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무슨 말을 꺼내려고 저리 망설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아몬을 이끌어 마차로 향했다.
쌍둥이들이 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다가는 온몸이 꽁꽁 얼어버릴 테니까.
그런데 막상 마차에 오르려 하니, 아몬이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서 버렸다.
“…왜 그래? 아쉬워?”
내 질문에 고개를 내저은 아몬이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누나, 이대로 곧장 저택에 돌아갈 생각이신가요?”
“응, 그렇지? 아, 혹시 어디 들르고 싶은 곳이라도 있니?”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망설이던 아몬은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질문해 왔다.
“어머니를… 뵈실 생각이셨잖아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녀오세요.”
나는 생각지 못한 아몬의 권유에 눈을 크게 떴다.
물론 그럴 생각으로 꽃다발을 받아오긴 했지만 나 혼자 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간다면 같이 가야지.”
“…저도, 함께 간다고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아몬은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
아무렴 내가 여기까지 함께 와서 너만 남겨두고 세리나의 무덤을 찾을 리가 있나.
“그럼, 당연히 함께 가야지.”
단호한 긍정에 아몬은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하지만 억지로 함께 가자는 건 아냐. 꼭 오늘일 필요도 없고. 네가 가고 싶어질 때, 그때 가면 돼. 시간은 많아.”
한참의 침묵 끝에, 아몬이 결정을 내린 듯 입술을 뗐다.
“…가요, 누나. 어머니를 뵙고 싶어요.”
“그래. 네가 원한다면.”
나는 작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아몬에게 웃어 보였다.
…사실 나는 아몬이 이대로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주길 기다렸던 것 같다.
‘어차피 언젠가는 찾아가야 했잖아.’
나는 애써 마음을 안정시키며 꿈에서 걸었던 오솔길로 향했다.
한쪽 손에는 꽃다발을, 반대 손은 아몬을 붙잡은 채.
“…….”
우리는 여태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무색하리만치 묵묵히 흙길을 따라 걸었다.
아몬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고, 나 역시 세리나의 무덤에 방문한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 다른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머지않아 도착한 로베르 공작가의 가족묘에서, 실제로는 처음 보는 세리나 로베르의 무덤 앞에 가 섰다.
호위들은 다른 명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익숙하게 거리를 벌렸다.
나는 아몬의 손을 놓지 않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묘비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이곳의 방문은 이전부터 가장 꺼려지던 것 중 하나였다.
비록 내가 리엘리 로베르를 죽이고 이 몸을 빼앗은 것은 아니나, 그녀의 딸 행세를 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비록 그녀의 아이, 아몬을 학대에서 구제했다 한들, 마냥 떳떳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죄책감에 눌려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시간이 흘러 보다 뻔뻔해질 수 있을 때,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오고 싶었는데.’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아몬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 준 다음에.
나는 마음속으로만 심심한 사과의 말을 건넸다.
기실 쓸데없는 죄책감이란 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세리나 로베르에게 속죄하겠다며 목숨을 내던질 것이 아닌 이상에야 아무런 쓸모가 없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양심이란 것이 존재하는 사람이었기에 훌훌 털어버릴 수 없던 죄책감이었다.
나는 이 자리를 벗어나고부터는 의식적으로 그녀에 대해 잊으려 할 것이다.
비록 내가 세리나 로베르에게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낀다 한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테니까.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마음 쓰지 말자. 지금 이곳에서 모두 털어내고 가자.
스스로를 세뇌하듯, 몇 번이고 그리 되뇌었다.
*
아몬은 제 손을 감싸 쥔 누님의 손에 점점 더 힘이 실림을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조심스레 눈을 굴려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무표정한 듯 보이나 미세하게 일그러진 얼굴.
그 표정에 그려진 감정은 너무도 다채로웠기에, 아몬은 감히 제 누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후회하고 계실까.’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사실을.
출발할 때부터 이리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구태여 생각하고 싶지 않아 더욱 호수의 경관에 집중했지만 허사였다.
아몬은 로베르 공작가의 가족묘가 이 호수의 인근에 존재한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아마 시녀장의 멍청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아니었다면 한동안 알지 못했을 터였다.
시녀장이 건넨 하얀 꽃다발에 일순 그만큼이나 시리도록 창백했던 누님의 낯빛을 확인한 순간, 아몬은 불안과 후회로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만약 칼리온 호수 인근에 어머니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
아몬의 삶은 그녀의 죽음으로 망가져버린 것이나 진배없었으나, 아몬은 그녀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심으로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으며, 차라리 자신의 탄생보다 그녀가 생을 이어가는 쪽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해 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누님의 보호 아래 저택을 돌아다닐 자유가 주어진 최근에야 초상화를 통해 알게 된 어머니, 세리나의 모습.
그 초상화를 마주하고 떠오른 생각은 누님과 정말 닮았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외에 다른 생각은 일절 들지 않았다.
만약 누님과 가까워지기 전에 어머니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다면 감상이 달랐을지도 모르겠으나, 현재로서는 아무런 감흥도 일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죽어버렸고, 자신은 이렇게 누님의 비호 아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더는 이전처럼 제 탄생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지금이 너무도 행복하니까.
그러니 더욱 이 소중한 행복을 깨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피하고 싶었다.
하물며 그게 어머니인 세리나 로베르라 한들, 변하는 것은 없었다.
아몬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누님께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계시겠지.’
당연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자신에게 그리 다정히 말을 걸어주는 상냥한 이가 바로 누님이었으니.
누님께서 어머니를 사랑해 마지않았다는 것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일생을 사랑하고 그리워했을 어머니와 작은 동정에서 비롯된 이제 막 관계를 쌓기 시작한 동생.
어느 쪽을 향한 마음이 더 무거울지는, 너무도 뻔했다.
그렇기에 아몬은 누님이 어머니의 묘를 방문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권을 제게 주었을 때, 곧장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순간 뇌리를 스치는 공포에 멈칫했다.
누님은 언제나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은 더욱더 짙어져만 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정이 들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은 불안과 초조함이 엄습해왔다.
누님의 마음속에 저를 향한 애정보다 죽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커지면 어쩌나 걱정되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의 심정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막상 이 앞에 서니, 그 결정이 후회되었다.
나중을 생각하기 전에 코앞에 닥친 일이나 회피할 것을, 이란 생각이 지배적으로 떠올랐다.
‘제발….’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아몬은 간절히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신이든, 죽은 어머니든,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제발.
누님께서 잠시 잊고 있던 어머니의 존재를 떠올리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신을 원망 어린 눈으로 돌아보지 않길.
간신히 붙들고 있는 일말의 이성으로 누님이 자신을 원망할지언정 버리지 않으리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온몸을 옥좨오는 불안에 신물이 넘어올 듯했다.
아몬은 누님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려 꽃다발을 바라봤다.
도저히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사랑받지 못한 채 자라난 아이는 끊임없이 제게 주어진 사랑을 의심했다.
이리 보잘것없는 자신을 향한 애정은 그보다 더 가벼울 것이라 여겼다.
어떤 행동을 하면 버려지지 않을지를 늘 고민하고,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긴장으로 세차게 뛰어대는 고동을 느끼고 있던 아몬의 귓가로, 리엘리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렇게 보시는 건, 처음이죠. 아몬이에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조금은 아련하게도 들리는 음성.
“아몬 많이 컸죠? 얼마나 착하고 똑똑하게 자랐는지 모르실 거예요.”
아몬은 그녀의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리엘리가 아몬을 내려다보며 웃어 보였다.
*
어머니, 라고 부르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멀쩡히 살아있을 우리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곁눈질로 아몬의 동태를 살폈다.
세리나 로베르의 묘에 대고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아몬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입 밖으로 소리 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의 기분이 다시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꽃다발을 집어 들었을 때부터 고요하던 아몬의 눈동자가 저 잔잔한 호수에 조약돌을 던져넣은 양, 작은 파문이 일어있다.
‘많이 싱숭생숭하겠지.’
이리 갑자기 어머니의 무덤에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나 또한 그랬으니까.
복합적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혼잡하게 돌아다닐 그때,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렇게 입었어도 역시 춥네. 슬슬 일어날까.’
아몬도 이곳에 있는 게 불편해 보이고, 나 역시도 그러하니 돌아가는 게 좋을 듯했다.
그렇게 입을 떼려는데, 옆에서 스러질 듯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 어머니가… 그립지는, 않으세요?”
아몬은 잔뜩 주저하며 묻고는 이내 제가 뱉은 말을 후회하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마 궁금하긴 해서 입은 열었는데, 막상 묻고 보니 내 입에서 긍정이 튀어나올까 봐 겁을 먹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불안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아몬의 불행은 세리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내가 너무 성급히 아몬을 이곳에 데려온 걸까.
좀 더 아몬이 안정을 찾고 제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깨달았을 때.
공작부인의 죽음에 아몬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했을 때 데려왔더라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한숨과 함께 삼켜버렸다.
하지만 이미 선택해 버린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래도 내가 많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역시 상처를 치료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거야.’
거의 1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쌓인 상처가 고작 몇 달 내에 치료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세리나 로베르의 존재를 수면 아래 묻어둘 수도 없는 일인지라, 나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