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8화 〉 슈어사이드 스쿼드? (138/173)

〈 138화 〉 슈어사이드 스쿼드?

* * *

이로써 스쿼드 자체는 거의 완성한 셈이로군.

장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물자들을 공수해 오는 병참 담당, 윌리엄.

정계와 언론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신디케이트를 구축해놓은 작전 담당, 블레이크.

아이나, 프리실라, 카타리나, 천현우 등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게 될 공격대원의 전투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굳이 부족한 점을 꼽는다면 아군을 직접적으로 보조해줄 서포터, 힐러의 부재 정도?

사실 믿음직한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긴 하지만… 그건 내가 열심히 굴러서 해결하는 수밖에.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럿의 이견을 조율하는 것까지 전부 혼자 도맡아 하려니 막막하긴 해도, 어쩔 수 없다.

모두 내가 불러 모은 사람들이니까.

그나저나, 블레이크가 곧 재밌는 기사 하나가 뜰 거라 했는데, 그거부터 뭔지 확인해 봐야겠네.

[‘블레이크 크루제’ 트리니티 아카데미에 5천만 달러 기부로 화제.]

[‘신비주의자’ 블레이크, 용감하게 그의 비밀 채널에 접속한 생도들은 누구인가?]

[블레이크 “이미지 쇄신을 위한 생색내기 아니다. 재능 넘치는 생도를 위한 기부.”]

[트리니티 아카데미 “사전에 이야기한 적조차 없는 기부였다” 밝혀…]

5천만 달러면 얼마냐.

대략 6백억이잖아.

그걸 그냥 ‘기부금’으로 퉁치고 아카데미에다 쾌척했다고?

이런 기사가 쏟아질 만도 하네.

세간에 알려진 블레이크의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으니까.

이거, 분명 트아카 앱도 한바탕 난리가 났겠는데.

[기부금 자기랑 아무 상관도 없는 곳에 갈 것 같으면 개추 ㅋㅋ]

[일단 나부터]

[추천 512 비추 8]

그 채널에 블레이크 섹스 비디오라도 있었나 보네

└그거 아니면 말이 안 되긴 함

└킹리적 갓심 ㄷㄷ

트리니티 아카데미 돈 존나 썩어 넘치지 않냐? 중간에서 꿀꺽하는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응 그래도 우리한테 안 와

└ㄹㅇ 중간에 때 먹히는 일 없어도 우리한테 오는 일은 없을 덧

근데 주목하고 있다는 생도는 누구임?

└알프레드랑 박성진 준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 앱 교직원들도 쓰지 않음? 직원분 중에선 아는 사람 없나?

└본인 직원인데 기사 뜨고 나서야 알았음…

그냥 5천만 달러 달라고

예상대로 트아카 앱은 개판이었다.

입금 인증 주작부터 시작해서, 교직원 사칭, 구걸충까지.

온갖 어그로꾼이 범람했다.

저 돈 대부분을 내가 받게 될 거란 사실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걱정되는 마음에 이 논란의 불씨를 피어오르게 만든 주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사 뜬 거 봤나 보네?

“아니, 그냥 몰래 몰래 주면 되는 것 아녜요?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그럼 나중에 사전 접촉이니 뭐니 하면서 계약 관련으로 지랄하는 놈 생겨. 그거 건수 잡히면 진짜 처리하기 귀찮아진다. 그냥 대충 ‘내 비밀에 대해 알아낸 천재!’ 이런 식으로 포장하는 게 나아.

“그런 문제도 있었군요.”

안타깝게도 난 법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다.

특히나 각성자와 관련된 법안 같은 건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엔 전혀 없던 것들이라.

여기선 그냥 블레이크의 말을 듣는 게 훨씬 나으리라.

­아무튼, 너한테는 꽤 큰 돈이 들어갈 거야. 요긴하게 쓰라고. 언제까지 윌리엄한테서 뜯어낼 생각은 아니잖아?

“그래봤자 채권이 윌리엄 영감한테서 아저씨한테로 넘어간 것밖에 되지 않잖아요.”

­일단 돌려막기가 된다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 돈으로 전쟁 준비나 열심히 해. 맞서 싸울 상대가 누구인지 감안하면 푼돈에 지나지 않아.

블레이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에 순간 나까지도 무심코 그런가? 하고 넘어갈 뻔했다.

이거, 분명 주변에서 엄청나게 이목을 끌어모을 텐데.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와중,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나야, 세레나. 지금 바쁘거나 한 건 아니지?

“네.”

­그래, 기사 난 건 봤을 거야. 그 기부금 중 일부가 우리 동아리 쪽으로 온다고 하더라고. 너희가 동아리 활동하면서 알아낸 거라면서? 도시전설 동아리라니, 웬 생뚱맞은 동아리인가 싶었는데, 생각 외로 하고 있던 게 많았나 보네?

이런 방식으로 처리했다니.

블레이크도 정말 우회 경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았군.

유명 인사와 딥웹의 상관관계?

음모론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가십거리임이 틀림없지.

도시전설로 각색되기에도 아주 좋은 소재고 말이야.

때문에 우리 동아리에서 세운 공적이라 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긴 하지만.

“뭐, 어쩌다 보니 알게 된 거지만요.”

­그래도 잘한 건 잘한 거야.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대중들에게도 잘 먹히는 이야기라서 더 좋아.

“저도 기부금 이야기는 처음 듣는 거라 조금 얼떨떨하긴 한데, 그래도 금전적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좋네요.”

­나도 좋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성과가 나온 셈이니까. 덕분에 낙하산 인사라고 까이는 일은 줄어들겠네.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지원금 좀 달라고 굽신거릴 필요도 없고.

세레나 성격에 그러고 다녔을 것 같진 않지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러고 다녔을 수도 있겠다.

주먹을 들이밀었다는 사소한 차이만 있을 뿐.

“아무튼, 교수님은 방학 잘 보내고 계세요?”

­둘이 있을 땐 누나라고 부르래도.

그 컨셉 아직 유효한 거였구나.

전생의 나이까지 고려하면 실제로 누나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긴 하지만, 정황 상으론 영 어색하기 짝이 없는 호칭이었다.

실제로 그렇잖아.

가장 이상한 건 누나란 호칭 그 자체다.

서양에선 남매가 아니고선 누나라는 호칭을 안 쓰니까.

게다가 나와 세레나 사이엔 교수와 학생이라는 신분적 차이도 있는 데다, 현재 내 나이는 22살도 아니었다.

이렇다 보니, 입에 영 붙지 않는 말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요. 원래 누나라는 호칭은 서양에서 남매끼리만 쓰는 말이잖아요. 시리얼 카드에 내장된 번역 기능의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뭐야, 그런 문제로 부르기 꺼려하는 거였어?

“그 이외에도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게 가장 크죠.”

세레나가 내 대답에 폭소를 터뜨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 포인트라 할만한 부분은 없었는데.

­어떻게 보면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마 애칭으로 불러달라 한 게 그렇게 번역된 걸 테니까.

그제야 나는 왜 세레나가 단둘이 있을 때만 누나라 부르라 한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국에선 범용적인 호칭인 누나가 문제 될 게 뭐가 있나 싶었거든.

근데 애칭의 의미로 사용해달라는 거였다니.

그래, 분명 다른 이가 있는 자리에서 그 말을 꺼냈다간 칼침을 맞았겠지.

물론 그걸 이해하고서도 당황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럼, 지금까지 쭉 애칭을 써달라 했단 말씀이시네요.”

­응. 어쩐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더라. 그게 한국어로 무슨 의미인가 찾아본 뒤로는 ‘연상 취향의 여자를 좋아하는 또라이구나’ 정도로 넘기긴 했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긴 했다.

난 연상 취향을 좋아하는 게 사실이니까.

아이나도 마찬가지인 이유로 좋아했다.

몸매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빈약할지라도 성격이나 내면적인 부분에선 나보다 연상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세레나를 애칭으로 부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로 쓴 게 아니었어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그런 의미로 쓰면 되겠네. 오히려 좋은 걸.

세레나의 목소리가 고조되어간다.

그녀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에 주로 보이는 버릇이었던 탓에 그 광기 어린 미소마저 눈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래도 마냥 싫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세레나란 사람 자체엔 싫어할 요소가 거의 없었으니까.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면모가 몇몇 사람들에겐 걸림돌이 될 수 있겠으나, 난 수비 범위가 매우 넓은 사람인지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뒷일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흔쾌히 세레나의 요청을 받아주기로 했다.

“그래서, 누나는 방학 동안 잘 지냈어?”

­어, 응… 잘 보냈지. 방학. 성진이 너는?

“얼마 전까진 바쁘게 지내다가, 이제야 좀 쉬고 있어. 한동안은 이리저리 뛰어다닐 일도 없어서.”

­잘됐네.

세레나의 말수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애칭이라고 생각하니 부끄러움이라도 타는 건가?

그 세레나가?

그것참 이상한 일이네.

막상 자리 깔아주면 어물쩡거리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긴 하다.

하나, 내가 아는 세레나는 그런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다.

“누나, 왜 갑자기 조용해졌어?”

­아냐, 그냥. 피곤한데 귀찮게 해서 싫지? 미안, 푹 쉬어!

세레나는 내 인사조차 받지 않은 채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까지 크게 낯간지러운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세레나도 나처럼 쑥맥이었던 건가?

이거, 역으로 놀려먹기엔 아주 좋겠는걸.

전혀 예상치 못한 약점을 하나 알아냈군.

여태까진 매번 세레나한테 당하고만 살았는데, 드디어 내게도 반격할 수단이 생긴 셈이었다.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겠어.

다음엔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보든가 해야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