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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 브릿지.(3) (125/173)

〈 125화 〉 브릿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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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멋쩍다는 듯이 분위기만을 살피던 그 순간, 세실리아를 필두로,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이미지네요. 정말. 조금 느긋하게 생각해도 괜찮았을 문제인데.”

“쟤는 항상 저렇게 뜬금없는 데서 급발진한다니까요.”

“그래도, ‘실행력이 좋다’라고 생각하면 장점이 될 수도 있어요. 충동에 쉽게 휩쓸린다는 어리숙한 면만 바로 잡는다면,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죠. 게다가, 박성진 생도는 아직 어리니, 그런 점을 고치기도 쉬울 나이고.”

에스메랄다도 동의한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런 것일까 하는 약간의 의문도 들었지만, 이내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어 괘념치 않기로 했다.

세실리아와 에스메랄다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거니, 싶었으니까.

그들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게 잡아도 아줌마, 넉넉하게 잡으면 할머니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 테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본 의제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물건들만 구해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라곤 생각해요. 게다가”

“네.”

“박성진 생도의 뜻을 제대로 엿볼 수 있어서 더 좋네요.”

세실리아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나를 향해 한쪽 눈을 깜빡였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내 뜻이 뭔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 이야기인데.

나는 옆자리에 앉은 아이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내 뜻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거야?”

“지금 이 모임 자체가 구두로 맺어진 모임이잖아. 서로 간의 신뢰랄 게 전혀 없는 사이지. 너 같으면 생판 남인 사람한테 선뜻 목숨을 맡길 수 있겠어?”

“아무래도 어렵겠지?”

“그래, 근데 너는 선뜻 나서서 부족한 물자까지 공급해주겠다고 나섰잖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 게 되는 셈이지. 물론, 그러는 척하고 발을 빼버린다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너는 그렇게까지 교활하진 않으니까. 세실리아에겐 충분히 신뢰할 증거가 되는 거지.”

…내가 한 짓은 생각보다 훨씬 미친 짓이었구나.

어쩐지 반응이 되게 격하더라.

특히나 에스메랄다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였다.

제 정신이냐고 묻는 듯한 그 얼굴.

“박성진 생도의 생각은 잘 알았으니, 저도 성의와 신뢰를 표하는 게 옳겠죠. 말로만 돕겠다고 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그녀는 옷깃에 달려 있던 꽃 모양의 브로치를 떼어내어 우리 앞으로 내밀었다.

조금 특이한 것은, 꽃잎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보석들이 수놓아져 있었지만, 꽃의 중앙 부분을 장식하고 있던 것이 평범한 청금석(??)이었다는 점이다.

잘 깎아놓은 덕에 그 색채는 깊고 푸르렀지만, 그래도 가장 화사해야 할 부분치고는 대단히 수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는 이것으로 성의를 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굉장한 물건으로 보이긴 하지만… 제가 알기로 이런 건 되팔 때 값어치가 없는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파베르제 같은 굉장히 유명한 세공자가 작업한 물건이 아니고서는.”

세실리아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싱겁게 웃었다.

나는 그렇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어디까지나 내가 살던 세계에 통용되는 것이지, 이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되리라는 법은 없으니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 물건이 평범한 브로치였다면 분명 그랬겠죠.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않으셔도 되요. 이건 감시자의 눈이니까요.”

“감시자의 눈이라고요? 이게?”

이 세상엔 다양한 무력 집단이 있다.

히어로 팀이든, 빌런 조직이든, 정부 산하의 조직이든, 코스모스든.

감시자 또한 그러한 집단 중 하나다.

다만, 다른 집단에 비해 힘을 행사하는 일이 현저히 적을 뿐.

이들은 어디까지나 주시하는 이들이지, 징벌하거나, 탄압하는 자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감시자들은 다른 집단들과 동등한 수준의 위험도를 자랑했다.

정보력이라는 면에 한해선 그 어떤 단체보다 우월함을 자랑하는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감시자의 눈’은 그 힘의 원천이나 다름없는 무기였다.

“그래요. 파로스의 등대 같은 최상급 아티팩트에는 미치지 못해도, 이것 또한 만물을 바라보는 힘이 깃들어 있는 물건이죠. 평범한 사람치고 대단히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또한, 제가 감시자의 일원이기 때문이고요.”

“그렇다면, 이렇게 막 내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 않나요?”

“저는 꽤 오랫동안 감시자로서의 소임을 다했어요. 이제 은퇴할 나이도 됐죠. 설령 그러할 나이가 아니더라도, 망가진 가문을 바로 세우고, 내실을 다지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만큼, 전 감시자라는 직책을 계속 맡을 수 없어요.”

“하지만, 저희 중에서도 그런 막중한 직책을 맡을 만한 사람은 없는걸요.”

“걱정하지 마세요. 당장 인수인계에 들어가려는 건 아니니까. 맡겨두는 것뿐이랍니다. 감시자의 자격은 제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이 ‘대양의 눈물’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죠. 거절하진 말아줬으면 해요.”

세실리아는 우리 쪽으로 브로치를 밀었다.

이제 이건 당신들 물건이라는 듯이.

대뜸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내미는 세실리아의 저의를 파악하기 힘들었기에, 내가 가장 먼저 하기로 한 일은 이것이 정말로 감시자의 눈인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저, 세실리아씨. 손을 한 번 내밀어 봐주시겠습니까?”

“여기요.”

“죄송하지만,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핀의 끝부분을 그녀의 손가락에 찔러넣었다.

그러자, 피는 물리적 법칙을 무시하고 핀을 타고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진짜다. 이건 정말로 감시자의 눈이야.’

감시자의 눈은 기본적으로 에고 웨폰과 비슷한 성질을 띤다.

자신을 소유할 사람을 스스로 정하며, 자신이 정한 소유자를 구분할 줄 아니까.

아무렇지 않게 세실리아의 피를 받아들이는 걸 보면, 이 대양의 눈물이라는 아티팩트의 주인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박성진 생도는 참 이상한 것들을 많이 알고 있네요. 감시자의 눈을 구분하는 법도 알고 있고.”

“제가 좀 아는 게 많긴 하죠.”

“도대체 이런 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런 건 차차 알아가도 되는 문제고… 뭣보다, 이만하면 충분한 확인이 되었겠죠.”

“의심할 여지가 없네요. 이건 확실히 감시자의 눈입니다.”

“이제, 에스메랄다씨의 생각만 확인하면 되겠군요.”

그 말에, 에스메랄다가 취한 행동은 실로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왼손 검지를 잘라내어, 테이블 위로 올려놨으니까.

“가져온 물건이 없으니, 이걸 담보로 걸겠습니다. 상처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시길. 제 능력으로 절단면을 봉해두면 상처가 아물거나 덧나는 일은 생기지 않으니까.”

“과감한 결단을 내리시는군요. 1군 히어로의 손가락이면 충분히 담보로서 가치도 충분하고요. 허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갈 텐데, 괜찮으신가요?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살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건 의수와 장갑을 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돌려주시기만 하면 도로 붙일 수 있고요. 박성진 생도에게 맡기면 무력으로 되찾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니, 이건 세실리아씨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분실하지 않고 잘 맡아만 주시길.”

어지럽네, 정말로.

분명 80만 달러는 사실상 나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었다.

그걸 내걸겠다 했으니, 과감한 결단임은 틀림없었다.

허나, 감시자의 눈이나, 에스메랄다의 검지와 교환할 정도로 막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진 않았기에, 나 같은 녀석이 감당하기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판이 커진 셈이었다.

“확인은 끝났습니다. 각자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도 끝났으니, 이제 일이 잘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것뿐이겠네요. 계획은 카타리나 생도가 제안했던 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죠.”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다른 의견은 없는 건가요?”

“이런 건 결국 자신감이 가장 중요한 문제니까요. 확신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저도 세실리아씨 의견에 동의해요. 누군가를 강하게 신뢰한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니까요. 카타리나 생도가 제안한 의견이 그렇게까지 현실성 없는 계획도 아니고.”

나는 스스로가 담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에 불과했다.

이런 중대사의 전권을 위임받아 보니, 두려움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으니까.

“주소지는 나중에 보내드릴 테니, 물건은 그쪽으로 부쳐주세요. 박성진 생도.”

“저는 지금 맡고 있는 일이 끝나는 대로 세실리아씨에게 따로 연락드리도록 하죠.”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또한 모쪼록 좋은 소식으로 찾아뵙도록 하죠.”

세실리아와 에스메랄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나와 다른 녀석들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 손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진조와 맞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에 와닿고 있었으니까.

“빨리 악수해요. 우리. 여러분이 뛰어난 히어로가 되면, 자랑거리로 써먹게.”

아무 생각도 없이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세실리아와 에스메랄다는 이미 테이블을 떠난 뒤였다.

남은 것은 바다의 빛깔을 머금은 채 반짝이고 있는 브로치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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