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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화 〉 블레이크 크루제.(3) (136/173)

〈 136화 〉 블레이크 크루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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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천극천체(????)를 갖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실현 여부는 둘째치고, 저는 천마가 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는데요. 그놈들이 미쳤다고 갑자기 저를 후대 천마로 추대하고 싶은 것도 아닐 테고.”

“그건 당연히 아니지. 내 말은, 자네와 천마가 친분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일세.”

“천마는 지금 디스트럭트 오비탈에 갇혀있지 않습니까.”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빙빙 돌아가게 만들 셈인가? 다 알면서 그러는군. 조만간 디스트럭트 오비탈에서 천마가 빠져나올 거란 것을.”

“그거야 알죠. 근데, 제가 무슨 경위로 천마랑 친분을 갖게 되느냐, 이 말입니다.”

천마는 명백한 악 성향의 빌런이다.

그것도 어떤 사연이 있다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가혹해진 사례가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살육과 파괴를 즐기는 빌런.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다른 부류의 인간인데, 그런 놈이 나와 친해지게 된다니, 좀처럼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아,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로군. 그렇다면야, 뭐. 내 친히 설명해주도록 하지. 자네의 주변에서 천극천체를 물려받을 사람이 나올 거야. 이제 이해가 됐나?”

“예?”

그러니까, 나랑 친한 사람이 천마가 된다 이거 아니야.

이렇게 뜬금없이?

내 주변에서 천극천체를 탐낼 만한 녀석은 딱히 없어 보였는데.

그렇다고 악의로 가득 찬 마교놈들이 내 주변 인물을 천마로 선출하진 않을 거고.

대체로 착해빠진 녀석들 뿐이니까.

그나마 비슷하게 빌런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 해봐야 아이나나 세레나 정도인데, 그 둘은 딱히 천극천체를 탐낼 이유가 없다.

“잘 모르겠네요. 제 주변에선 천마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어서.”

“뭐, 난 동양의 그 천마가 뭘 의미하는지는 잘 모른다네. 무난하게 직역한 데몬 로드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라 하고, 강한 힘으로 세상을 뒤엎으려 하는 혁명가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하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란 말이지.”

“어차피 그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천마를 소재한 소설이 하도 많아서, 해석하기 나름이니.”

“그렇지. 핵심은 그 천마라는 놈이 물리적으로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거니까.”

“네, 굳이 따지면 사악한 짓을 일삼는데 거리낌이 없으면서 강한 거겠지만요.”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고 하던데? 그냥 좀 괴짜 같은 구석이 있으면서 최강의 자리에 올라선 사람은 죄다 천마라고 하는 것 같더군.”

일리가 있는 말이다.

댄싱천마 마이클 잭슨도 있고, 우주천마 다스베이더도 있는 마당에, 뭔들 천마 칭호를 못 붙이겠는가.

이 시대는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나타난 강자라면 뭐든 천마라 불러도 상관없는 시대였다.

“그렇긴 하죠.”

“자, 그럼 질문 하나 하겠네. 자네는 천극천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힘으론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신체를 주는 사상력 아닙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네. 그게 세간의 인식이긴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

틀렸다니.

원작의 설명에 의하면 분명 그런 내용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갖게 해주는 사상력.

실제로 천극천체를 지녔던 천마들은 모두가 물리적으로 지형을 뒤바꿔 버릴 정도의 괴력을 자랑했다.

그게 모든 히어로들이 천마를 경계하는 이유기도 했고.

한데 갑자기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소리를 들으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원작의 내용이 틀렸단 말인가?

“하지만 천마들은 전부 그 내용에 부합하지 않습니까.”

“반대로 자네에게 묻겠네. 그렇게 단순하게 강해지기만 하는 능력이라면, 그 천마의 시다바리 녀석들은 왜 후대 천마를 선정하는데 그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겠나? 자기들 중에서 아무나 대충 가장 흉폭한 놈에게 넘겨주면 그만일 텐데?”

“정통성 같은 문제 아니겠습니까. 무력을 앞세운 집단은 위계질서에 민감한 게 보통이니.”

“아니. 그렇지 않다. 2대 천마는 그쪽 놈들과 전혀 연줄이 없던 놈이었거든. 이 바닥에서 알 놈들은 알 녀석이었지만, 대중들도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한 빌런은 아니었지. 네 말대로라면 2대 천마는 천극천체를 물려받을 수 없지 않았겠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난 천마가 누군지 따윈 아무 관심이 없다고.

그럼에도 내가 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이유는 나와 친한 사이인 카타리나가 천마와 연관이 있다는 세실리아의 말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극천체에 숨겨진 진짜 능력이 뭡니까? 사장님이야 말로 이야기를 빙빙 돌리시는 것 같습니다만.”

“물리적 성장 한계를 늘려주는 능력이라네.”

“그게 제가 말한 것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요.”

“엄연히 다르지. 선천적인 그릇에 따라 성장 한계도 달라지니까. 가령 나나 자네는 천극천체를 받아봤자 크게 강해지지 않을 걸세. 왜냐면, 우리는 처음부터 그릇이 좆만하거든. 프로틴을 존나게 처먹고, 헬스장에서 하루 종일 운동만 해도 처음부터 육탄전에 재능이 있는 각성자들 수준으로 강해지지는 못할 거야.”

“즉, 천극천체를 계승받는 대상의 그릇이 커야지만 효율을 온전히 뽑아낼 수 있다는 겁니까?”

“정확하네. 하지만 거기서 끝은 아니야.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성장이 무척이나 더뎌지니까. 자네도 게임 해봐서 알지 않나. 레벨 1에서 2로 올리는 거랑, 99에서 100으로 올리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성장 속도도 그만큼 중요하다네. 만렙을 더 높게 찍을 수 있어봤자, 그 만렙을 찍을 수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나. 그릇을 채우는 속도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일세.”

이제 대충 어떤 능력인지 이해된다.

천극천체는 단순히 소유자를 강화해주는 능력이 아니라, 소유자의 한계를 확장시켜주는 개념에 가깝고, 그 이후에 성장하는 건 온전히 본인의 몫인 능력이란 소리군.

정호경을 되살린 놈들의 뜻도 알 것 같고.

천극천체가 뽑혀 나갔어도, 이미 성장한 능력치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 테니.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원래부터 무투파를 지향했어야 하며, 몸 쓰는 일에 재능도 있어야 하는 데다, 노력파이기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니, 어지간한 사람들 대부분에겐 아무런 쓸모도 없는 능력이었다.

이런 능력이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선정할 수밖에 없겠네.

잠깐, 내 주변에 저 전제 조건에 완전히 부합하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설마…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군. 그래, 자네 근처에 주먹질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세 명쯤 있지? 그중에서도 유난히 체격과 기골이 장대한 사람은 둘일 걸세. 그리고 그 둘 중에서 오로지 권각에만 의존하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일 테고?”

놀랐다.

내담자 본인인 나 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인물의 정보까지 훤히 꿰고 있었으니.

주먹질에 일가견이 있는 셋이라면 제이드, 카타리나, 세레나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중에서도 유난히 체격과 기골이 장대한 사람은 카타리나와 세레나고.

제이드도 일반인치곤 제법 체격이 좋은 편이라지만, 여자라곤 믿을 수 없는 체격을 한 세레나와 카타리나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래, 여기까진 그래도 쉽게 알 수 있는 정보다.

개개인의 프로필만 보고도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카타리나가 노력광이라는 사실은 외지인인 블레이크로선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하지 않고선 쉽사리 알아챌 수 없는 정보였다.

괜히 상담사로서 대성한 인물이 아니군.

“…카타리나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이름이 카타리나였나? 나는 잘 모르네. 아무튼, 그 친구라면 가능성이 보이지 않나? 엄청난 노력파에다, 준수한 성장세, 타고난 체구까지. 이보다 천극천체를 물려받기에 더 알맞은 사람을 찾긴 힘들 거야.”

“소질은 있을지 몰라도, 본인이 천극천체를 물려받길 거부할 겁니다. 악당과는 거리가 아주 먼 친구라서.”

“내가 본 미래에선 스스로 계승받았네. 아, 빌런으로 돌아선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해도 좋아.”

블레이크는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반드시 그리되리라는 듯이.

다만 나는 그 미래를 부정하고 싶었다.

무척이나 이상하게 뒤틀린 미래였으니까.

원작의 카타리나는 천마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단 말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관계 자체는 있었을지언정, 그 관계가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그건 필연적인 겁니까?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아마도.”

“얄궂은 일이군요.”

“얄궂긴 뭐가 얄궂어. 다 자네 때문인걸.”

“제가 뭘 했다고요.”

“지도자를 잃은 마교놈들은 대리인이라도 뽑기 위해 전대 천마인 정호경을 되살렸지. 여기까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만, 문제는 그 뒤야. 자네가 솜니엄리버레이터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방해해준 덕분에 다급함을 느낀 놈들이 디스트럭트 오비탈에 갇힌 현 천마를 풀어주기로 마음먹은 거거든.”

그러니까, 원래라면 순차적으로 일어났어야 할 일이 나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됐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초래한 일은 맞았으니까.

“그 점은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그게 카타리나와 얽히게 된 건 너무 지나친 해석 아닙니까.”

“지나친 해석이라니? 어차피 자네는 솜니엄리버레이터와 관련 있는 일이면 무조건 끼어드는 사람 아닌가. 그럼 당연히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며, 설령 일어났다 한들 천마와 솜니엄리버레이터 간의 대립 구도로 끝날 일을 자네가 발을 들여서 더 꼬이게 되는 건데, 대체 어디가 지나친 해석이냔 말일세.”

블레이크의 신랄한 비판에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냉혹한 현실이니 말이다.

어찌 됐든 나는 솜니엄리버레이터가 꾸미는 음모라면 적극적으로 방해할 심산이 맞고, 그렇게 마음먹은 이상 이 사건은 무조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마치 제가 사고라도 치고 다닌 것 같잖아요.”

“사고는 사고지. 나쁜 사고가 아닐 뿐. 왜, 꺼림칙해서? 뭐 어떤가. 압도적인 전력이 자네 편에 서게 된다는데. 자네는 그냥 좋아하기만 하면 된다네. 불편한 기색 좀 숨기고.”

“말썽꾸러기로 사는 것도 재밌는 일이긴 하지만, 제가 그걸 책임질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만 하는군. 자네가 아니더라도 사고를 치고 사는 각성자는 차고 넘친다네. 자네 정도면 아주 귀여운 수준이지. 심지어 그 사고에 대해 반성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떳떳하게 행동하게. 자네는 아직 죄를 짓지 않았으니.”

“마치 언젠간 지을 거라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이미 많이 짓지 않았나. 자네가 중간고사에서 보여줬던 시도들은 모두 현실에선 범죄라네. 그게 아니더라도 자네는 켕기는 게 한둘이 아닐 텐데? 아, 죄책감이나 느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닐세. 어차피 자네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인 아버지와 아내 될 사람들도 다 허락해주지 않았나. 게다가 대중들마저 자네의 활약을 기대하는 마당인데, 그깟 좀스러운 비행 가지고 뭐라 하는 사람은 얼마 없겠지. 그러니까 지랄 좀 그만하게.”

블레이크는 답답하다는 듯이 책상을 마구 내리치며 외쳤다.

심지어 그 발작적인 증세는 꽤나 오랫동안 유지됐다.

“…급발진해서 미안하군. 난 속 터지는 소리만 내뱉는 병신들을 보면 화를 참지 못한다네. 듣던 대로 애새끼가 참 고지식하군. 이게 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거라니, 자네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보살이 틀림없군. 인복이 많은 것에 감사하게.”

“괜찮습니다. 어차피 성격이 괴팍하다는 건 이미 듣고 와서.”

“난 고객을 상대론 항상 친절을 유지하는 사람일세. 인성파탄자라곤 해도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 해야지.”

“그럼 제가 첫 번째로 화를 내게 만든 고객인 겁니까?”

“아니, 자네는 내 고객이 아니야. 돈을 안 냈잖아. 그러니까 쓴소리 좀 들었다고 침울해하지는 말게. 한 시간에 수천 달러짜리 상담과 욕 두어 마디를 바꿔 먹었으면 한참 남는 장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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