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내릴걸.(5)
* * *
그놈의 윙 슈트 라이센스 한 번 따보겠다고 그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라이센스가 생긴 지금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난 이제 정식 윙 슈터니까.
남은 일이라곤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니기 이전에, 우선 임무부터 수행해야겠구나.
‘그때 미리 봐두었던 임무를 벌써 수주해간 누군가는 없겠지?’
트아카 앱을 실행하여 임무 탭을 확인해 보니, 다행스럽게 그 임무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난이도가 난이도다 보니, 섣불리 신청하긴 꺼려지는 모양.
그럼 준비도 끝났겠다, 후딱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임무를 해치워 볼까.
* * *
“다들 준비는 된 거지?”
“우리가 준비할 게 뭐가 있어? 어차피 너 혼자 다 해 먹을 거 아냐. 너만 준비되면 다 된 거지, 뭐.”
“그럼 신청한다?”
“그래.”
신청란에 4명의 이름을 모두 등록한 뒤, 한 명 한 명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누락된 사항이 있나 확인해 보라는 의미였다.
“나는 된 거 같네.”
“문제없어.”
“나도.”
“그럼 다들 이날 모이는 걸로 하자고.”
“근데, 정말 자신 있는 거야? 네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믿기 어렵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연습 과정을 죽 옆에서 지켜봐 온 알프레드는 잠자코 있었으나, 아이나와 프리실라는 조금 미심쩍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둘은 저렇게 담담하게 반응하지 않았었거든.
뭘 하려고 드는 순간 온갖 호들갑을 다 떨어대며 한사코 말려댔었지.
그때 비하면 지금은 굉장히 많이 얌전해진 거다.
그러니까 좋지 않냐고?
글쎄, 마냥 좋기만 한 것 같지는 않네.
이젠 내가 뭔 짓을 해도 다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어버려서.
뭐, 그래도 결과적으론 놀라게 될 거다.
나는 한층 더 강해졌거든.
“당연하지. 솔직히 난 오히려 놀랄 지경이야. 왜 아무도 임무 신청을 안 해? 부담되는 건 알겠어. 근데, 별 5개짜리 임무는 고사하고, 별 2개밖에 되지 않는 임무도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다는 게 말이 돼? 2개는 진짜 말도 안 되게 쉬운 것뿐인데?”
“그건 네가 쓸데없이 눈이 높아져서 그런 거잖아. 개구리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더니. 작년 초쯤에 네가 어떤 꼴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은 해? 저 밑바닥에서 빌빌거리고 있었잖아.”
“어이, 거기까지.”
그렇게 맞는 말로 때리면 아프다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도 쉽게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마. 네가 지금까지 해냈던 일도 대부분은 누군가의 도움을 빌려 이룰 수 있던 거니까. 더욱이 그 도움을 준 사람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그래. 그걸로 됐어. 그럼 이제 임무 이야기나 해보자.”
이걸로 끝나서 다행이야.
아이나의 잔소리는 무섭다고.
“음, 이게 우리 임무라는 거지?”
“맞아.”
“무난하네. ‘근해에 있는 해적 소탕하기’라.”
“말이 좋아서 근해지. 사실은 근해가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세상에 어느 미친놈이 이 트리니티 아카데미 근처에서 해적질을 하려고 들겠어.
여기가 무슨 숨겨진 비보 원피스가 잠든 라프텔도 아니고.
만약 있다면 그놈은 세상에서 가장 야망이 큰 해적일걸?
루피도 한 수 접어 줘야 할 정도로 말이야.
아, 솜니엄리버레이터 녀석들은 제외.
걔네는 맛이 제대로 갔잖아.
“뭐, 그래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 어딘가로 가서 나무 심기’ 따위를 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나?”
“그건 비교 대상으로 삼을 게 아니지. 최악 중에서도 최악인데.”
“뭐가 됐든, 중요한 건 행선지로 가는 교통수단 아니겠어?”
“맞아. 그게 제일 문제지. 일단 배는 기각. 해적들이 진을 쳐놓고 기다리는 곳에 배짱 좋게 들어가겠다고 할 만한 선장이 몇이나 되겠어. 설령 재주 좋게 들어갔다고 해도 해적들은 진작에 눈치채고 맞서 싸울 채비까지 끝내뒀을걸. 혹은 도망쳤거나.”
“상대방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도 커. 현장에선 어떤 변수가 생겨날지도 모르고. 무작정 힘만 믿고 뚫으려 하는 건 위험해.”
“걱정 마. 아는 사람에게서 미리 헬기를 빌려뒀어. 우린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돼.”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대놓고 해적들 아가리 속으로 기어들어 갈 재간은 없다.
좆만한 요트 같은 걸로 거기 붙으려 하면 바로 벌집핏자가 돼 버릴걸?
뭐, 알프레드의 능력으로 자기장을 형성해서 총알을 막아내면 되지 않냐고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 그건 다 영화나 만화에서 나오는 연출적 허용이다.
간단히 말해 씹구라라는 거다.
왜냐고?
총알은 자성이 잘 안 통하는 금속인 납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물론 그 괴상하게 생긴 깡통을 쓰고 다니는 걸로 유명한 매 모씨 정도로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긴 하겠지만, 그 새끼는 살아있는 중성자별이나 다름없는 놈이니까 논외고.
…아니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물어나 보자.
“야, 알프레드. 너 자기장 형성하는 걸로 총알 같은 건 아직 못 막지? 탄두가 납이라서.”
알프레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라도 들었다는 양, 눈썹을 가운데로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총알은 막기 힘들긴 하지. 근데 납탄이라서 못 막는 건 아니고.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납탄을 써? 다 열화우라늄탄이나 텅스텐 합금탄 쓰지. 상자성체라는 건 납과 똑같지만.”
다행이다, 다행이야.
내가 세운 계획이 아무 쓸모도 없어진 게 아니라서.
하마터면 병신 될 뻔했네, 진짜.
“너, 배 타고 가는 걸 진지하게 고려한 건 아니지? 설마.”
“그럴 리가 있나. 그럼 점수를 못 따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아카데미 측에서 보고 싶은 건 우리의 사건 대처 능력이지, 일방적인 학살이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임무를 해결해봤자 높은 점수를 기대하긴 힘들겠네.”
“그것도 염두에 둔 점이긴 해. 내 목표는 최고점을 받아서 이사장님 추천서를 따내는 거니까.”
“네가 웬일로 그런 데에 관심을 가져? 옛날은 기껏 준다고 해도 안 받는다고 해놓고선.”
“그거랑 이건 조금 달라.”
아카데미 측에서 나한테 이거 저거 많이 주려고 하긴 했었지.
근데 여태까지 그걸 다 거절했던 이유는 당장은 내게 별 쓸모가 없어서 그랬던 거다.
유명 히어로팀에 꽂아주면 뭐 해.
평생 말단 자리에 머문 채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가능성이 얼마나 큰데.
내 목표는 믿을 만한 사람을 추린 뒤, 나만의 독자적인 팀을 꾸리는 거라고.
그런 점에서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추천서랑, ‘이사장 클로에’의 추천서는 의미가 크게 다르지.
트리니티 아카데미가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기관이라곤 해도, 일단은 공식적인 교육 시설인 만큼, 누군가를 지원해주는 데에도 한계는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히어로 연맹에서도 크게 한자리를 꿰차고 있는 ‘클로에’의 추천서라면 어떨까?
‘나만의 히어로 팀 창단하기’ 정도는 씹가능하고도 남을 터였다.
“난 졸업하고 나면 나만의 팀을 만들 생각이거든. 근데 히어로 팀 창단이 어디 쉬운 일은 아니잖아? 클로에 이사장님의 추천서 정도는 있어야지.”
“네가 그런 건실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 자체는 옛날부터 해뒀었어. 여건이 안 돼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팀원 삼을 사람도 모을 만큼 모았고, 자금 문제 같은 것도 다 해결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나서려는 것뿐이야.”
“뭐, 그래. 응원한다.”
혹여 알프레드가 내 팀에 관심을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 외로 그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
‘블레이크의 예언을 100%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 말대로 이뤄지면 엄청 곤란한 사이가 될 테니까.’
카타리나, 알프레드.
둘 다 굉장한 전력이 될 테지만, 그렇다고 내 팀에 같이 들어왔으면 하는 인재들은 아니었다.
그랬다간 모두가 곤란한 사이가 될 게 뻔하니.
사실 그 정도로 끝나면 양반이지, 재수 없으면 팀 전체가 공중분해 되는 꼴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할 수도 있다.
“너희는 추천서 받으면 어디다 쓸 거라고 생각해둔 곳 있어?”
“아직.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 보고 쓰려고.”
“그것도 나쁘지 않지. 프리실라, 너는?”
“나, 나? 나는… 코스모스 특임대에 지원하게 도와달라 하려고!”
“아, 맞아. 그랬었지. 코스모스 특임대에 지원하고 싶다고… 그것도 나쁘진 않지.”
뭐, 레온 따라 가는 거니까.
아마 레온이 일을 그만 둘 때 쯤이면 프리실라도 같이 그만 두겠지.
그 정도 시간이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럼 일정은 이대로 가는 걸로 알게. 어차피 난 이번 임무에서 할 일이 그리 많지도 않으니, 그전까지 이 빌런들이 주둔하고 있는 섬에 대한 정보나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네.”
“그래 주면 고맙고.”
“난 그동안 비행 연습이나 좀 더 해둘게. 네 속도에 따라가려면 조금 벅차더라.”
그건 원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지만, 미안하다. 알프레드.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까 카타리나가 자꾸 가속을 붙여대더라고.
그 속도에 익숙해져 버렸어.
“아무튼, 그럼 오늘은 여기서 해산하자. 난 헬기 대여 해주는 사람한테 연락도 해봐야 해서.”
“그래, 수고 많았어. 들어가.”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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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실라는 솔직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차마 클로에에게도 건네기 부끄러운 말을, 어떻게 쉽사리 남들 앞에서 꺼내겠는가.
그저, 언젠가 그 말을 모두 앞에서 당당히 꺼낼 날이 오기만을, 프리실라는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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