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71화
07. 황금 사냥
2월의 끄트머리, 영지가 축제의 열기로 들떴다. 오가는 사용인들마다 황금 사냥 이야기를 하는 통에 성 곳곳이 시끌벅적했다.
평민들은 금화를 수확할 생각에 정신을 쏙 빼놓았다.
레시우스 제국의 화폐는 금화, 은화, 동화 총 세 가지로, 영지마다 제각각 다른 상징물을 채택해 동전을 주조했지만 통용되는 가치는 같았다. 평민이 사용하는 화폐는 주로 동화였다.
금화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형편에, 금화와 각종 보석들을 가질 수 있는 황금 축제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누트 멤피스라는 생태계 교란종이 있긴 했지만 발타사르 영지민들은 일 년 중 황금 사냥 축제를 추수철보다도 절실히 기다렸다.
상기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축제까지 앞으로 사흘 남짓, 나는 라딘라티와 관련된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새총 연습에 매진하기로 했다.
훈련에는 로보도 함께했다. 로보는 나를 들어 올린 채로, 나는 그에게 의지한 채로 팀을 이루는 형식이었다.
2인 1조는 축제 규칙에 위배되지만 말룸의 비정한 권력을 넘어 문제제기를 할 사람은 없을 듯했다. 그가 나를 위해 거북이 금화를 만든 것 자체가 권력 남용이었다.
그나마 거북이 금화를 제외한 금화의 총량은 이전 축제와 동일하게 두었다는 점이 양심을 달랬다. 이렇게 된 이상 새총이나 잘 쏘는 것이 나았다.
의외로 도움이 된 사람은 카사블랑카였다. 그는 조슈아 님처럼 무작정 나를 적대하지 않았다. 작달막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수인족은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성 곳곳에 유사시를 대비하는 주술을 걸고 다녔는데, 그러는 도중 연무장에서 마주쳤던 것이 카사블랑카식 수업의 시작이었다.
카사블랑카의 지도는 훌륭하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눈높이 교육의 천재였다. 조금 친해진 후 이야기를 들어 보니 카사블랑카는 어린 시절의 조슈아 님을 가르쳤다고 했다. 바쁜 나머지 대상을 비판하는 교육은 잘 시키지 못해 조슈아 님이 맹목적으로 자랐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카사블랑카는 내가 정보를 활자로만 받아들이려는 버릇이 있다 충고했다. 그러더니 몸으로 익히는 게 아니라 머리로 방법을 외우라며 새총의 구조와 탄환이 쏘아져 나가는 방향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엘로힘은 옆에서 코웃음 쳤지만, 한참의 씨름 끝에 나는 정상적으로 새총을 쏠 수 있게 되었다. 과녁 한가운데에 탄환이 맞았을 때 엘로힘의 짜증 어린 한탄을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었다.
기쁜 소식은 하나 더 있었다. 간밤 조슈아 님께 따로 이야기한 것이 헛된 일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슈아 님과 말룸이 충돌하는 횟수가 줄었을 뿐더러 조슈아 님은 내게 예의를 갖춰 주었다. 고집대로 행동하는 안하무인이나 말룸처럼 윤리관이 소실된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만약 조슈아 님까지 말룸과 같은 성격을 타고났다면 말룸은 화를 참지 못해 신관님을 땅에 묻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손님이 늘어나니 겨울성에 활기가 돌았다. 겨울이었는데도 여름 같았다. 성에 사람이 이토록 많이 드나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아는 성이 살아난 것만 같다며 꿈꾸듯 이야기했다.
그러나 혹한을 견디는 자들이 있었다. 말룸과 가까이 일하는 보좌관들이었다. 새로 고용된 사람들에게 말룸은 전형적인 귀족으로 인식된 듯했는데, 남편이 냉랭하고 날 선 태도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룸의 행동 양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나를 대할 때 한없이 풀어지기, 엘로힘이나 로보, 크로노, 조슈아 님, 렉스 님을 대할 때 비아냥거리기,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때는 벌레만도 못한 취급하기.
나는 그 사이에서 중재역을 자처했다. 여러 일이 쏟아져 예민해진 말룸이 보좌관을 질책하는 걸 말리길 수번이었다. 그와 가까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액운 쫓는 부적이나 질주하는 마차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브레이크 정도로 인식된 듯했다.
오늘도 말룸의 집무실은 소란스러웠다. 하필 그가 가장 신경 쓰고 있던 누트 멤피스와 관련된 실수가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분명히 이야기했을 텐데, 비공정 주차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으라고!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제정신인가?”
말룸이 만년필을 부술 듯 세게 쥐었다. 일이 수틀렸다는 건 알겠지만 말이 심했다. 신입 보좌관이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절절맸다. 나도 보좌관과 함께 움츠러들었다. 말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대상이 내가 아니라도 그가 성을 내는 모습은 두려움을 동반했다.
혹시, 말룸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다면…….
서류 위 늘어진 숫자에서 시선을 거뒀다. 쓸데없는 상념이었다. 내게 향하는 그의 어두운 집착과 사랑은 넘칠 만큼 알고 있었다. 말룸을 두려워하거나 의심하는 것은 관계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말룸, 잠시만요.”
달래듯 그의 손등을 감쌌다.
돕겠다고 사정해 집무실 한쪽에 자리를 얻어낸 지 일주일 남짓, 말룸이 화를 내는 걸 말리는 일도 벌써 세 번째였다. 그는 나에게만큼은 항상 다정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향하는 폭언은 평소의 배가 넘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좋게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가 보좌관을 더 추궁하려다 멈칫했다. 말룸의 표정이 비를 머금은 것처럼 순식간에 눅눅해졌다.
“당신 앞에서 소리 지르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해요, 많이 놀랐죠?”
말룸이 투정부리듯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의 결 좋은 머리칼을 매만져 주었다. 이번에 말룸의 체온은 끓듯이 뜨거웠다.
“날 다루는 법을 익혀 가고 있는 것 같아 기뻐요.”
“당신은 내가 기르는 가축이 아니라고요.”
“그런 말도 기쁘고.”
텁텁한 숨결이 목덜미의 살갗을 간지럽혔다. 나는 심장이 추락하는 듯해 묵묵히 있었다.
말룸이 내게서 살짝 떨어져 이야기했다. 명백한 투정이었다.
“그래도 비공정 주차 공간을 마련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하면 그자가 꼭 삼림을 헤집어 놓거든요. 그럼 임농업이고 목축이고 차질이 생겨서 영지민 생계가 곤란해져요. 하나하나 신경 쓸 시간이 없어서 경력 있는 보좌를 고용한 건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거기. 감봉 조치할 테니 이만 나가도록.”
말룸이 꼴도 보기 싫다는 양 축객령을 내렸다. 실수를 한 당사자가 부리나케 집무실을 벗어났다. 사정을 듣고 보니 보좌관이 상당히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말룸은 벌써부터 주차 공간의 구상으로 머리가 아파 보였다.
“힘내요, 말룸.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고요.”
전보다 더 초췌해진 말룸의 볼을 살살 어루만졌다. 그가 반쯤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차츰 말룸을 진정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당신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오늘도 사랑해요.”
말룸이 아로마 향을 들이마신 사람처럼 딱딱함을 걷어냈다.
“날 달래주지 않더라도 사랑할 거지만.”
그의 맹목이 기꺼우면서도 너무 내게만 의지하는 것 같아 숨이 막혔다. 하는 행동을 보면 마음을 영영 잃어버린 것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면 충분히 다른 이에게도 호의를 베풀 수 있다는 뜻일 텐데, 문제는 본인이 그럴 의사가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말룸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헛된 상상을 놓을 수가 없다.
말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오늘도 티 한 점 없이 완벽했다.
그가 보란 듯 눈을 휘어 미소했다. 나는 요요한 뱀에 깊이 옭아 매였다. 짙은 애정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눈치 빠른 말룸이 내 귓불을 살살 어루만졌다. 요새 그는 나를 원한다는 태도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나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제가 멋대로 당신 행동을 제한하는 거. 밉지 않아요?”
“전혀요.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그가 내게 향했던 자세를 곧장 바로 세웠다. 그러고는 분노로 금이 갔던 만년필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말룸은 무더기로 뒤집어쓰고 있던 먼지라도 털어낸 양 상쾌해 보였다.
“수정궁 정원에서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당신 입맛대로의 신랑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잖아요. 행동에 재제를 가할 때마다 저를 잘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무척 기껍더군요.”
나는 의자 방석이나 만지작거렸다.
“어때요, 당신의 맘에 차도록 나아지고 있나요? 요즘은 당신이 가르친 대로 식기를 집어던지지도 않잖아요. 행동을 고쳐서 당신이 날 더 깊이, 더 오래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저는 당신에게 부족하니까요.”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내가 말룸의 결핍을 완전히 채워줄 수 없을 것만 같아 맘이 아파지곤 했다.
말룸은 전혀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그가 아깝다고 답할 것이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내 쪽으로 조금 끌어 왔다. 서러움이 치밀어 오르기 전에 맘을 단단히 잡아야 했다.
“선은 넘지 말아요. 아까처럼 사람 겁박하는 거요.”
“짜증 풀 곳이 필요하긴 하지만, 당신을 끌어안으면 상관없어지니까. 좋아요. 다른 건?”
“말룸……. 다른 건 없어요. 제게만 맞추려고 하지 말아요. 저는 가공된 당신이 아니라 지금의 당신을 사랑해요.”
말룸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는 듯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 전에도 정체를 끝까지 숨기려고만 했고,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으려 동분서주했었다. 말룸은 물속에서 끊임없이 헤엄쳐야 하는 백조보다도 치열하게 살았다.
“저는 당신이…… 평생 커다란 뱀으로 살게 된다 해도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말룸의 안색은 계기판이 고장 난 비행기 조종사처럼 푸르스름했다. 나는 분기점이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그의 눈을 가리는 불신의 채도가 높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뱀을 혐오스러워 합니다. 제가 스스로를 완벽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죠. 인간과는 아예 다른 종인데다 사람 형상과 닮지도 않았으니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겁니다.”
그가 다시 시린 입김을 내뱉었다. 체온이 옮겨 갔으면 하는 마음에 말룸의 손을 꼭 쥐었다. 말룸은 맞잡은 손을 물끄러미 응시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당신을 신뢰하고, 또 사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눈을 감은 채 스스로를 온전히 맡기고 싶어질 만큼……. 내가 악취 나는 뱀의 모습이라도 당신은 나를 사랑해줄 것만 같아 희망을 걸고 마는 겁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했다. 소중한 것을 상대에게 맡겨도 좋을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가지고 있을지.
말룸이 자신을 내보이지 않아도 좋았다. 검청색 비늘이 돋은 얼굴은 예전에 얼핏 보기도 했고, 뱀의 모습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과거의 흔적이니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말룸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내보인다면, 그것은 타인을 신뢰할 수 없도록 몰아붙여졌던 사람이 타인을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옹호하리라 결심했다.
몇 분의 시간이 더 흘렀다. 나는 주먹을 쥔 채 손바닥에 손톱자국을 만들었다.
마침내 사내의 아름다운 얼굴에 깊은 음영이 내렸다. 말룸이 먹구름 속으로 가라앉듯이 작게 숨을 떨었다.
“도망치지 말아요.”
말룸이 매달리듯 호소했다. 나는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변할 때 눈 감지도 말아요.”
“응, 하나부터 열까지 기록하듯 보고 있을게요.”
그 후로도 말룸은 끊임없이 당부했다.
“외면하지 말아요, 미워하지 말아요, 경멸하지 말아요, 끔찍해하지 말아요…….”
눈물이 샐 것 같아 입술을 꾹 물었다. 말룸은 칠백 년간 살아왔다지만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아직도 신전에 묶여 탈출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내가 응원하듯 그의 이마에 입맞춤하자, 확신이 섰는지 말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타오르는 벽난로, 정적과 따스함에 잠긴 집무실. 흑단나무 책상에서 살짝 비켜난 말룸은 처음 오르는 산에서 길을 잃은 행인처럼 불안해 보였다.
“힘들면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진심이에요.”
작게 말했지만 말룸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그가 인간의 형상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