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브릿지.
* * *
슬슬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나는 클로에에게 연락을 전했다.
‘훈련장에서 뵙겠다’라고.
클로에 또한 그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빨리 훈련장으로 나오라 재촉했다.
이번 훈련도 저번만큼 힘들려나?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
클로에도 봐주면서 하겠다고 했었고, 나 또한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까.
물론, 그마저도 새롭게 태어난 이 몸의 습득 속도가 상식을 초월한 수준이었기에 가능했던 거지만.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지난번에 나에게 했던 생체 실험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미친 짓을 한 번만 하리라는 법은 없었기에.
* * *
클로에의 개인 훈련장은 저번 방문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깨끗해져 있었다.
그때는 선반이든 뭐든 짚기만 해도 새까만 때가 손에 잔뜩 묻어나올 정도로 지저분했었는데, 이젠 먼지 한 톨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질반질했으니까.
“청소라도 시켰어요? 엄청 깨끗해졌는데.”
“당연하지. 이용자가 너와 나뿐이라도, 쓸 때는 깨끗하게 써야 하지 않겠어?”
“그럼 저번에는 왜 그런 더러운 상태로 초대하신 거예요.”
“그 정도로 심할 거라곤 생각 못 했거든. 오기 전에 정리하자니 시간이 촉박하고. 그나저나, 머리도 새로 했네? 잘 어울리네. 분위기도 확 밝아졌고.”
클로에는 능청맞게 주제를 내 머리 쪽으로 넘겼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는 듯이.
‘그래, 지금이라도 정리한 게 어디냐.’
그렇게 생각하며, 추궁은 그쯤 해두기로 했다.
내게 어르신을 괴롭히는 악취미 같은 건 없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좀 꾸미고 다니라길래, 손 좀 봤습니다.”
“잘됐네. 잘됐어.”
“칭찬은 감사하지만, 훈련부터 먼저 하는 게 어떨까요.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데.”
“진짜 자신 있는 모양이네? 그럼 어디 확인해볼까.”
그렇게까지 자신 있는 건 아닌데 말이지.
내 기준에선 장족의 발전이라도, 클로에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
확실히 너무 잘난 스승을 두는 것도 괴로운 일이긴 하네.
니힐리스, 세레나, 클로에.
셋 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었으니.
나는 짧게 혀를 한번 차고는, 훈련실로 향하는 클로에를 뒤따랐다.
“지난번이랑 똑같이 진행할 거야. 기억하지?”
“당연하죠.”
“그럼 바로 시작하자.”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장면이다.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말이다.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기에만 그런 거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공방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야. 그때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해보지 못했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게 확실히 체감되네.
그때는 조금이라도 클로에가 힘을 실으면 영혼이 뽑혀 나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이젠 살짝 힘들고 지칠 뿐,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진 않았다.
“많이 늘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구나. 그때는 눈감고 온정신을 거기에만 집중해도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젠 날 마주 볼 수 있는 수준까진 됐네.”
“지난번보단 한결 편한 게, 이사장님도 힘 조절 연습을 많이 해오신 모양인데요.”
“그런가? 내가 너무 풀어준 건가? 대화할 여유까지 부리는 걸 보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클로에의 오른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기울어졌다.
그와 동시에, 해일처럼 밀려드는 마나의 격류가 사방에서 몰아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몸은 그 맹렬한 기세를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나의 힘을 받아들인 마나가 클로에의 성난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그 자리를 사수했으니까.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이.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가네. 부동(不?)이 뭘 의미하는지.’
쓰러지지 아니하며, 허물어지지도, 요동치지도 않는다.
그저, 다음 명을 기다릴 뿐이다.
“드디어 의미를 깨우친 모양이네.”
클로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까의 비스듬한 조소를 지었던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연한 웃음이었다.
“조금은요. 그래봤자 걸음마를 뗀 수준이겠지만.”
“그래, 배울 점은 여전히 많이 남았지. 그래도, 역시 첫걸음이 가장 중요한 법 아니겠어? 나머지는 천천히 배워도 돼.”
“그런가요?”
“나머지 것들은 요령만 알면 쉽거든. 내 기준이지만.”
좋아지려다 말았네.
클로에 기준에서 쉽지 않은 게 뭐가 있겠어.
‘오스카랑 일기토 떠서 이기기’ 같은 의제만 아니면 다 쉽다고 할 양반인데.
“이사장님 기준이라니,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네요.”
“아냐, 정말로 쉽다니까? 믿어도 돼.”
“그럼,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효율 좋은 기술 하나만 가르쳐주시죠.”
“음, 이게 좋겠네.”
클로에는 더미 한 기를 소환했다.
능력치는 다른 더미들과 전혀 다를 게 없었지만, 내구도 능력치는 불러낼 수 있는 데이터 중에 가장 높은 것이었다.
뭘 하려는 걸까.
“잘 보라고.”
그녀가 평범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세레나나 빈센트의 정권처럼 압도적인 힘이 실린 것도 아니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잽에 지나지 않는 공격이었으나, 그걸 받아낸 더미는 폭발하듯이 산산조각이 났다.
…힘법사?
“몸의 빈 공간을 마나로 가득 채우고, 상대방을 타격함과 동시에 그 마나를 흘려보내는 기술이지. 단순히 완력을 강화하는 기술이 아니야. 신체를 강화하는 건 그저 받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함일 뿐, 파괴력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몸에 퍼지는 마나에서 비롯하지. 실제론 내파(??)를 유도하는 기술에 더 가까워.”
무협지 같은 데서 등장하는 발경(??) 비슷한 기술인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닌 모양이네.
뭐가 됐든 굉장히 강력한 기술임은 확실했다.
듣기에는 사용하는 방법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저도 쓸 수 있는 기술이죠?”
“내 것보다 위력은 많이 떨어질걸.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라, 앞서 말했던 네 마나의 성질 때문에 말이야.”
“아…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마나의 격렬한 움직임을 이용해서 피해를 주는 기술인데, 제 성질은 움직이지 않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대신 방어할 땐 네 쪽이 훨씬 유리하니까. 나름의 패널티라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일단 써보기나 하자고. 위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클로에가 고개를 한번 까딱거리자, 새로운 더미가 눈앞에 나타났다.
당연하지만, 클로에가 소환한 것보단 내구도가 한참 아래인 물건이었다.
내 수준에선 이게 적당하단 소리겠지.
이마저도 박살 내버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사실 큰 상관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신체 내부에 타격을 주기 위한 기술이니, 심장 같은 주요 장기에만 들어가도 치명적인 일격이 될 테니까.
“우선 천천히 마나를 받아들여. 옳지, 그렇게. 곧잘 하네. 근데,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전신에 두른다는 느낌보단, 팔 전체를 꽉 채운다는 느낌으로.”
“이렇게요?”
팔 안쪽으로 모든 마나를 응집시켜 보았다.
그럼에도, 묵직하다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원래 내 팔에 들어있던 것처럼 편안한 기분이었다.
“확실히 몸이 잘 받는 편이네. 좋아, 그 상태로 내지르면서 상대방의 몸속에 마나를 주입하는 거야.”
클로에처럼 일격에 폭발시키는 건 불가능할 테니, 내상을 입히는 정도로 시도해봐야겠군.
비슷한 취지를 가진 바디 블로우가 딱 잘 어울리는 타격기겠지.
더미의 왼쪽 늑골 아래를 감아쳤다.
깊숙하게 파고드는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해진다.
실제 사람이었다면 간이 으깨졌을 위력이었다.
“확실히 세레나 교수한테서 배운 티가 나네. 치는 폼도 그렇고, 선택한 기술의 성향도 비슷한 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고른 기술이었는데.
자주 지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닮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점이라면 닮아도 전혀 나쁠 게 없었지만.
“그래서, 어땠나요?”
“위력은 떨어져도, 응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상관없으리라 보여. 조금 전에 내가 보여준 건 어디까지나 퍼포먼스에 불과하고, 실제론 그렇게 쓰는 기술이 맞으니까. 다만 아쉬운 점을 꼽자면, 마나의 움직임이 너무 둔해서, 내파보단 충각(??)으로 찌르는 느낌이 돼버렸다는 것 정도. 그 외엔 훌륭해.”
“이것 말고는 좋은 기술이 없을까요? 진조 상대론 영 효율이 떨어지는 기술 같은데.”
“그건 나중에 익혀도 늦지 않으니까, 지금 배운 거나 열심히 연습하셔. 그것만 알아도 진조 상대로 밀릴 일은 없어. 세실리아만 있으면 모를까, 에스메랄다도 너희 편이잖아?”
하긴, 어중간하게 여러 기술을 쓸 줄 아는 것보단, 하나라도 확실하게 잘하는 편이 낫지.
그럼 진조와의 결전까진 이 기술에 통달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겠군.
“그나저나, 이 기술의 이름은 뭐예요?”
“파일 벙커.”
진짜 성의 없네.
원리 자체는 비슷한 면이 있다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성의한 작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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