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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화 〉 미친년이 너무 많아.(1) (167/173)

〈 167화 〉 미친년이 너무 많아.(1)

* * *

소리 없는 날갯짓을 끝마친 이자요이가 아이나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웬일로 일찍 돌아왔네?”

아이나는 배가 고파 돌아왔다고 생각하여 고깃덩이 몇 점을 부리에 내밀었지만, 이자요이는 그 이유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럼 왜?”

신경질적인 쇳소리로 두 번 울어 보이고 나서야 그녀는 왜 자신의 부엉이가 돌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울음은, 적이 나타났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그랬구나. 잘했어.”

아이나는 이자요이가 바라보는 방향을 주시하다가, 천천히 아카데미 내부로 돌아갔다.

* * *

“수상한 사람이 아카데미에 침입한 거 같다고?”

“이자요이는 그렇다고 하네.”

수상한 사람이라.

짐작 가는 이유가 하나 있긴 한데, 확실하진 않았다.

‘올해가 역대급으로 평화로운 해라면, 내년은 그와 반대로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해지. 바로 아카데미에서 대규모 실종 사건이 벌어지니까.’

하필 학기 말이 가까운 지금 시기에 이상한 녀석이 아카데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게 미심쩍긴 하지만, 고작 저 소식 하나만 가지고선 실종 사건과 연관 짓기 어려웠다.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어?”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그 사람의 이름이 뭔데?”

“클라우디아 크레센티아.”

“처음 듣는 이름인걸.”

“A클래스에 재학 중이고, 특기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이라고 하네. 책과 관련된 사상력을 가지고 있다는데.”

“뭐?”

힐다 베르펠이다.

내 감이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책과 관련된 사상력이라면 다른 이들도 몇몇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이라면, 분명 그녀임이 틀림없었으니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어지간해선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이렇게 갑자기 나섰다는 점.

“누군지 벌써 알아냈어? 방금 그 이야기만 가지고?”

“내 감은 확실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은 정보가 부족하긴 해.”

“그렇다면 나도 주의 깊게 감시해볼게. 하지만, 너무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을 거야. 네가 그렇게 경계할 정도로 위험한 빌런이라면, 진작 이사장님이나 학장님이 알아차렸을 테니까.”

“부디 그러길 빌어야겠지.”

설령 클라우디아가 힐다라곤 해도, 아직은 제법 여유가 있을 것이다.

힐다는 성격이 급한 편도 아니거니와, 몸을 무척이나 사리던 캐릭터였기에.

그 눈치 빠른 아이나조차 이제 막 의심하기 시작한 단계인데, 힐다라고 뭔가 다르지는 않을 터.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할 만한 분명한 동기가 없다면, 일단은 그녀 또한 조용히 지낼 게 분명했다.

섣부르게 움직여봤자 오히려 클라우디아의 경계만 살 테니.

일단은 조용히 감시만 하는 편이 나았다.

“그럼 이 이야기는 우리 둘만 아는 걸로 해야겠네.”

“맞아. 너무 많은 시선이 집중되면 오히려 눈치채고 도망가버릴 지도 몰라.”

“알겠어.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짓고, 뭔가 다른 점이 보이면 알려줄게.”

그 뒤로는 더 이상 클라우디아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아이나가 내게 끈적한 눈길을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그걸 마다할 이유 또한 없었고.

* * *

아직 채 동이 터오르지도 않은 새벽.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인물이 나를 찾아왔다.

“박성진씨, 라고 부르면 될까요?”

“…누구세요?”

물론 나는 이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까.

단지, 믿을 수 없었기에 그랬던 것뿐이었다.

나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클라우디아였으니까.

“제아무리 트리니티 아카데미 최고의 천재라곤 해도, 아이는 아이인 모양이네요. 그렇게 긴장한 티를 낸다면, 누구라도 절 경계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텐데.”

무의식적으로 왼쪽 허리춤에 손이 올라갔다.

곧바로 클라우디아, 아니, 힐다의 이어지는 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 즉시 마나글레이브를 뽑아 휘둘렀겠지.

그 정도로 내게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진정하세요. 저는 아직 박성진씨와 싸울 생각이 없으니까.”

“…무슨 일로 절 찾아온 겁니까. 클라우디아.”

“이래도 발뺌하시는 건가요? 뭐, 클라우디아… 좋아요. 저는 인제부터 클라우디아인 걸로 하죠.”

“저희는 아직 이야기를 나눌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별거 아니에요.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러 온 것뿐이니. 잠시 실례할 수 있을까요? 조용한 곳에서.”

“그 이야기가 최대한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힐다는 내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내 방으로 들어와 자리를 깔고 앉았다.

“여기가 U클래스 기숙사군요? A클래스 기숙사도 제가 머무르고 있던 누추한 곳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았는데, 이 정도면 아예 눌러 앉아 살고 싶을 지경이네요.”

“하실 말씀은 뭡니까.”

“저는 당신과 적대할 의지가 없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왔어요.”

난데없는 협정 선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와 적대할 의지가 없다’니?

그것도 솜니엄리버레이터의 핵심 멤버 중 하나나 다름없는 힐다가?

“보아하니 당황스러운 모양이네요. 그럴 만하긴 하죠. 갑자기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왜 이런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그야, 저는 악당이기 전에 학자니까요. 학자들은 늘 돈에 쪼들리며 살죠. 이름있는 학자라면 돈을 대주는 사람이 줄을 서기 마련이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일류 학자들의 삶일 뿐, 저같이 이름 없고 가치 없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에겐 후원해주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힐다는 능청맞은 표정으로 과자를 집어 먹고 있었다.

저건 또 언제 꺼내온 거야.

찬장 속에 꼭꼭 숨겨둔 건데.

“별로 합당하지 않은 이유라고 생각하시는 표정인데.”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흐음, 역시 제대로 된 사정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대화해주시지 않으려는 모양이죠? 과연, 그 약삭빠른 노인네가 새끼 여우라고 부를 법도 하네요.”

그건 클로에만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더군다나, 내가 속이 깨끗한 인간이라고 주장하진 않겠지만, 이번 일은 나조차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는데, 뭘 음흉한 간계 같은 걸 꾸미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 사람은.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만.

“어디 한 번 들어나 보겠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는지.”

“간단해요. 솜니엄리버레이터보다, 당신의 손을 잡는 쪽이 빠르다고 느낀 거예요. 저는.”

“왜죠?”

“첫 침투 실패 때, 그저 우리는 우연이라고만 여겼어요. 그저 멍청한 녀석들이 실수했구나, 라고만 여겼죠.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아니었죠.”

힐다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흥미롭다는 눈길로 나를 한번 훑었다.

그러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보다 빠른 속도로 꿈의 잔재를 모으기 시작하고, 진조가 더 강해지기 이전에 미리 그를 제거한 것으로도 모자라, 여론을 휘어잡기 위해 그 블레이크와도 손을 잡았죠. 거기에… 지금처럼 중재자가 나서기를 예상이라도 한 듯, 불사조와도 미리 안면을 터 두었고요.”

식은땀이 한 줄기 흘렀다.

도대체 저 사실들을 어떻게 모두 알아차렸단 말인가.

나와 적대하고 있는 솜니엄리버레이터의 브레인이니 만큼, 자신의 조직과 연루된 사건이야 어떻게든 파악할 수 있었다 쳐도, 나머지 소식은 절대 알아낼 수 없었을 텐데.

“놀라기는요. 성진씨가 아는 게 많다곤 해도, 저도 어디가서 지식으로 남에게 뒤떨어져 본 경험은 거의 없답니다. 뭣보다… 성진씨보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요.”

“역시, 사이코메트리를 통해서 얻어낸 정보들인가요.”

“반은 정답이고, 반은 틀렸네요. 그것도 물론 지대한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건, 이 책이죠.”

힐다는 품속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내 앞에 펼쳤다.

책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상태였다.

하나, 그녀가 손에 들린 과자를 그 위에 올려놓자, 과자는 처음부터 그 책 속안에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백지 속으로 빨려들어가 한 장의 그림이 되었다.

“이게 제 능력이죠. 어떠한 물체라도 책 속에 저장하는 능력, 그리고 이 책은 저의 기억과 생각에 연결되어있죠. 즉, 이 책에 담긴 물체의 정보는 대부분이 제 머릿속에 저장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물론, 그 정보를 해석할 만한 지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능력이지만요.”

“그렇다니 더 수상스럽기 짝이 없는데요. 사물에 한정되는 능력이 아닌, 모든 물체에 적용되는 능력이라면, 처음부터 저를 기습해서 그 책 속으로 밀어 넣어버렸으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그 말에, 힐다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내가 그런 방법도 생각하지 못했냐는 것처럼.

“물론, 처음에는 그 방법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건 학자의 정신에 어긋나는 짓이잖아요? 모르는 것에 대해 배우고, 탐구해나가는 것이 곧 학자의 정신이니까. 그렇게 쉽게 해결해버리면 너무 재미가 없단 말이죠.”

“그래서, 저에게서 정보를 갈취해가고 싶다는 소립니까?”

“갈취라니, 저를 모독하는 표현은 자제해주시면 좋겠어요. 전 어디까지나 정당한 거래와 배움을 얻고자 여기에 온 거니.”

“별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으니, 용건만 간단히 정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힐다의 표정이 약간 언짢다는 듯 바뀌었다.

마치, ‘너라면 내 기분을 이해해줄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매드 사이언티스트도 아니고.

“그럼 쉽게 설명해드리죠. 저는 성진씨가 열심히 모으는 그 하얀 돌쪼가리에 흥미가 많아요. 여태까지 그 물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솜니엄리버레이터 뿐이었으니 그쪽에 붙었던 거지만, 다른 후원자 생긴 지금은 굳이 그쪽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죠.”

“이건 너무 많은 과정이 생략된 것 같습니다만.”

“후우, 그냥, 대학원생 노릇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는 거예요. 그것도 떳떳한 사람조차 아니고, 빌런들 밑인데, 고생스럽기 짝이 없죠. 성진씨도 그렇게 깨끗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적어도 솜니엄리버레이터 쪽보단 훨씬 안심하고 따를 수 있는 쪽이니까.”

대학원생 노릇이라니.

얼마나 쌓인 게 많았으면 이렇게 표현할까.

갑자기 이해가 되면서 동정심이 팍팍 생기는걸?

이 년의 본질이 빌런이라는 걸 알아도 말이야.

“대충은 납득했습니다. 그러니까, 클라우디아씨는 이 드래곤볼, 소원을 이루어주는 돌쪼가리에 관심이 있지만, 학계에선 그딴 헛소리에 할애할 연구비는 없다고 내쫓겼고, 그나마 손을 잡은 녀석들이라는 게 알고 보니 빌런이었단 소리잖아요.”

“정확해요.”

“막상 같이 일해 보니 존중도 없고, 노예처럼 막 굴리고?”

“어쩜, 제 마음을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시네요.”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게으름을 부리며 솜니엄리버레이터를 핍박하던 건 힐다 쪽에 가까웠으나, 박성진이 이를 알 길이 없었기에 한 거짓말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손을 잡자는 것조차 거짓말은 아니었다.

썩은 동아줄에 계속 매달려있는 게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제가 클라우디아 아니, 힐다씨를 믿어도 된다는 근거는 뭡니까.”

“아이나 양에게 가면 알 수 있겠죠.”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렸다.

갑자기 아이나가 왜 나온단 말인가?

혹시, 이건 전부 구라핑이고, 사실 아이나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녀가 가진 정신 지배는 명실상부하게 아이나가 우리 중 최강의 전력으로 군림할 수 있는 핵심이자, 언제든지 기용될 수 있는 조커인 이유였으니까.

“저에게 정신 지배를 걸어서 확인해보면 되지 않겠어요? 정 의심스러우면 같이 다닐 때는 아예 정신 지배만 걸고 다니셔도 상관없고.”

…대체 어디서 이런 미친년이 튀어나온 거야.

아무리 봐도 정상인의 사고는 아닌데.

괜히 빌런 쪽에 붙은 건 아니었네.

“힐다씨는, 그래도 상관없는 건가요.”

“물론이죠! 아니, 제 머릿속을 파헤치는 것 정도야,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답니다.”

“만약, 아이나가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면요?”

“그건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약해빠진 년은 아니니… 성진 씨도 가세하는 거라면 모를까, 아이나 양 혼자서는 절 제압하기 힘들걸요?”

어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나만 말리는 기분이 드네.

그래, 차라리 아이나에게로 데려다주는 게 낫겠다.

정 위험한 년이다 싶으면 아이나가 알아서 죽여버릴 테니.

무슨 일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 즉시 검을 뽑아들 수 있도록 경계는 해두어야겠지만.

“하아, 그래요. 가보죠. 아이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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