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출진.(1)
* * *
동아리실로 돌아오니, 모두가 시선을 내 쪽으로 모았다.
그러고는 나 한번, 서류 뭉치 한번, 나 한번, 서류 뭉치 한번 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번갈아 옮겨댔다.
“어떻게 됐어?”
프리실라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서류를 내밀었고, 서류에 인감이 찍혀있는 걸 확인한 녀석들은 기쁨에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럼 우리도 졸업만 하면 이제 정식으로 히어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가?”
“협회에서 승인만 나면 지금도 할 수는 있지. 물론 허가된 임무만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좋네. 이제 진짜 히어로라는 거니까.”
“앞으로 위험한 일에 더 많이 휘말리게 될 텐데, 걱정은 안 들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여기서 제일 위험하게 살아온 건 다름 아닌 너야. 따지고 보면 우린 거기에 휘말리기만 했을 뿐이라고. 바보.”
프리실라가 일갈했다.
나는 근래에 있었던 일 대부분은 휘말린 게 아니라, 너희들이 끼어든 것뿐 아니냐고 항변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이어지는 프리실라의 말 때문에.
“그리고, 위험하면 네가 지켜줄 거잖아?”
프리실라는 나를 향해 싱긋하고 웃어 보였다.
아이나 또한 동의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 기쁨을 조금만 더 누릴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고까운 눈으로 지켜보던 알프레드가 헛기침하며 초를 친 탓에, 기쁨은 여운으로 남겨둬야 했다.
“한창 분위기 좋을 때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거기서 나는 좀 빼주면 좋겠군.”
“무슨 헛소리야?”
카타리나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실소하듯 되물었다.
얘도 친한 친구이니만큼, 버릴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몸까지 던져가면서 지킬 생각은 없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난 싫다는 녀석을 억지로 가입시킬 생각도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팀을 이뤄서 뭐 할 건데.
“난 아직 들어갈지 말지 결정하지도 않았…”
“들어오기 싫으면 안 들어와도 괜찮아. 강요 안 할 테니까.”
“아니, 그 뜻이 아니다.”
“그러면?”
“난 너의 의사를 존중한다. 네 팀에도 가입할 거고. 하지만, 그전에 해둘 건 확실하게 해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카타리나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난 익살맞은 말투로 장난치는 것을 그만두고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난 히어로를 꿈꾸는 사람이지만, 넌 아니지 않나. 그렇지? 네게 히어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맞아. 어느 정도는.”
“그래.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할 생각은 없”
“당연히 그런 이들을 보면 너도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겠지. 네가 악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과연 모든 상황에서 그럴 수 있겠나?”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난 그렇게까지 정의로운 인간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다. 히어로라고 해서 반드시 이타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런 히어로도 있고, 저런 히어로도 있는 거지. 그래도,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 사람. 그게 히어로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니.”
“확실히, 난 그렇게까진 못할 거 같다. 히어로로서 사명감은 내게 차선일 뿐이야. 결국에 살아남아야 뒷일도 도모할 수 있는 거니까.”
누군가는 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날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웃긴 소리니 말이다.
다만, 자그마한 항변을 하나 하자면, 꼭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소명을 다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특히나,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다.
아직 마지막 흑막과 솜니엄리버레이터를 완전히 멸절시키지 못한데다, 나의 은사들에게 받은 은혜도 다 갚지 못했으며, 그녀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맹세도 지키지 못했으니까.
적어도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전까진 죽을 수 없었다.
“그래. 이렇듯, 우리는 각자 목표로 정한 바가 다르다. 그러니”
“아니, 별로 다르지 않아.”
“…무슨 소리지?”
“카타리나. 너도 지키고 싶은 게 있지?”
“당연하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넌 네가 지키고 싶은 걸 지켜. 난 내가 지키고 싶은 걸 지킬 테니까.”
때로는 멈춰서야 하는 날이 온다.
한 발짝 물러나게 되는 날도 분명히 오며, 패배하는 날도 마주할 것이다.
어쩌면 꼴사납게 도망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누구나 그럴 수 있기 마련이니까.
단지, 그 행동이 결코 무의미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지키고 싶은 것 앞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해, 도망치지 않기 위해, 몸에 새기는 중이라 여기면, 언젠간 분명 앞으로 나아가게 될 터이니.
난, 그렇게 믿는다.
“아니,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지. 난 너와는 달리,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달아날 거니까. 하지만, 누군가의 앞에 섰을 때, 돌아서지 않을 거라는 건 같아.”
“…그게 네 생각이군.”
카타리나는 이런 대답은 예상 못 했다는 듯,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소로 화답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단장.”
“단장?”
“이 팀의 리더는 너다. 그러니 단장이지.”
“어색한 별명인데, 뭐,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한배를 탔다는 사실이니까. 나도 잘 부탁한다.”
그 말에, 카타리나는 무어라 할 말이 생겼는지, 내 미려던 손을 잠시 거두었다.
“그런 면은 분명 너의 좋은 점이니,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는 그런 모습을 조금 줄여나가야 할 거다. 히어로가 된다는 건, 누군가가 너에게 생사를 의지하고 있다는 말과 같으니까. 그렇게 어중간한 태도론, 구할 사람도 구할 수 없게 된다.”
“단호함과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거지?”
“그래. 특히나, 너는 평범한 히어로도 아니고, ‘단장’이지 않나. 잊지 말도록. 네가 짊어진 짐은 훨씬 무겁다는 것을. 넌 시민의 몫뿐만이 아니라, 우리 책임 또한 짊어져야 한다.”
아이나와 프리실라 또한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얼굴은 희미하게나마 홍조를 띠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짐짓 모른 척하기로 했다.
여기엔 다른 보는 눈이 더 있었으니까.
하나, 카타리나는 둘의 눈치를 살피는 내 모습을 머뭇거리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다독여주는 말을 건넸다.
“잘 해낼 거다. 애초에 네가 믿음직스럽지 않은 인간이었다면 너와 한패를 이루려 들지도 않았겠지. 내가 크게 뭐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네가 중요한 순간에는 결단력을 잘 발휘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었나?”
“위험해지면 곧잘 판단하더군. 사실, 적을 처단하는 순간에 주저함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결단력과 단호함은 충분하다. 그 정도면 오히려 우리 또래에 비해선 뛰어난 편이지. 그저 내가 추구하는 기준이 높을 뿐이다.”
“단호함과 결단력. 명심할게.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대답을 듣고서야 비로소 카타리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걸 본 다른 이들도 한 명씩 살포시 손을 포갰고, 모두의 손이 한데 모이자 다들 그 손을 호쾌하게 들어 올렸다.
‘오랜만이네. 다들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있는 건.’
이 웃음이 오래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 * *
“넬슨. 언제까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셈이지? 그 감시자 녀석들조차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너무 섣부르게 행동할 필요는 없어. 마르코. 우리 목적은 어디까지나 ‘중재’다. 아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또 그 소리를 하는군. 이봐, 레이븐이야 한물간 노괴에 불과하다지만, 불사조는 아니야. 쌩쌩하다 못해 아주 펄떡펄떡 뛰어다니는 수준이지. 놈이 다시금 전성기를 맞게 되면, 그때 가서 제지하기엔 늦어.”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다.”
급하다는 말과는 달리, 넬슨은 무척이나 평온한 표정으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르코는 그런 넬슨의 태도에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입으로만 급하다, 급하다 하고, 하는 게 없잖아! 불사조와 레이븐만 해도 거슬리기 짝이 없는데, 요즘엔 코스모스 녀석들마저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고! 안그래도 많은 적을 더 늘릴 셈인가!”
“진정해, 마르코. 나도 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하지만, 대장이 가만히 있으라고 한 이상, 우린 그 명을 따라야 해.”
넬슨이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마르코는 전혀 목소리를 낮출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대장을 설득하는 수밖에!”
“그렇다면야, 뭐, 말리진 않겠어. 혼났다고 나한테 징징거리지만 마.”
마르코는 말없이 넬슨 뒤편의 문을 열었다.
한기가 새어 나오는 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방과, 그 가운데에 앉아 명상하는 소년 한 명이었다.
“무슨 일이야. 마르코. 이렇게 느닷없이 쳐들어오고. 내가 방해받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잖아.”
“긴히 할 말이 있습니다.”
“용건만 빠르게 정리해. 여길 얼음장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레이븐, 불사조, 힐다 베르펠, 셋은 근래 들어 수상쩍은 거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좌시하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하기에, 무언가 명령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흠, 그래?”
소년은 명상을 그만두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열린 문을 향해 나아갔다.
“마침 집중이 깨진 차에 잘 됐어.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도 할 겸, 직접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