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레온의 행방.
* * *
결국,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자두색 하늘이 푸른 빛을 되찾을 때까지 프리실라를 도와줄 방법을 모색했으나, 나는 어떠한 방안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막막한 상황이었다.
“안 잔 거야?”
“어, 생각이 좀 많아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잠까지 설쳐댈 만큼? 살아있다며, 그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맞아, 살아있지. 몇 년 지나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거고.”
“근데, 뭐가 문젠데?”
“빌런이 되어서 나타날 거야. 우리 목숨을 위협할.”
아이나의 표정이 굳어져 간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잠에 빠져있는 프리실라를 흘깃 쳐다본다.
“골치 아픈 문제긴 하네.”
“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
“네가 실수한 것도 커.”
“실수? 내가 무슨 실수를 했어?”
내가 무슨 실수를 했던가?
감이 오지 않는다.
“네가 살아 있다고 해버린 탓에 프리실라에게 기대감을 심어줘 버렸어.”
“기대감이라고?”
“그래, 생각해 보니 이 일은 그렇게 어렵게 접근할 필요가 없는 문제더라고.”
“어떻게 해결하면 됐는데?”
“프리실라보다 먼저 레온을 찾아내서, 죽이는 거야.”
“미쳤어?”
아무리 아이나라지만, 이건 가벼이 지나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멀쩡하게 잘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라니.
심지어 그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누명을 쓴 불쌍한 인간에 불과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는 많이 엇나간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라곤 하지만, 이렇게 뿌리까지 검게 물들지는 않았다.
“진정하고,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 어차피 프리실라가 레온의 생존 여부를 안 이상, 이 계획은 이제 의미가 없어.”
“아무리 그래도 그건 입에 담을 이야기가 아니야.”
“착해빠진 너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겠지. 하지만, 이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
“생명은 현실과 이상을 저울질하기 위해 존재하는 추 따위가 아니야.”
“내가 너를 이해하듯이, 너도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해. 미츠루 가(家)는 그것을 가업으로, 생존 방식으로 택한 곳이야. 나는 그러한 곳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자연스럽게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그래, 미츠루 아이나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면일 뿐, 그녀는 태생적으로 독과 가시를 품고 있는 요악(??)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러한 점마저 사랑하겠노라 마음먹고 그녀를 마음에 품은 것이니, 인제 와서 불만을 토로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 또한 그녀의 일부 아니겠는가.
“뭐,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너무 복잡한 문제야. 너도, 프리실라도 레온과 서로 죽이려 드는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런 이야기를 한 거잖아.”
“맞아.”
아이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최대한 빨리 레온의 행방을 알아내서, 프리실라와 재회시키는 수밖에 없지.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론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거, 알지?”
“그렇겠지.”
“레온은 원래도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 그나마 남은 흔적들은 코스모스 특임대에서 모조리 지워버렸을 테고. 일말의 단서도 없는 상황이네.”
나는 혹여 도움이 될까, 그의 배경에 대해서라도 알려주기로 했다.
“단서라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그의 배경 정도는 알고 있는데.”
“뭔데?”
“그가 아직 코스모스 특임대에서 복무하던 시절, 맡았던 임무에 실패하고, 대원들이 전멸한 사건이 있었어. 상부에선 그 책임을 전부 레온에게 뒤집어씌웠고. 아마 그래서 흑화하게 된 걸 거야.”
아이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함이지만, 그녀와 오래 지낸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무언가 알아차린 게 있다고.
“뭔가 단서를 얻었어?”
“별로 이야기해 주고 싶지 않은데.”
“뭔데 그래?”
“보통 그리폰 교도소에 투옥되는 죄수는 굉장히 유명한 빌런이라는 거 너도 알지?”
“알지.”
“정말 가끔, 이름 없는 죄수들이 생겨.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는 그런 녀석들.”
이름 없는 죄수라니.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굳이 죄수들의 정보를 숨길 필요가 있나?
탈출하면 무척이나 곤란할 텐데.
“그런 녀석들은 왜 있는 거야?”
“내막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밖에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어. 정치적으로 제거당한 사람들. 일단 가둬놓긴 했지만, 그곳에 투옥될 만한 죄를 짓지는 않은 거지. 그래서, 이름과 정보를 가리는 거야. 마땅한 명분 없이 잡아넣은 게 알려지면 안 되니까.”
“그럴 바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는 게 낫지 않나? 왜 그렇게 번거로운 방법으로 제거해?”
“죽이기엔 너무 거물인 거지. 정권을 잡은 쪽에서 암살을 사주한 게 알려지면 곤란해지기도 하고. 귀양이나, 유배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권력은 순환하는 구조잖아. 반대편이 권력을 다시 잡았을 때 똑같은 수준의 보복이 돌아올 것을 고려해서,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는 거야.”
“그걸 고려해도 효율적인 방법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데.”
“그 사람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있어. 정보가 전혀 공개되지 않으니, 언론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고, 본인도 귀찮은 일에 휘말릴 일 없이 편히 쉬다 올 수 있지.”
여기서 내부 정치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참, 복잡한 사정들이 많이 얽혀있네.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온다.
“근데, 그게 레온의 행방과 무슨 관계가 있어?”
“그 이름 없는 죄수 중에서 한 명이 그리폰 교도소를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문이 돌더라고.”
“설마.”
“그래, 이해가 가? 네 말에 의하면, 레온은 상부에 의해 제거당한 거잖아. 저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도 어색할 게 없지. 근데, 정치인 따위가 그리폰 교도소를 탈출할 수 있을 리는 없잖아? 하지만… 코스모스 특임대원이라면 가능하겠지.”
확실히, 그럴듯한 논리다.
그가 왜 행방불명인지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고.
근데, 왜 나에게 설명해주기 싫다고 했던 거지?
처음엔 내가 프리실라를 챙겨주는 모습을 시기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설명해줘서 고마워. 근데 왜 나에게 설명해주기 싫다고 했어?”
“그리폰 교도소에서 탈출했다고 말하면, 네가 누구한테 연락할지 뻔하니까.”
“아… 세레나 교수님?”
“그래.”
아이나가 가늘게 뜬 눈으로 날 흘겨본다.
‘굳이 그 떡대가슴괴물아줌마에게 연락을 해야겠어?’라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오고 있었다.
“세레나 교수님 정도면 충분히 좋은 분 아니야?”
“넌 그 사람 눈을 보고도 그렇게 말해?”
“교수님 눈이 어때서?”
“아주 강간이라도 할 것 같은 눈초리던데. 네가 미성년자라 다행인 줄 알아.”
그 정도라고?
가끔씩 무서운 제스처를 취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 괜찮겠지.”
“나도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 따윈 믿지 않아. 하지만, 내 감은 믿어.”
“알았어, 알았어. 주의할게.”
그녀는 여전히 못마땅한 시선으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아니, 노처녀의 성욕이 무섭다는 이야기는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욕정을 느끼진 않겠지.
나는 신속하게 핸드폰에 등록된 세레나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세레나 교수님 맞아요?”
성진이니? 무슨 일이야?
“네, 여쭤볼 게 있어서요.”
그래, 물어봐도 괜찮아.
“좀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그리폰 교도소에 갇혀있던 시절에 관한 질문이거든요.”
부디 세레나가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원체 쿨한 성격의 사람이라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일 것 같긴 하지만.
남들이라면 쪽팔려서 하지 못할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다니는 분이니.
괜찮아. 뭔데?
“혹시, 이름 없는 죄수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신가요?”
아, 걔들? 별거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나, 걔들이나, 보통은 독방에서 지내다 보니 자세히 아는 건 없지만.
“혹시, 조금이라도 특이한 사람은 없었나요?”
한 명 있었지. 샌님 같은 녀석이 아니라, 진짜 사람깨나 죽여봤을 법한 녀석이 왔었거든.
확신이 들었다.
그 사람이 레온이라고.
“혹시, 그 사람의 행방에 대해 아세요?”
자세히는 몰라. 근데 교도관들 이야기를 엿들었던 기억으론, 남아프리카 쪽으로 튀었다고 그랬던 것 같아.
미쳐버리겠네.
왜 저딴 곳으로 도망간 거야.
아니지, 저런 곳밖에 도망칠 곳이 없었던 거구나.
불쌍하네.
“감사합니다.”
근데, 그건 왜 물어?
“그 사람을 찾고 있거든요.”
음… 내 기억으론, 사람 자체가 나쁘진 않았어. 하지만, 위험한 새끼라는 건 확실해.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쪽 동네는 너희 같은 꼬맹이들이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하니까.
그것도 문제네.
뭐,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소재지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성과니까.
“지금 당장 들어가겠다는 건 아니고요.”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새끼랑 얽힌 일이 잘 해결되길 바랄게. 난 바빠서 끊는다? 한가할 때 다시 연락할게.
“네, 수고하세요.”
세레나가 그리폰 교도소 출신이라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덕분에 아주 좋은 단서를 얻었다.
“찾았다.”
“레온은 지금 어디에 있대?”
“마지막으로 떠난 곳이 남아프리카 쪽이라는데.”
“갈수록 태산이네. 그래서, 어떻게 할 심산이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프리실라는 여전히 세상 모른 채 잠에 빠져있었다.
다만, 그 표정만큼은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 서글픈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
걱정하지 마, 프리실라.
네 오빠가 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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