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 프렐류드.(3) (117/173)

〈 117화 〉 프렐류드.(3)

* * *

상자 속에 담긴 물건이 정말로 불사조의 깃털이라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이나에게 연락을 전했다.

당연하게도, 아이나는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곧장 내가 있는 장소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내 말이 사실이면, 마음대로 움직여도 되는 거지?”

“난 한 입으로 두말 안 해.”

“자, 여기 불사조의 깃털.”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상자 속에 고이 모셔진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깃털을 꺼내 아이나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가라앉아있던 아이나의 눈동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만큼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이.

“사실이었다니, 믿기지 않네. 도대체 이걸 어디서 구해온 거야?”

“나도 연줄이 생겼거든.”

“참, 벌려놓을 대로 벌려놓는구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여기까지 와서 수습하긴 늦었지.

이미 너무 많은 일에 개입해버렸으니까.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머나먼 곳으로 떠나 숨어버리지 않는 이상, 분명 다른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될걸.

설령 그런다 해도 니힐리스나 레온 같은 녀석은 어떻게든 찾아낼 테고.

“어쩔 수 없지, 뭐.”

“넌 그 말을 달고 사는 것 같아. ‘어쩔 수 없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같은 것들. 누군가한테 쫓기기라도 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

예리한 질문이네.

물론, 아이나 정도로 촉이 좋은 사람이라면 진작 눈치채고도 남았을 테지만.

여태까진 사정이 있는 거라고 봐주고 넘어가고 있었던 거겠지.

이젠 사이도 많이 가까워졌고, 참을 만큼 참기도 했으니 물어보는 것일 테고.

“시간에 쫓기고 있긴 하지.”

“그래 보여. 네 성격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정의감이나 영웅심 같은 것에 비롯해서 그런 일들을 하는 건 아닌 걸로 보이거든. 때때로 이상한 짓을 하긴 하지만, 크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유형의 사람도 아니고.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에 더 가까우니까.”

“즐기는 중이긴 하지만, 정말로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긴 해.”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해본 말이야. 때로는 잠깐 짐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나 해서. 쫓기듯이 해결해도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

그 말에 모처럼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아이나에게 했던 말 그대로잖아, 저거.

내가 돌려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게 웃긴 이야기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작년에 내가 너한테 했던 말이잖아, 그거.”

비로소 그 사실을 눈치챈 아이나는 어딘가 그리움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도 그녀에게서 자주 엿볼 수 있었던, 그 미소 말이다.

다만, 옛날과 달리 함께 느껴졌던 서글픔이나 쓸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기뻤던 추억을 회상하는 분위기에 더 가까웠으니까.

“받은 걸 돌려준 셈 치지, 뭐. 난 빚지고는 못사는 사람이니까.”

“그 점은 그대로네. 다른 점은 굉장히 많이 변했는데.”

“…그러네. 참 많이 변한 것 같아. 예전에는 이렇게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옛날의 네가 더 좋아, 지금의 네가 더 좋아?”

“그때의 나나, 지금의 나나, 똑같은 나일 뿐이야. 어느 쪽의 나를 더 좋아하고 말고 같은 건 없어. 내가 새롭게 좋아하게 된 건, 지금의 내가 아니라, 너야.”

이 점도 그대로네.

항상 솔직하다는 거.

이런 점이라면 변하지 않아도 상관 없지.

정직함은 중요한 미덕 중 하나니까.

언제나처럼 감사의 말을 전하려고 입을 연 순간, 아이나의 손가락이 그것을 저지했다.

“고맙다는 둥, 미안하다는 둥, 늘 하던 이야기는 할 필요 없어. 이미 알고 있는 데다, 지루해. 차라리 다른 이야기를 해.”

“그럼, 하나만 부탁할게.”

“무슨 부탁?”

“언젠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도 지금처럼 말해줄래?”

“별로 어렵지 않은 부탁이네. 늘 그래왔잖아?”

약간의 죄악감이 밀려들었다.

그녀를 힘들게 만들 일은 아직도 한참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때가 되어서도 그렇게 말해줄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런가.”

“난 이미 너의 마음을 벗겨낸 적이 있어. 그런 마당에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

“모르지, 안다고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는 게 많아지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늘어나.”

‘아는 게 많아지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늘어난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미 나의 심상 밑바닥까지 들여다본 적도 있었으니까.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으리라.

어쩌면 무자비한 것으로 소문난 아이나가 이상할 정도로 내게 관용적이었던 것 또한, 단순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아낸 것이 아닌,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참, 당해낼 수 없는 여자였다.

조금이라도 앞서갔나,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면, 한참 멀리 나아간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의외네. 기분 나빠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고, 난 진작에 너한테서 많은 걸 가져갔잖아. 그런데도 아무 말 없는 걸 보면, 헌신짝 버리듯 내치진 않는다는 소리 아니겠어?”

“골수까지 빨아먹으려고 내준 거라는 생각은 안 해?”

“아,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고 했었지. 괜찮아. 나한테서 빨아먹을 건 아무것도 없거든. 밑져도 본전 이상이야.”

아무리 봐도 내가 이득인 장사 아닌가?

가진 것이라곤 팔팔한 몸뚱이와 단편적인 미래의 지식뿐인 게 난데.

팔팔한 몸뚱이는 솔직히 말해 별 가치가 없다.

초인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민간인 한 명이 가지는 노동력이 무슨 큰 의미를 갖겠어.

병신이 아닌 이상 나를 아오지 탄광 같은 곳에 보낼 리가 없었다.

그나마 가치가 있는 건 미래의 지식 정도인데, 이마저도 어떤 히어로와 어떤 빌런이 어느 때에 어느 곳에서 싸워서 이겼다, 졌다, 정도뿐이잖아.

히어로나 빌런에 관한 정보는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게 아이나인데, 단순히 누가 이기고 지는 걸 알아서 어디다 쓸 건데?

뭐, 토토 역배라도 걸려고?

어떻게 생각해도 내가 빨아 먹힐 구석은 없었다.

빨아 먹었으면 내가 빨아 먹었지.

“…그러네, 멍청한 질문이었어.”

“그래서, 뭘 알아서 어떻게 빨아 먹으려고?”

“그냥 떠본 소리야. 너에게 사과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너에게 서드 어빌리티를 쓴 적 없다고 맹세할 수 있어.”

“그런 것치곤 남모를 무언가라도 알고 있는 듯한 어조였는데.”

“별거 아니야. 전에 너를 지배했었을 때, ‘진짜 아버지는 아니지만, 애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었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었거든.”

확실히 그 시기는 이 세계의 아버지가 남겼던 편지에 관한 이야기로 마음이 심란했을 시기였었지.

그나저나, 굉장히 아슬아슬했네.

조금만 더 깊이 읽어냈으면 아예 나의 정체까지 완벽하게 탄로 났겠는걸.

아니, 혹시 알고 있는 건가?

“그래서, 그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었는데?”

“딱히 아무런 생각도. 네가 부모님 기일로 외출했던 게 얼마 전이었으니, 가정사가 복잡해서 안 됐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그리고, 네가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그것 때문이겠거니 했고. 피가 이어지지 않은 남에게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거니까.”

정말 기가 막히게 상황이 맞아 떨어지면서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네.

조금이라도 무언가가 꼬였다면 무척이나 난처한 처지가 될 게 틀림없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난 너를 좋아했을걸. 분명히.”

“그래, 알아. 그것 때문에 네 감정을 의심했던 것이기도 했어. 그냥 너는 늘상 대하던 대로 대했을 뿐인걸, 내가 착각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고. 하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아. 그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까.”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아이나.”

“제멋대로인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처음 이곳에 아이나를 불러냈던 이유가 뭐였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불러냈던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아무렴 어때, 나머지 이야기는 생각나면 하면 되는 거다.

지금 이 상황보다 중요한 건 아닐 테니 기억이 나지 않는 거겠지.

서로에게 몸을 맡긴 채,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말이다.

* * *

“에스메랄다님이 우리를 도와주시기로 했다고?”

“맞아, 근데 누구에게도 알리면 안 돼. 우리는 세실리아의 도움만 받은 거라고 하는 거야, 알겠지?”

“아쉽다. 라이나님 다음으로 만나 뵙고 싶은 분이었는데, 이렇게 뒤에서만 지원해주신다니.”

“나중에 일이 해결되면 그렇게 하자. 그분도 우리를 몰래 도와주시는 거라,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해.”

오랜만이네.

활기찬 프리실라의 모습.

요새는 차갑게 가라앉은 듯한 인상만을 주고 있어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좋아하는 히어로의 이야기가 나오니 금세 예전의 밝고 따스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설계에 나서는 것이겠군.”

“그렇지. 성공 여부는 진조의 강함에 달려있겠지만.”

“조금 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사료된다. 진조라고 알려진 그 스티븐이라는 자를 조사해 보니, 세컨드 어빌리티가 상대방을 착란 및 공황 상태에 빠트리는 것이더군. 에스메랄다님과는 상성이 매우 좋지 못하니, 우리에게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다행이긴 한데, 그것만으로 압도적인 스펙 차이를 극복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

“그 점은 나도 동의한다. 어떻게든 유리한 전장으로 끌고 오는 수밖에.”

진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뱀파이어의 약점을 대부분 다 갖추고 있다.

첫째, 은과 태양에 취약한 성질을 보인다.

둘째, 흐르는 물에 모습을 비추면 죽게 된다.

셋째, ‘성물’의 성질을 띠는 아티팩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이렇게 보면 아주 많은 약점을 가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진조가 괜히 진조겠는가.

우선, 첫 번째는 약점이라고 하긴 미묘한 정도다.

분명 약간의 어드밴티지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오의 적도 지방 같은 곳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유의미한 방해가 되진 못하리라.

두 번째 약점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흐르는 물에 모습을 비춘다고 즉사한다거나 하진 않는다.

단, 첫 번째 약점보단 큰 효과를 발휘하는 건 확실하다.

그 순간만큼은 극도로 약해진다고 하니까.

마지막 세 번째는 사실상 의미 없는 약점이나 다름없다.

단순한 십자가 모양 같은 것으론 어림도 없고,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성유물 정도는 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세레나가 가지고 다니는 그 츠바이헨더 같은 거.

한데, 이 조건들을 충분히 만족하는 장소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나일강을 낀 아프리카 어느 지역이라면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스티븐의 주요 무대는 유럽이지, 아프리카가 아니다.

“그런 장소가 있나?”

“나의 고향, 러시아에 있는 시베리아의 대평원이라면 적당하지 않나 싶다.”

맞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눈은 자외선을 반사하기 때문에, 온통 눈으로 뒤덮인 지방으로 가면 자외선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그런 이야기.

게다가, 그 쪽 동네는 아프리카랑 다르게 눈이 녹으면서 형성된 강도 제법 있을 테니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데? 여름의 시베리아에는 백야도 찾아오니까, 놈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장소가 될 것 같네. 세실리아에게 물어봐야겠어. 스티븐을 시베리아로 끌어낼 수 있는지 말이야.”

슬슬 악상의 윤곽이 그려지는군.

아직은 전주곡 정도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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