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이어지는 길, 이어 나가는 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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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에 앞서, 질문 하나만 던져보도록 하겠네. 귀관은 니힐리스 경이 왜 외팔인지 알고 있나?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깊게 생각해 보게.”
…듣고 나니 뭔가 이상하긴 했다.
이 세계는 굉장히 앞선 문명을 보유한 세계.
절단 사고라도 이른 시간 내면 얼마든지 접합할 수 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상태라면 줄기세포를 이용해 팔 조직을 배양해내면 그만이었으며, 설령 팔을 잃었던 시기가 그만한 의료 기술이 없던 때라도 최근이라면 신경 회로와 연결이 가능한 의수 같은 것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세상이었다.
과거에 잃었던, 최근에 잃었던, 새로운 팔을 구하는 것쯤이야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뭣보다 니힐리스가 들려주었던 젊었던 나날의 이야기들은 외팔이가 이룩한 성과라곤 믿을 수 없었던 게 많았기에, 처음부터 팔이 없는 채로 살아온 것도 아닐 터였다.
그런데, 왜 니힐리스는 여전히 팔 병신 검사로 살아가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좀처럼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낙심하진 말게. 그만하면 충분히 고민한 것 같으니. 어차피 귀관이 답을 구했으리라고 물어본 질문도 아니었네.”
“그래서, 니힐리스의 한쪽 팔이 없는 이유는 뭡니까? 눈이야 워낙 섬세한 기관이니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팔 정도는 의수를 달면 그만이었을 텐데.”
“붉은색의 검신은 영혼을 베어낸다.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겠지?”
“물론입니다.”
“영혼이라니. 내가 젊었을 때라면 또 몰라도, 지금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 참으로 미신적인 단어지. 그런데도 여전히 그 괴이한 소문이 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 거라 생각하나?”
‘영혼을 베어낸다.’라.
그나마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본다면, ‘뇌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과 전기 신호에 의해 생성된, 생명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간 동안 유지되는 의식’이 되겠지만, 그건 ‘영혼’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모든 의미를 해석해주진 않는다.
사후 세계라든가, 윤회라든가, 다른 종류의 미신적인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므로, 굳이 ‘영혼을 베어낸다’라는 표현을 쓴 건, 그런 부가적인 요소들을 원천 차단한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리라.
한데, 사후 세계 같은 것들은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단순히 정신적 피해를 주는 공격이라고 여기자니 그건 그것대로 뭔가 이상했다.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였나? 간단하네. 영혼을 베어낸다는 건, 말 그대로 정신에서 어느 부분을 도려낸다는 소리지. 이를테면, 반신불수가 된 사람을 생각해 보게. 육체는 온전히 존재할지 몰라도, 정신에선 하반신이 도려져 나가 있지 않나.”
‘그럴듯한데?’
물론 이 또한 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틀린 이야기였지만, 적어도 논리상으론 크게 어긋나는 데가 없는 내용이었다.
니힐리스가 어쩌다 척안(??)이자 척완(??)의 검사로 살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기도 했고.
“그럼 다른 검좌나 제자 중 하나가 그의 좌측 상반신을 영식으로 베어 갈랐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평범한 상처였다면 충분히 회복해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영구적인 상흔을 남기진 못했겠죠.”
“그게 바로 나라네. 지금 알려주려는 기술이 그 상처를 남긴 기술이기도 하고.”
그는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가능했던 일이라는 듯이.
물론 사실이라면 대단한 과업이나, 그 진위는 조금 미심쩍었다.
‘다른 쟁쟁한 검좌들도 니힐리스에게 아무런 상처조차 남기지 못했는데, 일개 제자 중 하나에 불과했던 이 사람이 어떻게 그런 치명상을 남겼느냐’라는 이유 때문에.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데요. 실례인 것은 압니다만, 공은 그저 제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잖습니까. 다른 검좌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어떻게…”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했고, 난 그러지 않았을 뿐이네. 죽음을 불사하고 만들어낸 기술이었으니 말일세.”
“그럼 처음부터 공멸을 각오한 기술이었단 말입니까?”
“그렇네. 귀관의 말대로, 순수하게 기술과 힘만으로 니힐리스 경과 결투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기사단 역사 전체를 뒤져봐도 몇 명 되지 않을 테니. 그런 자와 맞서려면, 내 모든 것을 걸어야 하지 않겠나.”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
“그리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네. 누군가는 숭고한 전장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색 기사단은 한물간 기사도 따위에 젖어 낭만만을 좇는 이들은 아니었으니 말일세. 목숨을 건 혈투에선 뭐든지 용납할 수 있다고 여겼지. 나 또한 마찬가지고.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보는 편이 낫지 않겠나.”
하긴, 자색 기사단은 그런 놈들 뿐이라고 니힐리스도 그랬었지.
아예 맞춤 전략으로 자폭기까지 들고 온다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으리라.
“이해는 가는군요.”
“결국엔 내가 졌지만.”
“아뇨. 마지막에 웃게 되는 것은 공일 겁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어왔다.
“공의 말이 사실이라면, 공께서 이렇게 영혼 파편으로나마 남아있는 것도, 니힐리스가 완전히 베어내지 못한 사념이 남아있기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공의 유지를 이어 나갈 사람이 등장했으니,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공이지요.”
“그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돌연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잘 알 것 같구나.”
“무엇을 말입니까?”
“그 능구렁이 같은 세 치 혀를 놀려댔겠지. 필히 내 손녀딸도 그런 식으로 구워삶았으렷다. 고얀 놈.”
구워삶았다니.
말이 지나치시네.
내가 야부리를 많이 털긴 했어도,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전혀 없었다고.
“장난일세. 워낙 앙칼진 아이라 누가 데려갈까 고심이 많았거든. 임자를 한 번 제대로 만나서 고생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왜 제가 고생시킨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귀관이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 보게. 그 정도면 충분히 답이 되지 않겠나? 배우자로선 그만한 꼴통이 또 없을 걸세.”
반박할 수가 없네.
나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나의 수명이 반절은 줄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기행을 일삼은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사과할 것까진 없네. 말했다시피, 그 아이도 나에겐 꼴통 같은 아이였으니 말일세. 나만 고생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게 말하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나랑 잘 통하는 사람인 것 같아 다행이네.
“아무튼, 원래 의제로 돌아가자면, 내가 만들어낸 이 기술은 상대방의 기술을 되받아치는 반격 기술 중 하나일세. 문제는 튕겨내거나, 받아치는 기술이 아닌, 상대방의 기술을 고스란히 맞아준 다음에만 사용할 수 있다는 크나큰 단점이 있지.”
“맞아줘야만 쓸 수 있는 기술이라고요?”
죽음을 각오했니, 뭐니 하던 게, 정신론 같은 걸 이야기 하던 게 아니라, 진짜 죽을 걸 예상하고 쓴 거였다는 말이잖아.
이 양반도 보통 광인은 아니었구나.
“그렇다네, 니힐리스 경의 주요 전술은 상대방을 사지로 몰아넣은 다음, 주변의 모든 마나를 날려 버리고, 자신은 생명력을 치환한 마나로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것이지. 우리와 같이 마나를 사용하는 각성자는 무척이나 대응하기 어려운 전략일세.”
“하나는 언제든지 주변 마나를 날려버리는 능력, 하나는 자신만 마나를 회복하는 능력이라니. 대(?) 마나 각성자 용 사상력만 보유했다 봐도 무방한 수준인데요. 그건.”
“정확하네. 그래서 떠올린 방안이 그것이었다네. ‘나라고 주변의 마나만 사용할 게 뭐냐, 정 없다면 궁여지책으로 상대방의 마나를 빼앗아오면 되는 게 아닌가.’라는 방안.”
“그 방안이라는 게, 설마…”
“아예 검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우리가 다루는 마나글레이브 또한 칼날이 마나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상대방의 마나글레이브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마나를 흡수하여 상대방에게 그대로 되먹여 주는 것일세.”
언젠가 아이나가 내게 말하길, ‘할아버지는 너와 무척이나 닮았다’라고 했었는데, 이런 의미로 말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이런 발상을 떠올릴 리가 없었으니까.
나 같이 맛이 간 사람이나 떠올릴 법한 발상을.
“적어도 이론적으론 완벽한 기술이군요.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최악의 단점을 제외한다면.”
“아니, 귀관은 죽지 않네. 절대로.”
“네? 왜요?”
분명 ‘왜요?’라는 말은 어르신들이 아주 싫어하는 말투다.
그런데도 무심코 ‘왜요’라는 말을 써버린 건, 너무나도 당돌한 저 사람의 태도 때문이었다.
마치 ‘죽는 게 병신 아닌가?’라는 것처럼 의아해 저 태도.
“그야, 자색의 검신은 영혼을 보호하는 힘을 내려주니 말일세.”
여태까진 그저 내구와 내성, 정신력을 조금 올려주는 힘이라고만 여겼던 그 힘이, 사실은 영혼을 보호해주는 힘이었다니.
뭔가 바보가 된 것 같아 허탈해진 기분이었다.
아니, 그보다 이 사람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람.
자색을 뽑아낸 사람은 분명 나 뿐이라고 그랬었는데.
“헌데, 공께선 그 사실을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죽기 직전, 자색의 영역에 도달하기라도 하신 겁니까?”
“아니. 이 심상 세계에 들어온 것을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네. 여긴 완전한 내 공간임에도, 귀관은 아무렇지 않게 이 안을 활보하고 다녔지. 주변으로부터 스며드는 마나압과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듯. 거기서 곧바로 깨달았다네. 적(赤)은 영혼에 상처를 내는 힘을, 자(?)는 영혼을 보호하는 힘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그 말에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자색의 영역을 돌파한 줄 알고 걱정했거든.
그럼 니힐리스 말고도 적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니까.
그런데도 구태여 ‘조금’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헌데, 니힐리스가 사상력으로 주변 마나를 몽땅 다 날려 버리면, 전 자색 검신을 어떻게 뽑아서 방어하죠? 칼이 몸에 들어오는 순간, 이미 제 영혼은 상처 입을 텐데요.”
“그건 귀관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지. 난 니힐리스를 이기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이지, 니힐리스로부터 살아남는 기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니 말일세.”
어깨를 으쓱하는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손서(?)니, 뭐니 추켜올려놓고선, 이렇게 무책임하게 날 죽게 둬도 되는 거냐고.
“정말이지 너무하시는군요.”
“너무한 건 귀관 아닌가? 내가 살아서 남겼던 모든 걸 가져가 놓고선, 덤까지 얹어달라고 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남겼던 오의와 정통성, 거기에 어여쁜 손녀딸까지. 아주 날강도가 다름없지 않나.”
빙글빙글 짓궂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나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한 것만 같아 조금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악랄하고 비열한 자식’이라고 부를 때,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거니까.
물론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나쁜 자식이 맞긴 했지만, 저렇게 맥일 것까지는 없잖아.
“칼이나 뽑아보게. 기술을 보여줄 터이니.”
“그 말인즉슨, 저보고 공을 공격하란 말씀이십니까?”
“물론이네. 진심으로 오게나. 해묵고 낡아 비루해진 정신이지만, 아직 칼을 잡는 법 정도는 기억에 남아있으니.”
“그럼, 가겠습니다.”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경외심을 담아, 칼끝을 겨누고, 베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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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았던 것은 확실하다.
한데, 어째서 도리어 당하고 있는 건 나인가.
그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에도 줄기를 거스르는 와류는 차근차근 내 팔을 찢어 나갔다.
아니, 실제로 도려져 나간 살점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그러한 감각이 몸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억해두게. 지금, 이 순간을. 이 감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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