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미 모를 질문을 하는 율렌에게 되물었다.
샐쭉한 눈을 한 녀석은 꼬리로 내 가슴께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잘생겨서 이렇게 요란하게 뛰는 거냐고.”
“…….”
나는 침묵했다.
그 말이 맞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뭐야, 왜 대답 안 해? 맞아? 아니야? 맞지? 응?”
내가 답이 없자 뺙뺙 울며 나를 독촉하는 율렌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세바니. 준비해둔 디저트, 전부 꺼내와 줄래?”
쟤 입을 막으려면 이게 직방이다. 달콤한 디저트.
“…전부, 말씀이신가요?”
어제오늘 밖에서 열심히 디저트를 사다 티 룸 한쪽을 가득 채워뒀던 세바니의 동공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분명 한 사람이 혼자 먹을 수 없는 양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먹어 치울 자는 사람이 아니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응, 전부. 내 간식까지 모조리.”
“네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내 명령에 세바니와 에바가 열심히 디저트를 내어왔다.
그리고 제 앞에 디저트가 쌓여가자 조용해진 율렌이 테이블 한쪽에 자리 잡았다.
제 몸만큼 커다란 케이크에 작은 주둥이를 쩍-벌려 한입 크게 베어 문 녀석이 눈을 빛내는 것을 보고 설핏 웃었다.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소하는 건 나쁜 습관이다. 하지만 율렌은 사람이 아니니까….
‘절대 율렌에게 단것만 물려주면 조용해져서, 내가 편해서가 아냐.’
이게 다 녀석을 위해서다.
오랜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방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가여운 드래곤에게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 행복을 선사하는 것뿐이다.
‘그 못지않게 떠드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 끝없는 수다에 어울리기란 여간 힘이든 일이 아니다.
그러니 냉정한 주인님 때문에 잔뜩 뿔이 난 율렌의 기분을 풀어주기에는 이만한 것이 또 없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턱을 괴며 녀석이 먹어 치우는 양을 가늠해봤다.
‘…부족해 보이는데.’
오늘 받은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지 평소보다 먹는 속도가 빠르다.
‘이러다가 진짜 율렌의 디저트 담당 하인이라도 들여야겠는걸.’
나는 어느새 진지하게 디저트 담당 하인을 고용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빠르게 생각을 접었다.
이 저택에서 만들어지는 간식은 일정량 이상 녀석에게 먹일 수 없다.
돈이나 일손의 문제가 아니라 내게 제공되는 모든 것들이 공작에게 보고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리엘리가 간식을 즐기던 편도 아니었고.’
그런데 평소 잘 먹지도 않던 디저트를 무슨 티파티라도 여는 것처럼 새로운 하인까지 고용하면서까지 대량으로 가져다 먹는다?
의심을 살 것은 당연지사였다.
나는 세바니를 불러 다시 한번 심부름을 보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선 내일 율렌이 먹을 디저트를 채워둬야 했다.
그렇게 세바니와 에바가 자리를 비우고, 나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디저트를 흡입하는 율렌을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서 리셀이 보내온 편지를 꺼내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혹시나 정말 셀리안이 리셀이라면, 이 당시의 기억을 우선 살펴봐야 할까.’
아까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고민이었다.
그와 리엘리가 어떤 사이였는지를 알 수 없으니 더욱 그랬다.
편지를 보았을 때는 일방적인 관계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리셀이 과거의 일을 언급하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셀리안을 수상하다 여기는 아르반에게 고집을 부린 것도 리셀이 보내온 편지가 계속 마음에 걸려서였다.
하지만 또 그가 리셀이라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기에 망설여졌다.
율렌이 전에 언급한 적이 있듯, 한 사람이 살아온 20여 년의 세월을 받아들이는 건 생각보다 혼란스러운 일이었다.
만에 하나를 위해 타임라인을 무시하고 중간에 끼어있는 기억을 들여다봐 혼란을 가중시키는 건, 솔직히 망설여졌다.
‘아, 몰라. 일단 그냥 있을래.’
나는 편지를 다시 서랍에 집어넣고 탁-소리가 나게 닫아버렸다.
지금 범람하는 리엘리 로베르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만약에 불과한 상황 때문에 구태여 힘든 일을 자초하지 말자.
만약 셀리안, 그 사람이 리셀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그때 기억을 훑어봐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혼란스러운 마음도 모르는 율렌이 아, 하며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린 듯 입을 열어왔다.
“있지, 엘리. 네 방을 치우는 백발의 시녀 애가 있잖아.”
“아아… 클레어가 왜?”
“그 애, 지난번에 보니까 마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더라.”
녀석은 쿠키를 오독오독 씹어 먹는 와중에 잘도 이야기를 이어갔다.
“눈이 안 보이는 애니까 그 애가 청소하는 중에 마법 연습을 좀 했거든. 근데 마법을 사용하니까 정확히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더라?”
“…뭐? 클레어가 있는데 마법을 썼어?!”
내가 기겁하며 상체를 새우자 율렌이 내 눈치를 슬쩍 보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뻣뻣이 들고 사뭇 당당히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날 볼 수도 없는데 상관없잖아? 네 방이 얼마나 넓은데 그럼 그 작은 시녀 애 혼자 청소할 동안 난 심심해서 뭘 하라고!”
“하, 아무래 그래도 그렇지! 좀 조심해.”
클레어는 앞을 볼 수 없는, 정확히는 눈을 잃은 시녀 아이였다.
‘클레어… 그리 보면 그 아이에 대해서도 의아한 부분이 많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