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33화
아수라장이었다.
성수를 가져 온 조슈아 님도, 말룸도, 카사블랑카도 전부 당황해 나를 끌어올리려 애를 썼다.
그러나 나는 화형 당하는 것처럼 몸을 오그라뜨릴 뿐이었다. 벼락이 땅으로부터 솟아 전신을 관통한 양 고통이 저물지 않았다.
카사블랑카가 뾰족하게 쏘아붙이는 소리만이 윙윙 귓전을 파고들었다.
“말룸 발타사르. 시체 데리고 다니는 취미라도 생긴 거냐? 보아하니 몰랐던 모양인데, 고도의 강령술이다. 영혼도 몇 개를 덧댄 건지 알 수가 없어. 본질을 숨기는 주술도 아주 수준급으로, 인어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군. 어디서 시체 썩는 내가 심하게 난다 했더니 네놈이 아니라…….”
이 여자였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온몸의 힘이 풀렸다.
직감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체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다시 살아났고, 이 세계에서 명백히 살아가고 있었다. 또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몸도 멀쩡해…….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기는 하지만 심장도 뛰고 있단 말이다.
숨을 헐떡대며 멀거니 올려다본 소년은 귀찮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가치 없는 것을 상대하듯 무감각하게 날 바라보았다. 무어라 고함치며 그의 멱살을 틀어쥔 말룸에도 카사블랑카는 성가시다는 얼굴이었다.
구역질이 났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살아 있는 게 맞기는 할까?
나는 하염없이 떨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싶었는데, 짓무른 오른다리가 아파서 그럴 수도 없었다. 정과 망치로 머리부터 쪼개는 듯했다.
몸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검게 물든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수 때문에 몸 깊은 곳 아주 중요한 것이 어긋났다는 생각만 들었다.
숨을 쉬려고 해도 호흡이 되질 않았다.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되찾은 줄 알았던 생명의 박탈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이 붕 떴다.
그러나 의식을 잃진 않았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이 몸은 짜 맞춰졌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지 기절조차 하질 않았다. 나는 날개 다친 새처럼 기이한 울음소리를 뱉어내며 바르작거렸다.
“오필리아 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상황 파악을 위해선 당신의 증언이 필요해요. 정신을 잃으면 안 됩니다!”
누군가 내 위로 신관복을 벗어 덮어주었다. 조슈아 님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절박함에 갈라졌다.
“발타사르, 당신은 카사블랑카를 놔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해결되는 거 아무것도 없어요. 시간 낭비 그만하고, 그분 데리고 이쪽으로 오십시오!”
나는 그제야 주변을 좀 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카사블랑카의 멱살을 잡은 말룸을 발견하고서 망부석처럼 얼어붙었다. 이 순간만큼은 다리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신이 어째서……. 다른 먹이를 찾으면 되잖아.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말룸의 낯은 천 갈래로 찢겨 마음의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체 뭘 뿌린 건지 똑똑히 말해! 오필리아가 잘못되면 이 신전을 아예 붕괴시켜 버리겠다. 끔찍한 저주를 내려 수도의 누구도 멀쩡히 살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땅을, 작물을, 생명을 송두리째 썩게 만들겠다. 마지막 남은 삶의 터전마저 붕괴시켜, 정화되지 않는 갈증을 태양이 꺼질 때까지 느끼게 할 것이다!”
“아무것도요! 정말 신의 파편에서 나온 성수입니다. 이건 그쪽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나 해주는 입장 의식이라고요! 카사블랑카가 시취를 맡았다면 그건 정말입니다. 그가 수인족이라는 거 잊었습니까? 당신, 남편이라는 사람이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이런 빌어먹을─!”
누군가가 날 안아 들었다. 사내의 품은 넓고 딱딱했다. 한편으로는 뜨거워졌다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나를 지탱하는 품의 주인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말룸이었다.
“오필리아, 오필리아……. 괜찮을 거예요. 믿어요. 당신은 시체 같은 게 아니야.”
말룸이 가쁜 호흡을 색색 내뱉으며 몸을 경직했다. 나는 삶을 갈구하는 병자처럼, 작은 모닥불을 발견한 늙은 개처럼 말룸의 품 안으로 점점 파고들었다.
때는 가을, 하늘도 무척 맑았다. 그러나 추위에 휩쓸려 입술까지 시퍼렇게 질릴 것만 같았다.
말룸이 내 등 위로 팔을 얹어 나를 가뒀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나를 빼앗아 숨기고 있었다.
“제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어요. 저는 많은 주술을 섭렵했는데,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못 느꼈단 말입니다…….”
마지막에 말룸은 중얼거리다시피 이야기했다. 고맙긴 했지만, 신관님들이 시체라는데 당신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당신이 알지 못했던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다름 아닌 나였던 모양이다.
힘없이 자조하며 말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오른다리가 축 늘어졌다. 정강이부터 발등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많이 아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고통을 견디려 그냥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말룸이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신전 내부로 들어온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신전을 구경할 생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와중에서도 째깍대는 환청만큼은 선명했다.
왈칵 무서움이 치밀었다. 울음소리를 내고 싶지 않았는데, 그게 잘 되진 않았다.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갔는지 말룸이 내 볼을 어루만졌다.
“괜찮아요, 제가 해결할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아요.”
그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필리아, 왜 당신이…… 차라리 내가 대신…….”
점점 내가 살아 있지 않음이 확실해지고 있는데도, 나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말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말룸 발타사르…….
대공인 척하는, 불로불사의 뱀 괴물. 그러면서 평범한 인간들의 삶을 동경하는 듯한 이상한 존재.
인간이기를 포기했으면서, 정작 인간의 삶을 동경하다니.
있잖아요, 당신. 내가 정말 시체 위에 빙의한 괴물이라면, 카사블랑카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모든 게 짜 맞춰져 이 세계에서 깨어난 거라면. 당신이 꿈꾸는 평범한 삶을 이루어줄 수 없게 되는 거잖아요.
그때도 이렇게 다정한 신랑인 척 굴 수 있어요?
환상에 들뜬 새 신부를 3년 후에 잡아먹으려고 했는데, 이를 어째요. 아무리 봐도 당신, 충격 받은 걸로 봐선 시체는 먹이 취급 안 하는 것 같아.
말룸이 멈추어 서선 나를 어떤 차가운 돌바닥 위에 내려놓았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은 힘이 없어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것에서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몰랐다.
크로노. 그래서 내 시간을 알 수 없다고 했던 건가요? 이미 멈춰 버린 데다 고장이 나기까지 해서.
잠이 쏟아졌다.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어디론가 사라진 조슈아 님과 카사블랑카를 기다리던 말룸이 나와 시야를 맞추어 쪼그려 앉았다.
내가 그를 땅으로 끌어내렸다.
말룸이 내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 틈새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잡으려는 사람 같았다.
“오필리아, 포기하지 말아요. 제가 있잖아요. 다 잘 해결될 겁니다.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만들겠어요.”
“저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정말…….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울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나…… 좀 쉬게 해주면, 안 돼요?”
내 삶은 그때 그날 시골길에서 끝났어야 했다.
그래, 뭔가 이상했다. 죽었다가 다른 사람 몸에 빙의하다니.
나는 죽음을 사무칠 정도로 명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감각도, 울컥 피를 뱉는 혈관도, 환부 밑으로 쿵쾅대던 맥박도 아직 전부 생생했다. 아무리 이곳이 소설 속일지라도 죽은 자의 소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힘없이 몸을 늘어트렸다. 끝장이 났다는 감각이 뇌를 좌지우지했다.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마구 난동을 부리고 싶다가도 탈력감이 들었다. 무기력한 해파리처럼 물살에 휩쓸려 돌아다니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때, 말없이 내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눈물로 잔뜩 흐려진 시야로, 묵묵히 작게 눈물을 낸 말룸이 보였다.
삭막하고 피폐한 사막을 닮은 눈동자에 물기가 돌았다. 표정 없는 청동 조각상에 눈물이 맺혔다. 꼭 혹성에 생명이 움트는 것만 같았다.
많은 양도 아니었다. 한 방울, 두 방울씩 그의 진심 조각 하나하나가 조금씩 아래로 흘러내렸다.
말룸은 감정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보였다. 작은 물방울이 강줄기를 만들듯 굴러 떨어졌다.
그는 흐느끼는 소리 한 모금조차 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물지음은 어떤 울부짖음보다 짙은 비통함을 품었다.
그는 어떻게 슬퍼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눈물을 흘려내는 법도 아예 잊은 것처럼 그렇게 울었다.
굉장히 기묘한 광경이었다.
나는 살아 있되 산 것 같지 않게 되었고, 그는 이미 죽었으되 산 것처럼 되었다.
말룸은……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걸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한 줌도 남지 않은 목숨을 끌어 모아 염원했다. 날 위해 짓는 울음마저 기만이라고 여기고 싶진 않았다.
당신은 여전히 나를 잡아먹고 싶어 하는 걸까, 아니면 사랑하게 되어버린 걸까. 나는 당신이 말해주기 전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데…….
억지로 웃었다. 목소리가 다 갈라졌다. 뜻밖의 상황을 마주한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뭐예요, 당신이 왜 울어요. 그런 성격 아니잖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면서, 왜 이런 일로…….”
“……제가.”
“장갑 젖어버리잖아요.”
“제가 죄를 지어서. 그래서 당신이 이렇게 된 걸까요?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이제 겨우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생겼는데, 꽃 속에서 지내게 해주고 싶었는데. 충분히 힘들었던 것 같아서, 당신 세계를 아름답게 치장해주고 싶었는데.”
“…….”
“잘해주고 싶었어요. 진심으로. 제가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당신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말룸이 흐리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정체에 대한 단서를 흘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보이지 않던 것이 시야에 차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르게 달렸던지 정갈히 하나로 묶여 있던 말룸의 머리칼이 느슨히 풀어져 있었다.
그토록 틈 없던 사람이 잔머리까지 내려왔음에도 추스를 생각을 하질 않고 있었다. 옷매무새도 한껏 구겨져 찌부러졌고, 오만하고 당당하던 그 아름다운 자신감마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말룸이 헛웃음을 지었다.
“가지 말아요……. 아프지 말아요, 오필리아. 혼자 남겨 두지 마세요. 네?”
말룸이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마치 고해라도 하듯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내 곁에서.”
나는 그간 단단히 외면하고 있던 말룸의 진심을 엿보고 말아 아득해졌다.
머리 위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옅은 빛이 쏟아졌다.
아무도 없는 정체불명의 공간, 있는 것이라고는 신관님들이 섬기는 신으로 추정되는 처연한 남자의 석상 하나와 우리 둘.
뒤이어 공간에 발을 들인 조슈아 님과 카사블랑카가 놀란 듯 멈칫하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고통도, 무서움도 외면하고서 말룸을 감싸 안은 채 고개를 저었다.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말룸의 식인 습관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두 번 겪는 죽음 선고는 미칠 것 같이 두려웠고, 썩어 들어간 다리로부터 고통이 밀려들어 심장을 옥좼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사람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내게 있어서 괴물이 아니었다.
말룸이 내 마음을 열고 말았다,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