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43화
10월 초.
난방을 하진 않았지만 숄 없이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전에는 가벼운 원피스만 입고 다녔었는데, 요즘은 복장이 조금 두꺼워졌다.
아침 공기가 청량했다. 나는 절뚝거리며 방에 딸린 테라스로 나갔다. 우거진 숲이 얼룩덜룩했다. 이 낯선 세계에도 가을은 똑같이 찾아왔다.
내가 바깥 구경을 곧잘 하자 말룸이 테라스에 각종 의자를 추가로 설치해주었다. 나는 새로 마련된 흔들의자에 걸터앉았다.
시선을 멀리 던져 지평선을 따라 형상을 그렸다. 삐죽빼죽한 삼각 지붕을 가진 건물들, 민가들, 추수 작업이 끝나 흙바닥만 남은 논밭, 식사 때 즈음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한 굴뚝 연기가 지구의 시골 풍경과 겹쳐 보였다.
나는 로보에게서 세계와, 그리고 나와 얽힌 진실을 듣게 된 이후 흐리멍덩해지듯 느긋해졌다.
안도감과 탈력감이 공존했다. 진상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당장 지하에 전 아내의 머리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라딘라티가 봉인된 위치는 로보조차 알지 못한다 했으니 오리무중이었다. 유력한 장소라고는 푸른 문 안뿐이었는데……. 이 점은 말룸이 확언해야 옳았다.
지구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 우주에서 떨어져 나와 지상으로 추락한 별똥 신세였다.
무력함을 자각하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방어기제라도 작동했는지 난 풀어진 털실처럼 되었다. 자신에 대한 걸 몽땅 숨기는 식인 뱀만이 날 돕겠다고 작정한 게 아니니 쉬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숨을 고르고, 이국적인 주변 풍경도 좀 보고, 로보가 준 팔찌도 잘 관리하고, 간혹 혼자 돌아다니려다가 발견당해 잔소리도 좀 듣고. 방황을 한 번에 잘라낼 수는 없겠지만 단단해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주변을 제대로 살피고, 내게 부딪혀 오는 여러 감정의 끈을 외면하지 않아야 했다.
그간 나는 복잡한 일을 밀어둔 채 말룸이 다른 이들에게 날을 세우는 걸 말리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황성에 가느라 잠깐 멈추었던 텃밭 돌보기도 다시 시작했다. 로보와 매일 아침 함께하는 티타임도 그대로였다. 그의 모험 이야기를 감상하며 잠들고, 아침에 오른다리의 고통을 느끼며 깨어나는 일상이었다.
크로노와 로보의 일로 소곤거리는 이들은 없었다. 티샤와 모아도 내 곁에서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나는 다른 사용인 아이들과도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말룸이 영생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잡아먹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나는 아주 건강한 것처럼 행동하고 다녔다. 크게 웃고, 로보와 농담 따먹기를 하고, 멋대로 행동해 미안하다는 크로노의 먹먹한 사과에 못 이긴 척 고개를 끄덕이고, 질투의 화신이라도 된 것 같은 말룸을 뜯어말리기도 했다.
멋대로 손댈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니 생활이 편했다. 형체 없는 두려움에 쫓겨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나는 내가 많은 것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렉스 님과 리 경에게 존대를 하게 되었다. 많은 설전이 있었지만 그들도 티포주 성에 진짜 고용된 것이 아닌 이상 내 고집에 넘어가 주었다. 이 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라딘라티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어도 내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배부른 악어처럼 익살맞게 웃는 나를 두 사람은 못 말린다는 듯 바라봤었다.
렉스 님에 대한 편견을 푼 것도 성과였다. 처음에는 영락없는 말룸의 하수인인 줄로만 알았는데……. 왜 대신관이 되었는지 알 것 같을 만큼 렉스 님의 인내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도회가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이후로도 그에게서 수업을 듣고 있는데, 렉스 님은 영 집중하지 못하는 내게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리 경과 무척 어색해졌다. 도저히 이 육신의 오빠라는 리 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일단 로보의 당부로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하고 있었다. 리 경을 그냥 호위기사로 대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여동생의 시신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는 나를, 그는 어떻게 여기고 있을까?
리 경은 표정에 변화가 없는 데다 속내를 무척이나 잘 숨겼다. 하지만 간혹 바깥을 구경하다 테라스에서 선잠이 들었을 때 내 생김새 구석구석을 빤히 바라보는 애상적인 시선을 모를 수가 없었다.
나쁜 소식은 말룸이 여전히 숨기려고만 한다는 것이었다. 자백을 유도하려 떠보는 질문을 하면 그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희미한 낯을 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온갖 비탄과 두려움을 끌어안고 애원하듯 보는데, 금성 같은 눈과 마주하면 나는 그를 더 닦달하지 못했다.
레헬른에서 돌아온 후, 말룸은 집무실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 항상 내 곁에 머무르려 했다. 로보나 크로노에게 안하무인으로 굴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말룸은 그의 심기를 제대로 인내했다. 로보를 만나는 즉시 죽일 듯 노려보고, 크로노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폭언을 쏟아 붓긴 했지만 그의 정체를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말룸은 리 경과 마주쳤을 때 잠시나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리 경의 앞에서만큼은 겉치레라도 깔끔한 태도를 고수했는데, 포인세티아 때문에 리 경이 전보다 껄끄러워진 것이 틀림없었다. 반면 리 경은 말룸을 매섭게 꺼리는 것이 아닌 척해도 다 보였다.
말룸을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는 정말 영생을 위해 나를 잡아먹을까? 그래서 크로노가 보았다는 미래처럼, 끝내 말룸에게서 도망치게 될까. 다리의 상처를 살피며 꼭 자신이 다친 것처럼 아픈 표정을 짓는 이 사람이, 나를…….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내 방, 테라스. 나는 잘 조형된 철제 의자 위에 있었고, 말룸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내 상처를 살피는 중이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호전되지 않을 수가 있는지.”
말룸이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자비 없는 본성과 매혹적으로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퇴폐적으로 보일 때가 있었다.
“골치 아파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당신 뜻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이 맘에 걸려요. 난 내 아내를 가둬두고 싶은 게 아니란 말입니다.”
말룸이 진찰 끝에 한숨을 쉬었다. 나는 시선을 반쪽 내듯 환부를 희미하게 관찰했다. 통증은 없었지만 다리의 처참함이 노골적이었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말룸이 미안하다는 듯 몸을 물렸다.
“혹시 아픈 건 아니죠? 만약 제가 당신을 아프게 했다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말룸은 항상 내게 죄를 지은 것처럼 굴었다. 마음이 잿물에 덮인 듯 불편했다.
“아뇨, 그건 아닌데 보기가 좀.”
“이해해요. 차라리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고 있으면 나을 겁니다. 불편해도 참아주세요. 매일 붕대를 갈아주지 않으면 상태가 더 심각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일도 바쁜 사람이 매일 찾아와서 붕대를 갈아주는 것도 정성이었다. 막 성에 도착했을 때처럼 티샤에게 맡기면 될 텐데도, 말룸은 하루에 한 번씩 꼭 나를 찾았다.
요즘 말룸이 공을 들이고 있는 항구 거점 무역이 아주 성황이었다. 그는 몸을 두 개로 쪼개다시피 해서 업무를 처리했다. 잠을 자지 못하지만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눈 밑 그늘이 진해진 듯싶기도 했다.
말룸은 영지 경영에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다. 권세를 불리는 일이라면 뭐든 허투루 하지 않았다.
“이봐, 더 조심스럽게 하란 말이야.”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던 로보가 날 선 소리를 뱉었다. 요즘 그는 말룸만 보면 쓴 소리를 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로보가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상쩍게 굴고 있는 쪽은 말룸이었으니까. 서로에게 창을 겨누거나 저주를 날리지는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잘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저리 비켜. 내가 챙길 거니까. 하긴, 뭘 알겠어. 이해한다고? 너야말로 저런 상처를 만들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지 않아?”
말룸이 밉게 비웃었다.
“어디서 붕어 자식이 뻐끔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육지 생물인 난 알아들을 재간이 없군. 말만 통했다면 썩은 생선으로 만들어주었을 텐데.”
하지만 물러설 로보가 아니었다. 그는 말룸을 상대하는 대신 멋들어지게 웃으며 날 응시했다.
“아가씨, 오늘 참 날이 좋아. 선선하고, 사람을 들뜨게 만들지. 아가씨와 잘 어울리는 날씨야.”
불똥이 내게 튀어 몸을 움츠렸다. 로보는 요즘 부쩍 제 웃음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넘어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도 자유를 형상화한 것 같은 미소가 내 틈을 파고들었다.
“산책하지 않을래? 여기 공사다망하신 누구 씨는 아가씨의 산책을 책임질 시간조차 없는 것 같아서. 발타사르령 서부에 근사한 자작나무 숲이 있다고 들었어.”
그의 말이 솔깃했기 때문에, 나는 머뭇거리다가도 입을 달싹였다.
“자작나무 숲이요?”
“응, 웨스턴우드 휴양림이라고 하던걸. 동쪽에는 해안가, 서쪽으로는 숲. 여기도 참 복 받은 곳이야. 영지가 넓어서 그런가?”
휴양림이라니.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긴 했다. 로보가 내 머뭇거림을 잡아채고 밀어붙였다.
“어때, 구경 갈 생각이 좀 들어?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잖아. 여기 아가씨를 운반할 듬직한 일꾼도 있고. 게다가 지구의 가을이 요르나스의 가을과 닮았다며. 응? 데이트 해줘, 아가씨.”
나는 말룸을 곁눈질해 눈치를 살폈다. 일에 짓눌린 사람을 두고 혼자만 나들이하는 것이 껄끄러웠다.
과연 말룸의 표정은 심히 구겨져 있었다. 요 며칠 사이 그는 너무 바빠서 붕대를 갈 때를 제외하고 나와 함께 있지 못했다. 입을 고집스럽게 다물고 솜에 소독약을 적시는 말룸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말룸, 시간 내기는 힘들겠죠? 그럼 오늘은 좀 그렇고, 당신 일정이 비면 그때 같이 가요. 어때요?”
말이 절로 뭉뚱그려져 나왔다. 그러나 뜻밖으로 거절한 쪽은 말룸이었다.
“아뇨, 저 때문에 그러지 말아요. 그건 당신의 권리입니다, 이름 모를 분. 제가 이렇게 구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못 견뎌서죠. 물론 저 붕어 자식과 함께 라는 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룸이 딱딱하게 답했다. 하지만 따라붙는 호칭이 사탕처럼 달았다. 말룸은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종종 나를 ‘이름 모를 분’이라 부르곤 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떠올리게 된다면 내 이름을 망설임 없이 불러줄 증거인 것 같아 나는 그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여태 머뭇거리자 말룸이 눈을 반달로 접어 장미처럼 미소했다. 사내의 수려한 웃음이 오래도록 시야에 머물렀다.
“저는 당신 행동을 제한할 의사가 없습니다. 앞길을 막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니 눈치 보지 마세요, 오필리아. 대신 다녀와서 어떤 걸 보았고, 무엇을 했는지 얘기해주세요.”
“……응, 그럼 잠시 다녀올게요. 고마워요, 말룸.”
말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킨다면 밉상 조카도 함께 데려가줘요. 저자와 단둘이 있는 꼴은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못 보니까. 누더기 같은 팔찌를 하나 더 달고 돌아올 줄 누가 압니까?”
그가 사납게 덧붙였다.
“말룸, 누더기라뇨.”
심정은 이해하지만 차마 마주 웃어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로보의 표정이 진흙에 묻힌 것처럼 일그러졌다.
“지렁이 주제에 말이 많아. 네 축축한 비늘에 덮인 살에서 쓰레기 썩는 냄새가 난다고.”
“적당히 뻐끔거려라. 난 붕어와 겸상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그 나이 먹고 가출 상태라지?”
나는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두 사람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요즘 말룸과 로보, 크로노 사이의 분위기는 난기류만큼이나 이상했다. 비행을 하다 먹구름이라도 만난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말룸은 크로노와 로보 모두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데, 그중 로보를 가장 경계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용하겠다고 선언한 크로노를 꼭 내 곁에 붙여 두었다. 그건 마치 이이제이, 오랑캐를 이용해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사자성어를 연상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크로노가 말룸의 계략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날 낚아채려 신경전을 벌였는데, 점차 그것도 익숙해졌다. 나는 나를 돌아가며 안아들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기분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는 것 같아 심히 부담스러웠다.
성의 사용인들은 이들이 꼼짝없이 내 애인인 줄 알고 있었다. 내 연애전선과 무관한 리 경과의 염문까지 나도는 실정이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내가 참 별나 보일 테다.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대공비가 되더니, 그런 주제에 여러 애인을 거느리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부드러운 저음이 상념을 파고들었다.
“오필리아 님, 찾았다고 들었소. 나와 함께 나들이를 가고 싶었던 것이오? 내가…… 필요한 것이오? 당신에게 쓸모가 있소?”
크로노모르테였다. 쓸모 운운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는 황성에서 보았던 것보다 얼굴이 좋아 보였다.
“아…… 산책을 가고 싶어서요. 함께 가면 어떨까 해서. 크로노는 황궁에서만 지냈다고 했죠? 그럼 휴양림도 처음 가보겠네요.”
속이 착잡해져 크로노가 말을 걸어오는데도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
요즘 그만 보면 속이 먹먹했다. 미안하지만 사랑을 받아주지 못할 것 같다 운을 뗄라치면, 그는 귀신같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마저도 그에게 소중한 것 같아 차마 냉정히 잘라낼 수 없었다. 물길이 어물거리는 그의 은빛 눈동자가 담을 허물어뜨렸다.
로보의 다정다감한 태도 역시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천문대에 올라 별을 관찰하는 것처럼 천진해졌다. 동시에 정중한 태도로 과함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의 친애를 확신하게 되었다. 열감 도는 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할 때면 바다에 별이 뜨는 놀라운 광경을 본 듯싶어 넋을 놓게 되었다.
이곳 귀족들의 생태란 원래 이런 걸까? 하지만 지구인인 내가 보기엔 썩 정상적인 것 같진 않다.
말룸은 나를 위해 자신에 대한 것과 위험한 정보를 숨겼다.
로보는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는 최초의 아군이었다.
크로노는…… 불타버린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인 것처럼 나를 대했다.
관계를 맺는 것은 베를 짜는 것과 같아 한 가닥이라도 수틀리면 전체가 허물어졌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외출하는 것은 오래간만이오……. 게다가 오필리아 님과 함께 하는 외출이라니, 평범한 외출보다도 더 들뜨게 되는군. 나는 외출이라면 반기는 편이지만 모든 외출을 사랑하진 않소. 하지만 오필리아 님, 당신은 평범한 일상조차 특별하게 만드는 주술을 부리지.”
크로노가 말룸의 눈초리를 무시하며 나를 안아 들었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설령 떨어진대도 받아낼 테니, 걱정 놓아도 괜찮소.”
나는 크로노가 이야기하는 대로 따랐다. 어느새 누군가에게 안겨 이동하는 게 익숙해졌다.
그러나 크로노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도 심란함을 떨칠 수 없었다.
좌우지간 저 셋이 내게 품고 있는 감정을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정도가 얕든지, 깊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