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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과 세 번의 밤을 보내면-34화 (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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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그 성질이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는 듯 엘레나가 적당히 받아들여 줬더니 가벼운 키스는 금세 탐욕적으로 변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맛보겠다는 듯이 그의 혀가 깊숙하게 들어왔다. 엘레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

거친 몸짓에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그의 탄탄한 가슴을 밀었다. 하지만 그런 손길은 오히려 귀엽다는 듯이 칼립소가 더 깊이 달려들었다.

등 뒤에 벽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 휘몰아치는 정열에 엘레나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칼립소…….’

발끝이 저절로 곱아들고 늘어져 있던 손이 칼립소의 목을 감쌌다. 녹아내릴 것 같은 살덩이가 자신을 끝도 없이 몰아갔다.

어느새 엘레나의 몸이 흐물흐물 늘어졌다. 눈앞이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

칼립소의 입술은 이제 목덜미로 옮아갔다.

엘레나의 하얀 살결에는 푸른 혈관이 도드라졌다. 깨물면 붉은 피가 선명하게 터질 것 같았다.

그곳을 깨물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채, 칼립소의 뜨거운 입술이 귓가로 옮겨갔다.

탐스러운 귓불을 제 맘대로 깨물던 칼립소가 나직이 속삭였다.

“당신도 내가 아예 싫은 건 아니지?”

열기를 품은 눈으로 칼립소가 말했다.

답을 재촉하듯 키스가 집요해졌으나, 끝까지 엘레나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의 입맞춤 끝에 칼립소가 겨우 입술을 뗐다.

“세 번째 데이트가 기대되는군.”

칼립소의 눈매가 개구진 소년처럼 휘어졌다.

“가지.”

칼립소가 팔을 끌었으나, 엘레나는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엘레나의 팔을 칼립소가 힘주어 잡았다.

“아!”

상처 부위를 정면으로 건들자 엘레나의 입에서 미약하게 신음 소리가 났다.

“왜 그러지?”

신음 소리에 놀란 칼립소가 엘레나의 팔을 바라봤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니라는 말에도 칼립소의 표정이 무섭게 굳더니 엘레나의 팔을 자세히 보았다.

그러더니 손목까지 내려온 샤오르의 천을 거칠게 걷어 올렸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다쳤어?”

칼립소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뚫어져라 보는 칼립소의 시선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정말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게 아닌데? 어쩌다가 그런 거야?”

“살짝 돌에 부딪힌 거뿐이에요.”

“왜?”

“정말 아무 일 아니라니까요.”

무섭게 내려다보는 눈은 엘레나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의 상처에 왜 이리 유난이란 말인가.

하지만 계속 재촉하는 눈빛에 어쩔 수 없이 엘레나는 입을 열었다.

“낮에 이곳을 둘러보다가 인부가 돌 수레를 놓쳤어요. 그러는 바람에 상처가 생긴 거고요.”

“요하스 자작을 당장 파면해야겠군. 그런 식으로 현장을 관리하다니.”

“아까는 천천히 하라면서요?”

“그건 당신이 다치기 전의 이야기고.”

“정말 별거 아닌 상처라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금방 나을 거고. 내 치유력에 대해선 알잖아요.”

“안 나은 거 같은데.”

“곧 나을 거예요.”

그 말에도 칼립소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엘레나를 쳐다봤다.

그러자 엘레나가 살짝 웃었다.

“그보다, 아까 했던 것을 계속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이번엔 엘레나가 칼립소의 얼굴을 잡았다.

“난 좀 부족한데.”

엘레나의 말에 칼립소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어갔다.

“눈 감아요.”

말 잘 듣는 대형견처럼 칼립소의 눈이 감겨졌다.

그러자 엘레나의 입술이 천천히 칼립소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이 칼립소의 입술에 닿았다.

할짝.

자신의 입술이 닿으니 움찔하며 떠는 그가 귀여웠다.

두 손으로 얼굴을 잡은 채 아랫입술을 깨물고 요염하게 그의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입 안으로 들어가자, 열띤 신음 소리가 목 안에서 들렸다.

엘레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뿐인데 솔직한 반응이 따라오자 즐겁기까지 했다.

다급하게 따라오는 그의 몸짓이 반가웠다.

‘좀 더 들어가 볼까?’

살살 탐색하려는데 순간 거칠게 휘감으려는 그의 혀를 나무라듯 톡톡 달랬다.

여전히 갈급한 그의 머리를 순하게 쓰다듬었다.

다시 얌전해진 그의 입 안을 칭찬하듯 쓰다듬었다. 그러자 뜨거운 그의 손이 자신을 꼭 안았다.

서로에게 나는 끈적한 소리가 사방을 지배했다. 이제 누가 먼저 시작했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새 엘레나의 머리가 젖혀지고, 그가 안쪽으로 깊게 들어왔다.

흐드러지고 질척한 신음이 새어 나가면서 온몸에 힘이 빠져 쓰러질 것 같았다.

다행히 단단한 그의 손이 그녀가 무너지지 않게 받치고 있었다.

얼마 동안 계속되었나. 너무 격정적이어서 호흡이 불가능했던 이전 키스보다, 훨씬 더 오래. 둘은 숨결을 나누며 서로를 탐했다.

‘너무 오래 하는 거 같은데.’

간신히 먼저 정신 차린 엘레나가 입술을 살짝 물며 키스를 마무리했다.

엘레나의 입술이 떨어졌지만, 그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칼립소의 눈에는 현실감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다시 공격할 것 같아, 엘레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섰다.

아직도 물러나지 않는 칼립소의 어깨를 살짝 밀었지만, 역시 쉽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이상할 정도로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의 타들어 가는 시선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눈이었다.

“확실히.”

빠져나가려는 엘레나의 허리를 칼립소가 다시 잡았다.

“당신은 그럴 가치가 있어.”

“그걸 이제 알았어요?”

“아니. 처음 본 순간 알았지.”

그랬기에 처음부터 죽일 수 없었다.

칼립소는 더 강하게 그녀를 옥죄며 안았다.

“답답해요. 놔줘요.”

“아쉽지만, 분부대로.”

갑자기 확 풀려난 엘레나가 휘청하였으나, 이번에는 칼립소가 잡아주지 않았다.

엘레나는 샤오르를 탁탁 치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녀가 혼자 똑바로 서는 모습을 칼립소가 물끄러미 지켜봤다.

“와인을 한 잔 마시고 싶은데, 괜찮겠나?”

“그건 세 번째 데이트로 미뤄두죠.”

“그럼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건가?”

“쉽게 얻는 건 가치가 없지 않겠어요?”

도발하는 듯한 그 말에 칼립소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당신과의 관계에서 쉽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데.”

그 말은 맞았다.

“그건 그렇네요.”

“나도 쉽게 얻는 것은 취향이 아니라.”

“그럼, 서로 잘됐네요.”

이제 엘레나가 칼립소에게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고 보니 가이아의 신전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뭐예요?”

“글쎄, 딱히 보는 눈은 없어서.”

“그래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무언가 떠올린 칼립소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왜 그래요?”

“아니야.”

칼립소가 엘레나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가이아 제국의 신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그녀의 혼인이 떠올랐다.

그때 얼마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생각만 해도 피가 요동을 쳤다.

“뭐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생각났어요?”

갑자기 변한 안색에 엘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칼립소는 표정을 감추며 말했다.

자꾸 잊어버리려고 했다. 엘레나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도망치려 한다는 것을.

달콤한 입맞춤에 취해 잊어버릴 뻔했다.

옆에는 두되, 그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됐다.

“그만 들어갈까? 밤바람이 제법 찬 거 같은데.”

“그래요. 그런데.”

엘레나는 잠시 망설였다.

“뭐지?”

“부탁이 있어요.”

그 말에 칼립소의 미간이 좁혀졌다.

“가이아 제국에서 신녀를 한 명 데려와도 될까요? 신전을 짓는데 자문을 얻을까 해서요.”

“신전을 얻는데 신녀의 자문이 왜 필요하지?”

칼립소의 눈에 날카롭게 변했다.

엘레나는 잠시 머뭇댔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건축에 신녀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엘레나의 목적도 그게 아니니까.

“가이아에서 데려온 건축가 중에는 신전 건축에 경험이 많은 이들도 있을 텐데.”

“그야 그렇지만 앞으로 신전을 운영하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건 건축이 진행된 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아.”

빈틈없는 칼립소의 말에 엘레나도 입을 다물었다.

“알겠어요.”

칼립소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하스관까지 데려다주지.”

갑자기 변해버린 그의 분위기 앞에서 엘레나는 왠지 어색해졌다.

‘괜히 말을 꺼냈나?’

하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보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처와 치유력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럴 거면 미리 신녀에게 물어봐서 알아둘 것을 그랬다.

신탁보다는 그저 싸우는 게 좋아 묻어두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경우를 제외하면 치유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던 때가 없었다.

‘내 몸에 대해 좀 더 확실히 알아둘걸.’

평소 건강에 대해 갖던 자신감이 이런 상황이 되자 후회가 되었다.

엘레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밤길을 걸었다.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칼립소의 시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길이 아닌데.”

“네? 아.”

그제야 엘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생각에 빠져 있느라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착각했네요.”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지?”

칼립소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엘레나를 바라봤다.

“그냥, 이것저것 생각했어요.”

“이것저것?”

더 자세한 대답을 요구하는 칼립소의 시선을 엘레나는 외면했다.

“가요.”

그 말에 칼립소도 무뚝뚝하게 시선을 돌렸다.

‘딴생각해서 기분이 상했나?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아까의 달콤한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졌다.

오히려 약간 어색한 분위기로 엘레나는 로하스관에 들어섰다.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안녕히 주무세요. 폐하.”

들어가려는 엘레나의 손을 칼립소가 잡았다.

“굿나잇 키스도 안 하고?”

“오늘 한 게 부족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그 말에 칼립소의 그림자가 엘레나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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