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21화
나는 지금껏 말룸이 눈에 띄는 행동을 하거나 속을 내보일 때마다 ‘살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말룸은 생명을 신경 써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정체 모를 뱀 괴물로부터 도망쳐 다시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서 말룸이 나를 간병하거나 스노우볼을 보며 회한에 잠기는 등 ‘인간처럼’ 행동하면 희귀한 동물이라도 본 것처럼 신기해하고 두려워했다.
단언컨대, 말룸이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힘없이 늘어져 앓는 상황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무례하게 언성 높인 건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만 가주세요, 오필리아.”
그가 축객령을 내렸다.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가 지붕을 뚫고 안으로 들이쳤다. 나는 어떻게든 말룸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굳이 일장연설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상태가 악화되는 바람에 말룸이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간호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가 줘요…… 오필리아.”
기세등등하니 날카로운 눈빛에 겁을 집어먹었지만, 이 상태의 말룸은 말할 기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맹수 앞에 얼쩡거리는 초식동물처럼 슬그머니 침대 근처로 다가갔다. 말룸은 나를 잠시 바라보기는 했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는 것이 고집을 물리고 내 체류를 허가한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룸의 상태는 더욱 나빠져 독기마저도 녹아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의자를 빼어 와 말룸의 침대 곁에 자리했다.
말룸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어떤 대상을 보고 있기는 한 것인지조차 의문이었다. 껍데기 속의 말룸을 발견한 기분이다.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 방은 말룸을 닮았다. 텁텁하고, 메말랐다. 침대 장식도, 아름다운 옷장도, 약간이나마 널브러진 물건도 없었다. 철제 침대와 회색빛 벽지, 그리고 책상이 전부였다. 먼지가 앉아 팔리지 못한 물건을 보는 듯했다.
말룸이 자신의 손을 얼굴에 드리워 양 눈 위를 다시 덮었다. 그러고는 이따금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그는 쭉 잠들지도 못하는 채 헛소리만 해댔다.
“당신이, 여기 오면 안 되는데…….”
“아플 때 누가 옆에 없으면 서럽잖아요.”
“오면, 안 되는데…….”
“제 말 안 듣고 있죠?”
약간의 짜증을 담아 그의 팔을 치우곤 이마에 손을 얹었다. 체온이 아주 높게 치솟아 막 내어 온 찻잔처럼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요! 왜 이러는 거예요?”
“…….”
말룸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색색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이마에 멋대로 손을 대었는데 짜증조차 없었다. 조금 전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남은 힘을 전부 끌어다 쓴 듯했다.
표정이 흐려졌다. 거울이 없어도 짐작할 수 있었다. 변수는 힘이 들었다. 위세 깊이 행동하다가 갑자기 심하게 앓는 말룸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프지나 말지.”
말이 퉁명스럽게 떨어졌다. 나는 그의 이마에 티샤가 함께 가져다주었던 얼음주머니를 누르듯 올려 두었다. 갑작스러운 차가움 때문인지 말룸이 잘게 몸을 떨었다. 자석과 동반하려는 철가루처럼 시선이 괜히 그에게로 가 붙었다.
달뜬 얼굴로 침대 위에서 흐트러진 아름다운 미남.
말룸은 아플 때가 가장 천사 같았다.
나는 말룸이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투덜대기 시작했다. 그는 열에 파묻혀 내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갑자기 왜 아픈 건가요? 당신 때문에 로보의 배를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잖아요.”
“…….”
“당신 정말 이상해. 알아요?”
“응…… 인어는 싫어…….”
순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초식하는 뱀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깜짝 놀랐다. 인어는 싫다니, 이 상황에서 할 법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열에 달떠 아픈 사람의 헛소리였다.
말룸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듯했다.
“윽, 큭, 하아…….”
말룸이 순간 숨을 가파르게 헐떡였다. 급히 그의 상태를 살폈다. 말룸은 냉동고 안에 남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입술까지 새파래져선 덜덜 떨었다. 열이 오른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체온이 너무나 변칙적이었다.
기겁해선 손등으로 볼을 훑으니 시릴 듯 차가웠다. 나는 얼음주머니를 내리고 말룸의 턱 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었다. 따뜻한 물에 적신 헝겊을 이마 위에 올려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표본을 낼 수 없을 만치 비정상적인 증상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가로등 없는 밤보다 두루뭉술하고 검은 산처럼 애매모호했다.
말룸은 의식을 차릴 수도 없는지 헛소리 일색이었다.
“나가요…… 가버려…….”
“……그렇게 내가 싫어요?”
“보지 마…… 날, 보지 마…….”
말룸은 자신을 보지 말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이마의 헝겊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솜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꽁꽁 숨어 버렸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다 큰 사람이 이게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먹이’에게 약점을 보이기가 그렇게 싫을까. 있는지도 몰랐던 섭섭함이 툭 터져 맘이 착잡해졌다.
하늘은 높고 청명했다. 초가을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가 물씬 풍겨 들뜨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로보는 이미 출항했겠고, 말룸은 이상할 정도로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만 있는 전염병에 걸린 걸까? 그가 며칠 나를 피해 다녔던 것이 앓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룸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당신 진짜 미워.”
“미워…….”
이불 속에서 금방 꺼질 듯 희미한 목소리가 샜다. 밉긴 뭐가 미워.
“아니…… 좋아해요. 사랑해요. 당신이 너무 좋아……. 나 좀, 나 좀 봐 줘요. 당신 남편은 그 인어가 아니라 나잖아…….”
내가…… 좋다고? 내 남편은 로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마음에 풍랑이 일었다. 가슴이 찌르르 울렸고,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말룸은 땅으로 추락해 구둣발에 밟힌 낙엽처럼 힘이 없었다. 말룸을 보고 있으면 그의 위세조차 무너뜨리는 고통에 동조할 것만 같았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희색 벽을 바라보았다. 말룸은 그간 내가 쌓아 올렸던 담장을 부수려 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야 했다. 아픈 사람의 헛소리다. 신경 쓰면 손해 보는 것은 이쪽이었다. 원래 사기꾼은 아흔 아홉 가지 진실 속 한 가지 거짓을 숨겨 자신의 연극을 완성시켰다. 아픈 틈을 타 나를 안심시키려는 수작일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세뇌하듯 되뇌었다. 말룸은 인생의 잿빛 풍파를 함께 견뎌 낼 짝이 될 수 없었다. 공유하는 시간이 달랐고, 가치관이 달랐다. 말룸이 바라는 이상향의 그림에 내가 한 조각이나마 차지한대도 그는 끝내 나와 닿지 못할 남자였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말룸은 아픈 것이 끔찍하다는 양 말했었다. 나는 멍하니 이불 뭉치를 바라보았다. 말룸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왜 남을 해쳐 가면서까지 불로불사를 추구하게 된 거죠? 병들어서, 아파서, 혹은 살해당해서 죽는 게 그렇게 무서웠나요?’
물론 죽음은 두렵다. 그것에서 빠져나왔지만 여태 캄캄한 밤이면 소름이 끼쳤고 나이프 같은 날붙이만 스쳐지나가도 사지가 떨렸다. 말룸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것도 죽음만큼은 내가 원하는 형태로 끝맺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힘껏 발버둥 친 마지막에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것을 순응할 줄도 알아야 인간이었다.
‘당신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인간이 아니게 된 걸 거야.’
내 속마음이 전해지기라도 했는지 사내가 다시 크게 뒤척였다. 그새 다시 열이 솟구친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룸이 덮은 이불을 걷었다.
밤하늘을 닮은 남빛 머리칼이 흰 침대 위로 실처럼 늘어졌다. 아주 가관이었다. 솜이불 안에 있었던 데다 체온이 펄펄 끓어 말룸의 얼굴이 뻘겋게 익었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뱀 양반이었다.
다시 얼음주머니를 꺼내 그의 이마에 올려 두었다. 말룸이 열에 달떠 떨었다. 나는 그의 쾌차를 기원하지 않았다. 이대로 픽 목이 꺾여 죽어버리기를 염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친 듯 헐떡대는 숨결이 말룸이 쌓아 올린 견고한 위세와 잔인함에 좀처럼 어울리지가 않아서, 나는 묘하게 박동하는 가슴께를 외면한 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룸이 고통에 취해 흐리멍덩한 눈동자를 바깥 세상에 전시했다. 모래와 닮은 색으로 빛나는 안광이 흩어졌다. 나는 머뭇거리다가도 말룸이 몸을 잘게 떨 때면 간병하기를 멈추지 못했다. 한눈을 판 사이에 그가 메마른 대지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다. 말룸의 숨결도 고르게 가라앉았다. 그는 슬슬 정신이 드는지 침대 곁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곤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말룸이 전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그러다 말을 채 배우지 못한 앵무새처럼 도로 다물었다. 나 같아도 그럴 것이다. 심지어 헛소리도 했는데 멀쩡한 낯일 수는 없었다.
어깨를 으쓱하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이젠 좀 괜찮아요? 왜 아픈 건지는 알고요?”
말룸은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물었으나 집요한 시선에 못 이겨 앓듯이 답했다.
“추태를 보였군요. 이유는 이미 알고 있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관없지만 아프지만 말아요.”
말룸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열기로 점철된 더운 숨이었다. 꼭 옆에서 간호했던 이유를 묻는 것 같아 간단히 답했다.
“누가 눈앞에서 아픈데 맘 편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귀찮지는 않으신가요?”
‘귀찮다고 하면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이면서.’
고개를 젓자 말룸은 눈을 꾹 감아 날 보지 않으려 했다. 한숨까지 흘리는 꼴이 샐쭉하니 얄미웠다.
모른 척 꾸준히 말을 걸었다. 내가 당신 아플 때 간호를 해주었으니, 당신은 나를 잡아먹기 전에 한 번 더 재고를 해야만 했다.
“제가 무얼 더 하면 당신이 지금보다 괜찮아질까요?”
“이 방─”
“─잠깐. 나가는 거 말고요. ……말 끊은 건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당황해선 덧붙였다. 말룸이 작게 웃었다. 하지만 딱히 특별한 것을 바라고 있진 않은 듯했다. 그 자신도 자기가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아주 낯설고 이상하다는 듯 어색함이 온몸에 묻어나고 있었다.
“노래 불러줄까요? 자장가 같은 거.”
말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상대를 저주한다는 것도 아닌데 그런 표정이라니, 아무리 그의 본성을 알고 있는 나라도 떨떠름했다.
말룸은 내 의중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침대 시트만 세게 쥐었다. 누군가가 자장가를 불러준 적도 없는 것 같았다.
“노래를 왜 불러주나요?”
“아프지 말라고 해주는 거죠.”
“노래에 주술의 힘을 담을 수 있습니까?”
“아뇨.”
“……머리가 아프군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당신 정말 고집 세요.”
“그러는 당신은 또 차가워지네요.”
복수라도 하듯 얼음주머니를 치우고 뜨거운 헝겊을 이마에 붙이듯 눌러 얹었다.
“읏…….”
말룸이 다시 작게 신음했다. 좀 심했나 싶어 눈치를 보던 찰나였다. 그가 기운이 바깥으로 몽땅 새나간 듯 작달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불면증이 심해서 그런 걸 들어 봤자 잠들지도 못해요. 천 년을 불러도 모자라지. 제가 불편하진 않으십니까?”
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말룸의 무너진 표정에서 그가 느끼는 공포감이 엿보였다. 그는 일곱 살짜리도 아닌데 호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말룸이 무어라 더 말하려 했지만 무시했다. 뱀에게 베푸는 호의가 후일 식품 대상에서 피해 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제공한다면 부끄러움과 귀찮음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뭘 불러줘야 하는지 잘은 알 수 없다. 그래도 마음 좀 곱게 쓰라고 예쁜 가사가 붙은 것을 골라내기로 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음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고라니 울음소리보다야 낫지만 어렴풋이 비슷하게 들렸다. 목덜미가 절로 달아올랐다.
“……오필리아. 노래 진짜 못 하네요.”
“시끄러워요.”
나도 내가 음치인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알고 있는 노래를 총동원했다. 대부분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동요였다.
말룸은 한동안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숨소리가 고르게 퍼지는 것이 긴장이라도 풀었구나 싶었다.
나는 내 목이 먼저 쉬는 게 아닌지 걱정스러워질 정도로 오랫동안 노래했다.
어느덧 이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포식자를 앞에 둔 것 치고는 태평한 반응이었다.
결국 나는 한때를 기점으로 침대에 엎드려 졸기 시작했다.
잠결에 말룸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당신…… 나중에 내 모습을 알고 도망가면 어떡하죠. 알게 할 생각도 없지만, 이렇게 하면 놓아줄 수도 없게 되잖아요.”
하지만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는 그저 한없이 단잠에 휩쓸렸다.
“당신이 설령 날 사랑한대도 이후부터가 문제입니다. 나는 무척 교활해서, 당신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이 행성의 일그러짐을 결코 알지 못하게끔 해서, 당신이 내 품에 완전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음습한 수란 수는 다 쓸 테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이 울지 않게 지킬 테니까.”
이날 나는 고요한 속삭임을 들었다. 달의 노래다…… 구름과 함께 부르는 동요야. 꿈은 꾸지 않았지만 마음이 몽롱하게 누그러졌다. 입매에도 엷은 미소가 맺혔다.
누군가 나를 침대에 눕혀 이불을 덮어준 것도 같았다. 갑옷처럼 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이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