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보이지 않는 전쟁.(1)
* * *
포트 엘리자베스는 뾰족한 곶을 기점으로, 양쪽에 각각 하나의 만(?)이 붙어있는 형태를 한 도시였다.
도시라기엔 뭔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곳이었지만.
뭔가 결격사유를 지니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지, 그간 내가 방문했던 도시들에 비해 많이 투박한 인상을 주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했을 뿐.
뭐, 그것은 내 개인적인 감상일 뿐, 어쨌거나 도시는 도시였다.
“전보다 사람이 더 줄었군.”
그래, 이곳이 도시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 진짜 이유는 저것이었다.
도시라기엔 사람이 너무 적었으니까.
그렇다고 사람의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든 진짜배기 유령도시였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가려진 커튼의 틈새로 바깥을 확인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에.
“아포칼립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네요.”
“그것보단 훨씬 희망적이지. 식량이 떨어져서 굶주림에 시달린다던가, 생활용품을 구할 수 없게 된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매정할 뿐,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대로 대화가 끊어지는 것을 원하진 않았기에, 나는 황급히 다른 화두를 던져 보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로 가는 거죠?”
“시드넘.”
“이리나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장소가 거기인가 보네요.”
“이라나인지 레온인지는 알 수 없으니,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라고 해야 맞겠지.”
제발 레온이었으면 좋겠네.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만일 그 이리나라는 녀석과 전면전을 하게 된다면….
최악의 상황이 되겠지.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는 않았으므로, 나는 최대한 일이 원만하게 풀리길 기도했다.
* * *
포트 엘리자베스가 다른 도시들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말은 취소하기로 했다.
내가 도착한 이 시드넘이라는 장소는 여느 다른 대도시들과 다를 것 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늘조차 꿰뚫을 정도로 높다란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문명의 온상지.
내가 익히 보던 도시의 모습이었다.
하긴, 내가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긴 했지.
서울이나 부산 같은 광역시보다도 훨씬 큰 도시가 이 포트 엘리자베스인데, 일부만 보고선 도시 전체가 어떠한지 파악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멋진 곳이네요.”
“활기를 되찾는다면 더욱 멋진 곳이 되겠지.”
“근데, 막상 와보니 엄청 막막하네요. 전 황무지에 있는 작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건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 도시일 줄은.”
“요즘 시대에 그런 장소가 몇 군데나 된다고.”
이런 곳에서 작정하고 숨어있는 특수부대원을 찾아내야 한다니.
계획이 다 어그러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지만.
“도시 전체를 훑어보는 건 아무 의미가 없겠어요. 사람도 너무 적고.”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럼 어떻게 해요?”
“네가 비행기에서 퍼질러 자는 동안, 오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었지. 나에게 진 빚이 많은 녀석이라, 거절하진 않더군. 시드넘으로 오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니힐리스의 오랜 친구?
저 사람한테도 친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사회와 담을 쌓고 지내는 은거기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주변의 사람은 잘 챙겨주는 모양이네.
하긴, 그러니까 나한테도 이렇게 잘해주는 거겠지.
“그래서, 그 사람은 어딨는데요?”
“지금 찾아가는 중이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무서운 사람만 아니면 좋겠는데.
* * *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평범한 자동차 수리점이었다.
니힐리스를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양반이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 적당한 규모의 자동차 수리점.
대단한 과거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은퇴 후 자동차 수리점을 차린다는 설정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포함한 여러 액션 영화에서 등장한 만큼, 굉장히 익숙한 클리셰였지만,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또 남달랐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윌리엄이 잃어버린 키를 찾으러 왔다. 마실 것도 부탁하지. 로이보스 차로.”
“…이쪽으로 오시죠.”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마 일종의 암호인 모양인데.
“그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시길.”
직원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작은 사무실이었다.
내부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유일하게 특별한 것은,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풍채 좋은 장년의 흑인.
외모는 지극히 평범했으나,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백은 그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직도 안 뒈졌군. 사미르 클러크. 아… 이제 이 이름으론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었던가? 나이를 먹어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만.”
사내가 심술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 저것이 니힐리스의 본명인 듯싶었다.
“그 지겨운 농담도 슬슬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나? 윌리엄.”
“매번 달라지는 반응을 보는 게 꽤 즐거워서 말이지.”
“그나저나, 사업이 꽤 잘 되는 모양이군. 이 곳에도 새 사업장을 차렸을 줄은.”
“신분 세탁을 잘했으니까. 촌구석에서 칩거하면서 쌈박질 연습만 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많이 친한 사이인가 보네.
저런 농담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다니.
물론, 나도 때때로 선을 넘는 농담을 니힐리스에게 던지곤 했지만, 그마저도 그의 눈치를 살살 살펴서며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우리의 기분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무 농담이나 마구 내뱉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날 불렀나?”
“재머가 필요해. 그것도 아주 특별한 놈으로.”
“귀찮은 부탁을 하는군. 구체적인 사양을 말해봐.”
“마나 주파수 교란기를 무력화시키는 용도로 쓸 거고, 소형이어야 한다. 단순히 휴대할 수 있는 정도면 안 되고,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야만 해.”
꽉 끼는 정장을 입은 그는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와인셀러에 들어있던 술을 한 병 꺼냈다.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독하고 비싸 보이는 술이었다.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지.”
“술을 입에 대지 않은 지는 오래됐다만, 준다면 고맙게 마시겠다.”
“너한테 주려고 꺼낸 거 아닌데? 넌 달라고 했던 루이보스 차나 마셔.”
그래, 이게 진짜 남자들의 우정이지.
오로지 부랄친구 사이에서만 볼 수 있는 행동.
“후… 그래서, 말했던 물건은 준비할 수 있겠나?”
“못 구할 건 없어. 다만, 그런 물건을 대체 어디에 쓰려는 지 궁금하군.”
말은 짓궂게 한 윌리엄이었지만, 사나이들의 우정이 으레 그렇듯, 그는 결국 술잔에 술을 넘칠 정도로 들이부어 주었다.
나에게도.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술잔이 부딪쳤다.
그 여파로 인하여, 적갈색 액체가 바닥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저게 돈이 얼마야.
하지만, 윌리엄은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한 눈으로, 잔을 홀짝일 뿐이었다.
“고맙다.”
“술도 들어갔겠다. 이야기나 해보시지.”
“사람을 찾고 있다. 코스모스 특임대원이고.”
“확실히… 그 녀석들 상대라면 필요하겠어. 항상 마나 주파수 교란기를 달고 다니는 녀석들이니까. 근데, 갑자기 코스모스 특임대원은 왜 찾는 거냐? 복수? 그건 아니겠지. 코스모스는 이미 네가 죽였잖아?”
코스모스 특임대의 코스모스가 사람의 이름이었나?
나는 단순히 질서를 뜻하는 단어를 붙였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코스모스가 사람 이름이었어요? 전 그냥 질서라는 의미로 붙인 단어인 줄 알았는데.”
“뭐야,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르고 있었나?”
“그 의미는 맞다.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도 맞고.”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 이상 캐물으려 하진 않았다.
윌리엄도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주고 있었고, 니힐리스도 그것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일단, 그 마나 주파수 교란기라는 물건이랑, 재머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사람에겐 특정한 마나 파장이 있다. 워낙 희미해서 읽기는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사람을 식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그럼, 그걸로 레온이나 이리나를 찾을 수 있겠네요.”
“그래서, 코스모스 특임대원들은 마나 주파수 교란기를 달고 다닌다. 매번 자신의 마나 주파수를 바꿔 놔서, 누군지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들지.”
괜히 특수부대가 아니네.
온갖 첨단 장비로 도배를 해놓는구만.
“그러면, 어지간해선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겠네요.”
“그렇지. 대신, 그게 오히려 그들의 발목을 잡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왜죠?”
“재머가 그들의 마나 주파수 교란기를 먹통으로 만들면 마나 주파수가 급격하게 요동치니까, 빠르게 그들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거지. 물론, 어지간한 사람은 절대 못 구하는 물건이니, 큰 의미는 없다만.”
아, 이제 알 것 같다.
그 재머라는 켜고 돌아다니면서 마나 주파수가 변하는 사람을 찾으면, 그게 곧 레온이나 이리나일 거라는 소리잖아.
이번 사건에는 거의 필수적인 물건이나 다름없네.
“큰 도움이 되겠네요.”
“그걸 구할 수 있는 게 이 녀석이다.”
역시, 보통 아저씨가 아니었군.
“그래, 설명은 끝났나? 이제 내 이야기를 좀 해도 되겠지?”
“얼마든지.
“결국, 코스모스 특임대원을 찾는다는 거잖아? 필요에 의하면 그놈이랑 싸워야 하고.”
“그렇지. 내가 찾는 것은 아니고, 이 녀석이 찾고 있는 거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굉장히 골치 아픈 문제를 대령하셨군. 꼬마, 네가 들고 온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기나 하는 거냐?”
“자칫하면 코스모스 특임대를 적으로 돌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래, 목숨을 담보로 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지. 내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야. 난 살아남을 자신이 있거든. 이 새끼도 어디 가서 뒈질 놈은 아니고. 근데, 너는 그게 아니잖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가 세운 계획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나는 그 책임을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으니까.
도박성이 짙은 수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것보다 좋은 수는 내 머리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계획이 성공하기만 한다면요. 아마 아저씨만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하, 사미르, 어디서 이런 미친 새끼를 주워 온 거야?”
“정신 나간 소리를 잘하는 녀석이긴 하지. 하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는 소리를 내뱉지는 않는다.”
“크흐, 그래? 그렇다면 그 계획을 안 들어볼 수가 없겠군. 도와줄지 말지는 계획을 들어보고 결정하도록 하지. 마음에 들면 도와주마.”
나는 생각했던 시나리오를 쭉 읊어주었다.
어떠한 사고에서 이 계획이 기인했는지, 네가 날 도와주면 어떻게 계획이 변하는지 등등.
대단히 구체적이라곤 할 수 없었으나, 논리적으로는 꽤 그럴싸한 계획이었다.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군.”
“굉장히 위험하지만, 나쁘지 않은 계획이다.”
“아주 마음에 들어. 네가 제자로 둔 이유를 알 것 같군. 사미르.”
“그래서, 지원해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해주고말고. 다음에도 이런 또라이짓을 하고 싶다면, 날 찾아오도록 해. 보통 이런 짓을 하는 놈들은 뒈질 때도 예술로 가더라고. 그런 장면을 놓치긴 아깝단 말이지.”
마치 내가 죽기를 바라는 듯한 말투였다.
그렇다면, 더더욱 오래 살아남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저는 오래 살다 죽을 건데요.”
“그래, 그래, 천수를 누리다 죽던, 천벌을 받고 뒈지건, 그건 알아서 해라. 난 재밌는 장면이 보고 싶을 뿐이니까. 아무튼 물건은 최대한 빨리 준비해보도록 하지. 그 새끼들이 튀어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감사합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서막이 슬슬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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