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눈보라.
* * *
내가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속초였다.
이곳에 각별한 볼거리가 있어서라기보단, 다른 여행지에 비하면 비교적 한적한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유적이나 문화재들로 가득한 지역도 관광지로 나쁘진 않겠지만, 시험이 끝난 이후 휴식을 취할 휴양지로는 아무래도 부적합하지 않겠는가.
상가나 쇼핑센터들이 가득한 번화가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잘 사는 집안 자제분들인데, 흔히 볼 수 있는 명품 따위 성에 찰 리가 없지.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낄 생각은 더더욱 없어 보였고.
따라서, 조용한 여행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기도 하고.
하지만, 도착한 장소는 내 기억 속의 속초와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이럴 거면 여기 왜 왔어?”
“아니,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나도 이럴 줄은 몰랐지.
아무리 미래적인 세계가 되었다지만, 이렇게 많이 변화했을 줄은 몰랐다.
낭만으로 가득 찬 항구도시 따윈 온데간데없고, 높다란 건물들과 고급 호텔이 들어찬, 흡사 두바이의 마리나를 연상케 하는 도시로 변화한 것이다.
차라리 지난번에 방문한,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가 과거의 모습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북쪽 해변은 여전히 별장이 존재해, 휴양지 느낌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이미지는 아니었다.
“겨울 바다 구경하러 온 셈 치지, 뭐.”
“트리니티 아카데미에서 지겹도록 보는 게 바다인데?”
“어쩔 수 없잖아. 이미 와버렸는데.”
프리실라가 내 변호를 해주고 있다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실패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이곳의 특징이라고 해봐야 강원도 특유의 설경뿐인데, 이 또한 프리실라의 고국인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에선 익히 볼 수 있는 광경에 불과할 테니.
아이나, 프리실라, 어느 쪽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무의미한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랜절 예행 연습이라도 해둘 걸 그랬나.
“미안해.”
“됐어. 저녁이나 먹자.”
“석식 시켜 줘?”
“아니, 도시 한 바퀴 돌면서 적당히 괜찮은 집을 찾아보려고. 여행을 왔으면 진짜 현지 음식을 먹어 봐야 하니까.”
좆됐네.
난 이 지역의 유명 요리도, 이 시기의 제철 음식도 모르는데.
최대한 빨리 알아봐야겠네.
* * *
결국, 저녁은 무난한 조개구이로 정해졌다.
지나치게 평범한 선택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 중에서 그나마 가장 나은 것이었으니까.
그래도 나쁜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네.
모두에게 익숙한 외관의 요리인데다, 시기도 때마침 적절하게 가리비 철이었으니까.
“먹을 만해?”
“맛있네. 가리비는 언제 먹어도 맛있는 것 같아.”
“너는?”
“괜찮아. 너무 무난한 게 아쉽긴 하지만.”
살았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하긴, 동서양,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기 있는 식자재인 데는 다 이유가 있지.
달큰하면서도 짭조름한 맛.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공존하는 식감.
입안에서 퍼지는 강렬한 바다의 풍미까지.
“아, 해봐.”
“무슨 소리야.”
“입 벌리라고. 못 알아들어?”
아, 이해했다.
낮에 있었던 프리실라와의 입맞춤이 샘났던 걸까.
아이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전에 비해 성격이 유해지긴 했다만, 애정 표현은 그렇게 자주 하는 편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나야 감사히 받아먹기만 하면 됐다.
“…훼방이라도 놓을 줄 알았는데.”
“뭐가?”
“아니, 프리실라 이야기였어. 분명 뺏어 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성진이 안 주고 네가 먹어버릴 줄 알았거든.”
여자의 세계는 이해하기 어렵네.
이런 가벼운 일상에서도 저런 복합적이고 심오한 심리전이 가미된다니.
전형적인 남자 뇌를 가진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주면 받아먹고, 똑같이 해주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그럼, 너도 아, 해봐.”
아이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작게 입을 벌렸다.
막상 당사자가 되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결국엔 잘 받아먹었지만.
“…뒤 좀 돌아봐봐.”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내 뒤를 가리키는 아이나.
고개를 돌리니, 입을 벌린 프리실라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질 수 없다는, 비장함이 깃든 얼굴로.
아직 주겠다는 말도 안 했는데.
물론 프리실라에게도 똑같이 해주려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먼저 나서서 반응할 줄은 몰랐다.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뭐가 웃겨?”
그녀가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그냥, 귀여워서.”
“알면 앞으로 잘해.”
당연히 잘해야지.
아니, 잘하는 수준으로 끝나면 안 될 것이다.
절을 해야지.
“그래야지.”
“나는?”
“아이나 너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견제구가 날아든다.
그 대상이 나라는 점은 유감이지만.
물론,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니, 뭐라고 할 자격은 없었다.
“그나저나, 박성진. 너는 졸업하고 나선 뭘 할 생각이야?”
“나? 글쎄. 히어로가 되고 싶긴 해.”
“진짜 안 어울리네. 받아주는 팀이야 많겠지만.”
“단독으로 활동하고 싶긴 한데, 그러기가 힘드니까.”
히어로.
나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것뿐인 걸 어쩌겠는가.
일단 이 세계를 구해야 여기서 눌러 붙어 살던, 원래 세계로 돌아가든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히어로가 되어야 했다.
“너는 뭐가 하고 싶은데?”
“글쎄… 잘 모르겠어. 원래 당주가 되는 것 이외의 꿈은 없었는데, 요즘엔 나만의 삶을 살아볼까 싶기도 해.”
“고민이 많겠네.”
“최대한 빨리 정해야지.”
고민이 많은 것치고는 후련해 보이는 아이나의 표정이었다.
뭐, 아이나 입장에선 행복한 고민이겠지.
자기 의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니.
“프리실라, 너는?”
“특별한 목표는 아니지만, 오빠의 행방을 알고 싶어. 죽었든, 살았든. 흔적만이라도.”
오빠?
그녀한테 오빠가 있던가?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오빠가 있었어?”
“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가 한 명 있어. 지금은 실종됐지만.”
“뭐 어쩌다 실종된 거야?”
“나도 자세히는 몰라. 임무 중에 실종됐다는 것 말고는. 코스모스 특임대 출신이었거든.”
코스모스 특임대.
당연히 이 세계에도 영국의 MI6, 미국의 CIA, 러시아의 FSB, 한국의 국정원 등, 현실의 다양한 첩보기관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첩보기관을 꼽으라면 열의 열은 ‘코스모스’를 꼽을 것이다.
코스모스 특임대는 그 코스모스 소속의 특수부대를 칭하는 명칭이고.
이해하기 어렵다면, 마블 시리즈의 S.H.I.E.L.D를 생각하면 편하리라.
“잠깐, 네 오빠라는 사람이 설마 레온 칼라일은 아니지?”
“맞아, 어떻게 알았어?”
“음지에선 전설적인 사람이지.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아, 나쁜 쪽으로 유명했다는 건 아니야. 음지의 사람들이 치를 떨면서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어.”
레온?
내가 아는 그 레온이 맞는 건가?
“너희 오빠라는 분이 설마 도플갱어를 만들어내는 그 사람이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오빠도 트리니티 아카데미 출신이긴 하지만, 너희들이 알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았는데. 졸업한 지도 한참 됐고.”
“…살아있어. 확실하게.”
레온은 원작에서 단역 빌런으로 나왔던 캐릭터다.
동생인 프리실라는 히어로인데, 오빠는 빌런이라니.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고.
임무 중에 분대원을 전부 잃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일인데, 상부에서는 그 책임을 전부 레온에게 뒤집어씌웠으니, 흑화해서 빌런이 될 법도 하지.
능력도 사기적이고, 꽤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던 캐릭터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의 대표 격 사상력은 ‘도플갱어’.
상대방의 생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대상의 도플갱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자신이 그 도플갱어를 직접 조종할 수도 있고.
도플갱어 전설을 아는 이라면, 이 능력이 왜 좋은 능력인지 알 것이다.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한 대상은 곧바로 도플갱어와 함께 소멸하니까.
이렇듯, 원거리 암살에 굉장히 유용한 능력이라, 작중에선 최고의 요원이자, 최악의 암살자라는 평가받는 캐릭터였다.
실제로도 이 능력을 활용하여 주인공 파티에 큰 위협을 주었었고.
다만, 빌런이 된 그의 등장 시기가 아카데미 졸업 이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은 타락하지 않은 상태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본 미래에선, 확실히 살아있었어.”
“정말로?”
“장담할 수 있어.”
“다행이다….”
프리실라의 눈에 물방울이 맺혔다.
처음에는 작은 흐느낌으로 시작했으나, 그 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를 끌어안고 다독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 * *
가까스로 안정을 되찾은 프리실라는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잠에 빠졌다.
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네가 본 미래에선, 레온이 빌런이 되어서 나타났겠지?”
“그래, 맞아.”
“표정이 심각하더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우리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코스모스 특임대의 현역 요원이라니. 게다가 나조차도 레온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어.”
“나도 알아.”
빌런이 되어서 나타난 그를 만난다면, 최악의 재회가 될 테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것을 막을만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소재조차 불분명한 인물이고, 소재를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할 방법도 없으니까.
간신히 레온과 접촉한다 한들, 그가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지도 의문이거니와, 어떻게 그를 설득한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었다.
과연 코스모스 특임대 측에서 그 행위를 묵과해줄 것인가.
솔직히 말해 그럴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코스모스 특임대의 감시를 받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분위기를 보니 당장 벌어질 사건 같지는 않고…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 일어지는 일 같은데, 그러면 지금은 신경을 끄는 게 좋아.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래야 하나?”
“현실적으로 생각해. 이건 지난봄에 있었던 잡졸 빌런 따위와 싸우는 일이 아니야. 전(?) 코스모스 특임대 요원을 상대하는 것으로 모자라, 재수 없으면 코스모스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아무도 못 막아. 잊어버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해. 프리실라도 생존 여부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너한테 고맙다고 했잖아.”
“어렵네.”
“그냥 잠이나 자.”
아이나는 더 이상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이부자리로 들어가 눈을 감아버렸다.
아이나의 말이 옳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프리실라의 사정을 외면하고 있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창밖에선 어느샌가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