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쇼다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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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시원하니 아주 마음에 들어. 그럼 게임의 규칙부터 설명하도록 하지. 혹시, 대부호라는 카드게임 알고 있나?”
“보드게임 카페 같은 곳에서 본 적은 있는데, 정확한 규칙은 몰라요. 그래도 계급 트럼프 비슷하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지금 하려는 게임도 대충 그런 게임이거든.”
잭슨은 이런 상황이 무척이나 자주 있었다는 듯, 익숙한 모양새로 선반 속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왔다.
의외로 상자 속에 들어있는 물건은, 트럼프 카드나 야바위용 컵 같은 게 아닌, 웬 분동이었다.
과학 시간에 무게추로 쓰는 그 물건 말이다.
“분동?”
“그래, 맞아.”
“이걸로 무슨 게임을 하는 겁니까?”
“간단한 게임이야. 양 측에겐 분동이 무게별로 10개씩 지급되고, 판마다 원하는 분동을 하나씩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 더 무거운 분동을 올려놓는 사람이 승리하게 되며, 승리자는 패배자가 내놓았던 분동을 가져가지. 그러다 어느 한쪽이 가지고 있던 분동을 모두 잃게 되면 패배하는 게임이다.”
“어렵지는 않은 룰이네요. 대부호 이야기를 하셨던 걸 생각하면, 혁명 같은 걸로 분동의 등급을 뒤집을 수 있을 테고.”
“비슷해. 다만 혁명 같은 게 필요가 없을 뿐이지. 가장 작은 분동은 모든 분동에게 지지만, 가장 큰 분동을 이긴다. 굳이 혁명이 없는 이유는 간단해. 이 게임은 덱에서 카드를 뽑는 구조도 아니거니와, 사용한 분동을 버린다는 규칙도 없으므로, 사실상 가장 높은 등급의 분동만 계속 내는, 루즈한 양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지.”
“그와 더불어, 크기가 큰 분동은 한 손에 딱 들어오지 않으니, 상대가 뭘 내는 지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할 테고.”
“맞아. 그것도 이유 중 하나지. 우선, 네 몫의 분동부터 챙겨 가. 이상이 없는지 잘 확인하고.”
가져온 분동에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외관도, 질감도, 무게도, 과학 시간에 사용하던 분동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은색 분동이었다.
“평범한 스테인레스 분동이네요.”
“그렇지? 적어도 이 분동에는 어떠한 장난질도 쳐두지 않았어. 확인도 시켜주지.”
저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수평을 이뤘다.
분동 열 개를 한꺼번에 올려놓든, 각자 따로따로 한 개씩 올려놓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 저울은 물건의 무게가 아닌 가치를 판단하는 저울이니까.
내 분동을 가져가는 동안에 장난질을 해놨을지 누가 아는가.
잠깐 사이더라도 보이지 않는 각도로 작은 스티커 같은 것을 붙였다 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고작 그 정도 트릭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확인했습니다.”
“좋아. 그럼 게임을 시작하자고. 미리 말해두는 거지만, 이 게임은 누가 사기를 치든지 간에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게임이야. 자신 있다면 얼마든지 쳐 보라고.”
‘누가 사기를 치든지 간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이 대목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그 말은, 참가자 이외의 제3자 또한 이 게임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물론, 이건 사실상 잭슨의 배려나 다름없었다.
아이나는 어차피 내 편일 테니 말이다.
아마 자신에게 상당히 유리한 게임이니, 내게도 어드밴티지를 주는 것 같았다.
“괜찮네요.”
“그렇지?”
잭슨은 씨익 웃어 보이고는, 곧장 가려진 상자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어떤 분동을 사용할지 미리 정해두기라도 했다는 듯.
‘과연 내가 아는 트릭만 가지고도 잭슨을 이길 수 있을까?’
이런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트릭은 무수히 많지만, 마술이나 도박 기술 같은 걸 전혀 배워본 적이 없는 나로서 시도해볼 법한 트릭은 겨우 두 가지뿐이었다.
첫 번째는 쥔 주먹의 모양새로 상대를 속이는 방법.
큰 분동이 들어갈 만큼 넉넉한 공간을 손의 틈 사이에 주어놓고선, 사실은 작은 분동을 넣어놓는 방법이다.
너무나 1차원적인 방법이기에, 잭슨과 같이 노름에 도가 튼 사람에겐 그다지 먹힐 것 같진 않지만.
두 번째 방법은 분동의 밑바닥에 패인 아주 얕은 홈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첫 번째 방법보단 그나마 통할 가능성이 큰 방법이었다.
기껏해야 10원짜리 동전 한두 개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좁은 공간이라곤 해도, 판도를 뒤집기엔 충분히 넉넉한 공간이다.
작은 보석 같은 걸로 빈 홈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니까.
당장 내게 그런 보석이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그걸 대체할 만한 물건은 하나 있었다.
바로 마나실.
모기향처럼 둥글게 말아놓은 마나실을 분동 밑바닥에 붙여서 올려 놓는 거다.
저울의 가치 환산이 끝나면 곧바로 실을 없애고.
마나실의 정확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기에 승리를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럴싸한 아이디어임은 틀림없었다.
그야, 니힐리스가 내게 선물로 주었던 프리즘과 렌즈만 해도 어지간한 보석의 가격을 아득히 뛰어넘는 물건이었으니까.
“뭘 쓸지 고른 모양이군. 그럼 각자 정한 분동을 올려놓아 보자고.”
잭슨이 올려놓은 분동은 3번째로 큰 분동.
내가 고른 것은 6번째로 큰 분동이었다.
하나, 저울은 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런! 내 예상보다 룰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군.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겼다. 가져가.”
이기긴 했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
나는 잭슨이 어떤 트릭을 쓰는지, 몇 가지의 트릭을 사용할 줄 아는지 모르니까.
이것만으론 이길 거라 확신할 수 없었다.
“다음 판 가시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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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했다.
다음 판도, 그다음 판도, 그 다다음 판도 모두 내가 이겼음에도, 잭슨의 기색은 여전히 밝기만 했으니까.
심지어 그의 상자엔 이제 1번, 2번, 10번 분동밖에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슬슬 분기점이군.”
“네?”
“아무것도 아니야. 게임이나 계속하지.”
나와 잭슨이 저울 위에 분동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저울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고요하게 수평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잭슨의 표정에 처음으로 변화라는 것이 찾아왔다.
“…조금 실망스럽군.”
“뭐가요?”
“준비해온 수단이 고작 이것뿐이라면 내가 이긴 것 같아서 말이야.”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 이윽고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후로 잭슨은 단 한 번도 게임에 지지 않고 승리를 이어나갔으니까.
이제 내 손에 남은 것이라곤 1번 분동과 10번 분동 둘뿐이었다.
‘낭패다. 이렇게 되면 승산이 사실상 0에 가까워.’
그나마 승산이 완전히 0이 아닌 이유는,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완전한 자색 실을 뽑아내는 것.
게임에 내리 패배하는 동안 저울의 기울기를 유심히 살펴본 결과, 잭슨은 아슬아슬한 차이로 게임에서 이기고 있었다.
방금 판처럼.
나는 자홍색 실을 깔아둔 2번 분동을, 잭슨은 3번 분동을 올려놓았었고, 결과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잭슨의 승리였다.
그 말인즉슨, 여태껏 사용해온 자홍색 실이 아닌, 자색 실을 사용한다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잭슨은 자색 실을 깔아둔 1번 분동을 잡을 수단이 없어진단 이야기니까.
‘문제는 자색 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거지. 자색 검신이나 자색 실을 뽑아내는 순간엔 내 마나가 가시화(??化)되어서, 트릭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잭슨에게 들키고 말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
“아이나, 손 아래의 그림자를 움직여서 내가 어떤 분동을 낼지 알려주는 건 룰 위반이다.”
“그럴 리가요.”
“저울에게 맹세할 수 있나?”
“고작 그런 일로 친척 손녀의 목숨까지 탐하실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실랑이할 시간에 저울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빠르지 않을까? 네 성격상, 자신이 있다면 곧장 응했을 텐데?”
그 무엇조차 아이나와 맞닿아 있는 것이 없었음에도, 나는 아이나가 어떤 의도로 저런 행동을 했는지 곧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바로, 내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아이나가 어떻게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알아차린 이상, 나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해야만 했다.
잭슨의 이목이 아이나에게로 돌아간 지금이, 자색 실을 만들어낼 유일한 기회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기에.
‘제발, 조금만 더… 됐다!’
뽑아둔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분동 밑으로 숨긴 뒤, 그만하면 되지 않았냐는 듯이 잭슨을 향해 헛기침을 한번 해 보였다.
“크흠, 슬슬 게임을 재개하죠. 이미 걸려버린 마당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같은 방법으론 더 이상 절 도와주지도 못할 거고요.”
“음, 그럴까? 근데, 어째 갑자기 표정이 확 폈군그래. 갑자기 이길 자신이라도 생겼나?”
“네.”
“좋아, 그렇다면 마지막 쇼다운을 시작해보자고.”
저울이 천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방향은 나가는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한, 그곳은 내가 서 있는 곳이기도 했다.
“…정말이었어! 정말이었다고! 드디어 주인이 나타난 셈이로군!”
잭슨은 열심히 무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내 귀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 승리의 기쁨을 아이나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그녀 또한 나와 생각이 같았는지, 안아달라는 듯이 두 팔을 벌려왔다.
당연히 거기에 호응해, 그녀를 들어 안았고.
“눈썰미 좋은데, 아이나?”
“우리,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이잖아?”
부드러운 손이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공주님 안기라고 부르는 이거, 생각보다 불편하네.”
“그래서, 하지 마?”
“시끄러워.”
목을 휘감은 양팔이 거칠게 날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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