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62화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간 나는 케이론 호 수리비 청구서를 확인하는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말룸이 돈과 관련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탓이다.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금액이 청구되었을 텐데, 그 사람은 속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돈을 더 많이 쓰라고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금전감각이었다. 말룸은 자신의 사랑을 물질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아가씨, 놀라지 말고 꽉 잡아.”
나는 로보의 목을 깊이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가 한 손으로 휠체어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허리를 휘감았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꽁꽁 싸맨 모양새였다.
왜 이렇게 철저히 붙잡지?
불길함 반, 새로운 것에 대한 두근거림 반으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로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라기! 어서 나와! 아빠 왔어!”
“……아빠라고요?”
하마터면 당신 결혼했냐고 물을 뻔했다. 하지만 의문은 금세 해소되었다.
바다 곳곳에서 거대하고 굵은 문어의 다리가 출현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일었다. 좌현에 네 개, 우현에 네 개. 총 여덟의 다리였다.
흑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고래 울음소리와 새 소리를 섞은 듯한 기이한 비명이 들렸다. 배가 점차 위로 솟아 사나운 파도를 만난 듯 아래로, 위로 계속해서 일렁였다.
그것은 몸을 뒤틀어대며 신음하고 있었다.
거대한 문어의 촉수들이 마치 화가 난 것처럼 요동쳤다. 문어 다리가 자꾸만 바닷물을 튀겨댔다. 로보가 물벼락을 피하기 위해 몸을 단단히 웅크렸다. 나는 물을 몽땅 뒤집어쓰면서도 입을 벌린 채 그 이상하면서도 위풍당당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케이론 호라는 게 배가 아니라…….
내 경악 어린 속을 신경 쓸 틈이 없는지, 로보는 케이론 호로 추정되는 괴생물체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라기! 이쁜 라기, 미안해. 아빠가 많이 늦었지……. 삐졌어? 화 풀자. 응? 아이고, 우리 애기.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이쁜 라기’. 그리고 ‘우리 애기’……. 나는 희번덕거리는 크라켄의 눈동자를 마주하곤 얼어붙었다. 눈알 하나가 번듯한 건물만 했다.
“케이론 호라는 게, 배가 아니라 크라켄이었어요?”
“크라켄…… 그것도 아가씨 세계에 있는 생물인가? 라기는 범선대왕문어야. 케이론 호가 라기의 껍질이지.”
“범선대왕문어요…….”
“아, 토라져서 안 나오네……. 꼭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라기는 나랑 어릴 때부터 함께한 반려동물이야. 귀엽지? 저 초롱초롱한 눈 좀 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눈이라도 마주친 게 어디야.”
로보는 해수면에 반쯤 드러나 번뜩이는 문어의 살벌한 눈동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반려동물 자랑하는 사람의 면전에 대고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빈말로도 귀엽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저것은 어딜 봐도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크라켄이었다.
내가 아는 크라켄은 요르나스에 없는 생물인 듯했다. 지구에서도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괴물이니 요르나스에 있으리란 법은 없었다.
크라켄은 신화 속의 바다괴물인데, 보통 거대한 문어나 오징어 따위로 묘사되어 항해하는 선박을 바다 밑으로 끌고 들어가는 습성을 가졌다.
게다가 자꾸만 물을 튀기는 것으로 보아 로보에게 무척이나 화가 난 것 같은데……. 로보는 연신 미안하다며, 바닷물을 튀기진 말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바닷물을 뒤집어쓰는 채로 있었다. 로보가 나를 감싸듯이 끌어안아 바닷물을 막아주었지만, 옷에 소금기가 가득 묻은 후였다.
“정말, 라기! 아빠 화낼 거야!”
그러자 배 위에서 쩌렁쩌렁한 타박이 터져 나왔다. 걸걸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이, 라기한테 화를 왜 내? 잘못한 건 너잖아! 내가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르라고 했지. 이게 뭐냐, 소용돌이 해역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려서 돌아가시겠다!”
로보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쟤는 배를 몇 년 탔는데 아직도 멀미야.”
배 위의 사람이 라기를 달랬다. 과연 효과가 있기는 했는지 우리에게 날아 들어오는 짠물이 멎었다.
“바닷물 샤워 시켜주려고 데려온 거예요?”
나는 유쾌한 기분으로 장난스럽게 물었다. 평소였다면 짜증을 내거나 기분이 상했을 테지만 모든 것이 색다르게만 다가왔다.
“미안해, 아가씨. 샤워실이 구비되어 있으니까 일단 배로 가자. 나도 어서 씻어야 할 것 같아.”
그가 우물쭈물 답했다. 나는 조금 더 놀려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음, 그럴게요.”
찌푸려졌던 로보의 미간이 눈에 띄게 펴졌다.
“그리고 지금 멀미한다고 소리친 녀석은 이스마엘. 부선장이고 우리 배 실세야. 원래는 레시우스 소속 해군이었지만 우리 쪽으로 포섭했지. 저 녀석은 공무원이 체질에 안 맞거든.”
로보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참는 듯한 신음을 내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로보, 어디 아파요? 휠체어가 너무 무겁다든가…….”
로보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그가 티 나게 말을 돌렸다.
“아니, 괜찮아. 그리고 내가 얼마나 건강한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잠깐…… 알레르기가 도졌나 봐. 라기! 아빠 올라가게 다리 좀 내려줘! 아빠 아야 한다!”
바다 밑에서 또 한 번 기묘한 울음소리가 삐져나왔다. 풀이 죽어 있는 듯 들리기도 했다.
이윽고 케이론 호가 가장 처음 보았을 때처럼 바다에 단단히 정박했다. 문어 다리 하나가 스르륵 물살을 가르고 나와 땅에 척 붙어 케이론 호까지의 길을 내어주었다.
당혹감을 접어내고 눈을 빛냈다. 로보의 말을 듣는 걸 보니 반려동물이 맞긴 한 모양이었다. 거대한 문어 반려동물이라니!
나는 심해에 사는 바다 생물이 궁금해졌다. 전에는 해마가 교통수단이라고도 했었지.
“라기가 좀 소심해.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심통이 난 모양이야. 새로 옷을 준비해줄게. 여자 선원들도 많으니 잘 사 올 거야.”
“아뇨, 이제 보니 귀여운 것 같기도 해요. 새로운 것투성이네요. 뱀이랑 결혼도 했는데 대왕문어 반려동물쯤은 괜찮아요.”
나름대로 농담을 덧붙이며 웃었지만, 로보는 영 안색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상쩍은 구석이 많았다. 바다와 친하지 않은 건가? 하지만 로보는 명색이 인어 아닌가.
“정말 미안해, 아가씨.”
그가 사과하며 훌쩍 라기의 다리 위로 뛰어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라기의 다리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진과도 다름없어 로보가 순간 균형을 잃고 크게 비틀거렸다.
“……어?”
잇새로 멍청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로보의 눈이 경악으로 동그랗게 뜨였다.
나는 하늘을 날다가 바다로 추락하고 있었다. 로보가 덩그러니 남은 휠체어를 망설임 없이 집어던졌다.
“아가씨─!”
그가 한껏 손을 뻗은 채 나를 따라 곤두박질쳤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빨려 들어가듯 물속으로 추락했다. 갈빗대 안으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물살이 혈관과 하나가 되었다.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물은 손이라도 있는 양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겼다. 몸에서 힘이 빠졌다. 주변으로 시든 덩굴이 마구잡이 자랐다. 그것은 미역처럼 흐느적거리며 떠다니다 이내 밑으로 가라앉았다.
코며 입이며 온갖 구멍으로 물이 들어왔다. 숨을 머금어 호흡할 틈도 없었다. 물속에 있었음에도 불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난파선에서 떨어져 나온 합판이 된 듯했다.
검은 물살이 몸을 퉁퉁 휘감았고, 서늘한 겨울 바다가 매서운 잔가지를 뻗었다. 눈물이 잔뜩 비집고 나왔지만 바다와 섞여 구별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어버리는 걸까.’
말룸이 떠올랐다.
‘겨우 행복을 찾았다며 나를 끌어안던 사람이, 다시 혼자가 되면 어떡하지?’
그는 분명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낡은 상자 안에 애써 가둬 두었던 분노, 원망, 증오 따위가 풀려 나와 이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가 제 2의 라딘라티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망가진 말룸의 모습일랑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 나를 따라 바다에 뛰어든 인어가 보였다. 선글라스는 물살에 휩쓸려 떠밀려간 지 오래다. 두꺼운 코트도, 언제 벗어던진 건지 바지도 셔츠도 모두 없었다. 다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는 상어의 꼬리지느러미가 자리한 채 힘차게 굽이쳤다.
로보는 엄청난 속도로 헤엄쳐오고 있었다. 주변으로 흰 포말이 거칠게 일었다. 그가 끝없이 나를 따라 해저로 추락했다. 인어의 표정은 서로 어긋난 공예품처럼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물살이 목구멍 깊이 밀려들어 와 컥컥대는 와중에서도 본능적으로 그에게 손을 뻗었다. 로보는 표류한 자를 위한 등대였다. 그의 단단한 손이 내 손을 맞잡고 홱 끌어당겼다. 나는 속절없이 그의 품 안으로 떠밀려갔다.
로보가 내 뒷머리를 감싸 깊이 입을 맞췄다. 나는 본능처럼 그에게 매달려 숨을 받았다.
로보의 혀가 입천장을 간질였다. 따뜻했고, 정중했다. 나는 그가 무언가를 새겨 넣는 것 같다고 느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주술을 부리는 걸까?
맞닿은 체온을 통해 그의 놀람이, 떨림이, 절박함이 느껴졌다. 발끝이 안으로 굽어들었다.
무언가가 심장을 주무르듯 생명의 총본산이 쉼 없이 박동했다. 그것이 그의 심장박동인지, 아니면 나의 것인지 희미하게 융합되어 구별이 되질 않았다.
당신은 지금, 나를 잃을까 봐 많이 무서운 거구나. 내가 당신에게 중요한 의미의 한 조각이나마 차지하고 있었구나…….
주변으로 환한 빛구슬이 올라왔다. 생명을 움트게 하는 봄의 태양과 닮았다. 폐에 스며들었던 물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나는 처음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 비명 섞인 울음을 토해냈다. 눈물방울이 바다와 섞여 먼 대양으로 퍼져나갈 듯싶었다.
나는 기절할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헐떡거렸다. 인어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를 궁금해하고 있었으면서, 로보의 온전한 모습을 눈에 담을 여유조차 없었다.
“아가씨…….”
그의 목소리가 애타게 갈라졌다. 그렇지만 육지에서 들었던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인어의 진짜 목소리는 물 안에서만 들을 수 있다고 하던데, 과연 천 마리의 새가 노래하듯 경이로웠다.
걱정이 둥실 떠올라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저 그의 목소리를 따라 헤엄치고 싶었다. 짠 물살에 눈이 따가웠지만 시야를 똑바로 하려 노력했다. 발판 없이 붕 뜬 몸이 물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가씨, 아가씨…… 괜찮아. 내가 잡았어, 괜찮아…….”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입안으로 바닷물이 밀려와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인어의 숨을 빌어 호흡할 수 있게 되었지만 물의 생물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꾸만, 자꾸만 울음이 비집고 나왔다.
로보가 내 눈가를 문질렀다. 바다와 섞여 구별할 수 없을 텐데도 그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섧게 구겨진 그의 눈매가 아팠다. 나는 얼어붙은 바다를 엿보는 중이었다.
“돌아가자. 미안해. 무서웠지? 괜찮아, 아가씨는 살아 있어. 내가 살렸어.”
인어가 나를 감쌌다. 그가 빠르게 솟구쳐 올라 물살을 가르고 수면을 향해 나아갔다. 허리를 휘감은 팔뚝이 단단했다.
햇살이 바다 안쪽까지 미쳐 사방에 별이 뜬 것 같았다.
로보가 나를 수면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우리는 다시 하늘을 마주했다. 나는 해바라기처럼 한껏 목을 내밀고 태양을 향해 호흡했다. 차가우면서도 익숙한 공기를 어서 몸 속 깊이 구겨 넣고 싶었다.
냉랭한 겨울이 시간이며 울음 할 것 없이 온갖 것들을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으, 엄마아…… 엄마…… 엄마아아…….”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었다. 괜찮은 줄 알았단 말이다. 무서웠는데도, 어떡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떠밀리듯 살아남아서, 다시 떠밀리듯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대체 무엇을 어떡해야지만…….
썩은 다리는 낫지 않았다. 오히려 면적이 더욱 늘어나고 있어 매번 상처를 치료하는 말룸도, 나도 일부러 다리에 대한 말을 아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상처가,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친 곳, 아가씨, 다친 곳은 없어?”
로보가 나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끝없이, 저 지평 너머로 퍼져나가도록 비명 같은 울음을 토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