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기사에 내가 나온다고?(1)
* * *
“모두 축하한다. 최고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특별히 기쁘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최고점을 못 받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면 걱정했지.
솔직히 그렇잖아.
민간인 피해도 없고, 우리도 한 명도 안 다치고 말끔하게 복귀했는데, 최고점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전투가 질질 끌려서 상대방에게 대처할 여유를 준 것도 아니고.
“감사합니다.”
“나야 실력대로 평가만 하면 되는데, 뭘. 감사할 것까진 없어. 그나저나, 넌 아카데미로 복귀하면 고생깨나 해야 할 거다.”
“네?”
“네가 사전에 계획을 공지하는 스타일이 아니잖냐. 그렇다고 내가 네 뒷바라지를 다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임무 파견 계획서를 좀 대충 적어서 제출했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임무 수행 과정을 이사장님이 보면 한 소리 할 것 같다… 이 말이시죠?”
“그래. 근데 이사장님도 너 못지않은 괴짜니까, 아마 크게 뭐라고 하진 않으실 거야. 그 분 성격이면 되려 널 칭찬할지도 모르지.”
이건 내가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긴 하네.
빈센트 말대로 일개 생도 중 하나에 불과한 나한테 온 신경을 다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그가 내 일에 건성으로 임한 것도 상당 부분 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아무튼, 다들 수고 많았고, 아카데미로 돌아가면 푹 쉬어라. 크게 힘을 들이진 않았지만, 임무에 참여한다는 부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고생한 거니까.”
“교수님도 수고 많았습니다.”
“오냐.”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헬기 안의 분위기는 밝았다.
기장도 멋진 구경했다며 우리를 칭찬했었고.
아카데미로 돌아오고 나선 임무에 성공한 기념으로 뒤풀이도 열었지만, 소소한 규모였던 지라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 * *
이튿날, 클로에는 동이 터 오르기가 무섭게 나를 호출했다.
박성진 생도, 이사장실로 잠시 와주면 좋겠는데.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이럴 것 같더라니.
그래도 조금의 쉬는 시간은 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임무가 끝난 바로 다음 날에 부를 생각을 하지?
그만큼 내 행보가 파격적이긴 했지만.
과연 무슨 소리를 할까 기대하며 이사장실로 가보니, 클로에는 흥미롭다는 눈길로 자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어서 와. 성진 생도. 우선 이번 임무에 관해 설명을 좀 해주겠어? 대체 어떻게 임무를 이렇게 빠르고 완벽하게 수행해낼 수 있었는지 말이야.”
“아직 자료들을 전부 확인하진 않으셨나 보네요.”
“아니? 확인이야 진작에 끝났지. 다만, 네 의도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뿐이야.”
“음, 사실 이 계획, 옛날부터 생각은 해뒀었던 거긴 합니다.”
멤버 구성이야 진작에 끝내둔 지 오래였다.
낙하산이나 윙슈트 같은 걸 만들려면 많은 양의 실이 필요한데다, 높은 수준의 직조(??) 기술을 요구해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최근에 실력이 갑자기 물올라서 가능해지긴 했다만.
“정말로?”
“적어도 윙 슈트라는 물건을 이용한다는 점은 그렇습니다. 나머지는 차후에 생각난 것이지만요.”
“계속 설명해봐.”
“도심이야 건물들이 많으니 충분한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개활지에선 그렇지 못하니, 어떻게 하면 더 날렵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윙 슈트였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 한들, 은밀함이 부족하면 그 속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진조 전에서 깨달은 모양이네. 잽싸게 움직일 수 있어봤자, 상대가 네 위치를 훤히 알고 있으면 그 의미가 퇴색한다는 걸.”
“네, 뭣보다, 진조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게 숨어있던 프리실라였으니까요. 운신의 폭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나와 알프레드를 내 편이라는 점은 참 다행이었지.
둘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면 꽤 그럴싸한 은신 능력을 흉내 낼 수 있거든.
물론 시너지가 나야지만 가능한 거지만.
“그래서, 지금처럼 눈을 가리는 전략을 떠올렸다?”
“맞아요. 알프레드는 전기를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전파를 이용하는 탐지 설비인 레이더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적들의 가시거리에 도달한다 해도 너희는 아이나의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 있어, 눈으로 확인하기조차 쉽진 않을 테고.”
“물론 진짜배기 은신 능력자들에 비하면 무척이나 허접한 수준이니, 가까이 가면 적 또한 눈치채긴 하겠죠. 하지만, 그걸 확인할 거리라면 저희는 먼저 기습하고도 남을 테고요.”
“인상적인걸. 팀원과의 호흡을 아주 잘 살린 전략이야.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빈센트가 웬일로 네 칭찬을 그렇게 다 하나 싶더라니, 그럴 만도 하네.”
“빈센트 교수님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빈센트가 내 칭찬을 했다고?
의외네.
빈센트는 애초에 남 이야기를 거의 안하는 사람인데.
“그래, 자신만 알던 이기적인 네 모습에서 조금 벗어난 것 같다며, 좋게 보더라고. 아무래도 작년까진 네가 좀 그런 면이 있긴 했잖아?”
“그거야 그때는 남을 볼 여력이 없었으니까요.”
“꼭 그렇게 한 마디 덧붙여서 초 치지 말고.”
“네.”
듣고 보니 나도 작년에 비해선 많이 변한 것 같긴 했다.
그때는 독식 메타로만 달렸었으니까.
지금이야 다른 사람들한테 신세진 게 워낙 많다 보니 그럴 수 없게 돼버렸지만.
나도 은혜는 아는 사람이라고.
“아무튼, 그건 어디까지나 빈센트 교수의 관점이고, 내가 좀 더 초점을 맞춘 건 바로 이 부분이야.”
클로에는 어제의 임무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녹화본을 재생했다.
그러고는, 어느 지점에서 영상을 중지시킨 뒤, 화면을 확대해 내게로 들이밀었다.
그 장면은 다름 아닌 프리실라의 사격 장면.
단 한 발만으로 적진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는, 바로 그 장면이었다.
“프리실라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백화 분진을 화기에 담아서 쏘아낸다는 발상은 누군가는 한 번쯤 해봤을 법하지. 하지만, 여태껏 그걸 시도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카데미 생도는 중화기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프리실라가 사용한 무기는 어디까지나 저격소총이지, 중화기가 아닌데요.”
“그래, 무기 자체는 중화기가 아니지. 근데, 너도 알잖아? 일부 저격소총은 중화기에 사용할 수 있는 고폭탄 등을 쏠 수 있다는 거. 건물 외벽을 관통하는 걸로도 모자라, 탄착 지점에서 폭발한 뒤 백화 분진을 퍼뜨리는 걸로 보아 하니, 저건 그런 물건으로 보이는데? 아이디어는 내 마음에 쏙 들긴 하지만, 이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많아.”
들켰네.
걸리면 골치 아파질 게 뻔해서 나름대로 빠져나갈 구석을 마련해두긴 했지만, 역시 잔소리는 피할 수 없겠어.
“이게 말이죠. 의외로 법적 문제가 되지 않더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폭발물에 대한 규제가 굉장히 엄중한 건 저도 알죠. 그래서 좀 찾아보니까, 포탄, 즉, 탄두가 사용되는 무기나, 폭탄은 사용 금지가 맞는데, 탄자를 사용하는 일반 화기의 경우는 좀 다르더라고요?”
“뭐?”
“그러니까, 이 중화기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는 거죠. 중화기에는 탄두를 사용하는 화기 군(?)인 대전차 로켓도 있고, 탄자를 사용하는 중기관총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근데 탄자를 사용하는 총알 같은 경우는 ‘철갑고폭소이탄’ 이외엔 모든 탄종을 사용 가능해요. 이사장님이 말씀하신 것들은 전부 포탄에 적용되는 이야기고요.”
“하아… 그러니까, 너는 그 빌어먹을 철갑 어쩌고 탄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법적인 문제는 없다?”
“네.”
어떻게든 백화 분진 한 번 제대로 써보겠답시고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찾아낸 해답이었다.
솔직히 프리실라의 능력이 너무 아깝잖아.
광역기로 써먹기 이렇게 좋은 능력을 가지고선, 2년씩이나 묵혀놓는다고?
절대 그럴 수는 없지.
“환장하게 만드네. 정말. 작년에도 비슷한 짓을 하지 않았었니? 교묘하게 규칙을 악용하는 짓 말이야. 덕분에 아카데미 규정을 하나 추가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그랬었죠.”
“아, 몰라. 법 같은 복잡한 이야기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네가 찾아보고 문제없었다니까. 소송 걸리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거지, 뭐. 일단 그 철갑… 어쩌고에 대해서 설명부터 해봐. 왜 가능한지는 알아둬야 뒤탈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이즈, 포탄으로 분류되는 규격은 15.2mm에요. 이 크기 이상부터는 포탄으로 분류돼서 사용이 금지되지만, 그 미만은 총알로 분류돼서, 앞서 말했던 철갑고폭소이탄을 제외한 나머지 탄을 모두 쓸 수 있어요.”
“후우, 너는 어째 이렇게 나쁜 쪽으로만 머리가 비상하니.”
나도 이 짓 하겠다고 고생깨나 했다고.
윙 슈터는 더럽게 되기 어렵지.
그렇다고 윙 슈트만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적진에 꼬라박아도 다 줘팰 수 있을 만큼 우리가 강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지.
사심이 들어간 결과라곤 해도, 안전하게 적을 제압할 수단이 이거밖에 없었단 말이야.
그렇다고 어디 이 총알을 구하는 과정이 쉬웠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준수한 위력을 뽑아내는 철갑고폭탄은 대물 저격용 총알에서나 찾을 수 있는데, 프리실라가 사용하는 모델은 대인 사격용이라 규격이 안 맞았거든.
그나마 부품 몇 개를 교체해서 대물 저격 모델로 바꿀 수 있었지만.
“아무튼, 저 잘했죠? 최고점 맞는 거죠?”
“잘하긴 뭘 잘해, 이 자식아! 골치 아픈 일만 더 늘어났잖아!”
클로에가 빼액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로 열이 바짝 오른 모양인지, 그냥 보여주기식으로 화내는 게 아니었다.
‘미친 거 아냐? 주먹에 마나를 실었잖아! 진짜로 한 대 때리고 싶었던 거야! 이건!’
가까스로 주먹을 몇 번 피해냈더니, 클로에도 그 이상은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인지, 조금은 흥분이 가라앉은 듯한 얼굴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네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한 대 정도는 맞아도 싼데.”
“이사장님이 때리면 전 바로 골로 가니까 조금 참아주시죠.”
“아무튼, 그래. 최고점은 인정할게. 너희들 모두 나중에 추천서가 필요하면 말해.”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됐어. 나가 봐.”
고개까지 연거푸 숙여가며 감사에 대한 진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클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사장실에서 나가라는 손짓만을 반복했다.
“아, 근데, 최고점은 줄 수 있어도, 너에 관한 기사가 나가는 건 막기 힘들 것 같아. 그건 알아 둬.”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한 내일모레쯤이면 알게 될걸?”
클로에가 두고 보란 듯이 음침하게 웃었다.
저걸 보니 불안해지네.
갑자기 나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니.
* * *
정확하게 그로부터 이틀째가 되던 아침.
박성진군, 또 시원하게 한 건 해주었군. 덕분에 내가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아니, 고생만 하진 않았지. 이득도 그럭저럭 봤으니까.
“아침부터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블레이크.”
자네, 얼마 전에 조무래기 빌런들 좀 죽이지 않았었나?
“그랬었죠.”
자네가 그 과정 중 알면서도 화기 규제에 대한 법망의 틈새를 파고들어, 악용했다는 기사가 몇몇 곳에 실릴 예정이었거든. 어떻게든 내리거나 우호적인 내용으로 고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말이야.
…기사가 올라온다는 게 이런 이야기였어?
아무리 내가 밉보일 짓을 했다고 해도, 이건 복수의 규모가 너무 다르잖아.
블레이크가 막아줘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네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됐어. 대신 다음에도 이런 짓을 벌일 거라면 언질 좀 주게. 해당 탄종을 제조하는 회사들의 주식이 꽤 많이 올랐거든. 미리 매입해뒀으면 꽤나 짭짤하게 벌었을 텐데 말이야.
“…알겠습니다.”
하여간, 사업가들이란.
돈 생각밖에 없지?
아니, 오히려 그러니까 사업가로써 번창할 수 있는 건가?
모르겠네.
일단 클로에한테 따지러 가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