 더 지독했다.

새벽이 지나고 동이 터 올 무렵.

엘레나는 지치고 지쳤다.

전희치고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쾌감을 넘어선 고통에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엘레나는 물기 어린 눈동자로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밖은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그토록 원하던 보름날은 지났다.

“이제, 그만둬요.”

이럴 거면, 그냥 푹 잠들고 싶었다.

엘레나의 지친 눈동자를 보면서 칼립소가 손을 올렸다.

“아니, 지금부터가 시작인걸.”

묶인 천을 칼립소가 거칠게 뜯어버렸다.

엘레나의 몸이 자유로워지자, 칼립소는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함께 했다.

이제껏 어떻게 참았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 질주였다.

참았던 사람은 엘레나가 아니라, 오히려 그인 것처럼 몇 번이고 그녀를 끝까지 몰아갔다.

“아……!”

그토록 기다린 절정이었지만, 버거울 정도였다.

감당할 수 없는 쾌감에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제, 그만.”

“체력은 충분하다며.”

길게 늘어진 웃음 끝에 여전한 욕망이 묻어났다.

“이제 겨우 한 번이야. 벌써 지치면 곤란해.”

칼립소가 묘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지만, 쾌락의 끝에서 그조차도 잊었다.

해가 중천에 뜨고, 다시 해가 저물 때까지 엘레나는 쾌락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 * *

“으음.”

엘레나가 뒤척이자, 이불이 살짝 내려갔다.

칼립소는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물러나 앉았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엘레나를 집요하게 지켜봤다.

어젯밤으로 확실해졌다.

엘레나는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진실을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지만,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을 의지하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었을 텐데.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다면, 목숨을 바쳤을 텐데.

그녀는 자신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니, 사랑할 리도 없다.

처음으로 마음을 준 여자였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려라고 생각했다.

뼈아픈 배신감에 이성을 잃었다.

그녀에게 고통을 선사한 자신을 갈가리 찢겨버리고 싶었다.

칼립소는 얼굴을 쓸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엘레나를 봤다.

자고 있는 엘레나는 너무도 순수하고 연약해 보였다.

엘레나가 다시 뒤척이자, 이불 사이로 자신이 짐승처럼 물어놓은 흔적들이 보였다.

‘미친놈.’

칼립소는 머리를 감쌌다.

얼마만의 후회인지 모른다.

지금 이성적으로는 그녀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비록 마음이 없더라도, 그녀가 없다는 생각만 하면 돌아버리겠으니까.

자신은 아마 그녀를 망가뜨릴 거다.

그래도, 놔줄 수 없었다.

“으.”

엘레나가 눈을 떴다.

“일어났어?”

엘레나는 멍한 눈빛으로 깜빡였다.

첫날밤을 보낼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전날 밤은 그야말로 폭풍우였다.

마치 맹수에게 공격당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잊을 수 없었지만,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제 보름밤은 지나갔다.

엘레나는 자신의 팔을 들어보았다.

천을 동여맸던 손목에는 검붉은 멍이 들어있었다.

‘역시, 돌아오지 않았네.’

만약 치유력이 돌아왔다면 지금 자신의 몸은 흔적도 없이 깨끗했을 것이다.

세 번의 밤은 실패로 끝났다.

엘레나는 정신을 차리며 일어나려 했다.

“엘레나.”

칼립소가 엘레나의 팔을 잡았다가 멍든 자국을 보더니 황급히 떼었다.

“아직 무리야. 더 쉬어.”

“괜찮……아요.”

엘레나는 잔뜩 쉬어서 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랐다.

떠올려 보니 지난 밤에 꽤 소리를 지른 것 같았다.

“일어……날게요.”

엘레나가 침대 밑으로 내려오자, 갓 태어난 아기 사슴처럼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엘레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이런! 엘레나.”

놀란 칼립소가 엘레나를 들어 조심스럽게 침대에 올렸다.

“오늘은 그냥 쉬어.”

“그래야겠네요.”

엘레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비비안을 보낼게. 나보단 그녀가 편할 테니.”

칼립소가 나가자 곧이어 비비안이 들어왔다.

“엘레나 님.”

비비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엘레나를 바라봤다.

예전 같으면 두 분이 합방하는 것을 기쁘게 지켜봤겠지만 지금은 불안하기만 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막상 엘레나의 얼굴을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괜찮으세요? 엘레나 님. 얼굴이 너무 창백하세요.”

“괜찮아.”

엘레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거친 밤이었으나, 지나간 밤이다.

칼립소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지만, 그것도 이미 지난 일이다.

“좀 드실 수 있겠어요?”

비비안이 황금 쟁반에 여러 가지 음식을 가져왔다.

음식 냄새가 풍기자, 엘레나의 입 안에도 침이 고였다.

“맛있겠다. 먹을래.”

엘레나는 따뜻한 수프부터 한 입 먹었다.

순식간에 수프 그릇을 다 비우고, 바삭하고 따뜻하게 구운 빵을 먹었다.

속이 든든하니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이번 보름을 놓쳤으니, 아마도 다시 보름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른 일같았으면 매우 실망했을테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어쩐지 한 번의 기회가 지나갔다는 아쉬움보다도 다시 한번 칼립소와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대신녀와 이야기할 것이 좀 걱정이었지만, 뜻대로 안 된 것을 어쩌란 말인가.

엘레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흡족한 표정으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아침 식사를 마치자, 두 명의 시녀들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궁정 마사지사입니다. 폐하께서 엘레나 님이 마사지가 필요할 거라 하셨습니다.”

두 명의 시녀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엘레나는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신들의 행위가 낱낱이 까발려지는 기분이었다.

“괜찮으니, 물러가.”

“폐하의 명이십니다.”

엘레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자신의 의사보다는 폐하의 명이 더 중요하겠지.

“폐하께는 내가 따로 말씀드릴테니 물러가.”

“그럴 수 없습니다.”

두 시녀가 엘레나의 발밑에 엎드렸다.

황제께 직접 받은 명이었다.

만약 여기서 물러난다면,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다.

엘레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칼립소의 의도는 알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짓은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해야겠다.

이것보다는 한 자리에 눈을 뜨는 것이 좋고, 같이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힘들다면 다음에 만나면 그만인 것을.

쯧.

엘레나는 할 수 없이 수긍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엎드리세요.”

두 명의 마사지사는 엘레나의 몸을 부드럽게 만졌다.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근육을 풀어드려.」

처음으로 받은 폐하의 명이었다.

손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엘레나 님, 송구스럽지만 몸에 힘을 빼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

마사지사의 손이 닿자 다른 사람의 손길에 익숙지 않은 엘레나의 몸이 바싹 긴장했던 것이다.

비록 요사이 훈련을 게을리했지만, 전장에서도 뒹굴었고, 기사로서 산 삶이었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손이 닿는 것에는 기본적인 경계가 일었다.

“편안하게 생각해주세요.”

몸을 이완시켜주는 아로마향이 퍼지고, 마사지의 손은 적당히 따뜻했다. 이어서 장미향이 가득 든 오일이 몸에 닿았다.

엘레나는 최대한 몸을 이완시켰다.

이런 마사지는 처음이었다.

가이아의 황궁에도 마사지사가 있었으나, 엘레나가 이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특유의 치유력 때문에 마사지를 이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엘레나가 몸을 이완시키자, 조심스러웠던 마사지사의 손이 능숙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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