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72화
악의 맨 꼭대기
인간의 마음을 상실한 뱀.
메마른 자들의 앞잡이
자연이 저버린 광기의 표상.
사방에 썩은 내가 진동했다.
사내의 주변에 검은 안개가 들어찼다. 나는 황량한 사막을 닮은 이 기운을 알고 있었다.
몸 구석구석의 피가 송두리째 증발하는 것 같은 선고가,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기민히 회피하고 싶어지는 섬뜩한 감각이 숨통을 조였다.
나는 다시금 죽음을 마주했다.
안개가 점점 뭉그러졌다. 말룸이 허물을 벗듯 자신의 악성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허물벗기가 아니라면 저것을 대체 무엇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
먼저 검청색 비늘이 살갗을 뒤덮었다. 다음으로는 육신이 길쭉해졌고 거대한 산처럼 변했다.
언덕의 능선이 구불거렸다. 뜰 위에 우뚝 솟은 산은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맞닿은 구석 없이 뚝뚝 끊어져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주변에 가득한 안개조차 순간의 변태 과정을 가려주지 못했다. 잔뜩 헤집어져 식탁에 오른 돼지 구이처럼 말룸은 심히 노골적이고 그로테스크하게 자신을 전시했다.
나는 내 영혼에 사슬을 걸듯 양손을 맞잡았다. 버릇이라 할 수도 있었고, 심장을 고정하는 작업이라 명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약속대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말룸의 황금빛 눈동자는 날 비껴가는 법이 없었다. 뱀의 눈이 등대처럼 반짝이며 그의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인간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그것은 인간의 두려움을 포착하는 망원 렌즈였다. 내가 눈을 감는 즉시 사랑은 내게서 등을 돌려 사라질 것이다.
타르처럼 질척한 안개가 바닥 위를 표류하며 잔잔히 가라앉았을 때, 검청색의 거대한 뱀이 너른 집무실을 가득 휘감았다. 슈슈 하는 소리가 정적과 뒤엉켰다. 어느 것이 아군이고 어느 것이 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 눈, 눈이 문제였다. 세로로 죽 찢어져 번들번들하게 빛나는, 치부를 숨김없이 꺼내 놓고 싶게 만드는 금빛의 샛별, 추락한 천사의 눈동자.
뱀의 양 관자놀이에 자리한 산양의 뿔도, 쇠를 긁어내는 듯한 울음소리도, 죽음의 기억을 일깨우는 썩은 내도 두렵지 않았다. 주변을 빈틈없이 휘감은 거대한 몸체나 독을 품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뾰족한 삼각형 머리는 위협이 되지도 않았다.
나는 말룸이 허물마저 남기지 않고 떠나 버릴까 봐, 그의 샛별이 내 몸의 떨림을 다르게 해석해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좀먹는 유일한 공포였다.
“말룸.”
뱀이 화답하듯 쇳소리를 내려놓았다. 나는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말룸.”
나는 같은 말뿐이 반복할 줄 모르는 메아리처럼 계속 그를 불렀다. 그러자 말룸이 산더미처럼 쌓아 둔 몸체를 더욱 풀어헤쳐 내게 스르르 다가왔다.
내 몸뚱이만 한 뱀의 머리가 바닥에 넙죽 붙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쇳소리가 그것의 입으로부터 삐져나왔다.
뱀의 울음소리는 일종의 봉화였다. 내게 자신을 허락하는, 잘 살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명멸하고 말 희미한 애원.
아래턱에 힘이 들어갔다. 대홍수가 일어 살아남은 생명이 없었다. 비명 섞인 흐느낌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머리에 덮인 흙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아, 정말, 가여운 사람…….”
당신은, 당신의 모습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건가요? 정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나요?
말룸의 형상은 주검이 춤추는 듯했다. 옆으로 위로 아래로 잡아당겨져 억지로 움직이는 인형과 한 핏줄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움 받고 있잖아요. 저주를, 저주를 받았잖아요, 당신…….”
급기야 짙은 악취를 풍기는 그의 머리를 한껏 끌어안았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바람에 가구가 뒤로 넘어져 천둥소리가 났다. 삐거덕거리며 파편이 튀었다. 합판을 주워들어 이어붙일 새도 없이 마음이 들판에 나뒹굴었다.
나는 허물을 벗겨낼 듯 하염없이 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뱀이 급하게 몸을 뒤틀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모로 기우는 날 지탱하려는 듯했다.
이런 순간까지도 말룸은 날 사랑했다. 사랑하고자 하는 결심이야말로 그가 칠백 년 간 간직하고 있던 늙은 잔불이었다.
나는 차마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추락한 육신 곳곳이 아팠지만 소리는 새지 않았다.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대신 그리듯 말룸을 응시했다.
“말룸, 당신이에요……. 당신이 맞아.”
손끝에 감겨드는 것은 분명 언젠가 느꼈던 비단의 감촉. 남청색 머리칼이 얼마나 예쁘게 들뜨는지 나는 분명히 느꼈었다.
뱀을 이루는 모든 것이 평소 말룸의 모습과 똑같았다.
거대한 몸뚱이를 움직이는 괴물 뱀, 내게 커피를 내려주는 말룸.
나조차 맡아낼 정도의 썩은 내를 풍기는 검청색 뱀, 내게서 옮아 붙은 향긋한 사과 내음이 나는 말룸.
쇳소리를 내는 산양 뿔의 뱀, 석양을 닮은 중저음을 풀어내는 말룸…….
그는 변하지 않았다. 전부 같았다.
뱀이 점차 육신을 작게 만들었다. 작아지고도 한참을 더 작아졌다. 마침내 평범한 살모사 크기가 되었을 즈음, 그는 몸을 받쳐주는 것이 없어 바닥에 주저앉은 내 팔을 타고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굵고 튼튼한 뱀이 목을 촘촘히 휘감았다. 검푸른 살모사가 금방이라도 코를 물어뜯을 듯 얼굴 가까이 머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뱀은 나를 물어뜯는 대신 뾰족한 코끝으로 내 볼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경건히, 하늘의 황도를 다시 아로새기듯이.
그는 결코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봐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맞아요. 아닐 수가 없어. 만약 아니라고 하면, 그건 자기 일에만 짓눌린 메마른 자일 거예요.”
나는 몸을 웅크려 쪼그려 앉았다. 그런 다음 목 주변을 한껏 끌어안았다.
뱀의 몸체가 화형 당하듯 뜨겁게 불타올랐다. 말룸이 죽어가듯 떨었다. 뱀은 눈꺼풀이 없어 울지 못했다.
우리는 사흘 밤낮동안 꼭 붙어 있었다. 서로의 횃대에 각자가 지니고 있던 불을 옮겨 붙이는 일이었다.
때로는 집무실에서, 때로는 신방에서, 아주 가끔은 산책하듯 향한 미로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서로를 찾았다. 백 년 동안 굶주리다 음식을 처음 받은 죄수처럼…….
일정하게 맞아떨어지던 생활이 점차 어그러졌다. 말룸은 일을 보지 않았고, 나는 새총 훈련을 그만두었다. 세상의 끝에서 제멋대로 춤추는 사춘기 소년소녀 같았다.
우리는 사람 그림자를 피해 굴속에 숨어든 생쥐였다. 사용인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았다. 지칠 때면 주술로 보관해 두었던 케이크를 한 조각 두 조각 꺼내 먹었다. 그저 달콤하기만 하면 되었다.
말룸은 아주 훌륭한 연주자여서, 나를 웃게 하기도 하고 울게 하기도 했다. 나도 종종 그를 연주하려 시도했다. 말룸은 기꺼이 악기가 되어 영 신통찮은 초보 음악가의 손에 놀아나 주었다.
우리는 야트막한 토성을 쌓는 듯했다. 아니면 태곳적 서로 틈 없이 붙어 있었다던 하늘과 땅처럼 굴었다.
말룸은 항해를 초보 낚시꾼에게 맡겨 버린 작은 돛배였다. 초보 낚시꾼이 만족해선 배를 꼼꼼히 정비했다. 배가 파도를 따라 이지러지듯 일렁였다. 낚시꾼은 배의 난간을 꾹 붙잡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말룸, 있잖아요.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넌지시 물었을 때, 그는 내 흰 복사뼈에 입을 맞추던 찰나였다. 나는 말룸이 무언가에 열중하다 말고 나를 보았을 때의 열망 어린 눈동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라……. 글쎄요, 당신이 좋다면 좋고, 싫다면 싫습니다.”
말룸이 매끄러운 미소를 지은 채 발등을 마저 머금었다. 그러다 슬금슬금 올라와 동그란 무릎을 지분거리는 것이 천연덕스러웠다.
“오필리아. 아이를 가지고 싶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원하지 않았다.
“그럼 저도 이대로가 좋습니다.”
말룸은 대수롭지 않다는 양 다시 점화 행위에만 집중했다.
그는 우리 사이에서 난 아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의 아이라면 분명 사랑스러울 테지만, 문제가 있다면 말룸도, 나도 그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떻게 아껴 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인간군상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신중해야 했다. 객기를 부려 아이를 탐하다가는 그 아이를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할 수도 있었다.
“아이는……. 말룸, 우리 둘 모두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고민해 봐요.”
말룸이 초생달 모양으로 곱게 미소했다.
“그렇게 하세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무엇이든지……. 아이가 태어나든 말든 제 우선순위 꼭대기는 항상 당신이 차지할 테니까.”
나는 그의 가슴팍에 코를 비볐다. 말룸의 웃음소리가 낮게 들떴다.
“말룸, 동화 속에 나올 법한 가정을 갖고 싶다면서요?”
“글쎄요. 제가 읽은 동화에선 아이가 나오지 않던데요.”
천연덕스러운 대답이었다. 나는 가슴이 뻐근해져 말룸의 어깨에 눈가를 묻었다.
그와 함께 생명을 논하는 때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말룸은 생명을 품기보단 빼앗는 자였고,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아이가 들어설 것 같지도 않았다. 죽은 자들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없었다. 다만 그런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다. 우리는 박탈당한 무언가를 채워 넣기를 갈망했다.
“그래도 미리 작명을 해둘까요? 혹시 모르니까,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요.”
“미래를 위한 대비는 금고 속에 있는 황금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하지만, 네, 좋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마카롱이라고 부르겠다 단언했다. 말룸은 내가 마카롱보다는 브라우니를 선호하는 편이라며 브라우니라 부르겠노라 했다.
우리는 디저트 이름으로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실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토로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의 낙원은 설탕으로 지어졌다. 그 낙원은 비가 내리면 금세 녹아 땅속에 묻힐 만큼 연약했다.
지금은 우기, 장마의 중앙. 낙원이 녹아 없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허락된 시간도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앞날을 걱정하거나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만약 일이 잘못된대도 끝의 끝까지 함께할 테니까, 우린 결코 다시 외로울 수 없어요.”
누가 풀어 놓았는지 모를 맹세가 숨결에 묻었다.
말룸이 흰 이불로 나를 포장하듯 덮었다. 나는 흰 천을 아예 머리 위로 덧씌워 속으로 숨어들었다. 바깥에서 청명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린 하늘을 틈 없이 채우는 빗소리 같았다.
오늘은 우리의 장례식, 날은 쾌청.
이상한 일이었다.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는데, 이전처럼 마음이 요동치지 않았다.
“아예 광고를 하지 그랬냐. 어? 그리 좋든? 아주 떠들썩하게 난리가 나더니만.”
성냥개비가 따로 필요하지 않을 만큼 얼굴에 활활 불이 붙었다. 손부채질을 했지만 열기가 식질 않았다. 흘끗 바라본 말룸의 안색은 변한 구석이 없었다. 딱딱한 태도로 스콘을 덜어갈 뿐이었다.
“그만해요, 카사블랑카…….”
“뭘? 엘로힘은 아예 성을 나가 버렸더라. 만나면 어떻게든 달래 봐. 너야 상관없겠지만 엘로힘 쪽은 아무래도 동생 몸이 원수 놈이랑 붙어먹은 꼴이잖냐.”
“붙어먹다니? 천박하기는.”
말룸이 송곳처럼 뾰족하게 이야기했다. 카사블랑카가 신전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룸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사나운 말들이 두개골을 쩡쩡 쪼개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이마를 감싸 쥐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둘 다 그만하세요…….”
나는 언젠가부터 이 늑대소년에게 존대를 하게 되었다. 카사블랑카는 신경질적인 몸짓으로 다 식은 홍차를 털어 넣었다. 열병을 앓는 사람 같기도 했다.
“하아…… 내가 살다 살다 별.”
“남의 신혼집에 밀고 들어온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군.”
“내가 오고 싶어서 왔냐!”
말룸이 또 비비 꼬인 말을 했다. 이것마저도 요즘 그의 기분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어조가 누그러진 것이었다.
내가 밉지 않게 말룸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그러자 말룸은 햇볕 아래의 고양이처럼 누그러져선 엄살을 피웠다.
“아, 참 나. 더러워서 못 보겠군. 간다!”
카사블랑카가 포크를 챙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신혼부부 사이에 끼어든 건 네놈이다. 방에는 왜 찾아왔지?”
“마지막으로 새총 쏘는 법 머릿속에 박아주려고 했을 뿐이야! 저 여자는 끔찍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없으니까!”
카사블랑카가 화를 삭이듯 벙거지를 꾹 눌러썼다.
그의 말이 맞기는 했다. 나는 오늘 무척 긴장한 채 있었다.
이른 아침, 식사를 거르고자 했던 것을 말룸의 성화로 이렇게 간단한 간식이나마 배 속에 집어넣은 오늘.
드디어 황금 사냥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