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2화 〉 두 명의 도플갱어. (102/173)

〈 102화 〉 두 명의 도플갱어.

* * *

니힐리스가 아프리카 출신이었다니.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아니,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었다고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아무리 봐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기사는 거리가 먼 단어 같은데요.”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기사.

몇 번을 되뇌어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었다.

내 평생 저 두 단어가 한 문장에 공존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뭐, 내 지식이 얕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리카라고 해서 기사가 없으리라는 법은 또 어딨는가.

충분히 있을 만도 했다.

하지만, 니힐리스는 스코틀랜드의 별의 계곡에 뿌리를 둔, 별의 기사단 출신이다.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머나먼 타향을 연고지로 삼는 집단 소속이라는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나의 고향, 현 남아프리카공화국이자, 구 트란스발 공화국은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었던 나라다. 영국의 영향을 짙게 받을 수밖에 없었지.”

세월이 흐르며, 기사라는 계급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물론, 영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선 현대까지도 기사 작위를 유지하고 있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저 두 단어의 역설적인 관계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이상하게만 들려왔다.

자신들을 탄압하고 지배했던 국가의 가신이 되고 싶어 했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영국을 싫어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굳이 거기까지 가서 기사를 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이는데요.”

“그게 보통이겠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저항심보단 탐구심이 강했었지. ‘도대체 영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강한 나라기에 우리가 이렇게 기어야만 하는가’하는 탐구심 말이다. 그래서, 난 젊은 나이에 영국으로 향하는 배로 몸을 실었다. 배움을 얻고자, 강함을 알고자 해서.”

이렇게까지 열린 사고를 가진 인물인 줄은 미처 몰랐다.

요즘 사람들의 말투를 배우려 하는 모습도, 단순히 나와 친밀감을 쌓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자의식 과잉에 불과했다.

그는 단순히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것뿐이었으니까.

“당연히 제국은 나의 발걸음을 환영하지 않았다. 식민지 출신이자, 패전국 출신이었던 나를 부르는 장소라곤 군대뿐이었지. 그래서, 나는 군인이 되었다. 물론, 군인이 되었다고 해서 내가 겪는 수모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한 이야기였다.

이제는 역사서에서만 볼 수 있는 기록들이, 그에겐 현실이자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말이니까.

“다행스럽게도 난 꽤 좋은 사상력을 지니고 있었던데다, 전투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기에, 상당히 많은 공훈을 세울 수 있었다.”

“덕분에 작위를 서훈받은 건가요?”

“아니, 내 출신 성분을 문제 삼는 이들이 꼭 등장해서 말이야. 그럴 수 없었다.”

전형적인 레퍼토리네.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이야기.

고전적이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기도 하지.

현실에서 그 결말에 다다르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게 문제지만.

“그럼 어떻게 별의 기사단에 입단할 수 있었던 거죠?”

“본래 별의 기사단은 진짜 기사단이 아니었다. 강함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인 단체의 이름이었을 뿐.”

“뭐야, 그러면 그냥 기사 놀이에 불과한 거잖아요.”

“그건 아니다. 우리의 이름과 위상이 드높아진 뒤로는 황실에서 진짜 작위를 서훈해주었으니까. 행복해했던 기억이 나는군. 비로소 기사가 될 수 있다는 마음에.”

그냥 민간단체가 너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 소속으로 편입시킨 게 아닌가?

아무튼, 상황 자체는 이제 이해 간다.

기사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어보이는 국가 출신의 인물이 어떻게 기사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저런 배경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대단하네요.”

“오래 살다 보면 대단한 이야기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근데, 지금 하신 이야기는 굉장히 옛날이야기잖아요.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모습이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요?”

“매년 방문하고 있으니, 문제없다.”

그렇다니 천만다행이네.

기억을 다 잃어버렸으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했는데.

“그래서, 스승님은 레온이 어디로 갔을 거라 추측하세요?”

“포트 엘리자베스. 거의 확실하다.”

들어본 적 있는 도시다.

딱히 아는 것은 없지만.

바닷가 근처에 있는 도시며, 많은 사람이 거주한다는 것 정도밖에 모른다.

아, 펭귄이 산다든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본 것 같긴 하다.

“거긴 뭐 하는 동네인가요?”

“아름다운 항구도시였었지. 지금은 대낮에도 사람을 찾기 힘든 유령도시가 돼버렸지만.”

“왜요?”

“빌런에게 장악당한 도시니까.”

빌런에 의해 장악당한 도시라.

분명 그러한 설정의 도시들이 몇몇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흔한 것은 또 아니었다.

대부분은 사람의 손길이 닿기 힘든 외진 곳이거나, 원래도 치안이 끔찍하기로 소문난 장소였으니까.

포트 엘리자베스가 그런 도시였던가?

내가 알기론 아니다.

“포트 엘리자베스는 꽤 큰 도시 아니었어요? 빌런에게 장악당할 정도로 치안이 엉망인 도시도 아니었을 거 같은데. 아니, 애초에 빌런에게 도시를 빼앗겼다면, 히어로들이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일부러 방치하는 걸 거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나요?”

“놈은 진짜 빌런이 아니니까.”

진짜 빌런이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빌런인 척하는 다크히어로라도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시민들이 공포에 떨 이유도 없을 텐데.

“그러면, 가짜 빌런이라는 이야깁니까? 아니면 뭐, 의적 같은 존재라서 건드리기 뭣한, 그런 건가요?”

“아니,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모두 죽어 마땅한 녀석이었다곤 하나, 법적으론 문제 될 게 별로 없는 녀석들이었거든.”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건재할 수 있는 거죠?”

“놈이 코스모스 특임대원이니까. 코스모스 측에서 압박을 넣었겠지. 히어로들은 이번 사건에 관여하지 말라고.”

음, 어렵구만.

나야 사건의 내막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니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지만, 하나 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추잡스러운 사건이라는 거.

“그래서, 누가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건데요?”

“이리나.”

이리나?

모르겠네.

아니, 따지고 들면 모르는 게 당연한 거였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초능력자만 해도 수십억 명이다.

아무리 내가 원작을 알고 있다 한들, 그들 모두의 능력을 다 꿰고 있을 수는 없잖아.

등장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누군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레온과 비슷한 포지션을 담당하는 녀석이다. 암살, 첩보, 정보 수집 등.”

“현 코스모스 특임대원이 왜 굳이 빌런 행세를 하는 거죠?”

“최근까지 포트 앨리자베스에서 돌던 소문이 있다.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다는 소문. 그리고, 그 소문의 주인공은 모두 실종됐다고 하더군.”

뭐야, 레온이잖아.

하지만… 레온의 소행이라고 보기엔 뭔가 이상했다.

시기상으로나, 성격상으로나.

벌써 레온이 타락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게다가, 전 특수부대원이었던 인간이 대놓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빌런 행세를 한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이상한데요. 레온이라고 생각하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요.”

“네 생각이 맞을 거다. 나 또한 그는 레온이 아니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 이리나라는 사람인가요?”

“정확하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레온의 능력은 독보적으로 유니크한 축에 속하니까.

그런 능력이 세상에 둘 있는 것으로 모자라, 같은 집단에서, 같은 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이건 이것대로 말이 되지 않았다.

“레온과 같은 사상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니, 전혀 믿기지 않는데요. 차라리 그 이리나라는 사람이 레온의 능력을 복사했다는 게 신빙성 있겠어요.”

“아니, 다른 능력이다. 이리나는 변신술사로 유명한 녀석이지.”

변신술사라.

그렇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방과 완벽하게 똑같은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겐 도플갱어나 다름없어 보일 테니까.

그 상태로 상대방과 함께 동시에 사라진다면, 레온이 저지른 일로 위장시키기엔 충분하겠지.

“그렇다면, 이리나가 레온인 척 흉내 내고 있다는 소리가 되겠네요.”

“아마도.”

“근데, 뭣 하러 그런 짓을 하죠?”

“도발이자, 교사(?)인 거지.”

무슨 소린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의아하다는 얼굴로 니힐리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 누군가가 대놓고 너의 이름을 빌려 악명을 떨치고 있다면, 너는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아뇨, 절대 못 참죠.”

“그래, 이리나가 하고 있는 행동이 바로 그거다. 꼬우면 포트 엘리자베스로 와서 한 판 붙자는 의미잖느냐. 그래서 도발인 거다.”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가네.

하지만, 교사라는 말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남이 나쁜 짓을 하도록 부추기는 게 교사 아닌가?

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교사시킨다는 소린지 알 수 없었다.

“교사는 어떤 의미입니까?”

“만일 레온이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고 치자. 그렇다고 사람들이 레온을 가만히 내버려 둘까? 레온을 향해 칼을 갈고 있는 놈들이 전 세계에 깔려있는데?”

“어… 죽이려 하겠죠?”

“그래, 레온과 이리나가 대적하는 일이 없더라도, 레온에게 앙심을 품은 놈들은 어떻게든 레온을 찾아내서 죽이려고 하겠지. 자연스럽게 살인을 교사할 수 있는 거다.”

실로 효과적인 전략이라고밖에 평가할 수 없었다.

상대를 꾀어냄과 동시에 상대를 압박하는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한편으론, 레온의 대단함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모두 타개하고, 결국엔 살아남았다는 거잖아.

괜히 코스모스 특임대의 엘리트가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서, 스승님은 레온이 도발에 걸려들었다고 가정하고 포트 엘리자베스를 지목한 겁니까?”

“모른다. 현재로선 그곳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 포트 엘리자베스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는 그 녀석이 진짜 레온일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하고, 도발에 걸려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

벌써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는군.

과연, 내가 이번 일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걱정이 많이 앞서는군.

…잠깐, 이 골치아픈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방안이 떠올랐다.

물론, 레온이 포트 엘리자베스로 향했다는 전제하에서지만.

“혹시, 이리나의 변신술이 얼마나 정교한지 아십니까?”

“변신이라는 단어론 부족한 수준이다. 상대방의 사상력만 복제하지 못할 뿐, 유전자 단위로 동일하게 변신하니.”

좋아.

일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릴지도 모르겠다.

“좋은 해결 방책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포트 엘리자베스로 가죠.”

“자신이 생긴 모양이군. 그럼 바로 떠나도록 하지. 귀찮은 일은 빨리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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