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2차원의 세계.(1)
* * *
현재, 나는 골치 아픈 문제에 봉착해있다.
평소처럼 대충 넘겨버리고 훗날의 나에게 떠넘길 수도 없었다.
제법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내 밥줄이나 다름없는 퍼스트 어빌리티와 관련된 문젠데,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한동안 마나글레이브 수련에 매진하느라, 퍼스트 어빌리티를 소홀히 여기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틈틈이 연습해왔으니까.
그것을 게을리해왔다면, 지난 올림피아드에서 그물 함정 같은 새로운 기술을 선보일 수도 없었겠지.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싶을 것이다.
듣기에는 큰 차질 없이 순조롭게 성장해나가는 것처럼 보일 테니.
하지만, 그건 궁극적인 의미의 성장이라고 보긴 어렵다.
내 성장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니 말이다.
분명, 내 퍼스트 어빌리티는 어떠한 실을 만들어내고, 그 실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능력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실에 대한 통제권을 얻는다’라는 부분이고.
그래, 나는 실을 만들어낸다는 부분에서는 큰 성장을 이룩했지만, 실을 통제하는 면에 있어서는 전혀 성장한 게 없다.
그물 함정이 그것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예시지.
그물 함정은 단순히 실을 많이 뽑아내기만 하면 될 뿐이니까.
단 하나의 실만 건드리면 알아서 작동되는 물건인데, 무슨 복잡하고 섬세한 통제가 필요하겠어.
그런데도 내가 이런 중요한 사실을 묵과하고 있었던 데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여태까지, 나는 선분만이 존재하는 1차원의 세계에 갇혀 살고 있었다는 게 바로 그 이유다.
면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세계, 2차원으로 들어가기엔 만들어낼 수 있는 실의 양이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
그렇기에, 지금까지는 그 ‘실의 통제권’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몇 가닥의 실오라기를 제어하는 것 정도야,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이야기가 다르지.
여러 개의 면을 구성하고도 남을 정도로 넉넉한 양의 실을 뽑아낼 수 있게 된 지금은, 나에게도 2차원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일 자격이 생겼으니까.
…자격뿐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세계는 나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다.
단지 나에게 문을 열어주었을 뿐, 마음대로 그곳을 누빌 권리는 주지 않은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는 단순히 면을 만들어낼 여력이 생긴 거지, 실제로 면을 활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이 면을 만들어낸다는 게 생각보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알다시피, 면이라는 것은 여러 개의 선분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즉, 내가 그 개념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쌓아 올려진 수백 가닥의 실을 일사불란하게 동시에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데, 나는 이 실의 통제권에 대한 수련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수백 가닥의 실을 한 번에 다루려고 하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선분의 세계에만 갇혀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실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갖기 전까지는, 수동으로 실을 조정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실 이 결론 밖에는 답이 없었다고 해야 옳으리라.
수백, 수천 가닥의 실을 한 번에 다룬다는 건, 현재 내 수준에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이야기였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실뜨기부터 연습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 * *
“뭐 하고 있어?”
고혹적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온다.
세레나겠지.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라는 점에선 카타리나와 조금 비슷한 면이 있지만, 감미롭고 약간 높은 톤이 여장부 같은 카타리나와 명확히 분리되는 점이다.
“새로운 시도요.”
“엉킨 실을 풀었다, 말았다 하는 게 새로운 시도야?”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생각하는 것처럼 잘 안 되네요.”
“생각하고 있는 게 뭔데. 도와줄게.”
“여러 가닥의 실을 엮어서 면을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너무 자주 엉켜버려서 어렵네요.”
“그렇게 하려고 하니까 엉키는 게 당연하지. 잘 봐.”
조물락거리고 있던 실뭉치들을 세레나가 가져갔다.
그리고, 능숙한 솜씨로 바느질을 시작했다.
신기하네.
미치광이인 줄로만 알았던 세레나에게 이런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다.
섬세함이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인데.
“뜨개질이나 바느질은 어디서 배운 거예요?”
“투옥당했을 때.”
“교육으로 그런 걸 가르쳐요?”
“아니, 그냥 독학한 거야. 여자 죄수복 중에서 잘 맞는 게 없었거든. 직접 수선해서 입어야만 했어.”
이해했다.
어쩐지 저번에 단추다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하긴, 세레나의 사이즈는 여러모로 규격 외니까.
일반적인 옷은 저것들을 수용할 수 없겠지.
“근데, 거기선 바늘 같은 거 못 쓰지 않아요?”
“식사랑 함께 제공되는 플라스틱 젓가락을 갈아서 바늘로 만들었어. 들켰을 때는 처벌도 받고, 바늘도 뺏겼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 만드니까 포기하긴 하더라. 어차피 그걸로 바느질밖에 안 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그럼 그렇지.
이야기에 반드시 이상한 점이 하나씩은 끼어있어 줘야 세레나 아니겠는가.
그래도 여태까지 그녀가 보여왔던 모습들에 비하면, 이건 굉장히 정상적인 축에 속하는 거지만.
“되게 잘하시네요.”
“이 짓을 몇 년째 했었는데. 기본이지. 기본.”
세레나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쁘긴 하다지만, 몇 번을 봐도 적응이 잘 안 되는 얼굴이란 말이지.
뱀을 연상케 하는 기다란 동공, 미소 사이로 드러나는 뾰족한 상어 이빨.
그녀 나름의 매력 포인트인 건 맞지만, 그래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다.
특히나 저 상어 이빨은 물리면 살점이 뜯겨 나갈 것만 같아서.
“자, 다 됐어. 가져가.”
그녀가 내게 건네준 완성품은 잘 짜인 원단 같았다.
직조기로 갓 뽑아낸 것처럼.
“어려워 보이긴 하는데, 배우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많은 가닥의 실을 쓸 필요가 없으니.”
“너, 한 번에 실을 여러 가닥 못 다뤄서 이러고 있는 거지?”
“네, 맞아요.”
“그럴 것 같더라. 내가 보기에 지금 네가 면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건 타협 지점을 찾는 거야.”
“그게 무슨 뜻이죠?”
타협 지점?
무엇과 타협을 하라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보여준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손재주가 빼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니까, 네가 포커스를 맞춘 부분은 ‘많은 가닥의 실을 쓸 필요가 없다’잖아? 실을 조종하는 데 있어 한결 수월해지는 거니까.”
“그렇죠.”
“그에 대한 부작용도 생각해야지. 들어가는 실의 개수가 너무 적어지면, 그만큼 한 올 한 올마다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더 많아져. 결과적으로 처음과는 크게 변한 게 없어지는 거지.”
“아, 그렇네요.”
“그러니까, 네 머리에 과부하가 오지 않는 타협 지점을 찾는 게 키 포인트야. 실의 개수가 너무 적으면 한 가닥마다 들어가는 무브먼트가 많아져서 빠르게 면을 형성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실의 개수가 너무 많아지면 네 통제를 벗어나서 엉켜버릴 거 아냐. 그 중간을 잘 조율해야 한다고.”
이제야 이해가 간다.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면서도, 실이 내 통제를 벗어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구간을 찾아야 한다는 소리였구나.
확실히 좋은 조언이군.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이해했으면, 아까 보여줬던 거나 따라 해봐.”
“기억이 안 나요.”
“그럼 기억이 날 때까지 때리면 되겠다!”
농담인 줄만 알았다.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진심으로 때릴 거라고.
* * *
“요즘 바쁜가 보네?”
“그럴 일이 있어서.”
이런 곳에서 아이나를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내가 알기로 아이나는 스카이라운지를 자주 오가는 사람이 아닌데.
“너… 방금까지 세레나 교수님이랑 있었어?”
“맞아.”
그건 또 어떻게 알아차렸대.
이게 그 ‘여자의 감’이라는 건가?
아니지, 이건 그것으로도 한참 모자란 것 같다.
아이나의 감은 단순히 육감을 넘어서 신기에 가까운 영역이니까.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궁금한가 보네.”
“신기해서 매번 놀랄 정도니까.”
“향기를 구분하는 건 어릴 적부터 받은 훈련이지. 묵직한 나무 향기, 비릿한 쇳내, 라일락 향, 마지막으로 약간의 오리스. 세레나 교수님한테서 나는 향기야.”
진짜 귀신인가?
난 나한테서 저런 냄새가 나는 지도 몰랐는데.
일단, 확실한 건 아이나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는 거다.
미심쩍은 눈초리로 날 보고 있었으니까.
“요즘 세레나 교수님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이네.”
“좋은 교수님이니까.”
“자주 어울리기엔 좋은 사람이 아닐 거 같아.”
전에는 좋은 사람이라고 그러더니, 인제 와서?
아이나가 말을 바꾸는 건 좀처럼 흔치 않은 경우인데.
“왜?”
“뭐라 하면 좋을까…. 찜찜한 구석이 있어. 짐승의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여러 가지가 혼재해있어. 먹이를 노리는 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듯한 눈, 이성과 총기를 잃고 욕망에만 충실한 눈…. 원래도 죽은 눈 탓에 그런 분위기를 띠는 분이시긴 하지만, 그래도 묘하게 불안해.”
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는 하다.
아이나처럼 자세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도 가끔 세레나에게서 기이한 불안감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
특히 그녀의 뱀 같은 혀가 날름거릴 때면 소름이 쫙 돋는다.
“그래도, 친절하고 자상한 분인데. 괜찮겠지.”
“후, 그랬으면 좋겠네.”
그 뒤로는 이렇다 할 특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냐는 질문이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같이, 일상적인 대화만이 오갔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달이 중천에 떠오른 때가 되어 있었다.
“슬슬 들어갈 시간이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러게. 아쉽네.”
“어쩔 수 없지. 내일 보자. 좋은 밤 보내고.”
“너도 좋은 꿈 꿔.”
옛날엔 저런 이야기도 쪽팔린다고 안 해줬었는데 말이지.
어째 가녀리기만 한 소녀로서의 아이나가 강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에겐 좋은 이야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