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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화 〉 그녀는 누구인가?(2) (114/173)

〈 114화 〉 그녀는 누구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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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할 만한 사람이 세실리아 발레리뿐이라는 건 실로 유감이었다.

별로 믿음직한 사람은 아니거든.

하지만, 진조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이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머큐리 사와 진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오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마치 진조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듯한 말투네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물론, 근거는 충분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범은 진조가 아니에요.”

진조가 범인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단순히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라는 건데.

성격상 진조는 호락호락하게 이용당해줄 위인은 절대 아니다.

혹시 본인도 모르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가?

제3세력의 개입으로?

정보가 너무 적어서 혼자서 판단을 내리긴 어려웠다.

“그럼 진범은 누구란 말입니까?”

“용의선상에 있는 인물 중 가장 가능성이 큰 건 힐다 베르펠이겠네요.”

힐다 베르펠이라면, 솜니엄리버레이터의 브레인을 담당하는 빌런이잖아?

그 사람이 여기에도 개입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중에선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었거든.

생각보다 연루돼있는 사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내가 아는 건 핵심 줄거리에 기반한 내용뿐이다 보니, 이런 언급되지 않는 사소한 이벤트에 대해선 알 길이 없었다.

“힐다가 이번 사건에 개입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로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만.”

“머큐리 사와 진조 간의 관계에 이미 도달하셨다면, 그 답을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요. 힐다도 이미 아는 사람인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그녀의 사상력이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이코메트리?”

“그럼 답이 뻔히 보이지 않나요?”

“아…!”

이제야 위화감이 해소되는 기분이다.

분명 진조는 자신의 피를 흡수한 대상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 거라면, 실로 비효율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피를 흡수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이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이니까.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하는 것에 반해, 소득은 무의미한 수준에 가까우리라.

그래서 진조가 이 일을 꾸몄다고 생각했을 땐 ‘굳이 이런 짓까지 할 필요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민간인을 지배해서 어디다 쓸 건데.

물론 충분한 숫자의 사람을 지배한다면 프로파간다에 써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간단하게는 히어로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고기방패로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피의 양이 제대로 된 지배권조차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아마 진조의 피를 흡수한 사람들이 잠깐 정신을 잃는 것도, 정신을 잃어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분명 지배권의 영향은 받고 있지만, 녀석이 직접적으로 지배하려 들지 않으니, 일시적으로 영혼과 링크만 끊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인 거지.

문제는, 이 쓸모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힐다가 개입한 순간부터 의미가 있는 과정으로 변한다는 거였다.

분명 사이코메트리로는 읽어낼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물론 그 능력의 극에 달한 이라면 온갖 정보들을 추출해낼 수 있겠지만, 내가 알기로 힐다의 사이코메트리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차라리 전투에 훨씬 능한 모습을 보여줬었지.

하지만,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게 되는 대상이 진조의 피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잠깐이나 정신이 직접적으로 깃들었던, 일종의 영매 같은 물건이니까.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런 거였네요.”

“맞아요. 실제로 힐다는 머큐리 사의 상당 지분을 가지고 있고, 기업 운영에도 개입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걸로 알아요. 스티븐에겐 번거로운 일일지 몰라도, 힐다는 그저 물건들을 회수해서 정보만 빼 오면 그만이니,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여러 소식을 접할 수 있겠죠.”

“게다가, 머큐리는 명품으로 유명하니, 고급 정보를 입수하게 될 가능성도 크겠네요. 소비자들이 대부분 고위 계층에 몸담고 있을 테니.”

“정확해요.”

비상한 아이디어임은 틀림없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법이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진조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대외적으로는 진조가 그 죄를 뒤집어쓰게 돼서, 금세 잡혀들어가게 될 텐데?

귀중한 정보 수집원을 이렇게 일회성으로 쓰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군.

그와 더불어, 세실리아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직접적인 책임이 진조에게 있는 일도 아닌데, 굳이 생판 남인 나에게까지 연락해서 이번 일에 대해 논의를 한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모르겠네요. 세실리아씨가 저에게 연락한 이유도 의심되고요.”

“간단해요. 힐다의 목적은 진조의 감금, 저의 목적은 진조의 죽음이죠.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목적이지만, 그를 통해서 얻는 결과는 크게 달라요.”

“어떻게 다르다는 겁니까?”

“정확한 목적은 알 수 없지만, 힐다는 애초에 진조가 포획당하는 것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선 안 돼요. 스티븐은 내 손으로 직접 죽여야만 하니까요.”

“어째서죠?”

“첫 번째 이유로는 내가 실권을 장악하기 위해서죠. 제3자의 개입으로 스티븐이 잡혀버린다면, 발레리 가(家)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진조가 사라지게 되거든요. 그렇다면 온갖 버러지 같은 녀석들이 임시 가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여들 게 뻔해요. 내 손으로 직접 죽여야만 정통성을 이어나갈 수 있으며, 그런 일도 방지할 수 있어요.”

내분을 막겠다는 거로군.

일 리 있어.

“나머지 이유는?”

“스티븐의 피를 빼돌린 가문의 기생충들을 축출해 내야 해요. 다른 히어로팀이 붙잡는다면 이런 상세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서킷브레이커 등급 교도소에 처박는 걸로 내사 종결시킬 게 분명하거든요.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로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죠.”

“사정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네요.”

“마지막으론 내 손으로 진조의 대를 끊어야 해요. 그런 저주받은 능력이 가문의 상징이 되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야심이 엄청난 사람이군.

세상에 야심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가까이서는 보지 못했던 지라,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대충 이해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 도움이 필요한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 같네요.”

“아뇨. 필요해요. 당신과 당신 주변 인물 모두. 계획에 필요한 건 당신, 프리실라 칼라일, 미츠루 아이나, 천현우입니다.”

나로도 모자라서, 내 주변 인물들 모두라고?

물론 진조가 대단히 강력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무슨 게임 레이드 공격대 짜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니.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진조의 재생력을 억제하기 위해선 프리실라의 능력, 백화가 필요해요. 몸통을 짓이겨놓는 방법 따위론 절대 재생을 막을 수 없죠. 하지만, 모든 유기물을 대상으로 큰 효력을 발휘하는 백화라면, 꽤 강력한 대항책이 될 거예요.”

“이해했습니다. 계속 설명해주시죠.”

“머큐리 사에 연루된 피해자들이 아니라, 진조의 피를 대량으로 투여받은 혈족들이 곳곳에 숨어있습니다. 이들을 주박에서 풀어주려면 아이나의 정신 지배 능력과 피를 다루는 천현우의 능력이 필요해요. 지배권을 아이나가 빼앗아 오면, 수혈받은 피를 천현우가 뽑아내는 거죠.”

“그럼 다 된 것 아닙니까? 제가 필요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들은 모두 포석에 불과하죠. 스티븐을 직접적으로 처치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니까. 하지만, 영혼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알려진 붉은색 마나글레이브를 다루는 당신이라면, 스티븐에게도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겠죠.”

엄청난 규모의 계획이었다.

심지어 꽤 오래전부터 설계해온 내용인 듯했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말할 수 있을 거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치밀했으니.

게다가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마저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실리아의 입장일 뿐.

내가 그 계획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유가 되진 못했다.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계획도 성공률이 높아 보이고요. 설득력도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런 위험한 일에 손을 벌려야 할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아 보이네요.”

“위험수당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은 가문 내에서도 나를 따르는 이들이 많으니, 생채기 하나 나지 않게 지켜드릴 수 있답니다. 또한, 이번 사건만 잘 해결된다면, 우리 발레리 가는 당신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드리겠다고 약속하죠.”

“그것 또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 것 같네요.”

계획에 우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로 보였다.

어떻게든 날 설득하고 싶어 하는 게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 사건은 그렇게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수준의 스케일이 아니었다.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면 참여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에요. 스티븐의 악명이 계속 올라가다가 생포된다면, 최악의 상황에선 하데스가 풀려나게 될 수도 있어요.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일인 건 맞지만,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해요.”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데스라면, 디스트럭트 오비탈에 갇혀있는 그놈을 말하는 걸 텐데.

걔가 왜 풀려난다는 거야.

“하데스랑 진조가 무슨 상관입니까.”

“최근, 진조에 관한 여론이 점점 바뀌고 있어요. 주류 여론은 아니지만, 일각에선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 하데스를 풀어주고, 진조를 거기에 가두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스티븐이 그렇게 위험한 녀석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하데스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웃긴 수준 아닙니까.”

“그러니까 최악이라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도 스티븐은 절대 그 정도 수준에 못 미쳐요. 하지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그렇게 보이게끔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거예요. 하데스를 꺼내주기 위해서.”

설마, 원작에서 하데스가 풀려나게 된 계기가 이거였나?

시기상으로만 얼추 들어맞는 게 아니다.

하데스는 디스트럭트 오비탈에서 풀려난 직후 곧바로 솜니엄리버레이터에 합류하니까.

이번 사건에 힐다가 끼어들었다는 걸 고려하면 꽤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느 정도는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다만, 보수에 관해서도 한번 재고해주심이. 저흰 고작 생도 신분입니다. 발레리 가의 비호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위험수당은 이것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요. 아직 시간은 널널하니, 시간 정도야 얼마든지 드리죠. 부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저희 측에서도 보수에 관해선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세요. 제안은 감사합니다.”

“다음엔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도록 해요. 우리.”

기나긴 통화가 끝났다.

솔직히 말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내 수준에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사정이 있는 사건이라,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도움이 될지조차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력에 한해서라면 레온이 최고긴 하지만, 이 사건에선 오히려 레온이 경쟁자인 탓에 그의 도움을 구하긴 어려울 것이다.

니힐리스는 표면적으론 빌런이니 이번 사건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건 불가능할 테고.

환장하겠네.

이럴 땐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밤새도록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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