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상식의 부재.
* * *
과거에는 어째서 영식이 미완성인 검법이라 불리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완성된 기술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식에 대한 조예가 어느 정도 생긴 지금, 기술들 사이에 존재하는 빈자리가 슬슬 와닿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진 그 빈자리를 눈치조차 채지 못할 정도로 내가 미력했다는 뜻이겠지.
그걸 알아차렸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지만.
틈을 메울 방법을 모르는데, 알아차린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나 따위가 영식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난 천재가 아니니까.
애초에 나 같은 범인이 귀결지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미완성인 채로 100년이란 세월이 흐르지도 않았겠지.
진작에 완성되었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나는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둔재인 내가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
사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나에게 그런 사명을 내린 니힐리스조차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고 있는 마당에, 그런 감정을 느낄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다시 생각해보니 괜한 걱정이었네.
그냥 하던 대로 연습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을, 뭐하러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했나 싶다.
그래, 내가 해야 할 일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검을 쥐는 것뿐.
* * *
한참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데 전념하던 중.
잠깐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니, 처음 보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그가 누구인지 유추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손에 쥔 포톤글레이브.
흐트러져있지 않은, 단정한 옷차림.
이 사람이 피터 교수님인가 보네.
나를 찾아온 교수님을 가만히 방치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에, 나는 빠르게 훈련을 마무리 짓고 밖으로 나갔다.
“안녕하세요. 박성진 생도. 바쁘지 않다면, 저랑 한 번 겨뤄보는 건 어떨까요?”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생도에 불과한 내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제법 정중한 모양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호승심과 탐구욕이 깃들어 반짝이는 눈이, 마치 승부를 고대하는 남자의 미소에 가까웠기 때문이리라.
갑자기 왜 이런 요청을 하는 걸까.
물론,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와 피터는 비슷한 무기를 사용한다는 접점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저 눈빛에 담긴 호승심을 설명하기에 부족했다.
내가 교수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정도로 뛰어나지 않다는 건 본인도 잘 알 텐데?
로렌스 정도로 강했으면 또 모를까.
“저는 교수님과 진검을 겨루기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봐주면서 할 테니까.”
“피터 교수님 밑에도 생도가 많지 않나요? 굳이 저와 겨뤄보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맞아요. 그게 이유입니다.”
그게 이유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문하에 제자도 많은 사람이 뭐하러 날 찾아온단 말인가.
“포톤글레이브나 마나글레이브를 사용하는 생도는 거의 제 밑에서 배우고 있죠. 아닌 생도들도 이따금 보인다곤 하지만, 그런 생도들은 대게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독학을 고집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보이는 건 박성진 생도가 유일해요.”
“그런가요?”
이제 조금 이해가 가네.
얼마나 도대체 얼마나 재능충이길래 스승도 없이 그렇게 날고 길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거잖아.
유감스럽지만 난 재능충이 아니다.
남들에게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스승도 있다.
심지어 그 스승은 세계관 최강자에 가까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발전이 더딜 수 있겠어.
피터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게 아니다.
그냥, 니힐리스의 급이 너무 높은 거지.
“네, 아마 제 밑의 다른 생도들에게도 좋은 영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제안해봤습니다.”
저기 서성거리고 있는 무리의 정체가 그것이었구나.
아무것도 안 하는 주제 왜 옹기종기 모여있나 했다.
“음….”
“불편하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다시 생각해보니 마냥 나쁜 제안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가 내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
깨달음을 얻은 녀석 중에선 또 유능한 히어로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다면 내가 할 일도 조금은 줄어드는 셈이니까.
물론, 그런 녀석이 몇이나 있겠느냐마는.
“아니에요.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빠르게 시작합시다.”
그동안 연습한 기술들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피터의 뒤를 따랐다.
* * *
[사용자가 인식되었습니다. 사상력을 동기화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용자, 피터 그레이, 박성진의 사상력의 동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훈련의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카운트 다운, 5, 4, 3, 2, 1, 0,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훈련이 시작되었다는 안내 음성에도, 피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드러냈던 호승심은 온데간데없고, 차분한 자세로 자신의 자리를 고수할 뿐이었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색다르네.
여태까지 만났던 교수들은 죄다 먼저 달려들기 바빴는데 말이야.
“의아한가요?”
“네, 보통 다른 교수님들은 저희를 때리기 바쁜데.”
“성향의 차이라고 해둡시다. 공격적인 빈센트 교수님이나 세레나 교수님과는 다르게, 저는 수비적인 성향이거든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자세다 싶더니, 포톤글레이브 검법 중에서도 가장 수비적인 것으로 유명한 4식, 코니드의 기본자세였네.
조금 어렵게 됐군.
나는 코니드를 상대해본 경험이 거의 없으니까.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점은, 내가 최근에 익혔던 기술들이 모두 상대의 수비를 뚫는 데 유용하다는 점.
실전에서 제대로 된 효율을 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답답하네.
다른 녀석이라면 시원하게 겨울나리로 접근했을 텐데.
상대가 상대다 보니,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어쩔 수 없지.
천천히 다가가는 수밖에.
…됐다.
이 정도면 적당한 거리겠지.
새로운 기술을 시험해볼 차례군.
이 기술은 이동과 관련된 기술이라곤 하지만, 무협지에서 말하는 보법, 경공 같은 개념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렇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니까.
즉, 엄밀히 말하면 환술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마나의 흐름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흐릿한 잔상으로 상대방의 눈을 속이는 기술 쪽이라.
잔상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선 분신술과 비슷하긴 하지만, 이 잔상은 처음 기술을 사용할 때와 기술이 끝날 때만 잠깐 나타나기에, 분신술과도 약간은 거리가 있다.
비유하자면, 격투기의 페인트 같은 거지.
실제로 어떠한 동작을 취해야 하는 페인트와는 달리, 이쪽은 동작 자체를 취할 필요가 없으니, 리스크는 훨씬 적지만.
문제는 이게 나와 격의 차이가 월등한 상대에게도 통하느냐다.
‘어지간한 사람에겐 대부분 통할 것이다’라는 니힐리스의 보증이 있긴 했으나, 그걸 곧이곧대로 맹신하긴 또 어렵다.
피터가 어지간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도, 일단은 써봐야 아는 거겠지.
영식(??), 제 7의 명(?), 새홀리기.
잔영이 내게서 분리된다.
나는 여전히 피터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그의 눈에는 내가 뛰어오르는 자세로 보일 것이다.
효과는… 아쉽지만 없었다.
올곧은 눈은, 잔영이 아닌 나를 직시하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이 정도로 격의 차이가 크면 통하지 않는 것 같네.
그렇다고 여기서 후퇴하진 않는다.
물론 이것이 현실이었다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이미 던져진 주사위를 회수하는 짓 따위는 멋이 없잖아.
기술이 끝나기 전, 마지막 잔상을 흩뿌린다.
그것이 어떠한 자세를 취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까.
간파당한 마당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고 생각했던 그때.
피터의 포톤글레이브가 완전히 다른 방향을 노리기 시작했다.
내 잔상이 움직인 방향 말이다.
다만,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금세 고개를 돌려 내 검을 맞받아칠 준비를 했으니까.
그는 이 찰나의 순간에 이것이 눈속임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참, 교수들이 괜히 교수는 아니야.
나는 믿을 수 없는 반응 속도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놀라긴 아직 이릅니다.”
“네?”
“잘 보세요. 이런 돌발상황에도 대비해 두어야 할 테니까.”
포톤글레이브와 마나글레이브가 맞부딪힌다.
그리고 벌어진 일은 정말로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맞부딪힌 포톤글레이브의 검신이 부러졌으니까.
하지만, 피터에겐 그것이 아주 익숙한 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에선 일말의 당황한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 부러진 날로 전투를 이어나가기까지 했고.
결과는, 부끄럽게도 내 패배였다.
* * *
조금 아쉽긴 하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만족스럽네.
지금까지 해온 것이 헛된 노력이 아니었음을 알았으면 됐다.
새홀리기가 실전에서 어느 정도 통한다는 것도 확인했고.
일단은 피터가 완전히 자리를 뜨기 전에 궁금했던 점부터 물어봐야지.
“수고하셨습니다.”
“박성진 생도도 수고 많았습니다.”
“근데, 아까 전의 그거, 어떻게 된 거죠?”
“포르테 리저브를 말하는 거군요. 일반적으로는 보기 힘든 현상이긴 하지만, 마나글레이브나 포톤글레이브도 날이 부러지는 경우가 생기긴 합니다. 밀도 차이가 아주 큰 검신끼리 부딪혔을 때 생기는 현상이죠.”
그렇다면, 내 검이 부러지는 일은 아예 없다는 뜻 아닌가?
왜 이런 상황에 대비해 두라고 한 거지?
굳이 대비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데.
“그럼, 저는 굳이 포르테 리저브에 대비해 둘 필요가 없지 않나요?”
“그렇지 않죠. 박성진 생도가 검기를 날리는 기술을 쓰고 나면, 항상 검신의 색이 하얀색으로 돌아오던데요. 이때 공격당하면, 얼마든지 포르테 리저브가 일어날 수 있잖아요.”
낙린참의 리스크는 생각보다 훨씬 크구나.
저런 현상까지 고려해야 한다니.
니힐리스가 잘 쓰지 않는 기술이라고 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군.
“아….”
“독학으로 배우면 이런 문제가 생기죠. 상식의 부재가항상 생기기 마련이거든요. 뭐, 그래도 이 점만 빼면 아주 훌륭한 솜씨였어요. 다른 생도들에게도 자극이 됐을 테죠.”
“감사합니다.”
“저는 열린 문이니,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그렇게 대답한 피터는, 자신의 생도들과 함께 훈련장을 떠났다.
가끔은 모르는 게 생기면 피터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래봤자 영식에 대한 질문은 할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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