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 진눈깨비. (98/173)

〈 98화 〉 진눈깨비.

* * *

나는 과거에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생도였다.

그것도 제법 잘나가던.

덕분에, 오스카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 몇 번의 만남이 전부였지만.

나름대로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뿐이지, 당대 최고로 유능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오스카가 나를 찾는다고?

무슨 일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까진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따로 만남을 가질 정도로 친분이 있는 사람은 또 아닌데.

의아하군.

“오랜만입니다. 학장님.”

“자유의 몸이 된 걸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감옥 생활은 어땠나.”

“최악이었죠. 그래도 말년 시절보단 좋았던 거 같습니다.”

그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차라리 그리폰 교도소로 돌아가고 말지, 그 시절로 회귀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데미로 돌아와 보니 어떤가.”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 더 놀랍네요.”

“실망스럽나?”

“아뇨,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고리타분해서 싫다고 대답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이게 낫네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겠죠. 이 세상에 제 자취가 남아있는 곳 따위 이제 없습니다. 이 아카데미를 제외한다면 말이죠.”

갑갑한 마음에 담배를 한 모금 들이켰다.

실로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나와 같은 흡연자니까.

이 정도 무례함은 너그럽게 이해해주리라 믿었다.

“생도 시절에는 담배를 피지 않았던 것 같네만.”

“좆같은 곳에서 좆같은 놈들과 지내다 보니 배우게 되었습니다.”

“입도 많이 거칠어졌군.”

“죄송합니다.”

본래 나는 입이 험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개새끼들이 다 나를 버려놓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그 녀석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아, 원망할 수도 없군.

다 죽어버렸으니.

“그곳에서 있던 일은 유감이야.”

“아닙니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요.”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네. 내가 자네를 추천했으니까. 자네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장님이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일은 제게 천직이 맞았으니까요. 처신을 잘못한 제 불찰이죠.”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료해준다고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때 일을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걸 보니.

하지만, 시간조차도 흉터가 남는 건 막지 못하나 보다.

지난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 켠이 아려오니까.

“그래서, 이제 뭘 할 생각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재산이야 숨겨뒀던 물건들을 팔아치우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힘들겠죠.”

“자네의 재주를 살릴 생각은?”

“없습니다. 절대로.”

나의 사상력을 이용하면 떼돈을 버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럴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런가… 알겠네.”

오스카는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가 길어져 봐야 좋을 게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래 있어봤자 누를 끼치는 꼴밖에 되지 않을 테니.”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아쉽군. 잘 가게나.”

그것이 내가 사람과 대면하여 나눠본 마지막 대화였다.

* * *

희끄무레한 담배 연기가 작은 방을 가득 메운다.

재떨이 위론 수십 개비의 꽁초가 수북이 쌓여있다.

그렇다고 흡연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매캐하게만 느껴지는 기체일 뿐이겠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의지할 구석이 되기도 한다.

아니, 나에겐 유일한 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나에게서 몇 년 동안이나 앗아갔으니, 얼마나 분했겠는가.

그리폰 교도소를 빠져나온 뒤로 가장 먼저 한 일도 줄담배를 빨아 재끼는 것이었다.

그 작태가 그대로 습관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 지금의 내 상황이다.

­♬♪♩…

쌉싸름한 연기를 입안에서 맛보고 있던 와중,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그래, 빠져나온 기분은 어때.

“나온 지 반년은 된 거 같은데, 참 일찍 연락하네.”

­우리 사이가 그렇게 돈독했었나?

“그래서, 무슨 일이야. 아, 일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사양하지.”

­전 대장이 죽었다는데?

“그 인간이 뒈졌다고?”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평소 그의 행실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더 용한 수준이었으니까.

언젠가는 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

“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군. 언제 뒈질지 모르는 삶을 살던 게 우리잖아?”

­틀린 말은 아니군.

“그래서, 고작 그 이야기를 하자고 나한테 연락했나?”

­아니, 복귀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연락했다.

“사양하지.”

씨발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 오라니.

욕을 참은 나 자신이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대원들도 널 기다리고 있다.

“내 대원은 이미 모두 죽고 없어.”

­진심으로 부탁하는 거다. 우리도 네가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아. 하지만 너만 한 인재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정찰, 요인암살, 정보전, 블랙 옵스까지. 네가 맡고 있던 임무다. 네 빈자리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고 있어.

“그런 줄 알았으면 우리를 버리지 말았어야지.”

또 한 번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사실 삶의 낙이었다기보단 의존에 가까울 것이다.

이것 없이는 뇌가 돌지 않는 기분이었다.

­네가 어떤 기분인지는 이해해. 레온. 하지만 썩히고 있기엔 네 능력이 너무 아까워. 코스모스 특임대로 돌아와. 네 과거 기록도 모두 말소해 준다고 국장님이 약속했어.

“좆까.”

코스모스 특임대.

그 이름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똑똑히 박혀있다.

한때 내가 몸을 담았던 곳이니 말이다.

사실 그곳만큼 나에게 어울리는 일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으리라.

“스읍….”

그래, 흡연은 나에게 일종의 습관이자, 지나온 세월에 대한 반항이었다.

* * *

나는 진눈깨비를 싫어한다.

아니, 누구나 그럴 것이다.

빗물과 슬러지, 되다 만 눈송이들이 뒤섞인 오물들로 길이 뒤덮여 버리니까.

태워 먹은 스크램블 에그를 연상케 하는 그것들은 불쾌감을 조성하기에도 충분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하늘은 사람의 처지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진눈깨비를 찍찍 싸 갈기고 있었다.

“난 진눈깨비가 싫어.”

“나도 좋아하진 않아. 그래도 익숙하니까 별생각은 없어.”

“익숙하다고?”

“우리 동네는 자주 오잖아?”

“스코틀랜드는 눈이 더 많이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에딘버러는 겨울에도 그렇게 춥진 않아. 추운 곳은 하이랜드 지방이지. 이쪽은 오히려 눈보다 진눈깨비가 많이 올걸.”

정말이잖아.

겨울 평균 기온을 대조해보아도, 서울이 에딘버러보다 낮았다.

“한국은 여름엔 불지옥이고, 겨울엔 얼어 죽을 것 같은데. 스코틀랜드는 살기 좋은 동네네.”

“그럼 이사올래?”

“아니, 그건 좀. 에딘버러 집값 비싼 동네잖아.”

“서울보다 싼데? 도쿄보다도 싸고.”

그런가?

이 세계의 집값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모르겠네.

원래 살던 세계의 기준이라면 확실히 그렇겠지만.

그나저나, 이 와중에도 아이나를 견제하는 건 빼먹지 않는구나.

“그건 별 상관없어.”

“왜?”

“남는 별채를 아무거나 내주면 그만이니까.”

아이나의 지위를 망각하고 있었네.

하긴, 잘나가는 집안의 차기 당주님이시니까.

집값 따위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겠지.

“됐어. 그냥 한국에 살게.”

“혹시나 갈 곳이 없어지면 말해. 거둬줄게.”

“나도 한 명 정도는 먹여 살릴 수 있어.”

“너네는 무슨 거지 돌보듯이 말하냐.”

““아니었어?””

양쪽에서 공격이 날아들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네.

심지어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날 슬프게 만들고 있었다.

오스카에게서 받아낸 100만 달러가 여전히 내 계좌에서 숨 쉬고 있다곤 하나, 이들에겐 그다지 큰돈도 아닐 테니.

“맞는 것 같네.”

“그래, 그러니까 조용히 하고, 가이드 역할이나 열심히 해.”

“설마, 아직도 어디 갈지 못 정한 건 아니지?”

“대충은 정했어.”

자기들이 따라와 놓고 왜 날 무급 노예로 부려 먹는 거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실제로 내 처지가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녀들이 날 만나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해야 할 수준이었다.

“근데, 아까 전부터 손에 들고 있던 그거, 뭐야?”

“아, 이거.”

나는 봉투 속에 들어있던 두 개의 목도리를 꺼냈다.

나름 그녀들에게 줄 선물이라고 공들여 만든 것이다.

섬유도 제법 좋은 걸 썼고.

그래도 솔직히 조금은 부끄럽다.

보통 이런 건 여자가 줄법한 선물이니까.

그래도 부디 기쁘게 받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얀색은 프리실라의 목에, 보라색은 아이나의 목에 둘러주었다.

“같은 생각 했네.”

“뭐가?”

“나도 만들었거든. 너 주려고.”

프리실라가 품속에서 목도리를 꺼냈다.

내가 만든 것에 비하면 다소 완성도가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감아줄게. 기다려.”

나는 프리실라를 무색무취한 소녀라고만 생각했었다.

몰개성하다는 비난의 의미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어떠한 색도, 어떠한 향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가 주변의 색에 쉽게 물들 것이라 여겼다.

나 또한 그녀를 나의 색으로 물들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하지만, 프리실라는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색으로 나라는 존재를 덧칠하고 있었다.

작은 눈송이들이 쌓이고 쌓여, 세상을 하얗게 뒤덮듯.

그래, 프리실라는 쉽게 주변에 뒤섞이는 진눈깨비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바닥에 내려앉는 순간까지도 그 모습을 잃지 않는 눈꽃이었다.

포개어진 입술이 떨어진다.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진눈깨비는 그치고, 포슬포슬한 함박눈이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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