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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68화 (68/100)

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68화

조슈아 님은 내가 말룸의 정체를 알게 되면 우리의 소꿉놀이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말룸이 원작대로의 악인이라면 도주했겠지만 오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그를 떠날 이유가 없었다.

곁에서 로보가 나를 옹호했다.

“이봐, 육지 신관. 오필리아가 라딘라티와 관련되어 있는 이상 지렁이의 곁에 머무는 게 더 안전해. 지금 심술부리는 것 같은데. 아니야?”

조슈아 님은 응답하지 않았다. 신관님을 빤히 관찰하던 로보가 자신을 위해 준비된 회를 앞으로 끌어왔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위해 행동했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조슈아 님의 태도가 파문을 남겼다. 싱숭생숭한 감정을 대변하듯 시든 나뭇가지가 바닥을 뚫고 자라났다. 신관님들이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밀빛 상냥한 눈동자가 호기심을 품고 산들거렸다.

“발타사르 님의 편지를 전해 받기는 했습니다. 그 능력은 눈여겨 볼 만하군요. 공격성도 있습니까?”

“제어하느라 바빠서 공격 시도는 안 해봤어요. 하지만 상대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골적인 심술을 담아 가시덤불로 조슈아 님의 몸을 옭아맬 듯 장난을 쳤다. 로보가 곁에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조슈아 님은 가시덤불을 이리저리 살피거나 잡아당겨 내구도를 측정할 뿐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거듭 곱씹어도 편히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라딘라티를 적대하고 있는 것은 든든했지만 말룸에게 향하는 경멸이 깊어 친구처럼 어울리기에는 이래저래 켕기는 구석이 많았다.

“이런 수준의 술수가 라딘라티에게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조슈아 님은 날 선 듯 뾰족했고, 카사블랑카는 말룸의 거처에 걸음 한 것조차 맘에 들지 않았는지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엘로힘은 신전 측의 협력자였지만 감정적인 교류는 없었는지 우리의 대치에 이렇다 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선 사람이 렉스 님이었다.

“그만두렴, 조슈아. 식사 자리인데.”

“속도 좋으십니다. 증오스럽지 않으십니까? 화도 나지 않나요? 따지고 보면 저자들 때문에 모든 게 엉망진창입니다. 살인사건 조사도 전부 끝나질 않았는데, 영혼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그 고쳐낼 수 없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슈아.”

“예상된 일 아니었습니까. 그렇게까지 영혼을 얼기설기 엮어 놓았는데 붕괴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불균형은 점점 심해질 겁니다. 상처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선이고요.”

나이프를 쥔 그의 손은 과한 힘이 들어가 새파랬다. 끝내 조슈아 님이 두르고 있던 부드러운 분위기가 깨져 버렸다.

“협조하겠다고는 했지만, 협력 시점은 살인사건이 정리된 후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었습니다. 대체 우린 왜 불러낸 겁니까? 그렇게 당신이 중요합니까?”

그렇게나, 내가 중요하냐고?

빵에 시선을 고정했다. 당연히 중요하다. 왜 중요하지 않겠나.

그간 눌러 참았던 분과 화가 바깥으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당신이 라딘라티와 말룸에게 어떤 험한 일을 당했든, 따지고 보면 나 역시 피해자였다.

그러는 당신은 자신의 상황만 내게 들쑤시지 전혀 날 배려할 뜻이 없지 않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입술을 꾹 깨물곤 포크로 빵을 뒤적거렸다. 입을 열면 그에게 짜증을 한 바가지 쏟아낼 것 같아서였다.

시간을 들여 이쪽으로 와준 사람과 소모전을 하고 싶진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감당하느라 한껏 지쳐 예민해져 있었다.

렉스 님이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그는 조슈아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동조하진 않았다.

카사블랑카가 벙거지를 벗어 내려놓았다. 붉은 늑대 귀가 그의 머리 위로 비죽 솟았다. 튤립처럼 싱그러운 소년의 외모와 동물귀가 어우러져 시선을 빼앗았다.

“분한 건 이해하지만 이곳엔 화낼 대상이 없어, 조슈아.”

“……카사블랑카.”

“일에 휩쓸렸을 뿐인 애송이에게 화풀이하지 마. 대상을 명확히 해. 매 수업 시간마다 말 했잖냐. 발타사르 놈이 저주스러운 것과 저자가 놈을 선택한 건 별개야.”

카사블랑카는 말룸에게 폭언을 쏟아내었을 때와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침착했다. 나는 그를 아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카사블랑카. 저는 어떻게 오필리아 님이 발타사르의 본질을 알고도 그를 사랑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네가 이해할 필요는 없잖냐. 웃기는 소릴 하는군.”

조슈아 님의 표정이 조각난 듯 일그러졌다.

“……그렇군요. 예, 그 말이 맞습니다.”

그가 잠시 말을 고르곤 나를 응시했다.

“미안합니다, 오필리아 님. 하지만 정말 이곳엔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도 라딘라티 처단을 위해 엘프의 힘을 한껏 개발해야 할 겁니다. 당신이 당하면 발타사르 그자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노력하고 있어요.”

나는 손을 꾹 맞잡았다. 그러지 않으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의 면전에 와인을 끼얹을 것 같았다.

조슈아 님은 사사건건 나와 맞지 않았다. 그의 광신도, 말룸을 적대하게 된 사정도, 나를 탐탁잖아 하는 그 마음도.

“당신은 말룸 발타사르의 다정함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당신만의 탓이 아니겠지. 모든 건 당신을 너무 싸고도는 그자 때문인데.”

조슈아 님은 힘이 없었다.

“다시 사과드립니다, 오필리아 님. 제 언행이 과했습니다. 일단 짐을 풀고, 당신 상태를 좀 살피도록 합시다.”

나는 그의 사과에도 아침 먹기를 그만두었다. 입맛이 싹 가셨다.

그러나 조슈아 님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말투에 모가 나긴 했지만 그의 지적은 타당했다.

그간 나는 말룸의 다정함에 녹아 긴장을 풀고 있었다. 라딘라티가 얼마나 위험한 자인지 나는 겪지 않아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다.

내가 어떤 목적을 위해 불려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성의 지하에 봉인되어 있었고, 모두가 그자의 타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내 방패가 말룸 하나만은 아니란 소리였다.

분함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라딘라티의 음습한 속내와 맞닿아 있는 위험인물이었지만 말룸이 선사하는 정원에 잠겨 보아야 할 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한 번 죽었다 살아나고, 다시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데 까무러치지 않는 것만 해도 나는 평소 지닌 정신력 이상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금 이 육신은 엘프의 주검이었고, 검을 휘두르거나 활을 다룰 수 없을 만큼 약했다. 금방이라도 흙 속에 묻혀 부패가 진행되었어야 옳은 몸이었다.

결국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포인세티아의 힘뿐이었다.

엘로힘의 말에 의하면, 엘프의 힘은 무궁무진해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힘을 조금 더 갈고닦으면, 최후의 순간에 나도 누군가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걸까? 내가 사랑하는 말룸이든, 아니면 조슈아 님이든…….

하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쳤다. 내가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조찬에서 요리를 다 비운 사람이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함께 일전의 응접실에 모였다. 다들 각자의 생각에 갇혀 침묵뿐이었다.

나는 신관님들이 신경 쓰이는 한편 자꾸만 크로노가 마음에 걸렸다. 로보와의 관계는 둘째 치더라도, 여러 일이 겹쳐 파편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크로노의 태도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식당에서 파편의 존재를 전해 듣고 어처구니없어하던 로보와는 달리 크로노는 놀라지도, 신기해하지도 않았으며 파편에 관해 묻는 법도 없었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전 조슈아 님이 말하길 크로노는 시간의 파편과 전이의 파편 두 개를 가졌다고 했다. 그는 혹시, 미래의 일을 미리 보아서 파편에 대한 것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크로노가 무슨 의중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숨기고 있는지 오리무중이었다. 내가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 판단해 입을 다문다는 가정이 내가 놓을 수 있는 장기말의 전부였다.

크로노의 속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입술이 메말라 사막이 펼쳐졌다. 그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크로노는 이 세계의 결말까지 전부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상념에 휩쓸려 두 다리가 힘없는 갈대처럼 후들거렸다.

조슈아 님이 깊이 한숨을 쉬었다. 밖으로 뿜어져 나온 숨의 궤적이 공장 매연처럼 짙고 독하게 느껴졌다.

“이건…… 카사블랑카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군요. 오필리아 님께서는 아닌 것 같아도 중요한 순간 운이 좋으신 듯합니다. 카사블랑카에게 할당된 파편은 재생, 그 힘으로 그는 어려졌다 자랐다를 반복해 끝없이 살아가지요. 균열을 이전 상태로 되돌려 진정시킬 수는 없겠지만, 마모된 구석을 재생해 영혼 하나 정도는 고정할 수 있을 겁니다.”

조슈아 님이 책을 펼쳐 파편을 통해 날 분석한 결과였다. 나는 그를 관찰하다가 떠오른 의문점을 이야기했다.

“신상 밑에서만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요?”

“파편을 넣어둔 곳이 신상이었을 뿐, 지니고만 있다면 사용에 문제는 없습니다. 안정도가 떨어져 몸에 무리가 가긴 하지만요.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이 남긴 파편은 총 셋……. 저희는 그걸 지키기 위해 파편을 지니고 다니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조슈아 님의 얼굴에 수심이 짙었다.

“신전은 유명무실합니다. 언제 습격 받아도 이상하지 않죠. 요즘은 하급 귀족조차 신전의 힘을 무시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손을 쓴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덫에 걸려 있어요…….”

카사블랑카가 벽난로 앞에 앉아 있던 내게 다가왔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마. 조슈아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신실하다. 어떻게든 녀석의 신과 연결되고 싶어 유난을 떨지. 신상도 그 일환이야. 다른 대신관들은 대부분 가지고 다녀.”

“카사블랑카는 조슈아 님처럼 신실하지 않은 건가요?”

카사블랑카가 사납게 나를 올려다보았다. 작은 소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맹수의 울음소리를 닮아 사나웠다.

“넌 알면서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사람 속 뒤집는 질문을 자주 해. 호기심을 죽여.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좌우지간 알았으면 가만히 있어라. 몸을 사리란 얘기야.”

조슈아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러나 카사블랑카는 끝내 그의 신실함을 증명하지 않았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카사블랑카는 그들이 사용하는 신성이 라딘라티의 비늘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파편에 어린 신성을 맹신하지 않고 수단으로만 여기는 듯했다.

“성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 수도 있겠는데. 나 참, 골치가 다 아프군.”

카사블랑카가 볼멘소리를 냈다. 그런 다음 내 상태를 적어둔 진단서를 뒤적거리는 등 딴청을 피웠다.

이 작은 소년이 성장을 거듭하며 오랜 시간 살았다니.

말룸은 내가 저택에 처음 왔을 때 어떤 보검을 보여주며 수인족이 오백 년 전에 멸족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카사블랑카는 적어도 오백 년 이상 살았다는 것이 되었다.

“거기. 말 좀 들어.”

“아, 네?”

“딴 생각할 정신이 있냐? 내가 한 건 임시조치다. 혼이 마모된 부분을 어설프게 재생하고 고정한 것에 지나지 않아. 균열을 봉합할 수 없다는 의미다. 마음 단단히 먹어, 다시는 크게 정신적으로 동요해선 안 된다. 그때는 정말 끝이야. 다른 영혼이 육신을 차지하게 될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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