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어떻게…….”
칼립소 역시 죽을 맛이었다.
분명 좋은데, 그녀가 바싹 긴장한 나머지 제 속도를 찾아갈 수가 없었다.
‘조금만…….’
칼립소는 더 시도하려다 다시 멈췄다.
엘레나가 숨을 멈춘 채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다.
괴로운 듯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을 칼립소가 쓰다듬었다.
“조금만, 견뎌봐.”
엘레나는 칼립소의 어깨를 꽉 잡았다.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앙 다물었다.
그러자 칼립소의 손가락이 입술의 틈을 파고들었다.
“차라리 이걸 물어.”
엘레나를 진정시키려던 칼립소는 물컹한 안쪽에 손가락이 닿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입에서 거친 숨이 나오고, 코끝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 동안 기묘한 자세가 계속되자, 오히려 엘레나가 초조해졌다.
손가락을 꽉 물어버린 엘레나가 칼립소의 뒷목을 감싸며, 속삭였다.
“그냥 빨리, 해요.”
“뭐?”
칼립소의 눈에 황당하다는 빛이 스쳐가고 그의 허리가 크게 출렁였다.
칼립소의 턱이 엘레나의 어깨에 닿았다.
몸이 바짝 붙으며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칼……립소!”
엘레나가 참지 못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자, 칼립소가 움직임을 멈췄다.
“조, 조금만 천천히.”
엘레나가 칼립소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자, 그가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느릿하고 은밀하게.
하지만 깊게.
거대한 퍼즐이 이음새를 찾듯 끝없이 헤매다 마침내 맞아 들었다.
꼭 맞물려 함께 요동치는 순간 완벽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흐느끼는 그녀를 보며, 칼립소는 부드럽게 눈물을 닦았다.
“엘레나, 숨 쉬어.”
그리고 다시 호흡이 맞아들며, 둘은 새로운 경지에 함께 올랐다.
눈앞이 어지럽고, 몸이 덜덜 떨렸다.
젠장.
정말 빌어먹을 정도로 좋았다.
그날 밤, 칼립소는 결국 자제를 잃었다.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열락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 * *
동이 트고, 아침이 밝았다.
칼립소는 햇살이 밝게 들어오는 침실에서 엘레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쳐 잠든 엘레나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내 여자.’
칼립소의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녀를 몰아붙여 결국 울음을 터뜨리게 만든 지난 밤이 떠올랐다.
보랏빛 눈동자가 품은 그 물기가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흐트러진 얼굴에 차오른 눈물.
정복욕과는 달리 완전히 자신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차올랐다.
‘확실히, 기다린 보람이 있어.’
엘레나의 마음을 열기까지 기다린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칼립소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만약 그녀의 의지에 반해 밤을 맞이했다면 어제와 같은 광경은 못 봤을 테니까.
칼립소는 자신의 허리에 기꺼이 두르던 그녀의 다리를 기억했다.
함께 합을 맞춰나가던 쾌감.
그건 절대 혼자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체력이 생각보다 약해.’
하지만 전장에서 싸웠던 그녀이기에 그나마 버틴 것을 칼립소도 무의식적으로 느꼈다.
‘보약이라도 지어줘야 하나?’
엘레나의 얼굴을 관찰하는 것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칼립소의 손끝이 엘레나의 얼굴에 닿았다.
신기루가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다.
보드랍게 닿는 그 느낌에 손끝으로 가만히 얼굴선을 짚었다.
어젯밤이 오죽이나 힘들었는지, 만지작거려도 엘레나의 숨결은 변함이 없었다.
곤히 잠든 얼굴이 아기같이 순수해 보였다. 물론 어젯밤은 순수와 거리가 멀었지만.
좀 더 아래쪽을 보다 칼립소는 깊은 한숨을 흘렸다.
어젯밤의 자국이 하얀 살결에 새겨져 있었다.
특히 향이 나는 것 같았던 목덜미에는 자국이 심했다.
칼립소는 살짝 시트를 들춰 봤다.
‘이런.’
가슴 깊이 은근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아무리 부드럽고 달콤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그렇게 엘레나를 살피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움찔.
바르르 떨면서 엘레나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한동안 초점이 안 맞는 눈이 상황 파악을 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또 못 견디게 귀여워 칼립소는 홀로 입매를 올렸다.
“지난밤…….”
“우리가 열정적이었지. 함께.”
갑자기 지난 밤이 연상되면서 엘레나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엘레나는 급하게 일어나가다가 맨몸인 것을 발견하고, 시트를 황급히 끌었다.
온몸이 뻐근했다.
마치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난 다음 날 같다고나 할까.
“먼저 좀…… 씻어야겠어요.”
“같이 씻을까?”
칼립소가 엘레나 쪽으로 더 다가갔다.
삐걱.
칼립소의 무게에 침대가 출렁거렸다.
“진심은 아니죠?”
“여기서 더 진심일 수가 없는데.”
칼립소의 눈에 엘레나를 훑었다.
“왜 이렇게 긴장하지?”
“그야, 지금, 우리 둘 다…….”
차마 벗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뭐, 이보다 서로 더한 것도 봤으면서.”
“어쨌든 일단 씻는 게 좋겠어요.”
침대 아래로 빠져나오려 했으나, 칼립소는 좀처럼 틈을 주지 않았다.
이쪽으로 가려니 몸에 막히고, 저쪽으로 가려니 시선에 막힌다.
“왜 이래요?”
“실은…….”
답지 않게 칼립소의 귓가가 붉어졌다.
“한 번 더 하면 안 되나?”
은밀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엘레나가 흠칫 뒤로 물러났다.
딱 그만큼 칼립소가 다가왔지만.
“양심 좀 있어 봐요.”
“원래 그런 거 안 키우는데.”
엘레나는 기가 막혀 웃었다.
분명, 어젯밤도 한 번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엘레나가 칼립소의 가슴을 밀었다.
“비켜요. 지금은 씻을 거니까.”
“분부대로.”
칼립소는 선선히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여왕님이 씻는다고 하면 시중을 들어주는 수밖에.
“왜 쫓아와요?”
민망한 나머지 시트를 두르고 침실을 나서려는데, 칼립소가 뒤에서 치렁거리는 시트를 들며 따라오고 있었다.
“씻는다며.”
“그러니까요.”
“내가 도와줄게.”
“사양, 할게요.”
홱.
엘레나는 칼립소의 손에서 시트를 뺏으며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은 제발 착각이길 바라며.
* * *
욕실에 가니 비비안이 어느새 준비하고 있었다.
“엘레나 님. 어멋.”
비비안이 살짝 눈을 가렸다.
“왜?”
“아, 아니에요. 자국이.”
초롱초롱 뜨는 눈이 유난히 부담스러웠다.
“뭐?”
엘레나는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세상에.
어젯밤, 유난히 집요했던 칼립소의 손길이 떠올랐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한 건 아닌가.
맹수에게 습격당해도 이보단 덜할지도 몰랐다.
목덜미의 푸르스름한 멍 자국은 약과였다.
가슴 부근에 더 심한 자국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꽤 놀랐다.
“비비안, 나 혼자 씻을게.”
“그래도…….”
“비비안.”
“네, 말씀 따르겠습니다. 엘레나 님.”
단호하게 말하는 엘레나는 보며 비비안이 아쉽게 물러났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밖에 서 있을 테니.”
엘레나는 자신이 목욕하는 내내 밖에 서 있을 비비안을 생각하니 두통이 밀려왔다.
“제발, 가 있어.”
“알겠습니다. 엘레나 님.”
비비안이 물러나자, 엘레나는 비로소 온전히 목욕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함께 밤을 보낸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시선이 내려간 허벅지와 다리에도 흔적이 많이 남았다.
문득 그 자리에 칼립소의 입술이 닿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지독히도 자극적이고, 집요했던 순간이 생각나자, 아래가 찌르르하며 울렸다.
‘미쳤어.’
대단한 밤이었다.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것은, 단순히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게 아닌 대단히 은밀하고 깊은 행위였다.
‘잠깐. 그러면…….’
엘레나는 문득 궁금했다. 치유력이 얼마나 돌아왔을까.
목을 천천히 돌리며, 몸 안의 기를 모았다.
몸속의 피가 돌아가는 것이 예전보다 분명히 느껴졌다.
‘진짜네.’
목덜미의 멍이 점점 흐려졌다.
정신을 집중하고 한참 동안 기를 모았다.
혈관 하나하나가 피어오르는 감각이 되찾아졌다.
가슴 부근의 자국도 점점 사라졌다.
비록 별거 아닌 울혈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해 분명히 치유력은 돌아왔다.
「기가 가장 충만한 보름에 한 번, 가장 줄어든 삭에 한 번, 다시 가장 충만한 보름에 한 번, 총 세 번의 밤을 그 사람과 함께 보내야 합니다.」
세 번의 밤.
그럼, 앞으로 두 번의 밤을 같이 더 보내야 하는 건가.
어젯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거짓말.
상상보다 훨씬 좋았다.
물론 처음에는 조금 아팠지만, 그 이후에는 자신도 몰랐던 감각이 일어났으니까.
피부가 어루만져지고, 겹쳐지는 열기.
파도처럼 몸을 겹쳐오던 쾌락.
그런 건 있는 줄도 몰랐던 감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받는 느낌이 좋았다.
「세 번의 밤을 보내면 황녀님께서 다시 능력을 온전히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는 절대 함께 밤을 보내면 안 됩니다.」
세 번의 밤을 보낸 후에는, 다시 잘 수 없는 거구나.
엘레나는 문득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 * *
엘레나가 나오자, 칼립소가 식탁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몸은 괜찮아?”
“양심이 돌아왔나 보죠?”
“잠깐만 왔어. 아침 먹으면 돌아갈 거야.”
칼립소가 의자에서 일어나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그날 밤의 흔적을 고스란히 새겨졌던 목덜미의 멍이 옅어져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치유력이군.’
칼립소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새긴 자국이 없어진 게 아쉬웠다.
또 새기면 그만이지만.
“앉아.”
아침 식사는 저녁 만찬을 방불케 할 만큼 화려했다.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시종에게 주의를 줘야겠네요.”
엘레나는 아침은 간소하게 먹는 편이었다.
“내가 많이 차리라고 했어.”
“네?”
“우린, 어제 힘을 많이 썼잖아.”
“그런 말을 그렇게 대놓고 하면 어떻게 해요?”
엘레나가 주위를 살폈다.
엘레나 역시 내숭을 떠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달랐다.
가뜩이나 비비안의 시선도 민망해 죽을 지경인데, 함께 밤을 보냈다는 것을 온 세상에 광고라도 할 셈인 건가.
엘레나는 다소 쀼루퉁한 얼굴로 흰 빵을 뜯었다.
“이것 좀 먹어 봐.”
고기를 권하는 손길을 내쳤다.
“놔둬요. 알아서 먹을 테니.”
엘레나는 그저 흰 빵과 샐러드, 수프만 떠먹었다.
누가 아침부터 거하게 고기를 먹는다고 통돼지 요리를 가득 식탁에 올린단 말인가.
하지만 그 생각은 예상을 빗나갔다.
앞의 칼립소가 통돼지를 말끔하게 먹어 치운 것이다.
“더 먹고 싶으면 한 마리 더 구우라고 할까?”
“아……, 아니요.”
“그럼, 내가 먹지.”
금세 또 한 마리가 없어지는 것을 엘레나는 감탄의 눈으로 봤다.
‘저렇게 먹으니까 체력이 좋은 건가.’
엘레나는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요란한 식사가 끝나자, 칼립소가 일어섰다.
“오늘은 그냥 함께 있을까?”
“왜요?”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듯 물었다.
“그야……. 흠.”
칼립소의 귓가가 붉어졌다.
“첫날밤도 보냈고…….”
은근히 몰려드는 열기는 또 어떻고.
“원래 신혼은 며칠간은 쉬는 게 아니겠소?”
비록 점잖게 말했지만, 본심은 엘레나를 가둬놓고 침실에서 며칠 밤이고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반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