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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41화 (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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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세 번째 데이트할 때가 왔네요.”

“이틀이 더 지났지.”

칼립소가 불퉁한 어조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렇네요. 그럼, 지금 하면 되죠.”

엘레나가 살짝 웃자, 칼립소의 귀 끝이 발갛게 물들었다.

이 여자는 정말 마녀인가.

한 번의 미소에 그동안 쌓였던 섭섭함이 녹아버렸다.

“뭐부터 할까요?”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를 보자, 심장이 물결쳤다.

아까부터 단전에서부터 묘한 기운이 올라오면서 다른 의미로 피가 돌았다.

“날씨도 좋으니 같이 승마를 하지.”

칼립소는 더운 기운을 없애기 위해 밖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했다.

마침 날이 좋았고, 함께 달리고 싶었다.

“승마는 별로 내키지 않아요.”

“왜지?”

평소 같으면 흔쾌히 받아들일 제안이었지만, 엘레나는 사양했다.

아직 팔이 다 낫지 않았다.

지금은 다친 팔을 소매 안으로 숨기고 있었지만, 승마를 하게 되면 티가 날 거다.

“몸이 썩 좋지 않아요.”

“어디가.”

무뚝뚝하게 물으면서도 칼립소의 시선이 엘레나를 걱정스럽게 훑었다.

“요즘 좀 무리를 해서요.”

“신전 건축 공모 때문에?”

“이번 사업은 중요하니까요. 로하스관으로 온 이후, 처음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건 아몬이 알아서 하는 거 아닌가.”

칼립소가 성질난다는 듯 머리칼을 쓸었다.

“아몬에게 맡겨. 필요하면 인력을 더 붙이고. 왜 당신까지 달라붙어서 고민을 하지?”

그러고 보니 못 본 사이 얼굴이 좀 상한 것도 같았다. 원래도 마른 얼굴이 더 홀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 막히게 아름다웠지만.

“내가 직접 관여하는 것과 맡겨만 놓는 것은 달라요. 무엇보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사업이기도 하고요.”

“가장 중요한 일이라.”

저 말간 얼굴로, 이렇게 일에 집중할 줄 알았다면 거처를 로하스관으로 옮기는 문제를 좀 더 고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얼굴을 봤으니 돌아가라는 건가.”

“그게 아니라.”

엘레나는 잠시 망설였다.

“차를 같이 하는 건 어떨까요?”

“정원에서 하도록 하지.”

“좋아요.”

칼립소가 나가자 정원에 커다란 파라솔이 펼쳐졌다.

시종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각종 과일이며, 찻주전자를 가져왔다.

다과상이 모두 차려지자, 칼립소는 시종일관 엘레나 앞으로 음식을 갖다놨다.

마침 배고팠던 엘레나는 꽤 많은 음식을 먹었으나, 칼립소는 안 먹을 것처럼 그녀 앞으로 계속 음식을 갖다 놓았다.

“이제 배불러요.”

“겨우 그거 먹고?”

“아까부터 정말 많이 먹었거든요.”

사실 엘레나는 평소보다도 꽤 많이 먹은 편이었다.

원래도 그녀는 소식하는 편이 아니었다. 워낙 전장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다른 여인들보다 식사량이 많았다.

지금도 식사 시간도 아닌데 쿠키와 샌드위치, 그리고 과일까지 먹지 않았는가.

하지만 칼립소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엘레나가 몇 번에 걸쳐 먹은 샌드위치를 한 번에 삼켰다.

“좀 말랐네.”

“그래요?”

엘레나는 얼굴을 만져봤다.

며칠 밤을 새워서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이거라도 더 먹어보지.”

칼립소가 달콤한 쿠키로 유명한 앵거츠를 내밀었다.

과실이 잔뜩 박혀있으면서 꿀에 저민 앵거츠에선 달달한 냄새가 났다.

“알았어요.”

요사이 밤을 좀 새우기는 했었는데, 그래도 비교적 충분히 먹고 쉬었다.

이전에 전장에서 밤을 새웠던 적도 꽤 많기에 이 정도는 엘레나에겐 그렇게 큰 타격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했던 몸에 배가 든든해지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엘레나는 어느새 칼립소가 꽤 편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칼립소가 옆에 있기만 해도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단, 팔의 통증만 제외하고는.

아까부터 상처 부위가 유난히 신경 쓰였다.

물론 칼립소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이기도 했지만, 아까부터 그 부위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혈관이 요동치고 팔딱팔딱 뛰는 것 같았다.

‘빨리 신녀를 만나면 좋을 텐데.’

신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지만, 공모가 끝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릴 테니, 그동안은 참아야 했다.

‘서신이라도 보내볼까?’

엘레나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때, 칼립소의 얼굴이 눈앞에 와 있었다.

“당신한테는 달콤한 냄새가 나.”

“그야, 아까 앵거츠를 먹었으니까요.”

엘레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칼립소가 살짝 한숨을 내뱉자, 더운 숨결이 느껴졌다.

“이제 차를 다 마신 것 같아요.”

엘레나는 일어설 준비를 했다.

공모 준비를 하려면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아까 이야기한 아몬의 아이디어도 좀 더 검토해야 하고, 케이타 제국에 맞는 신전이 무엇인지도 더 생각해봐야 했다.

‘아까 낸 아몬의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우리 앞으로…….”

생각에 빠져 칼립소의 말을 듣지 못했다.

“엘레나.”

강한 어조의 말에 엘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네? 왜요?”

붉은 눈동자가 엘레나를 응시했다.

타는 듯이 일렁이는 눈동자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채도가 더 짙어졌다.

칼립소가 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언제까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지?”

어둡고 뜨거운 눈동자가 엘레나를 마주 봤다.

“다음 주에는 신녀를 불러주지.”

칼립소는 충동적으로 말을 뱉었다.

아니, 이곳에 오면서부터 그 결심을 했는지 몰랐다.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으니까.

“가이아의 신녀를요?”

엘레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때마침 꼭 필요한 일이었다.

마치 속마음을 들여다보듯 칼립소가 말하자, 오히려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

“정말이에요?”

엘레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 가지만 약속해. 신녀를 통해 가이아 제국과 따로 연락하지 않겠다고.”

“알았어요.”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치유력에 대해서만 궁금할 뿐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뀐 거예요?”

갑작스러운 호의는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경계하는 엘레나의 손을 칼립소가 토닥였다.

마치 안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듯,

“생각보다 당신은 날 뜻대로 움직이고 있어.”

그럼, 신녀를 불러주는 것도 내가 원해서 그랬다는 건가?

엘레나가 의아한 눈으로 올려봤다.

“여기서 좀 더 해 보지 않겠어?”

칼립소의 눈이 나른하게 빛났다.

“더 자주, 더 가까이 내게 오면,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길고 굵은 손가락이 엘레나의 얼굴을 훑었다.

“공모보다 더 빠른 길이 될 수 있을 거야.”

“그게 무슨…….”

칼립소의 입술이 점점 내려왔다.

“무엇보다, 엘레나. 당신도 싫지 않잖아.”

싫지 않나?

편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엄연한 적국의 황제였다. 그런데 싫지 않다니.

증오하고, 원망해도 모자란 상대가 아닌가.

“아니면 제대로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고.”

칼립소의 손이 엘레나의 허리를 잡았다.

“기꺼이 이용 당해줄 테니.”

갈급한 샘을 찾는 것처럼 칼립소의 입술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설득하려는 듯 아랫입술부터 살짝 닿았다.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려는 듯.

엘레나의 입술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칼립소의 혀가 안으로 들어왔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한 손이 엘레나의 허리를 확 끌었다.

“내가 생각보다 인내심이 없더군.”

입술이 깊게 얽혀왔다.

꽃향기가 짙게 느껴지고 강렬한 태양빛이 서로의 욕망을 진하게 자극했다.

이전의 키스하고는 느낌이 달랐다. 깊게 문대는 혀가 좀 더 노골적이었다.

안쪽 깊숙이 서로의 혀가 얽혀들자, 배 속에서 뭉근한 열이 진하게 피어올랐다.

배 속에서 시작된 열이 전신으로 퍼져나갈 때, 칼립소의 거친 손가락이 어깨 근처의 매듭을 풀었다.

스르르.

한번 꼬인 매듭이 풀어지자, 엘레나의 하얗고 둥근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

그러자 칼립소의 손이 먹잇감을 낚아채듯 목을 휘감았다.

푸른 맥박이 거칠게 뛰었다.

입 안에 파고든 혀가 거칠게 움직였다.

반면 아래에 있던 손이 느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살결을 어루만졌다.

그의 호흡이 온전히 그녀 안으로 스며들었다.

저도 모르게 엘레나 역시 키스에 녹아들고 있을 때.

팔딱.

다친 팔의 느낌이 수상했다.

“자……, 잠깐만요.”

낮게 내리뜬 그의 눈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벌어진 입술을 다시 파고들며 허리를 깊게 감쌀 뿐.

덕분에 팔의 느낌은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 그게 아니라.”

그의 혀가 뜨거운 입 안을 유영하자, 그 흐름에 맞춰 다친 팔의 피도 같이 돌았다.

마치 예전에 상처가 낫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소매를 걷어 당장 팔의 상처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빈틈없이 밀착된 가슴은 조금의 움직임도 허용하지 않았다.

살짝 몸을 비트는 순간, 갑자기 몸이 뒤로 넘어갔다.

칼립소의 손이 어깨를 지나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탐하는 숨결과 몸짓이 모두 숨 막히게 아찔했다.

‘더 이상은…….’

이러다간 상처를 들킬지도 몰랐다.

이제 칼립소는 굶주린 맹수처럼 집요하게 그녀를 탐했다.

가슴을 어루만지던 손이 허리 매듭에 닿았다.

샤오르의 특성상 여기까지 풀리면, 몸이 발가벗겨지는 것과 다름없었다.

칼립소의 손이 막 매듭에 닿는 순간, 간신히 손목을 붙잡을 수 있었다.

“싫은가?”

칼립소의 목소리가 어둡게 잠겼다.

붉은 눈은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듯 엘레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빨라요.”

“너무 느린 거 같은데?”

칼립소가 입꼬리를 올렸다.

“게다가 지금은…… 낮이잖아요.”

“그게 왜.”

칼립소가 붉은 눈동자가 빛났다.

“내 허락 없이는 여긴 아무도 못 와.”

엘레나가 어깨의 매듭을 올렸다.

“고작 이 정도로 구애가 끝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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