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35화
삶을 불태워 버릴 것 같은 적의를 내보인 카사블랑카도, 조슈아 님도 모두 말룸을 증오했다.
티포주 성에서도 나는 말룸이 다른 사용인들과, 심지어 집사라던 렉스와도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말룸은 타인과 미움만으로 교류하도록 설계된 사람 같았다. 호감을 사려는 노력은 본인도, 상대편도 하지 않았다.
냉랭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조슈아 님을 응시하자, 그는 다시 상냥했던 신관으로 돌아가 내 상처 살피기를 계속했다. 신관님은 나를 위해 친절을 베풀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살짝 꺼려졌다.
“과했군요. 가끔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는 못 견딜 때가 있지요. 오필리아 님도 그런 적이 있으십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슈아 님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절뚝거리며 일어났다. 그러나 곧장 사선으로 기울었다. 오른다리가 완전히 마비되어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조슈아 님이 팔을 잡아 부축해주었다. 말룸도 질세라 내 허리를 감싸 지탱했다. 두 사람 다 걷지 못하는 동물을 대하듯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는데,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건 사실이었으니 영 틀린 표현은 아니었다.
조슈아 님이 신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의 시야를 헤아릴 수가 없어 대리석 바닥만 눈에 담았다.
“어쨌든, 이제 기록을 해체하겠습니다. 육체의 기록과 영혼의 기록을 따로 읽어야 할 것 같군요. 당신을 조각조각 엮어 놓은 자의 이름과 동기가 떠오르면 좋겠는데……. 발타사르 님이 알지 못하니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룸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거슬릴 정도죠. 저자는 탐욕스러운 만큼 필요하다고 판단한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습니다. 그것이 주술이든, 저주든, 혹은 다른 이의 삶이든.”
조슈아 님이 산책을 권하듯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 나는 한 줌의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자, 신상 아래 앉아주십시오.”
잠자코 그 말을 따랐다.
말룸은 카사블랑카와 함께 저만치 물러서 팔짱을 낀 채 있었는데, 먹이 빼앗긴 사자처럼 매우 불만스러워 보였다.
조슈아 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들고 있던 책을 펼쳐 양손에 올려두었다.
이윽고 철로 만들어진 책이 생명을 얻듯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속의 철판이 종이로 변화하고 있었다. 속지가 제멋대로 날뛰며 파르르 넘어갔다. 책이 춤추고 있었다.
조슈아 님은 가만히 눈을 감고 그만이 볼 수 있는 무언가를 읽었다.
말간 빛이 은은히 퍼졌다.
“세상에…….”
햇빛을 마주한 듯 포근한 감각이었다. 들어간 눈물이 다시 나올 것처럼 부드럽고 편안했다. 어째서 신의 파편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냥 따스하고, 이유 없이 안심 되는 느낌.
저 빛을 마주할 때 넓은 바다가 떠올랐다. 그 바다는 잔잔한 파도처럼 다정하고 상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슈아 님이 눈을 뜨며 책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책은 언제 살아 있었냐는 듯 다시 딱딱한 철로 변했다.
나는 긴장해서 조슈아 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여유가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제 능력 밖의 일이었군요.”
조슈아 님은 캄캄한 숲속을 달빛 하나 없이 걷고 있는 것처럼 피곤해 보였다.
“오필리아 님, 당신은…….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나의 시신에 세 가지 영혼이 덧씌워졌어요. 당신은 안식에 들지 못해 끝없이 괴로워하고 있는 데다, 나머지 두 영혼은 이미 죽어 껍질만 남은 채 심연으로 가라앉았죠. ……제 예상대로라면, 당신은 죽음을 맞이했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우리 중 그 누구도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죽음을 맞이했냐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렇다고 가로젓지도 못했다. 죽음을 경험했다는 것이 진실임에도 그랬다.
조슈아 님은 신물이 올라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당신의 모체가 된 가장 바깥의 시신은 연대를 읽어낸 결과 아주 고대의 것입니다. 엘프로 추정되는군요. 이건…… 엘로힘께. 엘로힘께 가야 해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말룸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양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전 귀가 뾰족하지 않아요. 엘프라면 귀가 뾰족해야 하잖아요.”
조슈아 님의 어조가 상당히 경직되었다.
“어차피 영혼을 위해 준비된 시신이라 종족은 무관합니다. 죽은 육신이 삽입된 영혼의 형태에 맞게 수정된 거죠.”
“…….”
“많은 것들이 불분명하지만, 그 육체의 원주인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고도의 주술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강한 엘프였겠죠. 다음에는 당신의 존재를 세계에 끼워 넣기 위해 희생된 자의 영혼이, 맨 위에는 지금 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당신의 혼이 가장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불행 중 다행이군요.”
“……다행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래도 주술이 신의 권능에 가까운 덕에 당신은 일반 사람들처럼 상처도 입고, 회복할 수도, 먹고 잘 수도 있는 겁니다. 심장도 뛰고 피도 돌겠죠.”
조슈아 님은 착잡해 보였다.
“아예 새로운 인간을 창조한 수준입니다. 대체 누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아무래도 시신을 기반으로 해 성수에 약하다는 한계도 있지만…….”
조슈아 님은 누구보다도 신실한 사람이었다. 신이 아닌 다른 자가 이런 생명체를 만들어 내다니 그 믿음이 산산이 조각난 기분이겠지.
그러나 지금은 조슈아 님의 신념을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시한폭탄이 여태 말이 없었다.
조슈아 님이 말룸을 흘끗 곁눈질했다. 말룸은 태연한 듯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외면하시는 겁니까? 발타사르 님.”
“오필리아는 내가 찾았다. 그건 철저한 우연이었고, 누군가의 개입이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 네 파편의 오류다, 조슈아.”
“실성한 자의 혀 놀림이라고 간주하겠습니다. 오필리아 님이 당신이 직접 데리고 온 사람이라면 답은 나온 셈이지요. 너무 쉬운 수수께끼입니다.”
말룸이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범인은 당신에게 원한이 있는 자. 하긴, 한둘이 아니겠죠. 오필리아 님. 당신은 그 육체에 언제 들어오게 되었습니까?”
대답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결혼식 직전이요.”
나는 차마 말룸을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수그렸다. 얼마간의 정적 끝에 천둥이 치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불가능해……. 불가능하다. 나는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단 한 존재를 알고 있지, 하지만 그자는 이미 내가 봉인했다! 게다가 오필리아는 내게 해를 끼칠 수 없을 정도로 유약하다. 체력도 형편없고, 신체 능력도 바닥이란 말이다!”
말룸은 거의 절규하고 있었다. 그는 바다를 여행하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난파된 사람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아버릴 수도, 그렇다고 그를 바라볼 수도 없었다.
허탈감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이 죄다 섞여 혼란스러웠다.
내가 오필리아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거리에서 걷어 올린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룸이 이런 최악의 형태로 알게 되지는 않았으면 했다.
애초에 알릴 생각조차 없었다. 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누가 소설 속에 빙의되어서, 그걸 책 속 등장인물에게 이런 형태로 들킬 거란 걸 생각하고 행동할까.
나는 그저, 말룸에게서 무사히 도망친 다음 작은 가게를 열어 적당히 먹고 살 생각이었단 말이다.
“제가, 이 몸에 씐 건 맞는 것 같아요…….”
억지로 태연함을 가장한 채 입을 열었다. 절벽에서 추락한 것처럼 가슴이 쉼 없이 뛰어댔다.
“그런데 저는 요즘 ‘오필리아’의 과거를 꿈으로 꾸고 있어요. 그러니까, 오필리아는…… 빈민촌의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태어났는데, 도망을, 도망을 쳤어요. 그 꿈 속 기억을 되살리거나 충격을 받을 때면 시계 째깍대는 소리도 함께 들리죠. 그런데 꿈에서 봤던 얼굴은 이 육신과 같았어요. 그러니까 이 육체의 원래 주인이 엘프라는 얘기는, 아무래도 가능성이…….”
“꿈은 무의식을 반영합니다. 얼굴 잃은 그자의 모습에 오필리아 님 본인이 새로 얻게 된 얼굴 형상을 대입했을 수도 있죠. 그리고, 째깍대는 소리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없지만……. 우선 그 빈민촌의 이름이 기억나십니까?”
“에트왈. 에트왈 거리요.”
말룸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가 제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그건 이미 30년 전에 사라진 거립니다.”
“…….”
“뭐가 뭔지 모르겠군. 내가 만난 오필리아 역시 죽은 자였다는 소리인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심장에 가시가 박힌 것 같았다. 저 사람은 ‘오필리아’와의 혼인을 원했다. 내가 아니라.
말룸의 성정으로는 나를 내쳐 바깥으로 쫓아낼 것이다. 조롱하고, 그 수려한 낯으로 오만을 품어 누덕누덕 기워진 내 육신을 모욕하겠지.
그러나 말룸에게서 나온 말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죽었든 살았든 제 아내예요. 저는 당신 거예요, 오필리아. 또 당신이 전에 뭘 하고 살았든 내 아내가 되었으니 당신도 내 것이 된 거야. 고작 누덕누덕 기워진데다 출신이 뒤죽박죽이란 이유만으로 당신을 놓을 만큼 난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설마 나를 떠나진 않겠죠? 결혼식 며칠 전 그 몸에 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말룸.”
“당신이 도망치지는 않을지 심히 두려워.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내내 겁을 먹고 의심하고 있었잖아요, 내가 누군지, 당신을 해치진 않을지…….”
그가 내게 다가왔다. 말룸은 신을 믿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내가 그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걸 알려주진 않을 겁니다. 부서지는 날까지 숨길 겁니다.”
말룸이 메말라 천 갈래로 갈라진 웃음을 띠었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저와 결혼한 여자가 당신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결혼식장, 마차 안, 티포주 성, 식당, 텃밭, 황성의 거리……. 그 모든 장소에서 나와 함께한 사람은 당신입니다. 사랑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당신이에요. 이름 모를 분, 저를 봐 주세요. 왜 그런 표정이죠? 윽박지르기라도 할 줄 알았나요? 날 기만했다고, 소생한 시체가 끔찍하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룸에게서 도망치고자 했으면서 말룸이 내게 주는 사랑스러운 언어와 정에 스며들어 그것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말룸이 허탈한 듯 웃었다.
“기우입니다. 나도 내가 어떤 놈인지는 알고 있단 말이지……. 오히려 손가락질 당해야 하는 건 이쪽이란 말입니다.”
말룸이 나를 끌어안았다.
“도망치지 마세요. 걱정 말고 내게로 와…….”
또다. 차갑고, 뜨거워.
태엽 풀린 인형처럼 멍하니 있으려니 말룸이 내 등을 토닥였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혹은 작은 동물을 안심시키듯이.
그러면 나는 이 사람의 품에서 안심해 버리고 만다. 아직 말룸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놓지도 못했으면서.
“당신이 제 속을 먹먹하게 만들어요.”
“…….”
“그런데 그게 싫지가 않아. 처음으로 박동하는 심장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당신 때문에 질주했다가 멈췄다 하는 심장을 느끼는 건, 참 기쁜 일이었을 테지요…….”
말룸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저는 제 생에서 벌인 모든 일들을 후회하지 않지만, 딱 하나, 당신을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되네요.”
노란 눈동자가 더는 무섭지 않았다. 말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맑게 빛나고 있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붙박이별 같았다…….
“제게 비수를 찔러 넣어도 좋아요. 당신이 어떤 존재이든, 날 어떻게 대하든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오필리아. 꼭 떠나 버릴 것처럼,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말룸이 끝없이 속내를 쏟아내었다.
“당신이 만약 그 상태로 영영 세상을 떠돌아야 한다면, 제가 함께 하겠습니다. 순리를 거슬렀다고 누군가 손가락질한다면, 제가 옆에서 같이 손가락질 당할게요. 당신이 저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기꺼이 그 죽음 감수할 수 있어요. 그러니 당신, 무서워할 거 하나도 없어요…….”
말룸이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자, 무도회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성으로 돌아가요. 가서, 당신을 살리기 위한 방법을 찾도록 합시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의 해답을 찾아내는 건, 항상 해왔으니까.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래요?”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름조차 박탈당한 채 목적에 맞추어 사용당하고 있었다.
“기억이, 나질 않아요. 분명 나한테도 이름이 있었는데…….”
손 깊이 얼굴을 파묻었다. 말룸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서 다시 꼭 안아주었다.
나는 첫 숨을 토해 내는 갓난쟁이처럼 비로소 엉엉 울었다.
우주 탐사선이 처음 정착한 행성에 품을 수 있는 감정이 이런 걸까? 끝없이 기갈과 의문이 일면서도, 그것들이 일렁이는 파도와 함께 사라져 아무래도 상관없어지는 것.
당신만 괜찮다면, 나는 이것에 사랑이라 이름 붙이고 싶었다.
나도 말룸이 내어준 헌신의 크기에 맞추어 심장을 부풀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