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62화 (6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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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에서 굵은 팔이 엘레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아래로 이끌었다.

“먼저, 여기부터.”

얇은 샤오르 사이로 엘레나의 손이 들어갔다.

물론 커다랗게 덮은 칼립소의 손짓에 따라 움직인 거지만.

엘레나가 숨을 참자, 귓가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랫배의 기묘한 감각이 도화선을 타고 불을 지폈다.

허벅지 사이에 스치는 옷깃에도 민감한 감각이 타고 왔다.

한 손으로는 위로.

다른 한 손은 아래로 내려졌다.

비록 얇은 천으로 덮여있지만, 자기 손으로 느끼는 감각은 새로웠다.

짜릿한 감각을 느끼며, 엘레나의 몸이 떨렸다.

본능적으로 입술이 벌어지자, 뜨거운 혀가 반갑게 들어왔다.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며, 쾌감을 만끽했다.

그러는 동안 칼립소의 손이 더 깊이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칼립소의 손에 감긴 자신의 손이.

부끄러운 나머지 달아나려 해도 단단히 움켜잡은 악력 때문에 쉽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파고들었으니까.

“정말 보름까지 기다려야겠어?”

이제 참을 수 없는 건 엘레나가 아니라는 듯이 나른하게 말했다.

하지만 엘레나가 고집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성난 듯 손짓이 거칠어졌다.

짧은 절정이 스쳐 지나갔다.

부끄러움과 쾌감이 동시에 몰려와 엘레나의 볼이 붉어졌다.

“이제 나도 해줘야지.”

아까부터 엉덩이를 쿡쿡 찌르던 밑에 뜨겁고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딱히 제 상태를 감출 생각이 없는 칼립소는 느긋하게 다리를 벌렸다.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서로 원하는 게 같았으니까.

엘레나의 부드러운 손이 닿자, 칼립소는 말 그대로 즐겼다.

처음부터 칼립소는 제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덕분에 엘레나는 자신의 손짓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칼립소의 얼굴을 충분히 구경할 수 있었다.

발긋하게 달아오른 눈가와 함께 얼굴 전체에 불그스름한 열이 오른다.

“하아, 엘레나.”

이 커다란 사내가 자신의 작은 손 하나에 맥을 못 추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의 여유는 온데간데없었다.

칼립소는 자신의 흥분과 열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낮은 신음을 울리던 칼립소가 엘레나의 은빛 머리카락을 잡았다.

아래에는 이제, 엘레나의 조그만 손을 잡고 함께 문지르기 시작했다.

“입 벌려.”

입술이 벌어지는 혀가 깊이 들어오는 동시에 그도 절정에 올랐다.

후.

아직 부족했지만 급한 불은 껐다.

이대로 엘레나의 허리를 잡고 침실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정염에 불타는 붉은 눈은 시선으로 엘레나의 얼굴을 훑었다.

마치 같은 것을 느끼지 않냐는 듯이.

“보름에 봅시다.”

칼립소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재촉하고 싶지만, 존중한다고.

* * *

칼립소는 흥겨운 발걸음으로 황궁으로 돌아왔다.

달이 거의 찼다.

보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난번처럼 궁 안에서 하루 종일 함께 지낼 생각을 하니 심장이 춤을 추듯 요동쳤다.

기분 좋게 황궁에 들어오는 순간, 데릭이 일어나 칼립소를 맞았다.

“폐하.”

“데릭, 이 시간까지 날 기다렸나?”

“네, 폐하.”

“한잔하겠나?”

좋은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좋습니다.”

칼립소의 뒤를 데릭이 따라 들어갔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칼립소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바로 시종이 따라붙었다.

칼립소는 손을 저어 시종을 물렸다.

“됐어. 데릭과 둘이 마실 테니.”

응접실 안으로 들어가 칼립소는 보카시 럼을 꺼냈다. 와인보다 열 배는 독한 술이었다.

“받아.”

데릭은 받은 잔을 한 번에 마셨다.

식도를 태우는 듯한 독한 술이 단숨에 넘어갔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연애란 게 이리 좋은 건지 몰랐네. 지난 세월이 억울할 지경이야.”

칼립소 역시 독한 술을 한 번에 마셨다.

“그래, 이 시간까지 날 기다린 이유가 뭐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봐. 지금 기분으로는 어떤 실수도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제 국혼을 진행하시는 게 어떨까요?”

탁.

칼립소가 굳은 표정으로 술잔을 내려놨다.

“누구와?”

음산한 목소리가 공포를 자아냈지만, 데릭은 용기를 냈다.

“시기가 적절합니다. 나라가 안정이 되었으니, 이제 황권을 강화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누구와?”

칼립소의 붉은 눈빛이 타는 듯이 일렁였다.

“전에 말씀드린 르시아 제국의 공주님이 적절할 듯합니다.”

“데릭.”

칼립소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내가 기분이 아주 좋아. 그래서 이번 실수는 너그러이 넘어가지. 하지만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마.”

칼립소는 경고했다.

“내가 엘레나 외에 다른 여자를 들일 거 같아?”

“그럼, 혼인을 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데릭이 절망스럽게 물었다.

“엘레나님은 정부로 데려온 거 아닙니까?”

“후회 중이야.”

칼립소가 중얼거렸다.

“끝까지 국혼으로 밀어붙였어야 했어.”

그랬다면 모든 것이 더 간단해졌을 것이다.

그때 자신이 한 번 꺾였다면 어땠을까. 가이아 제국이 항복을 선언했을 때, 정부가 아닌 국혼으로 진행했다면.

칼립소는 본디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보름과 삭의 날에 엘레나와 같이 밤을 보낸 후 국혼으로 진행하지 못한 것이 몇 번이나 아쉽게 느껴졌다.

“그럼, 엘레나 님을 황후로 올리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면?”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칼립소의 속내였다.

온 세상에 자신의 반려라고 선포하고 싶었다.

마침 엘레나 역시 자신의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이대로 가이아의 문화가 잘 전파되고, 양국의 관계가 나아진다면, 다시 한번 국혼을 추진해도 괜찮지 않을까.

“엘레나 님도 그걸 원하실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엘레나 님은 이전과 다르지 않으실 겁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하는 거지?”

무겁게 내리꽂히는 칼립소의 음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데릭은 말을 이었다.

“폐하.”

데릭이 고개를 숙였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엘레나 님은 폐하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가이아인들에게 자치권을 준 것을 이야기하는 거야? 처음부터 말했잖아. 가이아의 문화가 탐났다고. 그들을 노예로 부릴 거면 굳이 협상조약에 기술자나 예술가를 보내라고 하지도 않았어. 차라리 장성한 청년들을 보내라고 했지.”

“엘레나 님이 왜 가이아의 신녀를 케이타 제국으로 불렀는지 아십니까?”

“그야……. 신전 건축 때문이겠지.”

“진정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데릭의 반문에 칼립소는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 신전 건축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칼립소는 내심 찔렸다.

가이아 제국과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엘레나의 호감을 얻기 위해 급하게 추진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가이아의 신녀를 데려온 이가 제 동생입니다. 하여, 그녀를 잘 감시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가이아의 신녀를 통해 엘레나 님은 가이아의 대신녀와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거지?”

그간 밀서를 주고받은 정황은 없었다.

“가이아에서 온 신녀가 소통 창구가 되는 모양입니다. 영성술의 일종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가이아의 신녀를 데려오면서 그러한 위험부담을 모르지 않았다.

때문에 가이아의 신녀가 준비할 시간을 제대로 주지 않고 급하게 데려왔으며, 혹시라도 밀서를 숨겨오지는 않았을까 싶어 케이타 제국에 도착하자마자 탈탈 털어봤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따로 소통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칼립소의 얼굴에는 긴장이 역력했다.

혹시라도 가이아로 돌아가는 것을 논의했을까.

“엘레나 님의 치유력을 되찾는 문제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치유력?”

“협정 후, 이곳에 오시고 치유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그러고 보니 짚이는 바가 있었다.

돌 수레에 팔이 긁혔다고 했을 때 분명 상처가 쉽게 낫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엘레나의 치유력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문을 당할 때에도 다음 날이면 마치 씻은 것처럼 상처가 나았다고 했었으니까.

그에 비해 돌 수레에 긁힌 것은 작은 상처에 불과했다.

칼립소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동안 이상했지만, 무심코 지나갔던 일들이 하나하나 맞아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몸에 새겨진 멍들은 금방 사라졌는데…….

원래 그 정도 흔적은 치유력이 아니더라도 사라지는 건가?

칼립소는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치유력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서는 폐하와의 세 번의 밤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나와의 밤이 필요하다고? 이유가 뭐지?”

칼립소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데릭이 모르겠다고 답했으나, 칼립소는 집히는 바가 있었다.

가이아 제국에서 돌아온 후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 때도, 의원이 놀랄 만큼 빨리 회복되었다.

당시에는 체력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헥토르와 대련할 때도 분명 팔이 베었으나, 얼마 안 가 흔적도 없이 치유되었다.

‘혹시 치유력을 내게 뺏겼다는 건가? 그래서 나와의 밤이 필요하단 건가?’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칼립소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치유력을 잃은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이 점은 확실합니다. 폐하와 함께 보름에 한 번, 삭에 한 번, 다시 보름에 한 번, 세 번의 밤을 보내면 다시 능력을 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칼립소는 자신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보름……이라고?’

그날은 엘레나가 자신을 허락한 첫날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밤이었다.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갈래요?」

「멈출 필요 없어요.」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거부하던 것과 달리, 그날 밤은 유난히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구애가 받아들여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적이 따로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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