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47화
나는 금기를 어긴 사람처럼 두려워졌다. 말룸에게서는 과거 어떤 날 맡았던 시원한 스킨 향이 났다. 유혹을 작정하고 준비한 향수였다. 그는 오늘 밤 나를 완전히 집어삼켜 시야를 차단할 셈인 듯했다.
말룸은 분명 독을 가진 뱀이었다. 그 독은 대포보다 치명적이었고 사람의 영혼까지 앗아가는 지고의 무기였다.
“긴장한 게 전부 보이는군요. 그리고 당신, 줄곧 생각했지만 너무 작아……. 원래 당신도 이렇게 작았나요? 응? 대답해줘요. 당신이란 사람을 낱낱이 알고 싶으니까.”
말룸이 얼굴을 내려 귓가에 입을 맞췄다. 심장이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갈빗대 속에서 울리는 북소리가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어떤 원주민의 고함도 이보다 크진 못할 것이다.
나는 말룸의 양팔 안에 꼼짝없이 갇혔다. 말룸이 매끄럽게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는 내 볼을 희롱하듯 부드럽게 쓰다듬는가 하면 눈가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기기도 했다. 뱀의 영역 표시였다.
내가 순진했다. 크로노는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말룸에게 향하는 것을 용인했던 걸까? 위기감이 엄습했다. 옆에 늘어져 있던 이불을 끌어안았다. 말룸이 의아한 듯 낮게 웃었지만 타박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구름에 숨은 해처럼 희끄무레한 어조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기억하나요? 당신이 성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구름보다 창백하게 질려선 이불을 덮어쓰고 삼하인의 유령처럼 되었었지요.”
말룸이 이불에 덮인 내 무릎을 긴 검지로 노크하듯 두어 번 두드렸다.
“저도 그때는 마음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던 때라 당신을 무섭게 했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당신만 괜찮다면, 지금 제 사랑을 확실히 전하고 싶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말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짙은 남색의 머리칼을 한데 모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장식장 위의 머리끈을 가져와 내게 내밀었다.
말룸이 특권을 준다는 듯 이야기했다.
“묶어줄래요? 당신을 보는 데 걸리적거려서. 내 눈을 맑게 해 줘요, 어서.”
나는 홀린 듯 머리끈을 받아들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비단 같았다. 몸 상태나 다리의 상처, 혹은 그의 정체 따위와 관련된 상념이 한데 엉겨 구덩이 속으로 쓸려 들어갔다.
“나를 선택해요. 내게는 당신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주고, 가장 좋은 것만 보게 하고, 가장 비싼 것만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목줄을 쥔 당신을 내 독니로 해치려 들지도 않을 테죠.”
말룸의 머리 위에서 부러 희미하게 해 둔 전등이 깜빡거렸다.
“사랑해요, 오필리아. 모든 시간을 통틀어 당신만이 유일해요.”
그의 언어는 진부했으나 밀림을 표류하던 때 발견한 민가의 불빛처럼 희귀했다. 나는 말없이 숨을 몰아쉬었고, 말룸은 내가 자신의 머리칼을 묶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지 않을까, 말룸이라면.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신전에서도 나를 신뢰했다. 자신과 혼인한 것은 ‘오필리아’가 아닌 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시간을 함께 보낸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고, 이 세계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도 괜찮다는 마음을 품을 수 있게끔 해주었다. 또는 나로 인해 자신의 심장이 소생하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했다……. 나와 함께 평범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말룸은 부서진 시신 위 덧씌워진 영혼에 숨을 밀어 넣는 사람이었다. 가슴이 폭풍을 만난 억새처럼 마구 날뛰었다.
머리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힘껏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툭 불거졌다.
얼마간 말을 가다듬은 후, 나는 그를 작게 불렀다.
“……말룸.”
“네, 오필리아.”
말룸이 보는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머리끈을 쥐고 몸을 반쯤 일으켜 손을 뻗었다. 목화를 대하듯 그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내 손 끝이 그의 볼을 스쳤고, 말룸이 옅게 숨을 토했다.
날렵하게 잘 빠진 눈매, 조각상처럼 정갈히 솟은 콧날,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그 외형이 나를 바다 밑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의 눈가에 드리워진 속눈썹 그림자가 넋을 잃게 만들었다.
“애태우는 겁니까?”
말룸이 굵은 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번에 황금이 자리한 그의 눈가를 엄지로 살살 쓸었다.
“휘둘리는 것도 괜찮군요. 귀여워요, 당신.”
앓고 난 뒤 변칙적으로 변한 그의 체온이 다시 뜨겁게 바뀌었다. 말룸은 여전히 피곤해 보이는데다 어둠 깊숙이 잠겨 있었다. 그러나 특유의 작위적인 분위기와 날 선 아름다움은 퇴색하지 않았다.
“내게 와요.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적응할 겁니다. 우린 참 행복할 거예요.”
말룸이 곧 있을 성찬을 기대하는 악마처럼 샛노란 눈동자를 번뜩였다.
……잠깐. 작위적인 분위기?
정신이 퍼뜩 들었다. 깜빡대던 등잔불이 갑작스럽게 타올랐다. 나는 말룸의 양어깨를 힘껏 밀어냈다.
“오필리아?”
거대한 꼬챙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꿰뚫고 지나갔다. 침대 헤드가 있는 쪽으로 몸을 힘껏 물렸다.
말룸은 오직 목적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심원에 품은 상대를 목전에 두고도 그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굳어진 습관을 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룸은 세상의 온갖 것들을 수단으로만, 혹은 목적 자체로만 여겼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지켜 내기 위해서라면 그는 기꺼이 내 눈을 가린 채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었다. 기만의 대상이 그가 사랑하는 나일지라도.
“오필리아, 무슨 일이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라도 있나요?”
말룸은 시종일관 조심스럽고 다정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그저 느긋했다. 결말을 미리 단정 지은 극작가처럼, 자신이 추락하지 않을 것을 확신하는 독수리처럼.
저 눈동자를 나는 알고 있다. 결혼식장에서 나를 품평하듯 훑어보았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을 바라보는 눈동자였다.
짙은 피곤이 그의 희미한 감정을 감싸 안았다.
첫날밤을 보내려는 사랑하는 사람을 저렇게 바라볼 수는 없었다.
나는 동화 속에서 현실로 끌어올려진 사람처럼 숨을 멈추었다.
내 심장은 사과로 되어 있었다. 전에는 덜 익어 풋풋한 연둣빛이었지만 좋은 일조량과 비바람, 적당한 보살핌을 받아 먹음직스럽도록 무르익던 찰나였다. 그러나 뱀의 눈동자가 사과를 아주 산산조각 내 버렸다.
사랑하고 싶다고, 그리고 어쩌면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신전에서의 말룸이었지 지금의 말룸이 아니었다. 그 간극이 산중 계곡처럼 깊고 지대했다.
그의 감정이 진실임을 믿는다. 그러나 말룸은 숨기는 것에만 매몰되어 한 줌의 마음조차 풀어 놓지 못했다.
그럴 여유조차 없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요구했었다. 날 믿고 털어놓으라고.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내 시선을 열락으로 돌려서까지 숨기려 하는 게, 기만이 아니면 무엇일까?
말룸은 나에게 믿음을 주지 않았다. 그가 사무치게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조차 믿지 못하게 된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온 건지, 짐작하려고만 해도 속이 아렸다.
심장이 박살난 것 같았다. 머리도 두 쪽으로 대강 나뉘었다. 눈을 감고 그에게 매달리라는 쪽과, 결국 그의 목적에서 어긋난다면 나를 뱃속에 밀어 넣을 것이니 도망치라는 쪽으로.
“말룸…….”
목소리가 흐느끼듯 새어 나왔다. 그제야 시종일관 여유롭던 말룸의 눈동자가 차츰 방랑하기 시작했다.
“제가 성급했나요?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요. 진정하고, 날 봐요. 밤을 보내는 방법은 많아요. 테라스에서 함께 밤하늘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그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나는 고개를 피해 거절했다. 그런 다음 방어적으로 무릎을 세워 쪼그려 앉은 채 얼굴을 묻었다.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그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말룸. 당신이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가요?”
“평범한 삶입니다, 오필리아.”
말룸이 어렵지 않다는 듯 모나지 않게, 그러나 다급히 화답했다.
“당신과 함께 하는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들이요.”
“하지만 전 이미 평범하지 않아요. 유령 신부와도 평범한 삶을 꾸릴 수 있나요?”
“걱정 마요. 불안해서 그러는 거죠?”
말룸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결을 따라, 애써 빗어 내린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다 잘 해결될 거예요. 해결하지 못하면 저도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아요, 설령 당신이 부서지더라도 끝의 끝까지 함께일 테니까.”
나는 그 말을 듣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열이 올라 눈앞이 시뻘게졌다.
“라딘라티라는 그 괴물 때문에 그래요? 어차피 반목하는 상대이니 날 멀쩡히 만드는 것에 실패하면, 그자가 날 이 세계로 끌어낸 목적을 알아내지 못하면, 끝이 기다리고 있어서!”
말룸은 난제를 접한 사람처럼 말이 없었다. 방 안에는 정적만이 산재했고, 그 흔한 산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말룸이 나를 한겨울의 빙하보다 시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봐, 그가 돌변해 나를 어딘가에 가두어 둘까 봐…….
“알고 있었군요. 라딘라티에 대해. 누구에게 들었죠? 그보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의 음성이 얼어붙은 폭포처럼 첨예했다. 주먹이 절로 말려들어갔다.
“당신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서 평범한 신혼 생활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말룸은 답하지 않았다. 핏줄 안에서 불길이 날름거렸다.
“왜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아요?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지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묻지 않는 거냐고요!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내 몸만 있으면, 사랑할 수 있는 상대만 있으면 당신의 소망을 이룰 수 있으니까?”
“아뇨, 아닙니다, 오필리아. 이전 세계에 대해 묻지 않았던 건 상처가 될까 봐 그랬던 거였어요. 끔찍하게 살해당했다고 했었잖아요. 관심이 없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당신 취향은 사용인들을 통해 들어서 잘 숙지하고 있었어요.”
흘끗 바라본 그는 무척 피곤한 낯이었다. 나는 말룸의 창백함에서 인간성을 찾아내지 못했다.
“오필리아, 제발. 왜 그래요?”
“내가 할 말이에요. 당신 대체 왜 그래요? 왜 날 믿지 않아요?”
“전 당신을 신뢰하고 있어요.”
“그런 입 발린 말 말고! 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아니야!”
말룸을 똑바로 바라보고 선언하듯 소리쳤다. 목소리가 갈라져 까마귀의 비명소리를 닮았다. 끝없이 눈물이 나와 시야가 흐렸다. 비 오는 날 창밖을 내다보는 느낌이었다.
“오필리아…….”
말룸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미안, 미안해요. 제가 또 무언가를 잘못했나 봐요.”
그는 어떤 이성적인 판단도 없이 날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말룸에게서 채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가 고장 난 라디오 방송처럼 흘러나왔다.
“저는 항상 그럽니다. 잘못만 하죠. 어떻게 해야 당신 눈에 들 수 있을까요? 인어와, 크로노모르테와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창문으로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아니, 그런 건 이제 됐어……. 오필리아, 울지 말아요. 당신은 울면 눈가가 들떠서 쉽게 가라앉지를 않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매번 사과나 하고, 비겁하다고요, 그거…….”
나는 그가 너무나 처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말룸을 이루는 퍼즐 조각에서 대체 어떤 것이 빠져 버렸는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당신이 말하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평범한 행복이라는 거. 그렇게 사는 사람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적 있어요?”
등을 토닥이던 말룸의 손길이 멎었다.
“……아뇨. 단 한 번도. 그러게요. 왜 그런 사람들을 보지 못했던 걸까. 미처 찾지 못한 걸까,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그가 차게 가라앉은 숨을 토해내고는 섧게 인상을 찌푸렸다.
“신기루라도 좋으니 함께 행복해지자고 손을 내밀어준 당신과……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뿐이에요.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당신이 유일했으니까.”
나는 말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오른다리가 짓눌렸지만 상관없었다.
“왜 언제나 내게만 관대해요? 그거 전부 거짓말이었어요. 알아요? 살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한 거예요!”
“……알고 있었습니다. 모를 수가 없지. 당신은 종종 눈에 띄게 어수룩하거든요.”
똑바로 바라본 그의 얼굴은 화형 당하는 죄인처럼 고통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말룸은 고통의 원인을 찾지 못해 사막처럼 황량한 눈빛을 했다. 그가 나를 해칠 것 같지는 않았다. 세상의 끝자락에서 떨어져 나와 절벽 밑에 버려진 듯한 저 사람이 나를 해칠 리 없었다.
결국 그의 가슴팍을 세게 때리며 소리쳤다. 더는 참을 수도, 기다려줄 수도 없었다. 말룸은 자신의 시체와 허물을 묻은 무덤에서 나올 기미가 없었다.
“왜 내가 당신의 결점을, 그 끔찍한 본모습을, 오랫동안 더러운 방식으로 생을 연명한 불사의 뱀이라는 걸 용인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 거죠!”
비명의 꼬리에 끔찍한 정적이 뒤따랐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잦아든 밤이 더욱 적막해지는 것과 같았다.
말룸은 평소의 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하게 질렸다. 나는 그가 도망이라도 갈 것 같아 손을 옭아매고 급하게 몰아붙였다.
“당신은 시체 부인에게 절절히 괜찮다 매달리면서, 왜 당신에게는 관대하지 않은 거예요…….”
날개 꺾인 그의 시선이 내게 끌려 들어왔다.
이게 말룸이……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표정이구나.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나만 봐요.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죄를 짓고 산 건지는 나중에 얘기해도 괜찮잖아요. 그냥 당신만 있으면 돼요. 끝까지 혼자 앓지 마세요! 영원히 그렇게 살 건가요? 잔뜩 겁을 집어먹고, 우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도록 길들여져서!”
속에 있는 말이 아무렇게나 터져 나왔다. 나는 침대 위, 무릎을 꿇고 표정을 짓는 법조차 잃어버린 그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나라고 썩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고여서 부패하는 물이 되지는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단 말이에요……. 당신이 선택한 여자를 좀 믿어봐요. 저는 겁이 무척 많아서요, 말룸. 사람 한 명을 들여놓는 데에는 굉장히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도 모든 용기를 쥐어짜내서 얘기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 사람에게 한 번 정을 주면 절대 등을 돌리지 않아요. 어떤 무서운 일이 있어도요……. 무서운 일을 마주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는 게 더 무서워서 그래요. 그리고 요즘은, 당신이 내게 있어서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돼요.”
말룸은 냉동된 듯 미동이 없었다. 신전의 삼각 지붕을 떠받드는 조각상이 저럴까? 그는 당장 숨이 멎을 것처럼 묵묵히 있었고, 나는 간절함을 담아 말룸을 기다렸다.
이윽고 말룸이 끝없이 품으로, 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돌이 되는 마법에서 헤어 나온 듯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바람에 댐이 무너져 민가를 덮쳤다.
“당신, 알고 있었어. 이미 다 알고 있었어……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걸 숨기려고 했는데. 당신이 떠날 것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말룸이 헐떡이듯 울음을 토해 냈다. 그의 얼굴은 달빛을 받아 더욱 파리했고 눈물이 펑펑 솟아 깔끔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도 귀하고 아름다웠다.
“왜 알아버린 겁니까? 어째서 나를 알아버린 건가요? 내 근원을 보지 말라고 그렇게 소원했는데. 알지 못하기를 깊이 염원했는데!”
차가운 눈물이 내 어깨 위로 뚝뚝 떨어졌다.
“당신을 퇴락한 괴물의 아내로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과 발맞추어 살아갈 수 있는 완벽한 인간 남편이 되고 싶었단 말입니다…….”
밤의 정적이 그의 울음소리를 훔쳐 갔다. 그러나 심중 난 눈물길은 마르지 않는 강처럼 범람할 것이다.
“누가 괴물이에요? 내 앞의 당신이? 이렇게 울고 있는데, 당신이 어떻게 괴물이에요?”
말룸의 마음은 오래 전 열 갈래로 찢어져 시간의 밑으로 사라진 듯했다. 그는 껍데기만 남은 늙은 화석이었고, 소화 기능이 정지했다.
“당신은 괴물 같은 게 아니란 말이야. 내 소중한 남편을 괴물이라고 매도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살면서 날 이렇게까지 사랑해 준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 난 당신이 사랑스러워. 알아요?”
말룸이 내 목덜미에 눈가를 묻었다. 그가 계속 울음을 토해내었다. 가감 없이, 숨김도 없이. 살았던 세월동안 차마 내지 못해 말라버리거나 얼어붙었던 물길이 이 순간 범람했다.
“아무것도 모르겠군……. 너무 쓰라려. 안아주세요, 오필리아. 날 구해줘요.”
손을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 달빛을 가두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급류에 기꺼이 몸을 맡겼다.
말룸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간헐적으로 호흡했다.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 조금 떨어질라 치면 말룸은 둥지 속을 파고드는 새처럼 나를 틈 없이 끌어안았다.
내가 뱀을 그 스스로 쌓아올린 낙원에서 추방했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뱀과 함께 추방될 용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