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하지만 악취가 나지는 않았는데, 율렌은 그 냄새마저 맡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꽤나 지독하게 느껴질 만큼.
나는 잠시 망각하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며 율렌에게 설명했다.
“황궁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져 왔어. 우리 집에서 나오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소름 끼치는 검은 마력의 기운이.”
“···황궁에서?”
율렌이 의아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응, 황궁의 중심부로 향할수록 심해지는 것 같았어. 그리고··· 우리 집에서 느꼈던 것과 좀 다른 기운도 섞여 있는 것 같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부감을 동반하던 기운이 소름 끼치도록 불쾌한 감각을 선사했었지.
“······.”
내 설명을 듣고는 생각에 잠겨 잠잠한 율렌을 내려다보는데, 욕실에서 세바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율렌님! 준비 다 되었어요.”
“지금 갈게.”
내 대답과 동시에 날갯짓을 멈추고 바닥에 착지한 율렌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씻고 나와.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본래 목욕을 좋아하는 율렌은 내가 씻을 때면 꼭 같이 들어와 함께 목욕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나를 슬금슬금 피하며 닿지 않으려 하는 것이, 마치 내가 더러운 무언가라도 된 듯하여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황궁에서 느꼈던 검은 마력의 잔향이 내게 묻어와서 그렇다니 이해는 가지만···.
‘저런 반응을 보이니까 괜히 찝찝하잖아.’
나는 신성력으로 회복된 탓에 평소와 같이 쌩쌩해진 상태로 열심히 몸을 씻었다.
아침에 때 빼고 광을 낼 때보다 더욱 꼼꼼히.
몸이 퉁퉁 불어버리기 직전에 욕실을 빠져나오니 침대에 얌전히 엎어져 있던 율렌이 잽싸게 다가왔다.
네발짐승처럼(네발짐승이 맞지만) 기어 온 율렌이 내 발치에서 킁-하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신성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검은 마력의 잔향이 가시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몸으로 스며드는 양보다 흘러넘쳐 낭비되는 신성력이 눈에 빤히 보여서, 나는 결국 참다못해 한소리를 했다.
“신성력 낭비하지 마. 그러다가 마력뿐 아니라 신성력까지 고갈되면 어쩌려고 그래?”
“신성력은 이미 회복된 지 오래야. 그리고 이 정도 사용한다고 바닥을 보일 만큼 내 신성력이 콩알만 하지도 않고.”
나름 걱정해서 해준 말이었는데 율렌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들렸나 보다.
녀석은 콧김을 흥 뿜어내며 꼬리로 불만스레 내 팔을 툭툭 두드렸다.
“하이고, 그러세요.”
나는 그런 율렌을 달랑 들어 올려 품에 꼭 끌어안고는 화장대 앞으로가 앉았다.
그러자 에바와 세바니가 함께 달라붙어 내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너 아직도 냄새난다고···.”
무릎에 올려두니 툴툴거리면서도 똬리를 트고 자리 잡는 율렌을 손으로 토닥이며 눈을 감았다.
그러다 또다시 몸 안으로 밀려드는 포근한 기운에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을 내려다봤다.
율렌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는지,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나는 작작 하라는 눈빛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율렌은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며 신성력을 거둬드렸다.
이윽고 에바와 세바니가 내 머리를 모두 말리고 나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침대로 걸음을 옮기며 율렌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뭘?”
“진짜 지금도 나한테서 냄새나?”
안 그런 척했지만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묻는 내 말이 황당했는지 율렌의 작은 입이 살짝 벌어졌다.
“말해보라니까?”
결국 다시 한번 독촉을 하고 나서야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냄새는 안 나는데, 좀 꺼림칙해서 그래.”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던 율렌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어차피 흑마법에 대해서는 나도 다 알고 있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신성력을 몸에 지니고 있는 존재만이 흑마법의 기운을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고 했지.’
본래 인간의 몸에는 신성력을 담아 둘 수 없다.
그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극히 일부의 신관들 역시 마찬가지다.
신성력은 마력처럼 몸에 저장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그저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그 신성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라고.
율렌의 경우는 신성한 생물 즉, 신수이기에 신성력을 직접 육체에 담아 둘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율렌의 마력과 함께 신성력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도 영혼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요행이었다 했고.’
나는 사실상 신성을 몸에 담을 수 없는 인간들은 흑마법을 사용할 때 필요한 검은 마력을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던 율렌의 설명을 떠올렸다.
그러자 솜털이 삐죽 돋아나는 기분에 팔뚝을 쓸어내렸다.
내가 느끼기에도 충분히 숨이 막히고 울렁거리던 기운이었느니, 율렌에게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내 몸에 묻어온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직접 경험했기에 그 불쾌감을 알고 있던 나는 걱정되어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 괜찮아?”
“안 괜찮으면 네가 어떻게 하려고. 괜찮아.”
나는 율렌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양을 유심히 관찰했다.
저 움직임은 분명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정 불편하면 오늘은 다른 곳에서 잘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그냥 내 기분의 문제야, 기분.”
예민하게 굴더니, 사라져준다니까 또 붙잡는 율렌이 귀여워 녀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스르륵 눈을 감은 율렌이 얌전히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이 정도 냄새가 묻어왔다는 건 황궁 내에 검은 마력의 근원이 존재한다는 거니까, 이제 공작저 내에 흑마법사가 존재했는지에 대한 조사는 중단해도 되겠어.”
“응?”
내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율렌이 설명을 덧붙였다.
“얼마 전에 그랬잖아. 일 년 내에 공작저에서 일을 그만둔 사람들과는 전부 만나봤다며.”
“아아, 그랬지.”
그래 봐야 몇 명 없어서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조사를 부탁하며 시녀장이 의아한 듯한 기색을 보이기는 했었지만 따로 질문하지는 않았기에 나 역시 부가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일단 내가 만나봤던 사람 중 검은 마력의 흔적이 느껴지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일을 그만둔 사람 중에 정말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녀석이 있다고 한들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면 어지간한 증거는 모두 인멸해버린 지 오래일 거야.”
“···그래서 조사를 관두라고? 어차피 뒤져봐야 나오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래, 이곳을 조사해야 나올 것도 없는데 헛수고하기보다 황궁 쪽을 조사해 보는 게 더 실속있겠지.”
“하지만 황궁을 조사하기에는···.”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컸다.
“네게 황궁을 조사해 보라고 하는 말이 아냐. 그냥 내가 힘을 되찾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란 거지.”
나를 올려다보는 율렌의 황금빛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미 놈들은 공작저에서 손을 뗀 지 오래지만 황궁에 머물고 있다는 건 분명해. 그럼 내가 힘을 회복하고 주인이 제 위치를 되찾게 된 후에 잡아 죽이는 게 편하잖아.”
아, 맞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율렌은 제가 마력을 회복해서 힘을 되찾게 되면 아르반을 황제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르반의 위치를 되찾는다니···. 누가 들으면 억울하게 황좌에서 밀려난 줄 알겠다.’
사실 녀석이 힘을 회복해서 아르반을 황제로 만들면 되지 않냐는 말을 처음 꺼낸 것은 나였지만 저렇게까지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율렌을 보니 심경이 복잡해졌다.
“늦어도 몇 개월이면 마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찝찝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내가 황궁에 들어가게 되면 그 벌레 같은 것들을 죄다 찾아내서 박멸해 줄게.
나는 신이 난 듯 떠들어 대는 녀석을 뒤로한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율렌의 이야기처럼 마냥 기다릴 수도, 그렇다고 조사를 계속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나도 알고는 있었어. 공작저 내에서의 조사는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거.’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했을 때도 최소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면 꼬리를 잡기 어려울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기에 계속 조사를 이어갔을 뿐이었다.
두 손 놓고 있자니 내가 살고 있는 저택에서 무슨 짓을 벌였을지 몰라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으니까.
다만 이제는 전과 달리 보다 확실한 근원지를 발견했다.
‘···진짜 황궁을 조사해 봐야 하나.’
율렌의 말처럼 아무래도 그쪽이 더 꼬리를 밟기에는 수월하겠지. 조사 자체가 어렵다는 게 문제지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히 고민해봐야겠다.
*
나는 뽀송하게 마른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방을 나섰다.
율렌이 무분별하게 퍼부어준 신성력 덕에 몸은 말끔히 회복되었다.
다만 머릿속이 말도 못 하게 복잡해졌기에 자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잠들어도 꿈을 꾸니까 마냥 편치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 이 고민은 잠시 잊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아몬에게 얼굴도 비치지 않고 자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은 전하지 않았을 테니 갑자기 찾아가면 놀라려나.’
그 생각은 정답이었다.
아몬은 댕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누나 기다렸어?”
놀란 강아지 같은 모습이 귀여워 장난스레 물었다.
“네, 기다렸어요.”
그러자 아몬은 고민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윽···! 귀여워··· 장난삼아 물어본 말에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여오는 아몬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심장에 무리가 갔다.
우리 애기가 요즘 왜 이리 솔직한지 모르겠다. 귀엽게시리.
“미안해. 사실 조금 더 일찍 왔는데 씻느라 늦었어.”
나를 기다렸다는 대답에 마음이 쓰여 변명을 더 했다.
나는 그대로 쪼그려 앉아 아몬을 꼭 안아주었다.
이제는 하도 시도 때도 없이 끌어안아 대서 하루라도 아몬을 안아주지 못하면 불안감 마저 들 지경이었다. 습관이란 무서워.
평소처럼 잠시 끌어안았다가 다시 놓아주려는데, 망설이면서도 조심스레 목을 감싸오는 아몬의 손길에 나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괜찮아요. 약속대로 금방 돌아와 주셨잖아요.”
내가 굳어버렸다는 걸 모르는지, 살며시 내 목덜미에 얼굴을 기댄 아이가 작게 볼을 문질러왔다.
“······!”
깜찍하기 그지없는 아몬의 돌발행동에 치밀어오르는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몬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하며 볼에 쪽 뽀뽀를 날렸다.
“···누, 누님!”
그러자 이번에는 아몬이 소스라쳤다. 단둘이 있을 때는 들을 일이 없어진 호칭까지 입에 올릴 정도로 당황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