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74화
온갖 마차가 스발란케 삼림으로 몰려 길이 막히는 바람에 이따금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마부가 직접 말하는 것은 또 처음이었다.
나는 늙수그레한 마부의 뒷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굽은 등, 멀끔히 입으려고 했지만 도리가 없었는지 추레한 옷감, 열 갈래로 갈라져 걸걸한 목소리.
나는 허공을 배회하는 정보를 모아 그의 얼굴을 남몰래 그렸다.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대추처럼 자글자글한, 삶에 지친 일반 서민의 얼굴이 막 완성되어가던 찰나였다.
흘끔 뒤를 돌아본 그의 얼굴이 썩 멀끔해 나는 부끄러워졌다. 남은 마카롱에 관심을 주는 편이 낫겠다.
로보가 흥미를 거두지 못하고 그와 말을 나누었다.
“따지고 보면 난 육지 귀족은 아니지만. 그렇게나 심하게 굽니까?”
“말도 마십시오. 어휴, 인어님이야 바닷사람이니 영 모르시겠지만.”
“그래도 이곳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놈의 하늘 나는 배 처리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아아, 몰라요. 아주 잠깐만 상대해도 진력이 다 빠져서. 보면 압니다, 보면. 거 하늘 아래 자기만 존재하는 듯한…… 왜, 있잖습니까. 그런 부류. 뭐라 성을 내도 들어먹질 않아서 상대할 맛이 안 나는 놈들.”
우리는 그의 뒷모습뿐이 볼 수 없었지만 마부가 얼마나 궂은 표정으로 첨언하는지 능히 짐작했다.
“고작 손바닥만 한 사막을 개간하는 꼴에 왕은 무슨 왕. 사람 살 수 있는 땅이야 레시암뿐입죠. 저만 해도 그 멤피스와 접해 있던 국경지대에서 이곳으로 이사해 왔는데, 멤피스는 어느 한 선을 기점으로 초목이 싹 사라지고 사람을 배짝 마르게 하는 열사바람과 모래밭만 펼쳐지게 되어 있지요. 그렇게 만들어 진 땅이란 말입니다. 번영일랑 있을 수 없습죠.”
마차가 숲으로 점점 굽어 들어갔다. 말이 질주하자 마차가 사선으로 크게 기울었다가 간신히 똑바로 섰다.
“걱정 마십시오, 비전하. 이 마차처럼 좋은 것은 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테니까요.”
마부가 여상스럽게 입담을 풀었다.
멤피스에 대한 평가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머물렀다.
간혹 길이 험해 마차와 말이 분리될 듯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새총을 꾹 쥔 채 점점 울창해지는 창밖의 나무와 검은 삼림을 오래도록 감상했다.
누트 멤피스가 그 황량한 땅에 터를 잡고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눈발 사이로 햇빛이 노란 길을 꾸렸다. 푸르스름한 바위며 나무 할 것 없이 삐죽빼죽한 서리가 앉았다. 얼음이 검지보다 길게 불어났다. 겨울은 나무 면면마다 있었다.
눈송이가 침엽수림에 뭉치로 쌓였다. 꼭 나무가 눈을 흘려보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창틀에 매달려 바닥으로 추락할 듯 넋을 놓았다.
겨울, 지구. 기차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철로 담금질 된 레일 위 시퍼렇게 옷 입은 나무들이 양 길목을 장식하는 모양새가 장관이었다.
손 타지 않은 삼림의 몸뚱이를 헤집고 다니려니 절로 들떴다. 손끝에서부터 천남성이 살짝 피어올랐다. 나는 아차 싶어 발끝만 응시했다.
스발란케 삼림은 쌍둥이 서리 요정이 세상에 눈을 내리는 근원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세계가 열리기 전 이곳은 우주의 별자리를 보살피는 요정들의 땅이었는데, 우나푸와 스발란케 쌍둥이가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 오는 바람에 땅 곳곳이 얼어붙어 형성되었단다.
일 년 중 다섯 달이 눈과 얼음으로 덮인 동물의 은신처, 인간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땅은 일 년에 단 한 번 축제로 알맹이를 드러냈다. 그마저도 숲의 초입에 불과해 삼림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유령처럼 떠돌아 다녔다.
한 이틀쯤 전, 말룸이 삼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었다.
나는 맨몸뿐인 그의 위로 흰 이불을 눌러 덮었다. 말룸이 물에 젖은 봉제인형처럼 침대 깊이 몸을 묻었다. 나는 이불 위로 그의 형상을 조형하듯 쓰다듬었다.
“간지러워요, 오필리아.”
“싫진 않죠?”
“당연한 거 아닌가.”
우스갯소리를 하다가 삼림에까지 대화 주제가 흘러들어갔다. 말룸은 삼림 깊은 곳으로 접어들수록 늑대며 스라소니, 오소리 따위가 인간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 흙내를 풍긴다 이야기했다.
“그럼 당신은 숲 깊은 곳까지 보았다는 뜻인데, 그곳 동물들이 인간 존재조차 모른다는 건……. 뱀의 모습인 채로 삼림 답사를 했던 거예요?”
그러자 몸을 움튼 말룸이 썩 거칠게 날 밀어붙였다.
“맘대로 상상해요. 막 생각난 건데, 오필리아 삼림이라고 개명해도 좋을 것 같군요. 온 제국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기쁘지 않나요?”
“전혀! 그러기만 해 봐요.”
나는 말룸의 폭포수 같은 머리칼을 밑으로 쭉 잡아당겼다. 하나로 올려 묶은 머리가 울룩불룩하니 흐트러졌는데도 그는 웃음일색이었다.
말룸은 스발란케 삼림에 눈에 띄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황실이 보호 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던 것을 억지로 영지에 편입시켰다고 뽐내기도 했다. 선명한 욕망이 그다워 나는 실컷 동조했었다. 말룸은 자신의 재력에 대해 논할 때 나와 함께 있는 시간 다음으로 청록 활발한 생기를 품었다.
크로노가 꾸벅 졸았다. 다부진 몸의 사내가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듯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로보가 신음하며 크로노를 들여다보았다. 크로노의 안색이 밀가루처럼 핏기가 없었다.
“육지 황자 상태가 안 좋아 보이네. 멀미가 있다는 게 정말이었나 봐.”
“거짓말 아니라고 했었잖소…….”
궂은 흙길에 크로노의 얼굴이 허옇게 다 들떴다. 잃어버린 유년기를 다시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쿠션으로 벽을 만들어 크로노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그의 찌푸린 미간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로보가 몸을 웅크린 크로노 위로 마차 안의 담요란 담요는 다 끌어 모아 얹었다. 소낙비가 내리는 것처럼 로보의 다정도 그렇게 내렸다.
“난 오필리아가 먼저 지칠 줄 알았지. 의외네, 말은 그렇게 잘 타면서.”
“밀폐된 공간은 못 견디나 봐요.”
로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갇혀 살았다니까 그럴 수도 있겠어. 인간이고, 인어고 때때로 참 매정하지. 이런 애를 어떻게 가둬 놓을 수가 있어? 그건 학대란 말이야. 어딘가에 갇혀서 끙끙 앓는 일은 절대 일어나선 안 돼…….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고 비참하거든.”
“응? 꼭 갇혀 있어 본 사람 같네요.”
“그런가? 갇혀 산 적은 없는데. 여기저기 너무 쏘다녀서 문제였지. 하지만 나도 모르게 짐작이 가더라. 혹시 모르지, 전생에 갇혀 살았을지!”
“아하하, 농담도.”
로보가 아몬드 따위를 날 선 이로 짓씹었다. 그는 이따금 귀를 찢을 듯 짹째글 우는 산새에 넌덜머리를 냈다.
“새는 별로야.”
로보는 차라리 심해의 괴물이 자신의 심미안에 맞는다며, 포유류의 몸뚱이에 날개 붙은 건 인어의 시선에 참 괴상망측하게 보인다고 투덜거렸다.
“심해 괴물은 어떻게 생겼는데요?”
로보가 반색하며 심해 비화를 풀어놓았다.
“인면어라고 들어봤어? 인간 머리를 한 거대한 물고기가 거품을 뿜는데, 그 거품은 산성이라 닿으면 살이고 비늘이고 전부 녹아버려. 다리도 세 개부터 열 개까지 다양하게 달려 있고, 머리만 둥둥 떠 있는 것도 있지. 강한 개체는 제대로 된 인어의 형상을 하고 갑옷을 두르긴 했지만 보면 시체 같아서 섬뜩해. 피부도 창백한 걸 넘어 기이할 만큼 푸르스름하고.”
나는 한참 단어를 골랐다. 하지만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지 않아 에둘러 표현했다.
“저한테는 육지 미의식이 더 맞는 것 같아요.”
“당연하지! 육지 사람이잖아.”
로보가 흰 이를 드러내 놓고 웃음을 흘렸다. 그가 바다 이야기를 꺼내면 겨울의 중앙에 있는데도 여름에 접어든 것처럼 감정이 충만해졌다.
로보는 여름의 맹렬한 태양을 닮았다. 제멋대로 끓어오르는 것 같지만 잘 뜯어보면 흑점과 원자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엉켜 하나의 별을 형성했다.
삼림 초입, 넓은 평원에 천막이며 관중석과 같은 인공적인 건축물이 들어섰다. 파랗고 하얗게 페인트칠 된 건물들이 겨울 정경과 잘 어우러졌다.
모이고 보니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두 갈래로 멀끔히 갈라져 줄을 섰다. 하나는 관중석에 앉아 주술로 송출되는 대회 영상을 관람할 무리, 다른 하나는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직접 대회에 참가하려는 무리였다.
사람들은 황금에 홀려 질서정연했다. 그들의 눈동자가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본능에 의지해 이곳저곳 방황하는 좀비 같은 모습이었다. 손에는 새총을 하나씩 쥐었다. 공장에서 찍어 낸 듯 목표하는 것이 모두 같았다. 나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2인 1조인 데다 그토록 미인이라는 포인세티아의 육신이 소문 난 건지 내 정체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다. 여기저기에서 외모에 대한 칭송, 나와 로보, 크로노에 얽힌 속설, 말룸 발타사르가 얼마나 나를 끼고 도는지 다른 인물 같다는 담화가 나돌았다.
귀족들 중에서는 나를 호기심 어린, 혹은 출신 때문인지 멸시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룸을 의식했는지 철조망을 넘어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 수정궁 정원에서 있었던 대참사가 일파만파 퍼져 나간 영향인 듯했다.
칼바람이 불었다. 나는 로보에게 안겨 그의 속으로 파고들 듯이 몸을 숨겼다. 적당히 뜨거운 인어의 체온이 가슴을 알맞게 데웠다.
“추워? 사용인한테서 망토를 받아 올까?”
인어가 걱정스러운 듯 내 이마를 쓸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사무칠 만큼 추위를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우리 일행 중에서 가장 두껍게 입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그건 괜찮아요. 추운 게 아니라…….”
나는 얌전히 고개를 저었다. 로보는 나를 제대로 감싸 안아줄 뿐 이유를 묻진 않았다.
크로노가 관중석으로 떠난 후, 로보와 나는 주최자 연설이 시작되는 무대 앞에서 말룸을 기다렸다. 동물은 먹이를 주는 자에게 꼬리를 흔들기 마련이었는데, 말룸은 사람들이 자신을 숭배하도록 다양한 장치를 교묘하게 활용했다.
“스발란케 삼림에서 펼쳐지는 제 12회 황금 사냥 축제! 자비로우신 대공 전하의 개막 축사로 이제 막 시작됩니다!”
익살스러운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웠다. 미리 섭외해 두었던 음악대가 북을 쿵쾅거리며 분위기를 띄웠다.
“연설은 정각에 시작되니 질서를 유지하시고 축제 분위기를 즐겨주십시오!”
영하의 날씨에 드레스를 맞춰 입은 여자가 부채를 꼭 움켜쥐고 덜덜 떨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자가 모피 코트를 여자에게 둘러 주었다. 여자는 고맙다 이야기하면서도 옷을 갈아입거나 더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말룸이 있었더라면 저 남자처럼 망토나 털옷을 더 둘러 주지 못해 안달이었을 듯했다.
“지루해. 겉치레에 집착하는 건 아틀란티스나 육지나 똑같군.”
로보가 크게 하품을 했다.
“아틀란티스에는 이곳 금화보다 순도 높은 황금이 많아. 그래서 금화보다는 보석이 탐나네. 육지 보석은 귀하거든. 사냥에 성공하면 괜찮은 거 몇 개 나누어주지 않을래? 망루에 장식하고 싶어.”
“물론이죠. 가장 크고 좋은 걸 줄게요. 예쁜 광택이 도는 걸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긴장감이 엄습하는 바람에 눈사태를 만난 듯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새총을 든 손이 푸르게 떨렸다. 카사블랑카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몸이 아니라 머리로 쏘아야 한다는…….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눈을 뚫고 비죽 새싹이 자라났다. 로보가 천연덕스럽게 그걸 밟아 숨기며 내 등을 토닥였다.
“진정해, 아가씨. 착하지. 연습 많이 했잖아. ……음, 나 또 널 아가씨라고 불렀지? 호칭 바꾸는 게 쉽진 않네. 입에 붙어서 그런 모양이야.”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로보의 아가씨란 말이 너무 좋았다. 내게 선을 긋겠다는 로보의 노력이 그 호칭을 멀어지게 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첨언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각오한 일이었는데도 로보는 여전히 내게 환상처럼 남아 있었다.
고개를 들고 부러 활발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그리고 사냥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사블랑카가 어떤 각도로 새총을 쏘아야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줬으니까요.”
로보가 못 말린다는 양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엘로힘 과로, 내가 새총 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