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비밀은 언젠가 들통나게 되어있는 법.
* * *
카즈나리가 마련해준 방엔, 제 안방인 양 자리를 튼 아이나가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격식을 차린 복장이 아닌, 느슨하게 풀어진 모양새로.
그 모습에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만데 새삼스럽게 이런 일로 놀라는 건가 싶겠지만, 내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아이나는 이런 살갗이 많이 드러나는 옷을 입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심지어 자는 순간까지도.
끽해야 작년에 수영복을 입었던 적 한 번뿐이었다.
그마저도 본인의 의지로 했다기보단 내게 보상 차원 같은 의미로 해준 거나 다름없었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뭐 해?”
“너 기다리고 있었지.”
나른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아이나는 살포시 나를 껴안고는, 침대로 끌고 갔다.
그 행동이 퍽 자연스러웠던 탓에, 나마저도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휩쓸릴 뻔했으나,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다.
얼굴을 맞댄 채로 누워있는 아이나의 낯빛은 그다지 자연스럽지 않았으니까.
새빨간 홍조로 얼굴을 잔뜩 물들인 모습.
그녀답지 않게 무척이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만 짓고 있기로 유명한, 그 아이나가.
그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그럼에도 그녀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보이기 싫어하는 그녀인데.
“뭐,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그냥. 예뻐서.”
아이나의 얼굴이 한층 더 붉게 달아오르려는 장면이 내 눈에 들어오기 직전.
이 이상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그 모습을 눈에 새기기도 전에 그녀는 내 입술을 향해 돌진했고, 그 돌발적인 공격은 어느 때보다 격렬한 입맞춤의 개막을 의미했다.
이따금 숨을 들이쉬기 위해 입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서로를 원해왔을 정도였으니까.
엷은 실선이 무수하게 이어지고 끊어지고를 반복하던 끝에, 우리는 어느샌가 헝클어지고 너저분해진 연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흐트러진 아이나조차 나에겐 여전히 어여쁘고, 놓아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성진아.”
“응?”
“내가 더 이상 네 마음에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 진짜 이유, 혹시 알아?”
‘마음에 비집고 들어간다.’
아마 자신의 서드 어빌리티, 정신 지배를 이야기하는 거겠지.
그걸 굳이 사용하지 않는 이유야 나로선 당연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구태여 알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녀를 믿으니까.
“모르겠는데. 몰라도 괜찮고.”
“너를 더 알고 싶어서야.”
가녀린 두 손이 내 손을 맞잡았다.
“좋아하는 너도, 미워하는 너도, 이해할 수 없는 너도, 모두 알아가고 싶어.”
“그래서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고, 바보 같은 면이 있는 네가 오히려 더 좋아. 너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 버렸다고 생각한 참에도, 넌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그리고, 너에 대해 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나에 대해 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어 말을 끊고 끼어들려 했으나, 아이나는 그럴 여지를 전혀 주지 않겠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미리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보다 값지고 중요한 건, 알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경험이야. 다른 누군가에 대해 알았다는 그 경험. 그걸 처음 일깨워준 게 너였어.”
“어쩌면 내가 너무 둔해서 여태 그걸 못 알아차린 걸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젠 알아. 마음이 이어져 있으니까. 마음만 이어져 있다면, 나처럼 둔해 빠진 사람이라도 아주 천천히나마 상대방을 알 수 있게 되더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경험에선, 이 애타는 간질간질함을, 아려오는 마음을, 살갑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없었어. 그건, 오직 너에게서만 찾을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맞잡은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곧 놓칠 것처럼.
그래서, 나는 손을 더욱 굳세게 쥐었다.
내 안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너도 한 가지만 알아가 줘. 네가 날 떠나기 전에, 널 기억할 만한 확실한 무언가를 남겨줄 수 있는지.”
가슴이 철렁였다.
무심코 손을 놓아버릴 뻔할 정도였으니까.
아이나는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조금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거 봐. 언젠간 조심스럽게 놓아버리려고 그랬지? 아깐 그렇게 다정하게 붙잡아놓고선.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
아이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무척이나 애달파 보여서, 무슨 말이라도 꺼낸다면 곧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이 연약해 보였다.
“어떻게 알고 있었냐는 질문은 하지 마. 네 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데, 이 내가 그것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잖아? 넌 말이야, 중요한 순간엔 항상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보고 있단 말이야. 나 뿐만이 아닌, 그 누구조차 내다 볼 수 없는 먼 곳을.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곳을. 차마 같이 바라볼 수도 없는 곳을.”
“그러니까 증거가 필요해. 네가 내 곁에 있었다는 증거. 언젠가 네 마음이 돌아설 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날 떠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도, 널 기억할 수 있는 증거.”
“내가 대담해진 이유는 그거야. 아버지의 허락도 떨어진 마당에,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 이 몸에, 마음에, 네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겨줘. 사실 그보다 더 좋은 증거도 있겠지만, 아직은 조금 이르잖아? 지금부터 예행 연습에 들어가자는 거지.”
아이나가 조심스럽게 앞섶을 풀어 헤치려 들었다.
당연히 나는 제지했고.
“왜…? 왜 멈추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슨 짓이냐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노려보는 아이나.
하나, 그녀의 눈에는 저항할 기색도, 독기도 전혀 맺혀있지 않았다.
담겨있는 것이라곤, 차오른 눈물뿐.
“이 순간을 바라왔지, 이런 순간을 바라오진 않았잖아.”
“내겐, 아니, 네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잖아.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떠나지 않을게. 설령 떠나도 반드시 돌아올게.”
“거짓말, 거짓말이잖아! 이렇게 상냥하게 다독여주고는, 언젠가 훌쩍 떠날 셈이잖아.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그러니까, 날 말리지 말아줘. 부탁이야.”
아니, 아니다.
상냥한 건 결코 내가 아니었다.
상냥한 건, 울분을 토해내도 모자랄 마당에, 혹여 다른 사람들의 귀에 우리의 이야기가 흘러 들어갈까, 나지막한 소리로 흐느끼는 그녀였다.
내가 아니라.
그렇기에, 나는 ‘평소의 아이나’에게서 힘을 빌려야만 했다.
지금 여기 있는 상냥한 아이나가 아닌, 매사에 냉정하고 철두철미한 아이나라면 명확한 답을 내려줄 수 있을 테니까.
“진정해, 아이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나를 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게 ‘원래의 미츠루 아이나’였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아이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자, 다시 생각해봐. 네가 화났을 때마다 나한테 늘 하던 이야기가 있지? 그거야. 너는 이미 내가 떠나지 못하게 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그렇게 해도 돼.”
그 말에, 순식간에 아이나의 눈에 총기가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떠올린 것이었다.
원래의 아이나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해나갔을지.
“그래, 이제 알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얼굴에선 서글픔이 조금씩 달아나고 있었다.
그 빈 자리는 다른 것들로 메워지기 시작했고.
이를테면, 기쁨 같은 것 말이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넌 가끔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아. 비상하다고 해야 할지, 제대로 맛이 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런 방법을 생각해낸다는 것 자체가.”
“그게 내 방식이잖아. 옆에서 늘 봐왔으면서, 뭘.”
“난 사랑하는 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그 방법은 나로서도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라고.”
“바보 같긴. 원하는 걸 갖기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며. 그게 아이나만의 방식아니었어?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이거야말로 진정으로 ‘아이나’답게 쟁취하는 방법이지.”
어디 한 번 마음대로 해보라는 의사 표시로 아이나에게 가슴팍을 펴 보였다.
다만, 아이나는 정말 감당할 수 있겠냐는, 마치 걱정된다는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내 마음대로 해도.”
“얼마든지.”
“그래, 네가 정 그렇게 원한다면야. 나중에 평생을 암흑 속에서 살게 돼도 다른 말 하기 없기야.”
그래, 상냥하고 따스한 모습의 아이나도 물론 좋지만, 역시 이런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아이나가 내겐 더 익숙하단 말이지.
말은 누구보다 무섭게 하면서도 내 옆에 딱 달라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괜찮아. 그래도 내 옆에 있어 줄 거 다 아니까.”
“응, 영원히.”
내 품에 안긴 그녀가 싱긋 웃어 보였다.
여태까지 했던 그 무엇보다도 섬뜩한 말을 내뱉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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