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프리실라의 고민.
* * *
최근 프리실라의 동향이 변했다.
눈에 띄게 이상해진 것까진 아니고, 신경 쓰면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변화지만.
본래 프리실라는 그렇게 훈련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으르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모범생이라고 생각하기엔 약간은 거리가 있는 부류.
그런 프리실라가 갑자기 훈련에 미친 듯이 매진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혹사시키기로 유명한 아이나 수준으로.
아무래도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본데.
프리실라에게 한 번 가보아야겠어.
* * *
예상했던 대로 프리실라는 훈련장에 있었다.
표정이 영 좋지 않은 것을 보니, 무언가가 자기 구상대로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쩐 일이야?”
“그냥, 최근에 이상할 정도로 열심히 훈련하길래. 뭔가 이유가 있나 싶어서.”
“정말 몰라서 물어?”
“응, 진짜 모르겠는데.”
프리실라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그런 것조차 모르냐는 표정.
아, 기말고사 때문인가?
“혹시 기말고사 때문에?”
“반은 맞았네.”
“나머지 이유는 뭔데.”
“너, 내년에 진급하잖아. 오셀롯 아카데미에서 쌓아둔 성적이 있다고 쳐도, 나는 이번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면 진급하기 빠듯해. 널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내가 조금 눈치가 없었네.
나야 이미 U클래스 진급이 확정된 상황이니 아무런 상관이 없다지만, 다른 사람들 처지에선 충분히 고민될 만한 문제니까.
아니지, 이건 다른 사람으로 확장해서 볼 게 아니라, 오롯이 프리실라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다른 녀석들은 그렇게 진급에 목맬 만한 이유가 없기도 하고.
물론 더 높은 자리까지 갈 수 있다면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아마 S클래스의 생도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할걸.
‘S클래스만 졸업해도 만인에게 인정받으며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는데, 굳이 고생까지 해가며 U클래스로 올라갈 필요가 있나?’라고.
문제는 프리실라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거란 말이지.
따지고 보면 그녀는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여기까지 전학 온 사람 아닌가.
심지어 전학은 내가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간다고 반드시 나와의 관계가 원만히 잘 진행되리란 보장도 없고.
그렇다 보니, 전학은 그녀 나름대로 심사숙고하여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을 게 분명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다시 거리가 멀어진다면 비통한 심정이겠지.
“미안하다.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해.”
“아냐. 넌 원래 그런 놈이었으니까. 내가 이해해야지.”
“그래서, 뭐가 문젠데?”
“백화 분진을 더 효과적으로 쓰고 싶은데,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네.”
그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문제인가?
유탄발사기나 대전차 미사일 같은 무기의 탄두 속에 넣어서 쓰면 되는 문제잖아.
최루탄 비슷한 느낌으로.
“폭발 무기에 담아서 쓰면 되는 거 아냐?”
“너, 잊었어? 아카데미 생도는 델타 등급 이상의 장비를 사용하면 안 돼. 그럴 수 있었으면 진작에 그걸 사용했지.”
아, 그런 규정이 있었지.
정작 그 규정을 이용해서 가장 수혜를 본 게 지난 중간고사의 나였는데 말이야.
마나글레이브가 어지간한 장비들은 거의 다 씹어먹는 성능을 자랑하다 보니, 무기에 대한 규정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네, 확실히 고민이 되겠어.”
“어떻게 하면 좀 더 실용적으로 쓸 수 있을까… 나는 근접전에 유리한 사상력이 없다 보니 한계가 더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잠깐, 고폭탄을 사용하는 무기야 생도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쳐도, 일반 탄환을 사용하는 총기류는 상관없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탄환에 넣어서 쓰는 건 어때?”
“뭐? 요즘 누가 총에 맞아준다고. 뭐, 그래. 물론 피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탄환을 흩뿌리는 총이라면 가능하겠지. 근데 난 아쉽게도 그렇게 많은 양의 백화 분진은 아직 못 만들어.”
“이거라면 맞아줄 거 같은데?”
나는 트아카 어플의 엡실론 등급 무기 도감에 들어가, 한 가지 탄환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말이네. 이거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근데, 이런 장비가 있는지는 또 어떻게 안 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다 지난 중간고사 때, 머리를 쥐어 짜내며 얻어낸 결실이지.
혹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무기가 있을까 싶어, 온종일 무기 도감만 들여다보고 있었거든.
결과적으로 써먹은 것은 추적 지뢰 하나라지만, 그 이외에도 유용해 보였던 몇 가지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언젠가는 하나라도 또 사용하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게 이렇게 쓰이는 날이 올 줄이야.
“378 케일라. 한때 대 각성자 진압부대에서 주목했던 탄환이지. 하지만 비싼 단가, 그에 비해 떨어지는 살상력 때문에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 물건이라지만… 백화 분진이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378 Caela’라는 이름을 가진 이 탄환은, 유도 기능이 탑재된 특수한 탄환이다.
요인암살용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지만, 낮은 실전 투입률 때문에 묻혀버린, 구시대의 유물 같은 존재지.
실전 투입률이 낮은 이유?
뻔하지 않은가.
대상의 내구가 조금만 튼튼해도, 살상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으니까.
높은 단가에 비해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지.
하지만, 프리실라의 백화 분진과 결합된다면, 그 낮은 살상률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발상은 분명히 나쁘지 않아. 문제는 이건 이미 많은 개량을 거친 물건이라는 거야. 거기다가 탄착군에 백화 분진을 주입하는 기능까지 넣기엔, 생도 수준의 개조에선 한참 무리지 싶은데.”
“걱정하지마. 그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프리실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이해가 가지 않겠지.
이런 마개조에 가까운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에겐 앨리스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지.
물론 이런 이상한 종류의 의뢰는 앨리스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을 테니, 조금 애를 먹을 수도 있기야 하겠다만,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지.
공밀레라는 말이 왜 있겠어?
안 되면 되게 하라고 있는 거잖아.
자발적으로 내 노예가 되겠다고 선언한 앨리스니, 골수까지 뽑아 먹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는 곳에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거야?”
“맞아.”
“근데, 이쪽은 앨리스 교수님의 교수실이 있는 방향인데.”
“그분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실 거니까.”
“앨리스 교수님이 우리를 도와줄까…?”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어차피 그 사람은 이런 작업을 낙으로 삼는 사람이다.
거절할 리가 없다고.
* * *
다행히 앨리스는 내 의뢰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다음에는 맛있는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달라는 말을 덧붙이긴 했지만.
아무튼, 프리실라의 속을 앓게 했던 문제는 이것으로 시원하게 해결됐으니, 다행이군.
“고마워. 너에겐 여러모로 빚을 많이 지네.”
“나도 이제 돈 많으니까, 이자까지 내라는 말은 안할게.”
그 말에 프리실라가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짓는다.
아이나와 다르게 자기감정에 솔직한 그녀라지만, 아마 실제로 삐진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내게 화가 난 것이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이 자리를 떠났겠지.
노골적으로 ‘나 삐졌어’하는 티를 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기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걸 보면, 따로 바라는 것이 있는 게 틀림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진심이 담긴 포옹으로 응대해 주었다.
“나중엔 이것도 갚으라고 하는 거지?”
“아니, 그냥 좋아서 하는 건데.”
“거짓말이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프리실라는 웃고 있었다.
제법 환하게.
아무래도 내가 고른 선택지가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네 곁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
“내 곁에 있어봤자 고생만 할 텐데?”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프리실라는 원작에서도 자신에 일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것처럼 묘사되는 캐릭터였으니까.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잘 살 사람의 미래를 고달프고 힘들게 바꿀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가는 길엔 분명히 온갖 좆같음이 뒤따를 텐데 말이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고생하는 것도 내 선택이잖아?”
당했네.
프리실라는 이미 예상했다는 것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너무 틀에 박힌 대답이긴 했지.
나는 피식 웃어 보이곤, 프리실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와 키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그녀였기에, 다소 어색한 모양새였지만.
“그럼, 난 다시 훈련하러 가볼게.”
“열심히 해.”
시리도록 하얀 그녀가 내게서 멀어져 간다.
그런 모습과는 달리, 실제론 정 많고 씩씩한 소녀지만.
눈송이가 내려앉는 듯한, 사뿐한 걸음과 함께, 프리실라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나는 비로소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 * *
‘무슨 일로 찾아왔어?’
아마도 그런 말이었으리라.
내가 그녀의 말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던 이유는, 얼굴을 덮고 있는 모자가 그것을 웅얼거림으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책상 끄트머리에 걸쳐진, 쭉 뻗은 다리.
도저히 부피를 감당할 수 없어 터져버린 단추.
갈라진 와이셔츠 사이로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두 개의 언덕과 그 사이의 골짜기.
세련된 곡선을 그리는 기다란 뿔.
그래, 자기 추태를 조금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 사람은, 바로 세레나 스튜어트다.
하긴, 이런 사람이 세레나 말고 더 있겠느냐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와 세레나가 가까운 관계라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이해져도 괜찮은 건가 싶다.
“교수님, 평소에도 이렇게 지내세요?”
“응.”
“남들 보기에 안 부끄러우세요?”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안 그러는데, 뭐가 문제야.”
“근데 왜 제 앞에선 이렇게 있으세요.”
“넌 다르지.”
다르긴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사이가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곤 하나, 그래도 엄연히 사제지간 아닌가.
“근데, 저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난 엄청 예민하거든. 모든 감각이 말이야. 내 교수실에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알아맞히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야.”
“피곤하시겠네요.”
“살다 보면 익숙해져.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어?”
세레나가 모자를 살짝 젖혀 올리며 말했다.
나와 눈을 마주친 것으로 보아, 그녀 나름대로 듣고 있다는 제스처인 듯했다.
“저번에 저랑 대련에서 썼던 검 있죠?”
“아… 그거? 잘 있지. 왜? 써보고 싶어졌어? 그건 절대 못 빌려줘. 설령 그 상대가 우리 어머니여도 안 돼.”
“아뇨, 혹시 그걸로 절 한 대만 때려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갑자기 정신이 나갔어?”
농담이 아니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왜 그런 요구를 하는데?”
“실험해보고 싶은 게 생겨서요.”
“한 방에 걸레짝이 될걸. 그것도 힘 조절을 한다는 전제하에서 하는 이야기야.”
“딱 한 번만 해주시면 돼요.”
세레나가 눈을 가늘게 뜬다.
정말이냐고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물론 그녀 눈에도 내가 미친놈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런 근거 없이 미친 짓을 시도하는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내 나름의 확신은 두고 시도한다고.
“하아, 그래.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젖혀진 의자에서 세레나가 튕겨 나왔다.
그리고, 제법 능숙한 손놀림으로 떨어져 나간 와이셔츠의 단추를 꿰매 붙이기 시작했다.
의외네.
그냥 출발할 줄 알았는데.
“그럼, 어디 뭐가 달라졌는지 보러 갈까?”
세레나의 눈에는, 약간이나마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과연, 나는 내 생각만큼 선방할 수 있을까?
…걱정이 조금 앞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