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85화
말룸이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는 일은 익숙했다. 고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의 성미가 누그러질 것도 아니었다. 나는 말룸을 타박하는 대신 크로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크로노, 집에 가요. 마차 탈 수 있겠어요? 멀미가 나진 않겠나요?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출발하는 방법도 있어요.”
“나 같은 것으로 길을 지체하지 마시오. 쉬면 괜찮아질 것이오.”
“당신은 ‘당신 같은 것’이 아니라고요. 이 정도로 힘들어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그냥 성에 둘걸……. 말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크로노.”
“오필리아 님의 잘못이 아니오. 그리고 숙부의 잘못도 아니오. 이건 그저…… 내 문제요.”
크로노가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신물을 참아내는지 계속 마른침을 삼켰다. 형벌을 받는 죄수를 보는 것 같았다.
이목이 쏠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장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앞의 사람이 걱정되어 다른 행동을 취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크로노 곁에 쪼그리고 앉아 그가 좀 진정하도록 다독였다.
보다 못한 로보가 앞으로 나섰다.
“일단 업을게. 육지 황자, 조금만 참고 있어봐.”
“못 견딜 정도로 속 안 좋아지면 바로 말해야 해요. 역참까지는 좀 걸어야 하니까요.”
크로노는 아예 방전이 되었는지 대답조차 없었다. 그가 고개만 헐렁히 까딱였다. 로보가 무릎을 굽혀 등을 내주었다.
“돌아가서 의원에게 검진을 받도록 해라. 성이 소란스러워지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팔짱을 낀 채 우리가 하던 행동을 지켜보던 말룸이 싫은 티를 냈다. 그는 내 눈초리를 견디지 못해 크로노를 로보의 등 위에 얹어주었는데, 행동이 거칠어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짝을 대하는 듯했다.
“말룸,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주지 않을래요?”
그제야 말룸이 로보가 크로노를 업을 수 있도록 제대로 도왔다. 그러면서도 그는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걱정 되지는 않아요.”
“말룸…….”
“제가 이때까지 살면서 스러진 인간이 얼마나 많을 것 같나요? 그런 정도에 불과한 겁니다.”
나는 한참 말을 고르다가 말룸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는 타인의 입장에 공감하는 능력이 상당 부분 결여되어 있었으니 대화를 할 때 조금 돌아가야 했다.
“일단 여기는 보는 눈이 많고, 크로노는 표면상이나마 당신 조카잖아요. 그렇죠? 조카를 아무렇게나 대하면 대공 체면에 손상이 갈 거예요.”
말룸의 노란 눈이 요요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것이 깨진 가로등이라도 되는 것 같아 마른침을 삼켰다. 마침내 말룸이 싸락눈 섞인 한숨을 쉬었다.
“……일리 있는 말이네요.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말룸은 그제야 ‘아픈 조카’를 돌보는 척이라도 했다. 나는 내심 안심했다. 그를 내 입맛대로 꾸밀 생각은 없었지만, 남편이 다른 사람에게 적대 받거나 폄훼당하는 것을 두고 보는 것은 원치 않았다.
말룸은 내게 봄날 같은 사람이니 다른 사람도 그의 다정함을 알아주었으면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말룸을 안하무인에 잔혹한 뱀 대공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
만약 일이 수틀려 내가 사라진대도 말룸만큼은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크로노가 운명을 재단하는 것은 섣부르다 충고했었지만, 몸 상태를 보면 어두운 그림자를 떨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크로노의 상태를 고려해 마차를 옮겨 타기로 했다.
말룸이 타고 온 마차는 우리 것보다 승차감이 좋고 내부도 웅장하니 쾌적했다. 대공의 마차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말룸은 이 마차를 내게 줄 생각이었지만 보좌관이 체면을 차리라 간언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마차는 마부석과 완전히 차단된 폐쇄적인 형태였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마차가 굽이굽이 산길을 벗어났다.
우리는 캄캄한 정적 속에 있었다. 로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낯으로 창밖만 굽어보았고, 말룸은 나를 끌어안고 자는 척 눈을 감았다.
차갑게 가라앉았다 붉게 들뜨는 말룸의 체온이 기꺼웠다. 나는 말룸의 손바닥을 만지작대며 놀란 속을 쓸어내렸다.
크로노가 푹신한 의자 여러 개를 길게 차지하고선 옆으로 돌아누웠다. 몸을 만 형상이 고통으로 쪼그라든 것만 같아 애가 탔다.
마차 안이 불편했는지, 아니면 속이 진정되지 않은 것인지 크로노가 계속 뒤척였다. 나는 걱정을 견디지 못해 넌지시 물었다.
“상태는 어때요?”
“오필리아 님…….”
크로노가 옅게 숨을 쉬었다. 그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었는데, 눈꺼풀에 반쯤 가려진 백은색 수정이 부옇게 흐려져 희멀갰다. 크로노는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초점이 영 맞질 않았다.
그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목소리는 균열이 진 듯 버석버석했다.
“소란을 피워서 미안한 마음뿐이오…….”
“그런 생각 안 해도 돼요.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았던 건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았소. 하지만 이곳에 오면 아플 것은 자명했지. 그래서 오지 않으려 한 건데…….”
이번에 크로노는 로보를 보고선 말의 물꼬를 텄다.
“로보, 당신에게도 미안하오. 당신이 속상할 것을 미리 보아서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창밖을 바라보던 로보가 크로노에게 관심을 돌렸다. 로보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다.
“상관없어.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정할 수 있도록 자극이 되기도 했고. 그리고 육지 황자가 왜 그렇게 된 줄 십분 이해하고 있거든.”
로보는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했다.
“보기 힘든 거잖아. 그럼 보지 않아도 괜찮아. 미래를 본다는 게 어떤 건지 몰라서 공감해줄 수는 없지만, 보살펴줄 수는 있어.”
“왜 내게 그렇게까지 하시오?”
“인어 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호의야.”
로보가 크로노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헤집었다. 크로노가 미간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냈다. 로보가 멋쩍은 얼굴로 손을 거뒀다.
“미안. 그래도 이유를 하나 꼽자면, 육지 황자는 우리 집 다섯째를 닮았어. 유고라고, 그 녀석 몸이 좋질 않고 다른 인어랑 어울리기도 꺼려해서 백수 신세인데, 그것 때문에 혼자 땅굴 파는 일이 잦거든.”
크로노가 픽 코웃음을 쳤다.
“백수……. 따지고 보면, 그래…… 맞는 말이긴 하오. 나는 백수이지.”
“응? 육지 황자는 황자잖아. 그것도 일종의 직업이지. 의무가 따르잖아?”
“의무를 수행한 적이 아예 없단 말이오……. 기회조차 돌아오지 않았는데.”
로보가 무슨 말을 해도 크로노의 우울은 가시지 않을 듯했다. 로보도 그것을 직감했는지 내게 눈짓으로 신호했다.
“복잡한 얘기는 그만 하고 일단 쉬자.”
로보가 크로노의 얼굴 위로 쿠션을 살살 눌러 덮었다. 크로노는 쿠션을 치우지 않았다. 그저 쿠션을 끌어안아 시야를 차단할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크로노는 입을 달싹였다.
“……나는 그곳에 우두커니 있을 때, 수백 수천의 사람이 살고 죽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았소.”
우리는 그의 다음 말을 침침히 가라앉아 기다렸다.
“불타 죽는 자도, 짐승에 물려 죽는 자도, 추락해 죽는 자도, 살해당하는 자도……. 물에 빠져 죽는 자도, 얼어 죽는 이도, 병에 걸려 헐떡거리다가 죽는 사람도 있었소. 이 세상 모든 갈래의 죽음이 전부 내게 몰아닥치는 듯했지……. 그들은 자신에게 배정된 운명의 끝을 모르고 있었소만, 나는 그 무지가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었소.”
크로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면 편안한 끝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들의 운명을 알려주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던 것이지……. 관중석에 있던 그 누구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을 알았는데도.”
우리 중 누구도 입을 열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소. 살면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소. 포이보스 형님께서는 그저 혈육의 정과 의무로 나를 보살피는 것뿐이셨고, 어린아이 장난 대하듯 내 예언을 듣고 웃어넘기셨지. 오필리아 님……. 당신이 유일했던 것이오. 나조차도 신뢰하지 않는 나를 믿어준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소. 그래서 나는 그 신의를 되돌려주고 싶소……. 내 안위와는 무관하게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오.”
크로노에게 주어진 운명과 시야가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나는 차게 얼어 그의 호소를 들었다.
크로노가 괜찮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라도 파편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가 고통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파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 듯 보여 말할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크로노는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들 중 유일하게 세상의 부감도를 그렸다. 그는 산꼭대기에 올라 낱낱이 살피기를 허락받은 자였다.
크로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나는 미래를 본다는 의미를 명확히 깨달아갔다. 그의 시야는 너무 깊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을 담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크로노는 파편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파편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앞뒤 맥락이 맞질 않았다. 그러나 나는 묵묵히 상태를 살필 뿐 크로노의 속을 뒤흔들어 놓지 않았다.
크로노의 파리한 표정이 불 꺼진 재처럼 무력했다. 저 얼굴을 마주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에게 상처를 보일 것을 종용할 수 없었다.
나는 말룸의 손을 생명줄처럼 쥐고 한참 고뇌했다. 검은 태양이 떠 앞이 보이지 않았다. 크로노를 배려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가 괜찮아질 날을 기다려 말을 꺼내야 할까?
크로노는 말룸에게 무릎을 꿇는 비참한 방식을 선택해서라도 나를 따라왔다. 분명 그는 내게 바라는 점이 있었다. 나는 일 분을 십년처럼 가늠했다. 하지만 크로노에게 직접 묻지 않으면 도출할 수 있는 답이 없었다. 내가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크로노. 나중에 괜찮아지면, 잠깐 둘이서 나갈까요? 겨울이 싫다면 봄도 좋아요.”
크로노는 여전히 쿠션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저었다. 깔끔한 감청색 쿠션이 망자가 걸친 검은 망토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빗겼다.
“내게 이득이 없소.”
“크로노.”
“미안하오. 나는 오필리아 님이 그곳에서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단 말이오. 그러니 싫소. 바깥으로 끄집어내려 하지 마시오……. 당신의 곁에서 끝을 맞이하도록 내버려 두시오. 그것으로 내 삶은 완성되는 것이오.”
천둥이 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굉음에 휩쓸려 평정이 유지되지 않았다.
“끝이라뇨? 잠시만요.”
크로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기둥 속에 들어간 듯 사지가 욱신거렸다.
“무슨 소리예요, 크로노. 숨기지 말고 얘기해줘요! 당신이 곧 죽는다는 소리예요? 분명 뭔가를 본 거죠?”
크로노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선 설명하지 않았다. 참 불친절한 예술가였다.
하지만 침묵의 수혜자는 그가 아니라 나라는 타인이었다. 어떤 비극적인 미래를 선고해도 크로노를 탓하지 않을 텐데…….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그의 표정을 가늠하고 싶어 쿠션을 내 쪽으로 살살 끌어당겼다. 그러나 크로노는 쿠션을 딱딱하게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울음 섞인 열이 치밀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걱정스러워서 미칠 것 같아요. 제발 말 좀 해주면 안 되나요? 작은 단서라도 좋아요.”
오늘 이곳저곳 쏘다니느라 무리했는지 머리가 핑 돌았다. 서러움에 잠긴 목소리가 유리창에 서리처럼 끼었다.
“제가 좋다면서요. 그럼 의지해 줘요. 뭔가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어서 끝이니 뭐니 운운하는 거잖아요.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잖아요.”
상황을 관망하던 말룸이 나를 부드럽게 달랬다.
“오필리아, 조금 진정하는 게 낫겠습니다.”
“하지만 불안하단 말이에요. 죽는 거, 그거 얼마나 무섭고 추운 건데. 얼마나 외로운데. 당신들은 모르잖아요. 그런데 왜 아무렇지도 않게 끝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계속해서 호소했다.
크로노는 이곳에서 맺은 몇 안 되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날개 꺾인 듯 곪은 가슴을 가진 모습이 나와 닮아서 그를 등한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항상 겉돌 듯 사는 것도 모자라 끝을 이야기하다니. 한 번 겪어 본 입장에서 그저 그런 비유 따위라고 넘길 수 없었다.
몸이 찬물 속으로 끌어내려지는 듯하고, 심장과 머리부터 딱딱하게 굳어가는 그 감각은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떨렸다. 인간인 이상 크로노도 죽어 흙이 될 테지만 그때가 지금은 아니었다.
내 진심이 한 줌이나마 닿아 크로노가 감당해야 할 미래를 엿볼 수 있었으면 했다.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기만 한다면,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