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
드디어 에시트 산맥에 오른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몸이 아픈 건 이제 뭐,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나마 위안인 건 리엘리의 몸은 회복력이 좋아서 자고 일어나면 나름 살만해진다는 것 정도일까.’
몬스터가 들이닥쳐도 이제 두려움보다 일행들이 날 지켜줄 것이란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에, 어제만큼 긴장되고 두렵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정말이지… 내 정신력도 갉아 먹히는 기분이었고, 일행들을 걱정시켜서 미안하기도 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기운을 내서 길을 떠났다. 어제 몬스터를 두 번이나 만난 것과 다르게 오늘은 그저 술술 길을 타고 올라갔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오전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좀 늦어져서 오후는 되어야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어쩐 일인지 칼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좀 더 속력을 내서 말을 몰았다.
조금만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본격적으로 경사를 이루는 구간이라 그런지 길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마정석 광산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기 전이기 때문일까, 광산의 입구는 그저 평범한 동굴 같았다.
굳이 특별한 점을 꼽자면, 입구의 폭은 좁은데 안쪽은 상당히 넓고 크다는 정도?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서도 실망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
입구 근처로 다가서니 바람이 불어온 것도 아닌데 서늘하고 시원한 기운이 훅 밀어닥쳤다.
‘뭐야? 바람? 이상하네, 동굴 안쪽에서부터 느껴졌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릭스와 세이린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와… 정말 엄청난데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마정석이 매장되어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더 안쪽까지 들어가려는 릭스를 세이린이 붙잡아 말리면서도 그녀 역시 안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시원한 기운이 마력인가요?”
“아, 네. 맞아요. 저도 이 정도로 마력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은 태어나서 처음 봐요. 신기하네요”
그렇군. 나는 릭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을 둘러봤다.
매연으로 가득한 도심에만 있다가 처음 시골의 깨끗한 공기를 마신 것처럼 속이 뻥 뚫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잘은 모르겠으나 이곳에는 마력이란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마정석이 매장되어 있는 듯했다.
내가 릭스에게 질문을 하는 사이 아르반과 칼은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세이린은 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그러나 내 우선순위는 광산 시찰이 아니었기에, 나는 입구 쪽으로 돌아가 목을 길게 빼고 인근을 살펴보았다.
분명 광산 앞에 서면 보인다고 했는데.
‘설마 작가님이 거짓말을 하지는….’
“아!”
찾았다. 고깔 모양 커다란 바위!
누가 일부러 고깔 모양으로 깎아 놓은 것처럼 인위적인 모양의 바위는 금방 눈에 띄었다.
성격 급한 나는 고깔 바위를 향해 우다다 달려가 그 위에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이게 생각처럼 잘 안 되고 계속 발이 미끄러졌다.
“으…!”
젠장. 고작해야 내 키보다 좀 더 큰 바위일 뿐인데, 이걸 못 올라가서 발버둥 치고 있어야 한다니…!
그러다 푸식, 김이 빠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열 내봐야 내 힘으로 절대 못 올라간다.
냉정을 되찾고, 일단 현실과 타협하기로 했다.
뒤를 돌아보니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기사들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아르반이 보였다.
나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르반에게 눈빛을 쏘아 보냈다.
내 강렬한 눈빛에 이쪽으로 와달라는 신호를 읽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말했다.
“저 좀 바위 위에 올려주세요!”
그러자 그가 약간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꼭 올라가셔야 하는 겁니까?”
“네, 위치를 확인해야 해서요.”
어쩐지 표정 없는 그의 얼굴에서 염려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봐도 역시 삭막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
아르반은 바위의 높이를 가늠해 보는 듯하더니 갑자기 내게 양해를 구해왔다.
“그럼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네? 네.”
그는 내가 긍정하자 내 허리를 끌어안고는 훌쩍 위로 뛰어올랐다.
그에 나는 기함했다.
“악!!”
미쳤어! 와이어 달고 하는 액션 연기도 아닌데 사람을 들고 뛰려면 실례고 뭐고가 아니라 분명한 경고를 해줘야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기에 공중에 떠올랐던 내 발은 불과 수초 내에 다시 지면을 밟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찰나의 시간은 내게 굉장한 데미지를 남겼다.
나는 놀라서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아르반을 째려봤다. 그러자 아르반이 의아한 눈을 하고 내게 물었다.
“놀라셨습니까?”
“…….”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듯한 목소리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어처구니가 없어 열이 뻗쳐왔다.
아니, 내가 로봇도 아니고…!
“당연히 놀라죠! 이렇게 갑자기 들고 뛰어오르시면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제 주의가 부족했습니다.”
아르반은 덤덤히 사과하며 날 내려다봤다.
‘어…?’
뭔가 상당히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나서야 그와 내가 한껏 밀착해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바위 위가 워낙 좁아 사람 둘이 서 있기에는 상당히 빠듯했다.
“사, 사과하셨으니 괜찮아요. 그보다….”
나는 민망한 마음이 커지기 전에 재빨리 고개를 돌려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 산맥에는 무수히 많은 절벽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찾는 것은 특별한 단 한 곳이었다.
이곳에 서서 보았을 때, 커다란 민머리 바오밥 나무 두 그루 사이에 갇혀 있는 듯한 특이한 모양의 절벽.
“저기로 가야 해요. 저 절벽!”
나는 절벽을 손가락질하면서 가리켰다. 내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아르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 아니, 내려드려도 되겠습니까?”
“어, 네.”
아르반은 내 대답과 동시에 내 무릎 아래와 허리를 받쳐 번쩍 들어 올렸다.
“……!”
아까처럼 허리만 감싸 들어 올릴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행동에 당황했다.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놀라 입을 벙긋거리며 본능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내려오는 것 또한 정말 순식간이었기에, 내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는 것과 그가 바닥에 착지하는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눈만 깜빡거리며 여전히 그의 목을 꼭 끌어안고 있자 아르반이 내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아뇨, 안 괜찮은데요.’
생각과 다른 대답을 입으로 내뱉었다.
말을 타면서 밀착한 적도 있고, 그의 품에 기댔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목을 끌어안고 정면으로 마주 보는 상황은….
분명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그의 얼굴이 코앞에서 보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목덜미에서부터 열이 차오르는 것 같은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기 아쉬워 약간 미적거리다 겨우 땅을 밟았다.
나는 아르반을 힐끔 올려다보며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절벽 쪽에 있을 거예요….”
내 속삭임에 기사들을 향해 어떤 수신호를 보낸 아르반은 덩달아 목소리를 낮춰왔다.
“그럼 기사들은 이곳에 대기시켜두면 되겠습니까?”
“으음….”
나는 잠시 고민하다 아르반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절벽 쪽에 있는 장치를 움직이면 바로 검이 묻혀 있는 통로가 나올 거예요. 검은 그 안쪽에 있어서, 같이 내려가지만 않으면 들키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함께 이동하고, 절벽에서 가까운 곳에 대기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검이 장검이라 숨기기도 여의치 않을 테니, 기사들은 물려두는 게 마음 편하기는 하겠지.
“그럼 그렇게 해요.”
아르반과 둘이 속닥거리며 결정을 내렸다.
조금 전의 간질거리던 마음은 어느새 쓸려나가고, 그 빈자리를 고양감이 대신했다.
고지가 멀지 않았다는 기쁨에 마음이 방방 떴다.
‘이제 진짜 사서 개고생한 목표에 다다라 가는구나!’
성검을 찾으면 그의 팔이 날아갈 걱정도 덜 것이니, 돌아가면 온전히 아몬에게 신경 써줘야지.
미숙한 내가 그 애를 잘 이끌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항상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막연한 불안을 키워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지레 겁먹고 주춤거리거나 물러나 버리면 그 애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다만 이런저런 걱정들은 눈앞의 상황을 정리한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내 몸은 하나니까 일단 성검부터 찾고, 그다음에 걱정하자!
***
그렇게 또다시 말을 달려 절벽이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까워지자 아르반은 말을 멈췄다.
기사들에게 이곳에서 대기하라 명한 그는 나와 함께 절벽으로 향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주차할 곳을 직접 지정해 주었다.
“저기 절벽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주세요.”
“예.”
정확한 위치에 멈춰선 아르반은 자신이 먼저 내리고는 나를 내려주었다.
그가 근처에 말을 묶어두는 동안 나는 빠른 걸음으로 절벽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여기까지 다다르니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절벽 가까이 다가선 나는 한걸음, 한걸음 신중히 걸음을 뗐다.
성검이 잠들어 있는 무너진 여신의 신전으로 들어가려면 여기 어딘가에 있을 장치를 작동시켜야 한다.
‘떨어질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쁜 건 없으니까.’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야말로 아찔한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한 밀림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아 놓은 양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운 경관이었지만 동시에 자연에 삼켜진 것만 같은, 압도되는 풍경이기도 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떨어지면 즉사다.
안전을 위해 냉큼 바닥에 몸을 붙이려는데, 뒤에서 아르반이 내 팔을 잡아당겼다.
“……!”
그 바람에 심장이 절벽 아래로 자유낙하 하는 듯한 혼미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니 비명도 나오지 않더라.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온몸의 솜털이 삐죽 솟을 만큼 놀랐지만, 마주한 아르반의 얼굴에 더 놀랐다.
이 남자가 이렇게 큰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