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아내가 되었다 8화
테라스 창을 투과해 고요히 내리는 여름의 해님 조각, 창백히 늘어진 몸을 깊이 감싸는 포근한 이불. 쾌적하고 화려한 방, 병수발을 드는 아름다운 미남……. 표현만 따로 떼어 보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었다. 그렇지만 실상은 포장되어 나타나는 것과 한참 달랐다.
경계심이 최고로 끓어올랐다. 주전자가 증기를 내뿜듯 세상 모든 예민함과 짜증을 발산할 것만 같았다.
나는 괴물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잠긴 듯 안온히 홀로 있고 싶었다. 그러나 쫓아내기에는 그림이 좋지 않았다. 이미 말룸은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와 붙박이장처럼 자리를 잡은 후였다.
말룸의 반대편으로 몸이 기울었다. 그가 있는 쪽에 뾰족한 송곳이 솟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속이 울렁거려 슬그머니 이마를 짚었다. 맛 좋은 수프 냄새가 침샘을 솔솔 자극했지만 말룸이 주는 것이라면 사양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하는지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은박지처럼 희멀겋게 뜬 낯으로 눈만 끔벅거렸다.
말룸은 애가 타는지, 아니면 그러는 척하는 건지 수프를 한 숟갈 크게 떴다. 그러고는 반쯤 눈을 내리감고 후후 불어 식히고 앉았다. 나비가 꽃에 앉아 생명을 구하듯 극도로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긴 속눈썹 끝에 애수가 맺혀 노란 눈동자 속으로 고여 들어갈 듯했다.
시선이 닿으니 말룸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만 말룸의 미소가 아름답다 생각해 버리고 마는 바람에 나는 스스로의 뺨을 올려붙이고 싶었다.
“식혀 오는 것을 잊었군요. 조금만 기다려요.”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요.”
그가 괴물이라면 이럴 수는 없었다. 괴물은 이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말룸, 신경 쓰지 마요. 항구 무역인지 뭔지로 바쁘다면서요. 가만 있으면 좋아질 거예요.”
“안 좋아지잖아요. 의사를 부른대도 싫다고만 하고.”
속에서 무언가 용암처럼 치미는 것이 있었다.
‘의사가 주는 약에 당신이 정신 아득해지는 약이나 매양 잠만 자는 독이라도 타면?’
내가 독 걱정을 하지 않고 밥을 먹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지금은 그저 말룸이 맘에 들지 않아 심술을 부리는 중이었으니 그 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입술을 꾹 눌러 말을 삼켰다. 불신이 견고하고 넓었다.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룸은 여전히 걱정 젖은 낯으로—
“자, 오필리아. 몇 입만 먹어요. 날 봐서라도, 응?”
하는 편한 소리나 했다.
“괜찮아요. 아무래도 속이 좀.”
나는 말룸이 들고 있는 숟가락이 은인지 아니면 쇠인지 가늠하고 있었다. 은이라면 검게 변색되어 독이 들었다는 것을 알려줄 테니까.
“오필리아…….”
연이은 거부에 뱀은 낙담한 듯 숟가락을 수프 그릇에 넣고 한숨을 내렸다. 나는 찔끔해 그의 눈치만 살폈다. 너무 밀어낸 건가, 어쨌든 그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니 태도를 누그러트리는 편이 나을까. 그래도 역시 독이라도 들었으면…….
……아니, 아니다. 나는 그저 말룸이 좋은 간병인 흉내를 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뿐이었다.
말룸은 감히 범접해서는 안 되었다. 수두가 송송 올라 앓던 어린 날 엄마의 병간호에, 술을 거나하게 자신 아버지가 패악을 부리기 직전 찰나 존재했던 해님 냄새가 나는 분위기에, 유일하게 행복하다 생각했던 유년기의 한 순간에.
간병을 허용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어머니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물려준다는 것, 하여 그를 가족처럼 친애하고 사랑스럽게 여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 감히 뱀 괴물 따위가 넘볼 자리가 아니었다.
내 추억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겨둔 자리를 식인 뱀 따위가 침범하지 말란 말이야…….
찔끔찔끔 울었다. 눈물이 송송 샜다. 그동안 안 울었으면서 왜 하필 저자가 장승처럼 지키고 있을 때 이러느냔 말이다.
말룸이 허둥대며 ‘오필리아’를 불렀다. 그는 내 눈물을 닦아주려는지 손을 번뜩 뻗다가 내가 고개를 웅숭그리자 뻗은 팔을 도로 거두었다. 말룸의 표정이 심중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럼 나는 뱀의 뱃속을 가늠할 수 없어지고 만다.
“당신이 울면 대체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요. 많이 아파요? 세상에, 열나는 것 좀 봐. 당신 정말……. 싫어도 한 입만 먹으면 안 되나요? 그래야 진통제를 챙기죠.”
나는 도리질만 쳤다.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기계가 된 것처럼 굴었다. 투정 부려서는 안 될 상대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당장 잡아먹혀도 할 말이 없었지만 나는 이성을 잃어버렸다.
“오필리아.”
내 이름이 아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인내심이 다 된 것인지 말룸은 말이 없었다.
이제 날 때릴 건가.
똑바로 그를 관찰했다. 때리기 직전에는 학대의 권력을 쥔 자 특유의 몸짓이 있었다. 우선 몸을 크게 부풀려 가슴으로 씩씩 거칠게 호흡하고, 채찍을 든 듯 팔을 높이 올려 위압적으로 보이게끔 한다. 그러면서 입에 담기도 힘든 된소리와 함께─
“혹시 제가…… 많이 불편한가요?”
“……네?”
말룸은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내 몸을 줄로 동여매어 땅에 서게끔 했다.
속에서 누가 속살거렸다.
‘눈앞 사람을 똑바로 봐. 텍스트 따위를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외면하지 말고.’
목소리의 주인은 인간을 낙원에서 추방했다는 어떤 새끼 뱀일 것이다.
나는 사내를 똑바로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아 버렸다. 말룸의 표정을 보면 돌이킬 수 없어지고 말 것 같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정을 주기 시작하면 해를 입는 쪽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눈을 꾹 감은 채 입을 작게 벌렸다.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오필리아?”
“……빨리 줘요.”
“눈은 왜 감고 있는지…….”
“울었잖아요. 부은 것 같아서, 보기 흉해요.”
말룸이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반달을 닮아 깨끗하고 아름다울 듯했다.
“눈이 부었어도 예쁠 텐데.”
나뭇잎 하나가 심장에 덜컥 얹혔다. 명치가 꿀을 바른 것처럼 가려웠다. 나는 그것을 삽으로 마구 긁어 없애 버리고 싶었다.
‘나 당신 안 믿어. 못 믿어, 안 믿어…….’
노랫가락이라도 만들면 좋을 것이다.
방 안에는 사람이 꺼낸 문장이 없었다. 말룸이 뜨거운 수프를 후후 부는 소리, 아직도 눈을 감은 내가 입가에 도착한 수프를 넙죽 받아 우물거리는 소리, 이따금 테라스 창문이 바람을 만나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따뜻한 수프가 혀끝에 닿았다. 께름칙함과는 별개로 주린 속은 게걸스레 음식을 받아 삼켰다.
내가 음식을 넙죽 잘 받아먹자 뱀은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착하다, 잘했어요. 깨끗하게 다 비웠군요. 맛은 어땠나요?”
“먹을 만했어요. 근데 좀 탄 것도 같고.”
탄 맛 같은 건 없었다. 얄팍한 심술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말룸은 혼잣말을 했다.
“정확히 계량해 넣었는데.”
그가 귀에 매달린 화려한 귀걸이를 별 뜻 없이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귀족이 요리를 하는 건 개벽할 일이긴 하죠. 하지만 당신이 아픈데 이상한 음식이나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들뜬 기색이 목소리마다 묻어나 유난히 아니꼬웠다.
“요리사 실력이 아주 훌륭하던걸요. 다음부터는 요리사에게 맡겨도 될 것 같은데.”
“그런가요? 요리사 솜씨가 당신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군요. 저도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음식도 먹지 못하면서 천연덕스럽기는. 맛보지 않고 이만큼이나 만들어 낸 것도 용했다.
말룸의 목소리가 녹아버린 사탕 표면처럼 진득하게 내려앉았다.
“그래도 제가 해주고 싶었습니다. 다음에는 태우지 않게 주의할게요. 그러니 한 번 더 먹어줄래요?”
나는 어슴푸레한 낯으로 성의 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내가 그에게 적응하는 만큼 그도 나에게 적응하고 있었다. 처음 식장에서의 말룸은 영 소름이 끼치는 자동인형 같았는데, 그러다 인간 색을 뒤집어쓰고, 다정한 신랑 흉내를 내고, 아프다니까 태도가 돌변해서는 자꾸만 나를 교란해 잡아먹으려 했다.
문득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힘에 부쳤다. 달콤하면서도 적당히 짭조름한 소고기 수프의 잔향이 혀끝에 감돈 탓이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도 곤욕이니 슬그머니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낫겠다. 저 뱀이 지금 나를 공격해도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는 반항할 수 없을 테니까. 그저 그럴 테니까…….
“눈 떴군요?”
“…….”
“얼굴 하나도 안 부었어요. 어어, 또 울면 안 되는데. 열 올라요.”
당신 정말 마음에 안 든다…….
말룸의 얼굴은 연못 속에서 살랑살랑 헤엄치는 연어처럼 평온에 젖어 있었다. 봄이 햇볕을 옮겨다가 그의 호박색 눈을 만들지 않았을까?
말룸이 한손으로 침대를 짚어 내 쪽으로 몸을 수그렸다. 다른 손으로는 송골송골 솟아나는 내 눈물 덩어리를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픈 것이 당신 트라우마라도 되는 모양이지.
말룸이 불사를 추구하게 된 파편 하나를 어렴풋이 잡아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손길이 닿은 얼굴 곳곳이 화상 입은 듯 쓰라렸다.
당신이 인간이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정말 당신이 하는 것처럼 다정한 사람이면 좋을 테지만. 괴물의 속이 얼마나 악독한지는 한낱 인간인 내가 짐작할 수 없었다.
<말룸 관찰 일지>
열여덟째 날
둘째 날 작성한 것에서 이어짐. 한동안 아파서 작성 불가 상태였음.
4. 수상한 동태
―말룸의 속을 도통 모르겠다. 아픈 것에 트라우마라도 있는지, 내 몸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자마자 홱 다정해졌다. 아니, 이전부터 다정하기는 했다. 게다가 침대 위에 몸져누운 날 보는 시선이 절박해서…….
―연기가 늘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참 교활한 작자다.
―인간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 같은데 요리 실력이 뛰어나다. 수프가 맛있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손재주가 좋다. 음식도 못 먹는 주제에…….
―몸이 나아지고 난 후로도 말룸은 부쩍 방을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산발이 되다시피 한 내 머리칼을 직접 땋아 등 뒤로 길게 내려주었다. 잔머리 없이 잘도 매만진다.
―아무래도 소름이 끼쳐서 머리 땋는 것은 사용인에게 맡기겠다 했더니 요즘에는 화병에 꽃을 바꾸러 온다는 핑계로 찾아오기 일쑤다. 아스타 꽃은 또 어디서 구해 온 건지. 가을에 나는 것이 아니냐 물었더니, 작년 가을에 난 꽃을 주술로 보존하면 다른 계절에도 볼 수 있단다. 과일도 그런 방식으로 보존해 계절을 타지 않는다는데, 비닐하우스가 필요 없겠군. 하여튼 말세다.
―흰 아스타 꽃이 예쁘다. 꽃잎이 얇은 장막처럼 약해 만지기 꺼려진다. 꽃말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향기가 좋았다. 먹이를 꽃으로 장식해 삼키는 취미가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