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42화
성에서 로보를 얼마나 푸대접하는지 알겠다. 일과 중 로보의 방을 바꿔 달라고 강력하게 건의하는 일이 추가되었다.
하늘의 운행을 관찰할 수조차 없이 작게 난 쪽창, 거미줄이 자리 잡은 천장 모서리, 다 찢어져 덜렁거리는 벽지, 곰팡내가 나는 방 안 공기. 병 없던 사람도 병이 나게 만드는 마법 같은 환경이다.
“하하.”
로보가 어색해하지 않도록 애써 웃었다. 그러나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별거 없지?”
“네…….”
“말 그대로 임시 거처니까. 굳이 가구를 채워 넣을 필요는 없잖아. 아틀란티스에 있는 고향집은 이 제국의 성보다 훨씬 화려해. 심해 깊은 곳에서 봐도 알아볼 수 있도록 황금과 은과 온갖 보석으로 지어졌지.”
“빛이 있어야 반짝거리잖아요. 심해에는 빛이 들지 않는데, 어떻게 건물이 반짝거려요?”
“오, 예리한데. 보통 초롱아귀 일족이 건물 외벽에 빛을 쏘아 반사하는 중책을 맡아. 그 사람들 전문직 종사자라 그냥 건물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돈을 참 많이 벌어. 어릴 때 우리 집 막내가 자긴 왜 초롱아귀 일족이 아니냐고 땡깡 피우는 걸 간신히 달랜 적이 있지……. 아니, 늑대상어도 나쁘지 않은데.”
자기 집 막내를 생각하는 로보는 살짝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초롱아귀 일족이 되고 싶어 했던 로보네 막내가 아니라 이 황량한 방 풍경이었다. 로보는 이 푸대접에 아무 유감도 없는 듯 보였다.
“말룸한테 방 새로 달라고 건의할 거예요. 아무리 봐도 여기 창고라고요.”
“아냐, 굳이 그러지 마. 생각해주는 건 고맙지만 어차피 난 케이론 호를 살피러 포트에 자주 나가야 해.”
로보가 한 손으로 의자를 빼내어 날 앉혔다. 그가 흘리듯 본심을 이야기했다.
“건의하러 갈 시간에, 나랑 더 오래 있어줘. 그거면 돼.”
“……혹시 저 다루는 방법을 총망라한 책자라도 읽고 왔어요?”
그 즉시 로보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들었다는 양 폭소했다.
“뭐? 아하하! 그런 게 있다면 꼭 추천해줘! 내 말이 맘에 들었던 거야? 영광이야.”
나는 진심이었다. 그의 언행이 자꾸만 나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탐정이라도 된 양 팔짱을 꼈다. 저렇게 잘난 사람이 말룸의 손아귀에 떨어진데다 골칫덩어리 좀비인 날 좋아할 리 없긴 한데……. 워낙 처음부터 다정다감했던 사람이라 진위를 가리기 힘들었다.
로보는 그 이상 장난을 걸지 않고 벽에 기댔다. 사진기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잡지사에 장당 비싸게 받고 팔 수 있을 정도로 저 남자는 백색 포말처럼 수려했다.
“내가 지금 보위에 있는 포세이돈 왕의 손자라는 소리를 해줬었나? 트리톤의 직계라는 것도.”
로보가 늑대상어 일족이고,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라는 것은 그를 시가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소설로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머리를 굴리기로 했다. 알고 있다고 하면 로보가 나를 골치 아픈 여자라 생각해 관계가 어색해질 수도 있을 듯했다.
나는 몇 번 혀를 움찔거리다가 답했다. 마침 적당한 변명거리가 있었다.
“음, 카사블랑카……. 그러니까 수인족 대신관이 스치듯 이야기해주었는데, 자세히는 몰라요.”
역시 남에게 거짓말하는 일은 많은 심력을 소모했다.
로보가 재미없다는 듯 김빠진 표정을 짓다가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선수를 빼앗겼네. 놀라게 해주고 싶었는데. 따지고 보면 난 왕자잖아? 물론 아가씨가 그런 걸로 정 줄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왕의 후계라고 하면 내가 더 멋져 보이지 않겠어?”
“당신은 평소에도 멋진 걸요. 그런데 로보는 해적이잖아요. 왕이 될 생각은 아예 없는 건가요?”
로보가 멈칫했지만 답은 짧은 시간 안에 돌아왔다.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챌 틈도 없었다.
“그런 셈이지. 해적이 아틀란티스의 왕이라니, 내게 약탈당했던 육지 생명체들이 발칵 뒤집어질걸. 그나저나 아가씨, 아틀란티스산 공예품을 선물해주겠다고 한 거 기억 나? 내가 뭘 가져왔나 품평해 줘. 그리고 이건 밀반입이라, 들키면 아틀란티스 단속반에 끌려가니까 조심해. 아가씨 남편에게도 비밀이야.”
그의 능청스러움에 경쾌한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과 있으면 이렇게 늘 즐겁다. 원더랜드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티타임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로보와 함께라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안개 속으로 던져 넣은 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멀쩡한 왼쪽 발목이 절로 까딱여졌다. 즐거움에서 비롯된 온기가 공기를 데웠다. 내가 그의 선물을 반기는 기색이자, 로보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수선을 떨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활기가 넘쳐 감정이 수런거렸다.
하지만 나는 한동안 로보가 사 왔다는 아틀란티스산 공예품을 보지 못했다. 로보의 여행 가방은 정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로보는 자유분방하지만 규칙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정리에 약한 것은 의외였다. 하기야 누구나 온갖 물건을 밀어 넣을 쓰레기통 하나 정도는 품고 사는 법이다. 나만 해도 방 정리를 오랫동안 하질 않고 산 적이 있었다.
“기다려봐……. 잠시만.”
로보가 물건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검은 여행 가방은 내 몸통보다도 컸는데, 급기야 로보가 안에 든 짐을 마구잡이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옷가지며 세면도구, 정체불명의 서적들, 심지어 먹다 남긴 과자까지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잠옷인 건지 평소에 입고 다니는 것을 보지 못한 꽃무늬 셔츠까지 눈에 띄었다.
“음…… 잘 때는 편한 옷이 좋으니까.”
로보가 급히 셔츠를 가방 안으로 구겨 넣었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꽃무늬 취향인가 봐요?”
로보의 얼굴이 아주 새빨개졌다.
“우리 인어들에게 육지 꽃은 산호초보다 귀해. 피고 지는 게 명확해서, 만개했을 때 무척 아름답기도 하고.”
“당신도 좋아하고요?”
“그래…… 맞아. 내 취향이야. 나 꽃무늬 좋아해.”
나는 가끔 작게 소리 내어 웃었고, 로보는.
“이게 어디 갔담.”
혹은.
“선원들이 장난을 친 모양이야.”
하며 변명조로 덧붙였다.
꼭 심지도 않은 감자를 캐려 애쓰는 이상한 농부처럼 보였다. 다 굳어 열리지도 않는 땅 밑에 손을 집어넣어 갈퀴질 하고, 없는 감자를 찾아 헤매는 가여운 사람.
나는 결국 잔뜩 웃음을 터트렸다. 복통이 일 지경이다.
“하하하, 그게 뭐예요! 투명 공예품이라도 가져온 건 아니죠? 로보 정리 정돈 진짜 못하네요!”
“아가씨가 즐거워 보이니 나도 즐겁긴 하지만…….”
로보가 어설프게 웃었다. 이마에 반짝이는 건 식은땀인 걸까? 그가 새삼 귀여워 보였다.
턱을 괴고 로보를 노골적으로 관찰하자 물건을 찾는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물 찬 대야에 손을 넣고 휘휘 돌리는 어린아이처럼 아예 가방을 헤집어대기까지 했다. 안에서 소용돌이라도 생길 것 같다.
“찾았다!”
그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다. 로보가 산삼을 들어 올리듯 웬 상자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가 쥔 것은 영락없는 보물 상자였다. 두 손바닥을 쫙 펴 합친 정도의 크기였는데, 단단한 합판으로 만들어져 엉망으로 관리해도 안의 물건이 부서지지 않을 듯했다.
로보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자, 먼 바다에서 공수해 온 조공품이옵니다, 여왕 폐하.”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히 상자를 바치는 시늉을 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그 능청스러움은 이길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내 볼이 화끈거렸다.
“뭐 하는 거예요! 부끄러우니까 빨리 일어나요.”
“상자를 받아주셔야죠, 여왕님.”
“인어들은 원래 다 그렇게 느끼해요?”
있는 그대로의 감상을 전해주었지만 로보는 충격 받은 표정이었다.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런 기름칠한 행동을 했다는 걸까? 지금도 이런데, 로보가 작정하고 누군가를 유혹하려 한다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사람이 아주 많을 듯했다.
얼굴도 잘생겼고, 성격도 좋고, 육지 생물의 환상을 자극하는 인어인데다, 왕자이기까지. 못 가진 게 뭘까? 이 사람은.
이후 별다른 반응 없이 그에게서 상자를 받아왔다. 로보가 언제 무릎을 굽혔다는 양 자리에서 일어서 곁을 맴돌았다. 살짝 바라본 그의 얼굴은 부끄러움 때문에 상기되어 있었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고마워요. 이 말 먼저 했어야 하는데, 당신 행동이 너무 재미있어서.”
“난 이미 토라진 후야, 아가씨. 달래 주려면 꽤 공을 들여야 할 걸.”
“어떻게요? 저도 선물을 줄까요? 그러고 보니 로보에게는 항상 받기만 했네요. 시가지의 스노우볼도 그렇고, 라딘라티 조사를 부탁한 거랑, 이렇게 또 선물까지…….”
로보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내 속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없었다.
목에 걸고 있는 황금 열쇠가 금고를 열 수 있게 해주겠지만 그 안에 있는 황금은 내가 힘들여 번 것이 아니었다. 로보에게는 온전히 내 손으로, 내 것으로, 그리고 내 힘으로 마련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물기가 얹으려는 심상을 제쳐 두고 일단 상자를 열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을 면전에 두고 운다면 그야말로 분위기 버리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 숨겨진 공예품을 발견한 순간, 나는 시선이 빼앗겨 멍하니 그것만 관찰했다.
로보가 가지고 온 공예품은 소라고둥이었다. 호각처럼 아주 거대한 데다, 흰 바탕에 청금석 계열의 물감 여럿을 층층이 칠해 바다를 옮겨 놓은 듯한 귀물. 끄트머리에는 짙은 붉은색 술이 매달려 있었는데, 로보의 눈동자를 닮아 친밀감이 들었다.
내가 탄성을 질렀다. 그야말로 완벽한 공예품이었다.
“로보, 너무 예뻐요. 파도를 닮았어요…….”
“맘에 들어? 별것 아니긴 한데, 입구를 귀에 한 번 가져가볼래?”
쑥스러운 기색의 로보가 시키는 대로 소라고둥의 입구를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파도 소리와 함께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사도 없었고, 아틀란티스의 음악은 육지의 음악과는 달리 정적이고 투박했지만 힘 있게 뻗어 나오는 선율이 아름다웠다.
귀에서 북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선 로보를 응시했다. 그가 씩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웃음이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어! 그 소라고둥, 포세이돈 영감의 보물 3호거든. 내가 굉장히 어릴 때 만든 거라 애지중지하시던 걸 빼앗아 왔지.”
“로보가 직접 만든 거였어요? 그것도 어릴 때?”
“응. 난 잘 기억 안 나는데, 한 다섯 살 때쯤 만들었다더라. 내 생애 첫 예술품인 셈이지.”
“그럼 소중한 물건이잖아요. 포세이돈이라면 분명……. 로보의 할아버지이신 데다 아틀란티스의 왕이라고 했는데, 그런 분이 보물로 삼을 정도면…….”
“그건 그냥 영감이 팔불출이라 그렇고.”
로보가 너스레를 떨었다.
“나 이래봬도 손재주가 훌륭하거든! 요리도 잘 하고 이것저것 만들 줄 알아. 정리 정돈에는 영 꽝이지만. 우리 영감은 날 골칫덩이로 알고 있으니까 그냥 아가씨가 가져.”
“하나 더 만들어서 왕께 드리는 건 어때요?”
“글쎄, 능력 밖의 일이라서. 또 만들라면 만들 수 있긴 한데 어릴 적 만들었던 것만큼 음악이 예쁘게 담기질 않더라. 소라 공예의 모체가 되는 이 고둥은 특별해서, 만드는 사람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예쁜 노래가 담겨. 그런데 최근에 만든 것들은 음악이 썩 깔끔하질 않아. 나도 이제는 어른이 된 모양이야.”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었다. 손안에 그의 유년 시절이, 로보가 지녔던 순수가 들려 있었다.
그는 내게 자신의 순수를 맡겼다. 항상 돈 버는 일에 집중하던 나라도 팔 수 없는, 지고의 황금.
소라고둥을 양손으로 조심히 감싸 안았다. 그러자 로보가 기쁘다는 듯 맑게 웃었다.
“아가씨에게 아틀란티스를 전해주고 싶었어.”
쭉 기지개를 켜는 몸체가 유려했다.
“동생들도 많이 컸더라. 매번 까칠하기만 했는데, 오래간만에 만나니 좀 순하게 구는 게 귀여웠지.”
“저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소라고둥만 만지작거렸다. 로보가 부드러운 어조로 달래듯 이야기했다. 나는 항상 그에게 신세만 지고 있었다.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야. 그리고 향주머니 말이야. 그건 효과가 없었으니까……. 아가씨만 괜찮다면, 자.”
로보가 가방을 다시 뒤적거리더니 또 무언가를 꺼내 놓았다. 이번에는 어떤 귀한 걸 선사할지 살짝 두렵기까지 했다.
그가 재촉하는 바람에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가벼운 실팔찌가 하나 툭 떨어졌다. 은빛으로 빛나는, 로보의 머리칼을 꼭 닮은 중앙 실이 인상적인 색색의 팔찌였다.
“이건 건강 기원 팔찌. 기력 보충용이라고 해야 할까? 일전에 이야기했었잖아. 팔찌라도 만들어주고 싶다고.”
“로보…….”
“우리 배 부선장이 그걸 주면 날 약장수처럼 여길 거라던데, 절대 이상한 거 아니야. 물건에 주술을 거는 건 인어의 주특기지. 통증 같은 걸 잦아들게 해줄 거야.”
로보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헤집었다. 나는 끝없이 밀려오는 호의에 그저 로보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그거 내 머리카락으로 만든 거라서. 찝찝하면 돌려줘도 괜찮아. 물론 인어의 머리칼은 상쾌한 조류를 머금어 굉장히 부드럽고 청결해. 정말이야, ‘대양이 깃든 끈’이라고 불릴 정도지.”
“아뇨! 꼭 하고 다닐 거예요.”
나는 잠시 굳어 있다가 실팔찌를 배짝 마른 팔목에 맞게끔 조절했다.
“절대 안 잃어버릴게요.”
내 표정이 결연했는지 로보가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는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로보의 입담이 좋아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로보가 모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두 달 동안의 항해에서 있었던 일, 케이론 호가 얼마나 멋진 배인지, 그 곳에 들어가는 누구든 멀쩡히 항해하는 자가 없다던 검은 물빛의 바다, 패닉 해까지.
하지만 우리 모두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미루어 두고 있었다. 로보는 내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있는 것뿐이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결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로보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눈을 맞췄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바다에 뜬 태양처럼 영롱했다. 저 홍옥과 함께라면 길을 잃지 않을 테니 어떤 무서운 것을 보아도 이젠 괜찮을 것 같았다.
“아가씨. 어제 발타사르가 새벽에 날 불렀어. 나뿐만이 아니라 왜 함께 왔는지 모를 3황자와 여기 집사장, 그리고 기사 형씨까지 포함됐었지. 그리고 그자는 아가씨의 몸 상태에 대해 전부 이야기했어.”
로보가 마치 자신이 상처 입기라도 한 듯 아픈 표정을 지었다.
말룸은, 나를 위해서였을까? 그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추진력이 뛰어날 줄은 몰랐다.
“나도 몰랐던 걸 많이 알게 됐어. 거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 같았지. 하지만 그자는 아가씨에게 이것들을 알리고 싶지 않아 해.”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게 맘에 걸렸는지 로보가 검지로 내 입가를 툭툭 두드렸다. 결국 힘을 풀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아가씨가 그자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건 말하지 않았어.”
“그 사람은 매번 그래요. 모든 걸 숨겨서, 날 정보에서 멀어지게끔 하려고 해. 위험해서 그런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확실히 관계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네.”
로보의 붉은 눈동자가 착잡한 듯 일렁였다. 그의 음성은 물거품처럼 힘이 없었다. 나는 소라고둥을 만지작거리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녀석이 강한 힘을 가진 건 맞으니까, 아가씨 안전에 도움이 되려나? 너무 속상해하지 마.”
로보가 짐짓 쾌활한 척 웃었다.
“난 아가씨와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거짓말하지 않아. 맹세해, 내가 알게 된 걸 숨기지도 않을 거야. 모두 말해줄게. 아가씨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로보…….”
“다른 세계에서 왔다며? 고생 많았어. 이제 내가 곁에 있을 테니까 혼자 앓지 마. 가끔 외로워지면, 날 불러서 그 세계의 이야기를 해 줘. 아가씨가 살았던 곳은 분명 상냥하고 따뜻한 곳이었을 거야.”
로보의 말은 거짓말처럼 다정할 때가 있었다. 그는 속절없이 기대고 싶어질 정도로 내 상황에 필요한 말을 골라 해주었다.
감정이 물에 잠긴 듯 아무렇게나 일렁거렸다.
로보는 내가 앉은 의자 앞에 자리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신들이 떠나 붕괴하던 세계, 라딘라티의 이야기, 리 경이 엘프가 맞다는 것과 내 육신이 그의 동생이라는 것, 결국 나는 어떤 식으로든 라딘라티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로보가 조용히 날 감싸 안았다. 그의 체온은 말룸처럼 변칙적이지 않고 따스했다.
우습게도,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정보들이었는데 가슴에 장미 덩굴이 자란 듯 아프기만 했다.
잇새로 작은 숨이 삐져나와 흩어졌다.
나는 말룸이 내게 먼저 이야기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게 숨기기만 하는 말룸, 모든 정보를 솔직히 알려주는 로보.
둘은 행동거지부터 시작해 나를 대하는 태도까지 상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