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63화
로보는 따스한 등불처럼 내 곁을 지켰다. 그는 내게 괜찮아질 것을 재촉하지 않고 차가운 겨울 바다가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렸다.
로보가 나를 안은 채 해류를 거슬러 유려하게 헤엄치기 시작했다. 내 심원도 그를 따라 속절없이 흐느적거렸다.
로보는 좀 전과는 달리 빠르지 않게 유영했다. 가끔 다리에 맞닿는 인어의 물고기 하반신이 때로는 차가웠고, 때로는 따뜻했다.
그가 굴이며 조개껍데기, 이끼 따위가 비죽 난 해안가의 바위에 날 들어 올려 앉혔다. 나는 곧장 몸을 굽혀 여태 바닷가에 있는 로보의 양 볼을 감쌌다. 눈물이 아래로 계속 추락했다.
“고마워요.”
물을 머금어 갈라진 목소리로 전했다.
“고마, 고마워요, 로보. 구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계속 말을 내뱉었다. 내 심장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당신에게도 그게 좋을 것이었다.
로보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 그가 된 숨을 참아내고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로보?”
자그맣게 그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참아내느라 정신이 마모되어 있었다.
겁이 덜컥 났다. 로보가 잘못되면 나는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말룸이 내 곁에 있어도, 나를 용서할 수 없게 되어버릴 듯했다.
“로보, 로보! 정신 차려요! 로보!”
“으, 큭, 빌어먹을…….”
로보가 몸을 비틀며 떨었다. 그가 끝없이 바위로 올라오려 애를 썼지만 꼬리지느러미 탓에 시원찮았다. 대체 왜, 어떻게 해야…….
머릿속으로 그가 보였던 언행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닷물이었다.
로보는 바닷물에 닿으면 고통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 인어, 그것도 라딘라티를 물리친 트리톤의 직계인 데다 아틀란티스의 후계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함을 잴 시간도 없었다. 로보가 아프다면 아픈 것이었다. 나는 바위로 올라오기 위해 바르작대는 그를 끌어안아 있는 힘껏 당겼다. 지금은 인어의 모습이라 그 혼자 바위에 오를 수 없었다.
다행히 온갖 힘을 짜낸 보람이 있었다. 로보가 내 위로 추락하듯 쓰러졌다. 등으로 날카로운 조개껍질이 박혀 들어가 살갗이 뾰족한 날에 베여 아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로보가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아가씨! 등 괜찮아?”
“옷이 두꺼워서 괜찮아요.”
대강 거짓말을 했다. 등이야 치료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대로 누운 채 멀거니 그의 모습만 응시했다.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고, 영혼이 흔들거렸다. 그러자 로보의 고통을 그대로 옮겨낸 듯 일그러진 고목이 바위에 촘촘히 들어앉았다. 식물은 내 감정과 정신 상태에 따라 종류가 다르게 피었다.
로보는 덤불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덤불에는 잎이 없었다. 꼭 로보의 인생 같았다. 나는 장미를, 해바라기를, 하늘나리를, 제비꽃을 피워내고 싶었지만 줄기만 간신히 바위를 덮을 뿐 꽃송이가 도저히 나질 않았다.
햇살이 바다의 유빙을 녹이듯 로보의 백색 머리칼에 내려앉았다. 로보는 부서지는 얼음을 닮아 정교하고 우아했다.
인어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는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백상아리를 연상케 하는 수려한 유선형의 은색 하반신, 눈처럼 새하얀 지느러미가 생겨난 건장한 팔뚝, 양 목덜미에서 움트는 세 줄의 상어 아가미, 파도처럼 물결치는 흰 머리칼과, 오랜 육지 생활로 그을린 구릿빛 피부. 그리고 그 위로 아로새겨진 갖가지 흉터들…….
하지만 나는 멋지다거나 아름답다고 감탄하지 못했다.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로보는 결이 파일 것처럼 바위를 세게 쥐고 있었다. 얼굴에 비참이 번들거렸다.
그가 목소리를 뱉었다. 시선은 멀거니 하늘을 향한 채다.
“태양이, 너무 환해. 눈이 멀 것만 같아……. 선글라스는…… 잃어버린 것 같고.”
나는 로보가 걱정하는 것이 눈이 머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로보…….”
그가 얼굴의 바닷물을 씻어내듯 마른세수를 했다. 물방울이 아래로 점점이 떨어지며 궤적을 남겼다.
“하하, 꼴사납지……. 라기 이 녀석 혼 좀 나야겠어.”
“로보.”
“눈치챘겠지만, 난 인어인데도 바닷물에 닿으면 고통을 느껴. 삶의 첫 순간부터 그랬지. 이 끔찍한 작열통은 진통 효과가 있는 약초물을 복용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어. 도저히 물 안에 있을 수가 없는 거야.”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넌지시 물었다.
“진통 효과가 있는 약초라면 설마, 제가 복용하는 그거요?”
“맞아. 인어에게도 들을 만큼 약효가 강한 건 그것뿐이니까. 학계에서는 그 약초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어.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인어들은 그걸 무명초라고 부르지.”
나는 너무나 놀라 벙벙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인간에겐 무해하지만 우리 인어에게는 독이야. 오래 복용하면 위장이 괴사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애초에 인어의 특성상 진통 약초에 대한 내성이 너무 높아서 썩 잘 듣지도 않고……. 최대한으로 복용해봐야 약효가 한 시간 정도 지속되는 게 한계야.”
그가 비통함을 뱉어내었다.
“나는 결국 아틀란티스에 머물 수 없는 체질인 거야.”
로보의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왕이 되고 싶지 않을 리가 없잖아! 나는 형과 엄마아빠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해적질이나 하고…… 바다가 싫어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가 허물어지듯 속에 얹힌 것을 내보였다.
“그래서 배를 만들어서 이곳저곳을 유랑했어. 황금을 얻기 위해 금고 뚜껑을 매만지는 것처럼, 그렇게라도 바다와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던 거야.”
로보가 헛웃음을 토했다.
“유적을 조사하는 것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고 쥬벨타에게 신세를 져야 했어. 돌연변이 인어인 줄 알고 그냥 그렇게 살았어. 운 좋게 검은 쌍창을 다루게 되어서 후계위를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이게 내 길인지는 잘 모르겠네…….”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던 로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울음을 낼 수 없어 대신 삐져나온 것이었다.
“왕이 되어서 인간과 인어를, 내가 자란 육지와 사랑하는 바다를 연결하고 싶다는 것도 탁상공론인 걸까? 내가 해왕 트리톤이 사용했다던 검은 쌍창에게 선택받지 못했더라면, 후계는커녕 달빛 들지 않는 골짜기에 버려졌겠지.”
그가 한숨을 쉬었다. 머리칼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로보의 마음을 닮아 힘이 없었다.
“전말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야. 확실하지는 않지만 트리톤을 증오한 라딘라티의 저주라고 짐작 중이지. 정말 그렇다면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내 특이체질에 대해 말을 아꼈는지도 맥락이 맞아떨어져……. 어떤 할아버지가 자기 손주한테 너 저주 걸렸노라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로보가 고해하듯 속의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듯 정신이 혼미해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왜 하필 나야? 내가 원해서 조상님의 직계로 태어난 게 아니잖아. 나는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거야?”
로보가 그의 육신에서 추락하는 물방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가씨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약점을 보이다니 꼴사나워. 물에 들어가지도 못 하는 인어…… 그런 게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냔 말이야.”
흑색의 바위 위로 물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흔적을 남겼다. 한 방울, 두 방울,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작은 웅덩이가 생겨 삽시간에 불어났다.
“난 깨끗하지 않아. 아가씨가 날 진실하다 여기는 것도 모두 환상이야. 하지만 나는…… 아가씨를 사랑해. 결국 아가씨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이 마음만큼은 변함없어. 나는 아가씨에게 아무래도 닿지 못하는 걸까? 대체 발타사르 그자와 내가 다른 게 뭐야.”
그의 목소리가 힘없이 추락했다.
“발타사르와 헤어지라고는 말 안 해. 연인 관계가 될 걸 부탁하지도 않을 거야. 하지만 아가씨의 심장에 자리를 만들어서, 나를…… 사랑해주면 안 될까? 조금이라도 괜찮으니까, 나만을 위한 화로를 하나쯤 놓아주면, 곤란할까?”
로보가 두서없이 슬픔을 엮었다. 이내 물기마저도 말랐는지 바위에 새겨지는 무늬가 없었다. 로보의 슬픔은 말라붙어 굳은 채로 그의 심장에 덕지덕지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쉽게 떼어낼 수도, 녹일 수도 없는 일종의 검은 화석이었다.
화려한 흑선이 점점 가까워졌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나는 이스마엘으로 추정되는 짧은 머리칼의 여자가 수건 따위를 들고 해안가에 뛰어 내려올 때까지, 거칠고 잔인한 바다에서 보호하려는 양 로보를 꼭 끌어안았다.
로보가 내 어깨에 의지해 힘없이 늘어졌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할 여력조차 없는 것 같았다.
차가운 겨울 바다가 몸에 달라붙어 머리가 어지러웠고 이가 서로 맞물려 딱딱 하는 소리가 났지만 로보를 놓을 수가 없었다.
로보가 간간이 숨을 몰아쉬었다. 피부 결을 따라 남아 있는 소금기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양 볼이 잘게 떨렸고, 상처 난 등이 욱신거렸다. 이 비참이 겨울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한기 때문인지, 아니면 타인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엿보았기 때문인지는 정의할 수 없었다.
우리는 케이론 호 위로 끌어올려졌다.
“선장! 그게 대체 무슨 꼴이야!”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다.
“인어 모습도 오래간만이네. 아니, 이런 태평한 감상을 할 시간이 없었군. 저쪽 아가씨 입술이 완전 새파랗게 질렸잖아!”
이건 여자의 목소리.
“머저리들이, 그만 떠들고 저리 비켜! 의무실 따뜻하게 데워 놓고 침대 좀 펴란 말이야!”
이건 나와 로보를 양팔에 각각 끌어안고 있는 이스마엘의 목소리였다.
“제정신이야? 바다에 들어가지도 못 하는 놈이 구하겠다고 설치긴 왜 설쳐?”
이스마엘은 로보를 갑판 위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더니 나를 신생아 대하듯 조심스럽게 뉘었다. 우리 둘은 새하얗게 얼어붙은 숨을 내쉬며 벌벌 떨었다. 이스마엘이 로보의 머리칼을 밉게 쭉 잡아당겼다.
“라기 보러 안 올 때부터 짐작했지. ……그런데, 거기, 대공비전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이스마엘, 나는 로보를 타박하는 그 여자가 꼭 태양처럼 느껴졌다. 이스마엘이 찬물을 털어내듯 제 머리칼을 헤집었다. 내 신분을 의식한 모양인지 존대가 어설프게 이지러졌다.
“괜, 찮아요.”
답하고 싶었지만 입이며 얼굴이며 꽁꽁 얼어 이상한 신음만 나왔다.
동태처럼 언 로보와 나는 이스마엘의 감독하에 의무실 깊숙한 곳으로 이송되었다. 그러는 중에서도 일부 짓궂은 선원들이 로보더러 정말 첩이 된 거냐고, 단단히 본부를 꿰차야지 하고 놀려대었다. 로보는 선장으로서의 위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로보가 끙끙 앓으면서도 착실히 대꾸했다.
“아니, 내 희망사항일 뿐이야. 괜히 아가씨에게 부담 줄 생각 없어. 아가씨는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해. 날 갖고 싶으면 갖고, 감당하기 벅차다면 친구로 두는 거야.”
로보의 어른스러운 배려가 모포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몸을 덮은 모포에 얼굴을 묻고 작게 떨었다.
그의 마음은 사랑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로보는 한없이 다정해 아름다운 유리처럼 내게 박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