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내릴걸.(4)
* * *
“이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하는군.”
“지금까지 강하한 횟수만 40번은 족히 넘는 것 같은데 당연한 거 아니냐?”
“그래도 분명 축하할 일은 맞다. 어디까지나 횟수가 40번이 넘는 거지, 기간으로 따지면 이제 고작 1주일 째니까. 기간으로 따지면 많이 발전한 셈이다.”
“그런가?”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
이 피곤한 짓거리를 온종일 매일 해댔는데 발전이 없으면 그건 억울해해야 할 일 아닌가?
아님 말고.
“그나저나, 금전적 문제는 대체 어떻게 해결할 셈이지? 매번 내 체험비까지 내주고 있지 않나. 이대로 가면 넌 빈털터리가 되고 말 텐데. 아무리 더블이라곤 해도 절감할 수 있는 비용엔 한계가 있다.”
“아냐.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 하던 대로 해도 돼.”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네 사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같은 클래스 친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아무리 학장님께 뜯어낸 돈이 있다 해도 그렇게 마구 써버려도 되는가 싶어서.”
“괜찮다니까 그러네. 나 돈 많아.”
“뭐, 네가 그렇다면야.”
내가 돈이 많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는지, 카타리나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해 보였다.
하긴, 매번 거지라고 징징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돈을 물 쓰듯 펑펑 쓰고 있으니, 믿기 힘들겠지.
그렇다고 돈의 출처를 알려줄 수는 없지만 말이야.
블레이크가 내게 준 돈은 명목상으론 아카데미에 투자하는 기부금이었던지라, 내 사리사욕을 채우는 용도로 막 써버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내게도, 블레이크에게도 좋을 게 없거든.
“아무튼, 이제 난 간다.”
“수고했다. 내일 보도록 하지.”
자, 그럼 카타리나도 돌아갔고, 슬슬 내 계획의 실현성을 증명해볼 차례군.
별일 없겠지?
* * *
예상대로 약속 장소에는 알프레드가 나와 있었다.
기분이 심히 좋지 않아 보이는 얼굴을 한 채.
“준비됐어? 알?”
“지랄 마라. 박.”
“알박? 어감 괜찮은데? 지옥의 알박 듀오 가즈아!”
“야,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야. 이거 잘 못 하면 진짜 너 죽는다고.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안 한다고 하고 싶거든?”
“그러니까 안 죽도록 잘 봐달라고 널 부른 거잖아.”
어딜 혼자 도망치려고 그러시나.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 보험이 바로 넌데.
“너, 이딴 거 시키려고 나랑 팀 짜자고 한 거지.”
“당연하지.”
“이 개같은 자식아! 너야 혼자 꼴아박고 뒈지면 그만이겠지만, 난 그 책임을 다 덮어써야 하거든?”
“어허, 안 될 거라고만 하지 마시고, 될 거라고 하세요.”
“그래… 네 말을 순순히 들은 내가 병신이지. 준비되면 말해.”
“바로 지금.”
다급하게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지만, 제대로 알아먹은 단어는 ‘미친 새끼’뿐이었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나머지 말을 전부 찢어 내버린 탓에.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분명 고도 1,500m에 자리 잡고 있다 했지. 그럼 대략 4,900피트란 소리니까… 빠듯하네. 거의 바로 낙하산을 펼쳐야겠는 걸.’
그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도 고도계에 적힌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만 있었다.
이는 곧 머뭇거릴 틈이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내가 만든 이 간이 낙하산에 문제라도 생겼다간 곧장 알프레드가 수습에 나서 줘야 하는데, 저 아래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사고가 난다면 대처가 힘들어질 게 뻔하니까.
‘부디 제대로 잘 작동해주면 좋을 텐데.’
펄럭 하는 소리와 함께 널찍한 천이 펼쳐졌다.
다만, 구조상에 문제가 있었는지, 예상했던 것만큼은 속력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꼼짝없이 바닥에 처박힐 게 뻔한 상황.
“야, 알프레드! 도와줘!”
“그럴 줄 알고 진작 같이 내렸다. 정신병자 새끼야.”
언제 왔는지도 모를 새에 내 옆까지 바짝 따라붙은 알프레드는 한숨을 한 번 내어 쉬고는, 낙하산의 캐노피 부분을 붙잡고 위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떨어지는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역시 저 비행 능력은 사기란 말이지.
이 실험 자체도 알프레드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던 실험이니까.
“죽다 살았구만.”
“솔직히 내리꽂는 걸 보자마자 바로 머리통이 깨질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의외로 잘 작동하더라. 보고 조금 놀랐어.”
“그럼, 반쯤은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한 셈인가?”
“캐노피 부분만 어떻게 조금 손보면 진짜로 가능해보이긴 하네. 그나저나, 대체 그 낙하산 줄 꼬임은 어떻게 해결한 거야? 그거 보자마자 좆됐다 싶어서 허겁지겁 날아갔는데.”
“아, 그거? 내려가서 설명해줄게.”
한참을 둥실둥실 하늘 위에 떠 있다, 비로소 랜딩 스폿으로 지정한 뱀머리 암초에 안착했다.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과정이 괴로우리만치 지루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한 건데?”
“잘 봐.”
마술이라도 부리는 양, 손가락을 튀기는 제스처를 한 번 취해 보였다.
사실 마술이라고 할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장난질에 불과했지만.
다만, 알프레드는 그 소소한 장난이 마음에 들었는지, 꽤나 격한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아마 다른 의미로 놀란 것 같긴 하지만.
“야, 시험용이라는 이 낙하산. 설마 네 사상력으로 만든 거였냐?”
“정답.”
“와, 넌 겁도 안 나냐? 아니, 발상 자체는 기가 막히긴 하는데. 미치겠네. 진짜. 대체 실패하면 어쩌려고 이딴 짓을 시도하지? 낙하산은 아무렇게나 천막 같은 물건을 펼친다고 다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넌 시발 메리 포핀스가 아니라고.”
“에이, 그 정도야 나도 알아. 내가 스카이다이빙을 얼마나 많이 해봤는데. 낙하산의 작동 방식이나 원리에는 익숙하다고.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도 열심히 알아봤고.”
“하아… 모르겠다. 말한다고 네가 들을 놈도 아니니까.”
“아니, 결과적으론 잘 됐잖아? 오히려 방금 같은 상황에선 실물 낙하산이 더 위험하다고. 낮은 고도에서 줄 꼬이는 사고가 생기면 사실상 컷오프 하고 구조만 기다려야 되는데. 지금은 그래도 적당히 수습할 수 있는 선에서 나온 사고니까.”
“애초에 시제품을 썼으면 그딴 사고가 벌어지지도 않으니까 말하는 거지.”
“그래, 미안하다. 미안해.”
“좆같은 새끼야, 좀!”
재밌다. 재밌어.
웃음이 절로 나오네.
그 성격 좋은 알프레드가 이렇게 사자후를 지르는 건 또 처음 보거든.
물론 빡칠 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야.
제이드나 제임스 같은 녀석이었다면야 ‘응. 뛰어서 뒤져 봤자 너 혼자 지옥가.’ 같은 식으로 농담이나 주고받았겠지만, 이 녀석은 빼다 박다시피 한 모범생이니까.
이런 비상식적인 짓거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그래서 더 재밌고 스릴 넘치는 법 아니겠어?
“아무튼, 아이디어 하나는 어썸하지 않냐?”
“뭐… 그건 부정할 수 없긴 하네. 적진에 접근하기 전에 항공기가 요격당하는 불상사만 일어나지 않는다면야.”
“무슨 소리야. 그럴 필요는 없지.”
“왜 그럴 필요가 없어? 맨몸 강하로는 접근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어. 그렇다고 낙하산을 빨리 펼칠 수도 없잖아. ‘나 쏴주세요’ 하고 광고를 하는 꼴인데. 멀리에 내린 다음 걸어서 진입하자니 그냥 평범하게 진입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고.”
“그래서 이걸 준비했지.”
쉬는 시간에 짬짬이 연습해가며 만든 윙슈트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윙슈트? 그걸 쓰겠다고?”
“그래. 네 말대로 맨몸 강하에는 붙는 데 한계가 있어서 찾아낸 대안이지. 실을 만들어내는 능력으로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 활용할 지형지물이 많은 공간에서야 그래플링만으로도 충분한 기동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게 불가능한 곳에선 이동에 큰 제약이 걸리니까. 하지만 이게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어?”
“진짜 별 개지랄을 다 보겠네. 근데… 재미는 있어 보인다.”
“역시 그렇지?”
꼴아박는 건 모든 남자의 로망이라고.
단지, 그 대상이 내가 되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니까 자제하는 것뿐이지.
나야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찬 퍼스트 펭귄 같은 새끼니 직접 하지 않고선 못 배길 뿐.
“근데, 그거, 만드는 데 실이 엄청나게 들어갈 것 같은데. 만들기도 쉽지 않아 보이고. 그 문제는 해결한 거냐?”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어. 실의 양은 충분하지만, 만드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 게 흠이지.”
“네 생각은 대충 알 것 같다. ‘윙슈트로는 주변 환경에 제약을 받는다는 점과 이동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다는 점을 극복하고, 그에 대한 리스크는 낙하산으로 덜어내겠다.’ 이거잖아.”
“정확하게 보셨습니다요.”
“이론상으로는 완벽할지 몰라도, 실전에 도입하기엔 아직 허점이 너무 많아. 만드는 데 오래 걸린다는 말은 곧, 윙슈트 전개 이후 저고도에 돌입한 뒤 빠르게 낙하산으로 전환하는 게 불가능하단 소린데… 게다가, 윙슈트는 낙하산보다도 조작이 훨씬 어려운 장비야. 괜히 고공 강하 훈련을 수백 번씩이나 받은 군인들도 거르는 게 아니라고.”
정론이다.
난 아직 윙슈트 체험에 필요한 스카이다이빙 라이센스조차 따내지 못했으니까.
애초에 그 라이센스가 있어도 대부분은 거기서 만족하지, 윙슈트로 넘어가는 스카이다이버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여기서 만족하기엔 내 능력이 너무 아깝잖아?
더 많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보험도 눈앞에 마련되어있는데,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지.
대다수의 윙슈터는 사망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사고를 입어 퇴역하고, 그러지 않은 윙슈터조차도 8할은 그럴 뻔한 위기를 경험했다곤 하지만, 나는 딱히 그걸 겪을 이유가 없거든.
일단 각성 상태 붉은색의 검신을 뽑을 수 있는 상태에 돌입하면, 반응 속도부터가 완전히 달라져서, 위기에 한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뭣보다 앞으로 난 발전할 여지가 꽤 많이 남아있기에, 나중이 돼서 더 많은 실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설령 사고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쿠션 같은 걸 만들어서 그에 대비할 수도 있게 될 테고.
그리고 그건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만간이 될 거다.
“그건 앞으로 차차 연습해나가야지. 난 다 계획이 있는 사람이거든.”
“지금처럼 날 부려 먹어가면서?”
“그게 아니면 널 왜 불렀겠어?”
“하 진짜 골 때리는 놈이다. 넌.”
“그래서, 도와줄 거야, 말 거야.”
“해야지.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난 뒷감당을 질 자신이 없거든. 난 마음 편히 오래 살고 싶다. 죽더라도 빌런들과 맞서 싸우다 명예롭게 죽어야지. 멀쩡한 사람한테 원한을 사서 미움받다 죽고 싶진 않아.”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됐고, 기왕 하기로 한 거 몇 번 연습이나 다시 하자.”
그 뒤로 연습은 열심히 했냐고?
아니, 전혀 안 했다.
몇 마디 더 나누다 보니, 화제가 자연스럽게 다른 쪽으로 옮겨갔고, 그 끝에 종착한 화제는 ‘낚시 포인트에 왔는데 낚시나 좀 하다 가자’가 돼 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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