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포스트루드.(2)
* * *
“…이거, 호버바이크 아닙니까? 이게 왜 여깄어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타랍시고 세실리아가 내민 물건은 바퀴가 없는 바이크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물건이다 싶더니, 타보겠다고 샀다가 면허가 없어서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채 집구석에 처박아둔 그것이었다.
“박성진 생도가 말했던 ‘요긴한 것’의 정체죠. 뭐겠어요.”
“뭐가 요긴하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반중력으로 운행되는 물건이잖아요. 타보신 적 한 번도 없으세요?”
반중력이라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나는 이 괴상하게 생긴 물건을 어디서 봤는지, 그리고 왜 이상할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졌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맞아, 스X크래프트의 벌쳐였어.’
어쩐지, 뭔가 자주 본 사이 같은 느낌이 들더라니.
민속놀이에 매번 나오던 그 새끼라서 그랬구나.
“아뇨, 알죠. 근데, 이게 지금 상황에 특별히 유용한 이유가 있나요?”
“물론이죠. 지금은 한여름의 시베리아니까. 일부 고산 지대를 제외하면 눈이 거의 다 녹았을 시기란 말이에요? 그럼 당연히 스노모빌은 제 역할을 다할 수 없겠죠. 그건 눈이나 물 위를 달리라고 설계된 물건이지, 이끼와 진흙으로 질척이는 땅 위를 달리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잖아요.”
“반대로 그런 곳을 다니게끔 설계된 오프로드 바이크는 눈이나 물 위를 달리지 못할 테고…”
“그렇다고 스노모빌에 오프로드 바이크를 끌고 다니자니 모양새도 영 안 사는 데다, 이동에 제약까지 걸렸을 테죠. 하지만, 반중력 바이크라면 그런 환경적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제야 나는 세실리아가 말했던 ‘요긴한 것’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좆될 뻔했네. 시베리아라고 항상 눈이 쌓여있는 건 아니구나.’
윌리엄 영감, 옛날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훨씬 센스가 뛰어난 사람이었군.
이런 사정 하나하나까지 고려해서 알아서 물건을 보내주다니.
특출난 사상력도 없는 주제, 그 바닥을 주름잡은 데에는 다 역시 이유가 있었네.
괜히 니힐리스 그 양반의 오랜 친구가 아니다 싶었다.
“뭐예요. 마치 이제야 알았다는 듯한 그 눈빛은. 정작 판매자는 ‘이런 상황까지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었느냐’며 놀라던데.”
“아뇨, 반쯤은 취미였지만,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호버바이크를 구매했던 건 맞아요. 라이더 재킷까지 샀었고. 근데 주문 넣을 때는 호버바이크라고 이야기 안 했거든요. 그냥 판매자분이 제 옛날이야기랑 지금 상황을 고려해서 알아서 물건을 넣어주셨나 봐요.”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는 말은 당연히 구라였지만, 정황상으론 의심할 여지가 하나도 없었던데다,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갈고 닦아온 연기 실력 덕에 능청맞게 넘어갈 수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굉장히 탐나는 인재인데요. 이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구하는 능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처지까지 전부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거니까. 매번 놀라는 거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이랑 친해진 거죠? 에스메랄다씨를 섭외한 것도 그렇지만,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인맥이네요.”
“뭐, 다들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사이죠.”
사실을 말한 것이었지만, 세실리아는 알려주기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조금아쉽다는 표정을 지은 채 그 이상 내 인맥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 같아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긴 하다.
윌리엄이든, 레온이든, 에스메랄다든, 대충 어쩌다 보니 알게 됐다 수준으로 설명이 가능한 사람들은 아니니까.
하지만, 정작 나로선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천운이 따랐다고 설명하는 수밖에는.
* * *
늘 가지고 있던 의문이 드디어 해소됐다.
‘오토바이는 개나 소나 모는데, 왜 호버바이크는 면허가 필요한 걸까?’에 대한 의문 말이다.
당연하지만, 조종하기 개같이 어려워서 그랬던 것이었다.
로리 스완 선생님께서 벌쳐를 쓰레기라고 까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군.
“뭘 꾸물거리고 있어요! 빨리 튀세요! 지금도 스티븐이 저 멀리에서 쫓아오고 있다고요!”
“자칫 잘못하면 나무에 처박을 것 같아서…”
“자동 운행 장치가 어느 정도는 보조해주니까 그냥 빨리 튀기나 하세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놈이 무섭다고 산지에서 시속 150km를 밟으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군. 박성진, 가까이 와라.”
“왜?”
줄곧 내 속도에 맞춰 달리던 카타리나가 돌연 가까이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딪힐까 봐 조금 무섭긴 했지만, 괜한 이유로 오라 가라 하진 않을 테니, 어떻게든 용기를 내어 그녀 쪽에 따라붙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카타리나의 호버바이크 운전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알아서 거리를 잘 유지해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꽉 잡도록.”
내 목덜미를 낚아챈 카타리나가 자신의 호버바이크 뒷자리에 날 앉혔다.
그러고는, 거칠게 바이크의 악셀을 밟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야, 야, 천천히 좀 가! 박을 것 같다고!”
“사내자식이 겁도 많군. 호들갑 떨지 마라. 안 죽으니까. 중간고사에서 보여줬던 그 기백은 어디로 갔나? 그땐 아예 차로 건물을 들이받는 스턴트 액션까지 보여주더니.”
“그건 어디까지나 훈련실에서 치러지는 모의 전투잖아!”
“그럼 이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군. 더 세게 밟을 테니, 대비해라.”
“미친년아아아!”
어지간해선 좋아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생사 여부가 갈린 상황이 되니 이 상황을 탐닉하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얼른 이 광란의 질주가 끝나기만을 빌었다.
* * *
프리실라는 목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이 대략 반나절을 넘어가던 중, 드디어 스티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프리실라입니다.”
“여기는 세실리아, 통신 상태 양호. 송신하셔도 좋습니다.”
“보고합니다. 스티븐으로 추정되는 미확인 인물이 귀소 위치에서 3km 떨어진 지점에서 포착되었습니다.”
“수신 완료. 확인해보겠습니다.”
프리실라는 한시도 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발포 명령만 떨어진다면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준비도 되어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한시도 빠짐없이 연습해왔어.’
당연하지만, 실전과 훈련은 엄연히 다르다.
실패에 대한 부담감도 배가 될뿐더러, 실제로 누군가를 죽인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허나, 프리실라는 그러한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레온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이면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단독 작전도 아니잖아?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한 상황이지. 게다가 맞는다고 죽는 놈도 아니니까, 목숨을 앗아갔다는 죄책감이 들 일도 없지. 그냥 마음껏 쏴 재끼라고.’
프리실라는 다시 한번 그 말을 새기며, 천천히 숨을 고른 뒤, 총을 쥐었다.
“확인 완료. 대상은 진조, 스티븐 발레리가 맞습니다.”
“지금 쏠까요?”
“거절합니다. 아직은 계속 주시만 해주시길.”
프리실라는 애가 타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고 이곳에 앉아 죽치고만 있을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얼른 자신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까닭에 그랬던 것이지만.
그렇게 하염없이 스티븐의 모습만을 바라보던 프리실라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저쪽은 세실리아 쪽이 아닌, 산허리 방향인데.’
“여기는 프리실라, 스티븐의 움직임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의 뒤를 쫓는 것을 멈추고, 갑자기 산허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좌표를 요청합니다.”
“송신 완료.”
“…좆됐네요. 산마루를 무너트려서 눈사태를 일으키려는 모양인데… 하는 수 없네요. 프리실라 생도, 발포를 승인하겠습니다.”
프리실라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이미 반쯤은 사람의 형상을 잃은 스티븐을 쏘는 것은 프리실라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타캉!
이 낮고 날카로운 총성은 프리실라에게만 들리는 소리였다.
설산 일대를 뒤덮은 호버바이크 소리는 작은 총성 따윈 얼마든지 묻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시끄러웠던 데다, 그녀의 총기 또한 재래식 병기들과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소음이 줄어든 편이었으니까.
탄환은 창공을 꿰뚫고 인간과 동물 사이 어딘가에 있는 스티븐의 뒤틀린 다리에 명중했다.
그러자, 그의 다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부식되어, 금세 하얀색 가루가 되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배출된 탄피의 열기가 지면에 쌓인 눈을 녹이는 속도보다 빠를 정도였다.
‘효과는 확실해. 재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저지력도 보이고 있고. 하지만, 놈의 궁극적인 목표를 막을 정도로 뛰어난 위력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프리실라는 재빠르게 총구를 거두고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어중간하게 각만 재보다가 일을 그르치는 것보단, 일발역전이라도 노릴 수 있는 과감한 한 수를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모색해둔 다른 방안이 적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뿐.
“여기는 프리실라. 대상을 완전히 침묵시키기엔 저지력이 부족하다고 판단. 매설물 폭파에 대한 승인을 요청합니다.”
“어차피 못 막는다면, 차라리 우리 쪽에서 눈사태를 먼저 일으키자?”
“네. 정상에 다다를 때쯤에 눈사태에 휘말리게 된다면, 스티븐도 강 아래쪽으로 밀려나게 될 테니까요.”
“…승인하겠습니다. 송신한 좌표 순서대로 격발해주시길 바랍니다. 일단은 대기하십시오. 다른 문제는 없으신가요?”
“듣고 있습니다. 이상 무.”
“좌표를 송신했습니다. 주의해서 격발해주시기 바랍니다. 통신 끝.”
“수신 확인.”
프리실라는 스위치를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콰가가가강!
사토와 바위, 거대한 눈 덩어리들이 산 아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