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새로운 동아리.
* * *
“도시 전설 동아리? 대체 그게 뭐 하는 동아리인데?”
아이나가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되물었다.
이런 비일상적인 이야기 따위에 관심을 주는 게 아깝다는 듯한 눈치였다.
“얘 요즘 인터넷에 맛 들렸잖아.”
“그런 쓸데없는 헛소문에 신경 쓸 시간이 있다니, 어지간히도 한가했나 보네.”
“아니, 이유가 있다니까?”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는 걸 부정하진 않았다.
도시 전설은 사람의 입을 거쳐 퍼져나가기 마련인데, 이 과정이 가장 빠르게 일어나는 곳이 인터넷이니까.
따라서, 나는 그러한 종류의 괴담을 많이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유가 뭔데?”
“도시 전설 대부분은 그럴싸한 농담을 짜깁기한 이야기지만, 개중에선 쓸모있는 것들이 있더라고.”
“예시를 들어 봐.”
“얼마 전에 올라온 사진 중에 특이한 게 있었어. 제프리네 가게라는 잡화점이 만든 카탈로그의 사진이었는데, 굉장히 잘 만들었더라. 근데 내용이 좀 이상했어.”
“뭐가 있었는데?”
대부분은 여전히 심드렁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호기심 많은 베아트릭스만은 이야기에 집중해주었기에, 나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다른 건 다 평범했는데, 채널을 돈 주고 판다는 특이한 문구가 적혀 있더라고.”
“마약, 총기, 살인 청부 등의 불법적인 거래가 오가는 다크웹 같은 곳을 연결해줬다는 시답잖은 이야기겠네. 그런 게 뭐가 신기해?”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 아무튼 그래서 누가 그 카탈로그를 보고 채널을 사봤대. 오전 6시와 오후 6시에만 2시간씩 접속할 수 있는 거래소였는데, 의외로 그런 내용은 없었다더라.”
“그럼 뭐 하는 곳인데?”
“표면적으로는 골동품 같은 걸 거래하는 채널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오전에는 기억을 사고, 오후에는 파는 곳이었데. 가게 주인이 골동품 매입 같은 걸 병행 하다 보니, 바이럴 마케팅 같은 용도로 만든 채널이라고 생각해서 걸리지 않았다고.”
당연하지만, 기억을 매입하거나, 매매하는 행위 또한 불법인 건 마찬가지다.
기억을 조작한다는 건 범법적인 행위를 저지르기에 굉장히 용이한 능력이니까.
“그거, 보기엔 되게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여도 엄청나게 큰 범죄잖아.”
“그러니까 사실로 밝혀진 이후에 이 도시 전설이 화제가 된 거지. 뭐, 실제로는 우려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괴로웠던 기억을 판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외에는 몇몇 아이디어가 고갈 난 예술가들이 실제로 접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경험을 구매한 게 끝이었다던데.”
“그래서, 이 이야기가 도시 전설 동아리를 만드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그 채널을 개설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동아리를 운영하자는 거지. 재밌어 보이는 도시 전설들을 가져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 뭐 크레딧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제공해주고, 나는 그것을 조사해보려고.”
미래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곤 해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아낼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가까이에 있는 아이나를 비롯하여, 니힐리스라든가, 레온 같은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것만 얻을 수 있는 자료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물론 도시 전설의 태반은 원본의 세세한 부분이 소실된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상술한 이들의 정보 수집력이라면 얼마든지 그 소문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재밌어 보여! 추리 소설 속의 탐정 같잖아.”
“음… 듣고 보니 그렇게 나쁜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기도.”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좋을 것 같기는 해 보이네.”
“나는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헛소문이거나 위험한 이야기라면 외부에 꺼내지 않으면 그만이고, 사람들이 알아도 괜찮을 내용이면 재밌을 만한 이슈 같은 걸 추려서 아카데미 신문에 실을 수도 있다. 이러면 추가적인 학점도 기대해볼 만할 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카타리나가 생각지도 못한 안건을 제시했다.
신문이라….
확실히 그럴듯한데?
“난 할래. 미식 동아리는 생각보다 별로였거든. 어지간한 것들을 다 먹어본 이후로는 벌레 같은 걸 시식하려고 하더라. 그건 도저히 못 하겠어.”
“괜찮아 보이네. 어차피 내 크레딧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동아리 단장님 크레딧이나 아카데미에서 지원해주는 활동 비용으로 해결하는 거 아니야? 공짜로 재밌는 썰도 듣고, 학점도 챙길 수 있으면 안 할 이유가 없지.”
곧바로 무임승차를 시도하려고 하는 천현우였다.
그런다고 딱히 거부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차피 크레딧은 남아돌고, 천현우가 입부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일도 없으니까.
“다 좋은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지도 교수님은 구했나?”
“아니.”
“그럼 그게 가장 큰 문제로군.”
“뺀질뺀질 놀다가 웬일로 좋은 생각을 했나 했더니, 제일 중요한 걸 빼먹으면 어떡해.”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등짝에 불이 났다.
그러게, 왜 제일 중요한 걸 생각 안 하고 있었을까.
의외로 성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빈센트는 이런 동아리를 허가해주지 않을 거고, 앨리스는 관리가 거의 필요 없던 영화 감상 동아리조차 운영에 손을 놓고 있던 사람이니, 동아리 창설 신청을 부탁해도 거절할 게 뻔하고….
이러면 부탁할 사람이 없는데.
아니, 사실 딱 한 명 있기는 했다.
단지 가까이 하기는 영 불안한 인물이라서 그렇지.
“세레나 교수님한테 해달라고 그러자! 어차피 U클래스 담당 교수 이외에 맡은 직책도 없으시잖아.”
“마침 박성진이랑 친분도 있는 교수님이기도 하고… 우리와도 아는 사이니, 허가해주실 것 같긴 하네.”
역시, 이 방법 말고는 없나.
좆목질을 좀 더 열심히 해둘 걸 그랬네.
나도 세레나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나와 세레나가 같이 있을 때면 항상 불씨가 튀는데, 그게 나한테 떨어지는 게 불편하단 말이지.
“근데, 너희들 모두 내가 만드는 동아리에 가입하려고?”
“뭘 그렇게 놀라냐? 너 친구도 없잖아. 우리 가입 안 하면 너 인원수 못 채워.”
“현우야, 사실이긴 해도 그런 이야기는 좀 돌려서 하는 게.”
어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눈에서 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기에, 나는 대충 하던 말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알겠어. 좀 있다 세레나 교수님한테 물어보도록 할게.”
“명단은 여기 있는 사람 다 적어서 내. 대신 동아리실에 비품 같은 거 다 채우기 전까진 부르지 마라.”
“뭐가 필요한데?”
기껏해야 남들 이야기 들어주면 그만인 동아리에 비품 같은 게 뭐가 필요하단 건지.
과자 같은 거나 몇 개 채워두면 그만 아닌가?
“지존박스.”
“우리를 구하기 위해선 먹을 것을 잔뜩 사야 합니다.”
“차나 준비해놓도록. 참고로 나는 FOP등급 차가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모두가 결의에 찬 듯한 확고한 대답이었다.
사람은 참 병신 같은 데서 진심이 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푸우, 그래. 갔다 올게.”
요구 사항 한 번 존나게 많네.
잔뜩 쌓아놓은 크레딧이 한 번에 사라지게 생겼군.
* * *
우뚝 솟은 두 개의 산봉우리가 고른 숨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저렇게 높은 언덕을 소유한 자는 분명 두 명이 있지만, 그 언덕에서 향긋하면서도 은은하게 야릇한 향기가 나는 이는 한 명밖에 없다.
“무슨 일이야?”
“동아리를 만들까 하거든요. 혹시 지도 교수가 되어주실 수 있나 해서.”
“무슨 동아리인데? 이리 줘 봐.”
세레나가 손에 들려있던 활동 계획서를 낚아채 갔다.
“도시 전설 동아리?”
“네, 맞아요. 유행하는 소문을 조사해 사실 여부를 가리는 동아리에요.”
“그래서, 그중에서 괜찮은 것들을 추려서 아카데미 신문에 싣겠다?”
“그렇죠. 이런 이야기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 있으니까.”
그녀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활동 계획서를 주시했다.
날카로운 상어 이빨이 고기를 반으로 찢는 모습은 질겅질겅이라는 의태어보단 의성어인 싹둑싹둑이 더 어울렸지만, 무언가를 씹는 과정에 저런 표현을 쓰자니 그건 그것대로 뭔가 또 어색했기에, 부족한 내 어휘로는 그렇게밖에 나타낼 길이 없었다.
“부원들 한테 동의는 전부 구한 거지?”
“그럼요.”
“근데 이 활동 비용은 뭐니? 따지고 보면 이거 흥신소 노릇 해주는 거잖아. 그럼 빠따나 칼 같은 거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백번 양보해서 차나 주전부리 같은 건 그렇다 치자. 게임기는 왜 사달라는 건데?”
“픕.”
어떻게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보려 했으나, 결국엔 폭소하고 말았다.
흥신소 노릇을 하는 데 필요한 건 빠따나 칼뿐이라니.
정론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교육자가 할 말은 아니었다.
“뭐가 웃겨? 맞잖아? 너희들이 무슨 감청기나 생체 신호 교란기 같은 거 사서 첩보 요원으로 활동할 것도 아니고, 끽해야 딥 웹 같은 데 뒤적거리는 게 끝일 거 아냐. 뭐,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질 나쁜 친구들이랑 엮이게 되면 빠따로 머리통을 후려갈기던가, 칼빵을 놔주든가 하면 되지.”
“자기들이 필요하대요.”
“그래, 뭐 어차피 승인해주는 건 내가 아니고 아카데미 측이니까. 알아서 하겠지.”
세레나는 사악한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고는, 싸인이 끝난 활동 계획서를 서랍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도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 마. 알았지?”
“그런 걸 하겠어요?”
“물론 다른 애들은 안 하겠지. 너라면 할 거 아냐.”
“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당연히 하겠지.
애초에 적당히 위험한 일이라면 끼어들려고 만든 동아리니까.
“모르긴 뭘 몰라. 나도 다 아는데.”
“죽거나 병신이 되지만 않으면 되는 거죠.”
“어허, 내가 제일 아끼는 제자가 너야. 어디 가서 처맞고 다니는 꼴은 절대 못 봐.”
그렇게 말한 세레나는 나를 꽉 껴안았다.
올림피아드 때도 그렇고, 이건 아무리 봐도 포옹이라기보단 베어허그에 가까운데.
대형 자연산 쿠션은 완충 역할을, 와이셔츠 아래에서 풍기는 페로몬 향기는 진통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만, 허리에 가해지는 압박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놓아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어디 가서 칼침 맞고 요절하는 것보다야, 여자 품에 안긴 채 호상으로 삶을 마무리 짓는 게 더 낫잖아?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간신히 숨을 돌린 다음에 내뱉은 말이었다.
“걱정? 걱정 안 해. 제대로 동아리 활동하기 전까지 내가 열심히 훈육해줄 생각이니까. 네가 강해지는 게 내가 걱정을 안 하는 길이란다.”
누군가가 말하길, 진정한 서포터는 피해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그러더라.
나는 여태까지 그게 적을 제거한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피해를 받는 아군을 제거한다는 의미인 줄은 몰랐다.
아마 이른 시일 내로 세상에서 하직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