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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화 〉 새로운 무기.(4) (88/173)

〈 88화 〉 새로운 무기.(4)

* * *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무기는 어느덧 거의 완성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초기에 있었던 큰 문제들은 거의 해결되었고, 이제 남은 것들은 사실상 취향의 영역이라 보아도 무방할 정도의 자잘한 문제들 정도.

사실 내가 보기엔 이미 완성이나 다름없었다.

사용에 있어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수정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소수점 이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앨리스의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이었다.

“이만하면 그냥 써도 되지 않을까요?”

“흠, 그럴까요? 아니다. 변압로 때문에 과충전 상태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네요. 동력의 문제인가? 전달부를 나선형으로 교체해보는 것도 고려해야겠어요.”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는데요.”

“간단하게 말하면, 연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에요. 박성진 생도는 아직 유명한 마나글레이브 검사들에 비해 유지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렇죠.”

애초에 유명한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내 유지력은 또래들과 비교해도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으니까.

마나를 미친 듯이 퍼먹는 영식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곤 하지만, 그것도 결국엔 핑계일 뿐이다.

다 그런 리스크를 고려하고 배운 영식 아닌가.

“제가 추가한 이 오버드라이브 모듈은 그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고자 추가한 부품이에요. 설령 박성진 생도가 탈진해서 자홍색 검신을 뽑을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이 부품이 자홍색 검신을 잠깐이나마 더 유지하게 도와주죠. 다만, 제가 생각한 것만큼 효율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게 문제예요. 아무리 오버드라이브 모듈이 과충전 상태를 아무리 오래 유지한다고 한들, 실제 출력으로 전환되는 양은 30%가 채 되지 않고 있거든요.”

“그 기능이 꼭 필요한 건가요?”

“음… 숙련된 사람들에겐 별 필요가 없는 기능이겠죠. 하지만 박성진 생도에게는 꼭 필요하리라고 사료되네요.”

“그렇다니 어쩔 수 없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것만 끝나면 완성이고, 이것도 거의 끝난 연구니.”

“알겠습니다. 교수님도 고생하셨어요.”

딱히 기대되진 않네.

아, 무기에 대한 기대를 접은 것은 아니다.

앨리스가 한 말에 대한 기대를 접은 거지.

이 작업만 끝나면 완성이라는 말은 이미 지겹도록 들었거든.

하루는 답답한 나머지 그냥 이 상태로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물었던 적도 있다.

이런 건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거라며, 당연히 거부당했지만.

정말 완성되긴 하는 걸까.

적어도 겨울이 오기 전까진 완성이 돼야 하는데.

* * *

“드디어 완성했어요!”

“그것 참 다행이네요. 저는 올해 안으로 완성 못 할 줄 알았거든요.”

“기능상의 문제는 모두 해결했어요. 박성진 생도가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고쳐줄 수 있지만….”

“아닙니다. 아니에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무슨 끔찍한 소리를.

난 이미 만족한 지 오래라고.

당신 때문에 이렇게 지연된 건데.

“그럼, 얼른 사용해 보세요. 저도 기대 중이거든요. 기존에 있던 문제는 모두 개선하는 데 성공했으니, 출력도 많이 차이 나겠죠?”

“교수님께서 먼저 사용해 보시지 않았나요?”

“저에겐 마나를 다루는 사상력이 없어서 그런가, 차이가 너무 미미해서 티도 안 나더라고요. 박성진 생도를 기준으로 계산했던 값은… 대략 38% 정도의 출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겠네요.”

“갑자기 확 늘었는데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전에는 아무리 개선 작업을 해봤자 10% 언저리였잖아.

“반 마나 수정을 양극에 설치함으로써 누수되는 마나량은 줄이고….”

“예, 예, 알겠습니다.”

“제가 어렵사리 공수해 온 재료인데….”

앨리스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말하지만, 앨리스가 서운해하는 건 결코 생도 신분인 나 따위에게 무시당해서 그런 게 아님을 밝힌다.

자기가 구해온 재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떠한 원리에 의해서 그런 성과를 이뤄냈는지, 설명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것뿐이지.

“그래서, 그냥 쓰면 됩니까?”

“네, 조심하세요. 미리 과충전 상태로 만들어 놓고 와서, 최대 출력이니까요.”

“뭐, 설마 폭발하기라도 해요?”

“그럴 지도요?”

그러니까,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이게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이야기지?

그리고, 나한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줬고?

“장난이에요. 절대 폭발할 리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아요.”

“그럼 왜 그런 농담을 하셨어요.”

“재밌으니까요. 그리고 갑자기 강해진 출력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경계하라는 의미였어요.”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죠.”

그것은 처음부터 내게 맞춤 제작된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손에 딱 알맞은 형태와 크기를 하고 있었다.

아티팩트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특별한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한 물건이라는 점 때문인지, 묘한 고양감이 들긴 했다.

프로토타입이나 테스트 버전을 만질 때는 이렇게 설레지 않았는데.

조심스럽게 마나글레이브를 쥐어본다.

날카롭게 파도치는 마나의 소용돌이가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아직 작동조차 시키지 않았는데도, 지금까지 사용했던 마나글레이브와는 다르다는 감각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군.

이제 남은 것은 마나글레이브를 작동시키는 것뿐.

경건한 마음으로 검을 든다.

고요하게 흐르는 흐릿한 하늘과 맹렬하게 들이치는 탁한 군청이 맞부딪힌다.

좀처럼 뒤섞일 생각을 하지 않던 그것들은 공진하며 맑은 쪽빛이 되어, 검의 눈을 타고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개의 투명한 안구를 거쳐 빠져나온 색은, 내가 아는 어떤 소녀의 눈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 땅거미 끝자락에 걸쳐있는 그 빛깔.

보라색 말이다.

그 색채가 존재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이 세상을 훑고 지나갔다.

“보라색은 처음 보는 색이네요….”

“저도 처음 보네요.”

“뭔가 특이한 게 있었나요?”

“글쎄요… 너무 짧은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홍색 검을 뽑을 때는 뭔가 달랐는데.”

지금이야 그 감각에 둔해졌다지만, 자홍색 검을 뽑을 때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건 여전하다.

약간 게임과 비슷한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상대의 위협적인 공격 같은 게 자동으로 표시되는 느낌.

보라색 검신을 뽑고 나면 뭔가 그런 특별한 점이 생길 줄 알았건만.

변한 게 없는 느낌이다.

“그래서, 제 작품은 마음에 드시나요?”

“감사합니다. 이것보다 더 훌륭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박성진 생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힘이라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됐다고 해서, 반드시 그걸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보이지 않는 것…?

여태까지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바로, 아버지가 내게 남겼던 마지막 편지.

근거는 없었지만, 왠지 지금이라면 그것을 읽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맞아요. 그런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교수님. 나머지 테스트는 다음에 할게요. 급하게 해야 할 일이 떠올라서.”

“어디 가는 거에요! 아직 작동하는 지밖에 테스트 안 했는데!”

“다음에 올게요!”

전설적인 무기?

좋지.

하지만, 그런 것보단 편지의 내용이 내겐 더 중요했다.

그곳에 적힌 글귀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으니까.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는 나중에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검은 잘 벼려져서 무언가를 벨 수만 있다면 그만이다.

아무리 중요한 물건이라 해봐야,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남긴 유언보다 중하겠는가.

어쩌면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내용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달렸다.

편지를 보관해둔 나의 장소로.

* * *

정갈한 글씨로 쓰인 편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마나글레이브를 작동시켰다.

검신의 색이 차츰 변함에 따라, 희뿌옇게만 보이던 글씨가 차츰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에 적혀있던 글귀는.

「오스카는 신뢰할 수 없다.

특정 빌런과 내통하는 배신자는 아니지만, 그가 미래에 일으킬 사건을 생각하면 절대 너의 편이라곤 생각할 수 없구나.

경계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알려주지 않겠다.

네가 알아서 잘하리라 믿으니까.

단순히 아비와 자식의 정으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본 미래에서도 실제로 그러했다.

또한, 구태여 그것을 알려줘봤자 네 앞길에 방해만 될 테니.

내가 지금 남길 수 있는 말은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는 것뿐이다.

앞으로 닥쳐올 시련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고, 그 시련에 맞설 만한 사람들을 너 스스로 모으고 있으니까.

다만, 그들의 짐까지 짊어질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는 생각도 좀 버리고.

이 세계의 사람들은 가짜가 아니니까.」

오스카는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배신자는 아니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뭘 잘해왔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다만,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 하나만은 존재했다.

내가 이 세계의 사람들을 NPC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기에,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했다는 것.

그래, 내가 사람들과 벽을 치고 지낸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매사에 진지한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과의 관계엔 진지하게 응하지 않는 이유 말이다.

어쩌면, 내가 다른 녀석들을 어렵게 생각한 것도 사실 내 문제일지 모른다.

그들이 어려운 사람인 게 아니라, 단순히 내가 그들을 어렵게 생각했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비교적 속이 시원하긴 했다.

답도 정해져 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을 대하라는 거잖아.

어려운 일이지만, 시도조차 못 할 일은 아니지.

이 정도로 세상을 구할 수 있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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